鶴山의 草幕舍廊房

Faith - Hymn

그리스도인과 세상 권세(로마서 13:1~7)

鶴山 徐 仁 2019. 10. 22. 08: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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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0월 22일 (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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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 본문 그리스도인과 세상 권세(로마서 13:1~7)

1. 각 사람은 위에 있는 권세들에게 복종하라 권세는 하나님으로부터 나지 않음이 없나니 모든 권세는 다 하나님께서 정하신 바라

2. 그러므로 권세를 거스르는 자는 하나님의 명을 거스름이니 거스르는 자들은 심판을 자취하리라

3. 다스리는 자들은 선한 일에 대하여 두려움이 되지 않고 악한 일에 대하여 되나니 네가 권세를 두려워하지 아니하려느냐 선을 행하라 그리하면 그에게 칭찬을 받으리라

4. 그는 하나님의 사역자가 되어 네게 선을 베푸는 자니라 그러나 네가 악을 행하거든 두려워하라 그가 공연히 칼을 가지지 아니하였으니 곧 하나님의 사역자가 되어 악을 행하는 자에게 진노하심을 따라 보응하는 자니라

5. 그러므로 복종하지 아니할 수 없으니 진노 때문에 할 것이 아니라 양심을 따라 할 것이라

6. 너희가 조세를 바치는 것도 이로 말미암음이라 그들이 하나님의 일꾼이 되어 바로 이 일에 항상 힘쓰느니라

7. 모든 자에게 줄 것을 주되 조세를 받을 자에게 조세를 바치고 관세를 받을 자에게 관세를 바치고 두려워할 자를 두려워하며 존경할 자를 존경하라

본문 해석

크리스천의 국가관은 중요합니다. 국가를 사랑하는 마음으로 성경적인 국가관을 정립해야 합니다. 그렇다면 세상의 모든 정부를 다 부정적으로 보고, 그리스도인은 그것을 인정하지 말아야하는 걸까요? 종교개혁 시대에 어떤 그룹은 실제로 이러한 것들을 주장하기도 했습니다. 이들은 하나님의 주권을 주장하면서 세상 정부를 인정하지 않고 반란을 일으켰다가 몰살되기도 했습니다. 어떤 그룹은 아예 세상을 등지고 산 속으로 들어가 은둔자로서 살기도 했습니다. 

모든 말씀은 먼저 그 상황 속에서 이해되어야 합니다. 예컨대 바울은 교회에서 모든 여자들이 머리에 수건을 쓰라고 말합니다(고전11:5). 그러나 오늘날 현대의 여성들은 교회에서 머리에 수건을 쓰지 않습니다. 

 

오늘 본문의 일차적인 수신자인 로마교회는 당시 로마정부로부터 심각한 박해의 위협 아래에 있었습니다. 그 이유는 신앙적인 것이지만 동시에 정치적이었습니다. 그리스도인은 당시 로마 시민의 의무인 황제숭배를 거부했습니다. 그리스도인은 오직 예수 그리스에게만 머리를 숙이고 절했습니다. 이것을 로마황제가 좋아할 리 만무했습니다. 그래서 초대교회는 세상 정부로부터 혹독한 박해와 탄압을 받았습니다. 이러한 상황 속에서 바울의 권면은 이해가 됩니다. 정부와의 필요 없는 충돌을 피하라는 실제적인 의도가 깔려 있는 것입니다. 

 

모든 권세는 하나님께서 정하신 것이라고 바울은 강조합니다(1). 비록 그것이 인간의 이기적인 욕심과 탐욕과 관계있지만, 그럼에도 세상의 권력은 하나님이 허용하신 것입니다. 이것을 신학적인 용어로 “비상 질서”라고 부릅니다. 하나님의 본래적인 의도는 아니지만, 인간의 죄와 타락으로 인해 임시적으로 세워진 질서라는 의미입니다. 

독도를 가지고 시비를 거는 일본이나, 북한의 권력도 그렇다면 하나님이 세우신 것일까요? 원리적으로는 그렇다고 봐야 합니다. 하나님의 허용 없이는 참새 한 마리도 떨어지지 않기 때문입니다. 국가권력은 세상적인 “하나님의 사역자”의 기능을 담당합니다. 주님은 국가에 칼의 힘을 주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그 칼은 선한 백성을 위협하고 죽이라고 주신 것이 아닙니다. 칼의 힘은 “악을 행하는 자에게 진노하심을 따라 보응”하는 일에 사용되어야 하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이것을‘정의’(justice)라고 부릅니다. 그러므로 세상적인 국가의 가장 큰 임무는 정의를 행하는 것입니다. 정의란 악을 행하는 자에게는 벌을, 선을 행하는 자에게는 보상을 주는 것입니다. 만일 국가가 이런 정의의 속성을 잃어버린다면 그것은 하나님의 뜻에서 벗어난 것입니다. 이런 의미에서 북한의 정권은 하나님이 허락한 칼을 전혀 엉뚱한 곳에 사용하고 있다고 봐야 합니다. 이러한 불의한 정권에 저항할 것인가 혹은 복종할 것인가는‘양심’의 문제라고 바울은 가르치고 있습니다(5절). 

 

바울은 세상 시민으로서 의무와 책임을 성실히 준행할 것을 가르칩니다. 조세와 관세를 납부하고 두려워해야하는 사람은 두려워하고 존경할 할 사람은 존경하라고 가르칩니다(6-7). 따라서 세속적인 국가의 시민인 그리스도인은 말씀과 양심에 따라 시민으로서의 의무를 성실히 수행해야 합니다. 국가와 정부 자체를 부정하는 무정부주의는 성경의 가르침과 상반되는 것입니다. 

그리스도인은 그러면서도 하나님 나라의 백성임을 잊어서는 안 됩니다. 그리스도인은 이처럼 이중적인 시민권자입니다. 세속 국가의 시민이면서 동시에 하늘나라의 시민입니다. 국가는 하나님의 다스림의 한 방편임을 우리는 인정해야 합니다. 국가와 정부를 통해 질서가 유지되며 평화가 보존되는 것입니다. 

결단과 적용

- 국가의 근본적인 임무는 무엇이라고 생각하십니까?

- 나는 지금 크리스천으로 국가 지도자를 어떻게 생각하고 있나요, 위하여 기도합시다.

- 어떻게 하나님의 주권이 세상속에서 구현되어야할지 정리하십시다. 

오늘의 기도

은혜로우신 하나님, 사계절이 분명한 나라에 살아가게 하심을 감사합니다. 

이 나라가 하나님의 공의가 실현되는 복된 나라로 구별하여 주시옵소서. 위정자들에게 믿음과 지혜를 주옵소서.

인문학 큐티더 보기
인문학 나눔

“소설을 쓰다가 사랑하는 사람과의 ‘첫날밤’을 근사하게 표현하고싶어서 

‘꽃잠’이라고 표기했다(중략).  

첫사랑을 꽃사랑이라고 하면더 풋풋할 것 같고 

하기 싫은 공부를 꽃공부라고 하면 덜 지겨울 것 같기도 하다.

”김홍신 저(著) 《하루 사용 설명서》 (해냄, 63쪽) 중에 나오는 구절입니다.  

슬픈 단어에 ‘꽃’이라는 말을 붙이면 한결 가벼워지고 부드러워집니다.  

꽃아픔, 꽃갈등, 꽃싸움,꽃미움, 꽃두려움, 꽃열등감,꽃질투,꽃욕, 

꽃이별,꽃슬픔,  꽃고독,꽃분노, 꽃외로움...  심지어 돼지앞에 꽃을 붙이면 

꽃돼지가 되어 이쁜 돼지를 연상케 합니다.

좋은 말에  ‘꽃’ 이라는 말을 더하면 더 좋아집니다.

꽃생각, 꽃사랑,꽃그리움, 꽃웃음, 꽃뽀뽀,  꽃포옹, 꽃문자,꽃통화,  꽃돈,

꽃기다림....신앙도 그러합니다.  신앙이란, 예수님과 붙는 것입니다.

기독 메시지

“나는 포도나무요 너희는 가지라. 

그가 내 안에, 내가 그 안에 거하면사람이 열매를 많이 맺나니” (요15:5)

무리 슬픈 일도 예수님이 붙으면 한결 가벼워지고 슬픈 일의 ‘의미’를 발견하게 됩니다.  

좋은 일에 예수님이 붙으면 더욱 좋은 일이 되고좋은 일의 의미, 

즉 ‘나눔’으로 이어집니다.

그림 큐티더 보기
출애굽기 20장 6절
고린도전서 15:10

나를 사랑하고 내 계명을 지키는 자에게는 천 대까지 은혜를 베푸느니라

but showing love to a thousand {generations} of those who love me and keep my commandments. 

도서 큐티더 보기
어떤 사람으로 살다가 죽고 싶은가

한 밀알이 땅에 떨어져 죽을 때 많은 열매를  맺는다.

유명한 얘기가 있다.  

유토피아를 쓴 토마스 모어라고 하는 분이 교수형을 당하게 될 때

 형장에서 마지막으로 이렇게 증거한 일이 있다. 

 "성경에 보면 스데반이 돌에 맞아 죽을 때 옆에 바울이 서 있었다.  

그가 바울을 위해서 기도하고 죽었고 바울은 뒤에  

회개하고 복음을 증거하다가 순교했다.

  하늘나라에서 바울과 스데반이 만나서 영원한 행복을 누리게  되었다

  나는 이 자리에서 죽지마는 당신이 언젠가 회개하고

 하늘나라에서 형제와 같이 반갑게 만날 수 있길 바랍니다." 

이러고 죽었다. 얼마나 위대한 얘기인가?

 여러분은 도대체 어떤 사람으로 살다가 죽고 싶은가?

 -곽선희 목사의 ‘승리한 증인 스데반’에서- 

 

 우리는, 나는, 어떤 사람으로 살아야 할까요? 

어떤 사람으로 남고 어떤 사람으로 죽어야 하며 

어떤 사람으로 기억되고 싶습니까?

승리란 자기를 이기고 사망을 이기고 원수를 이길  때,

거기에 참 승리가 있는 것입니다.  

승리와 성공과 참 행복의 원점이 여기에 있습니다. 

 순교적 증인으로 오늘을 살아갈 수 있을 때 

그 앞에  영광이 있을 것이고 사나 죽으나 그는 승리자로

 가장 위대한 자유인으로 살아가게 될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