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간이 모여 사는 사회에는 필연적으로 어떤 시스템이 있어야 합니다. 일반적으로 정치, 경제, 사회, 문화가 여기에 속합니다. 그 가운데서 일반적으로 가장 먼저 언급되는 시스템이 국가입니다. 성경은 정치권력과 국가에 대해 무엇을 말씀하고 있을까요? 성경 전체를 일관되게 관통하고 있는 사상은 하나님의 주권입니다. 곧, 하나님만이 왕이란 뜻입니다. 하나님의 주권은 신약에서 예수 그리스도의 왕적이고, 종말론적인 통치로 표현됩니다. 세상의 모든 권세와 권력은 예수 그리스도 앞에 무릎을 꿇어야 합니다(엡1:21-22). 그러기에 하나님의 주권과 세상의 권력은 늘 긴장관계 속에 있게 됩니다. 따라서 국가와 정치권력은 성경적으로 이중적인 의미를 갖습니다. 첫째, 국가는 하나님이 주신 권세로서 모든 혼란과 무질서를 막는 긍정적인 기능을 갖습니다. 둘째, 그러나 국가는 자신을 절대화함으로써 하나님의 주권에 도전하려는 부정적인 성격을 지니고 있습니다.
이스라엘 모든 장로들이 선지자 사무엘에게 왕의 제도를 요구합니다(5). 고대 이스라엘에는 왕이라는 제왕제도가 없었습니다. 정치적으로 발달하기 않았기 때문이 아니라, 이스라엘의 왕은 야훼 하나님이라는 강력한 신정정치(theocracy)의 이상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시대가 흐르면서 다른 나라처럼 왕권제도가 있어야할 필요성이 제기됩니다. 여기에 대한 사무엘의 반응은 장로들의 요구를 기뻐하지 않았습니다.(7-9절) 하나님은 사무엘에게 이렇게 응답하십니다.“이는 그들이 너를 버림이 아니요 나를 버려 자기들의 왕이 되지 못하게 함이니라.” 왕권의 요구는 하나님이 왕이라는 신정정치의 이상과 원칙에 대한 정면 도전이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왕의 제도를 허락합니다. 하나님은“엄한 경고”와 함께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허락됩니다(9절). 벌써 왕정에 대한 원리적인 거부감이 드러납니다. 왕정에 필수적인 상비군과 관료제와 조세체제는 백성들에게 중한 부담이 될 것입니다(12-17). 왕정에 대한 하나님의 원리적인 부정은 다음과 같은 말에서 절정을 이룹니다. “그 날에 너희는 너희가 택한 왕으로 말미암아 부르짖되 그 날에 여호와께서 너희에게 응답하지 아니하시라”(18절) 위의 말씀에서“너희가 택한 왕”은 가깝게는 사울 왕, 멀리는 이스라엘 왕정시대의 모든 반역적인 왕들을 가리킵니다. 사울은 하나님이 택한 왕이 아니라, 이스라엘 백성들이 자기 자신을 위해 세운 왕입니다.
이처럼 왕권, 곧 세상의 정치권력에 대해 성경은 원리적으로 부정적입니다. 그러나 다윗 왕권은 메시아 왕권의 모형으로서 긍정적으로 받아들여집니다. 그 이유는 무엇일까요?(시5:2). 사울 왕은“너희가 택한 왕”이지만, 다윗은“하나님이 택한 왕”이었습니다. 그러기에 다윗 왕권은 긍정적입니다. 그 이유는 다윗이 진심으로 하나님의 주권을 인정하고 선포했기 때문입니다. 다윗은 비록 왕이었으나 겸손하게 하나님을“나의 왕”이라고 불렀습니다. 다윗 왕권은 그러므로 형식적으로는 왕이 다스리는 군주제이지만 그 내용과 본질에서는 하나님이 왕이라는 신정정치의 이상을 구현하고 있습니다.
물론 인간의 죄악과 욕심으로 인해 다윗왕권의 이상은 시간이 지나면서 퇴색되고 타락합니다. 구약의 열왕기는 이스라엘 왕들의 실정과 죄악에 대한 준엄한 고발을 담고 있습니다. 성경은 이처럼 일관되게 오직 하나님만이 왕이라는 강력한 신정정치의 이상을 주장합니다. 그러므로 세상의 권력은 그것이 아무리 선한 것이라 해도 하나님의 다스림 아래에 있는 것이지, 하나님의 주권을 침해하거나 넘어서는 안 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