鶴山의 草幕舍廊房

Faith - Hymn

이해할 수 없어도 사랑할 수 있습니다(고린도전서 13장 1-13절)

鶴山 徐 仁 2019. 9. 4. 10: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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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09월 04일 (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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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 본문 이해할 수 없어도 사랑할 수 있습니다(고린도전서 13장 1-13절)

1. 내가 사람의 방언과 천사의 말을 할지라도 사랑이 없으면 소리 나는 구리와 울리는 꽹과리가 되고

2. 내가 예언하는 능력이 있어 모든 비밀과 모든 지식을 알고 또 산을 옮길 만한 모든 믿음이 있을지라도 사랑이 없으면 내가 아무 것도 아니요

3. 내가 내게 있는 모든 것으로 구제하고 또 내 몸을 불사르게 내줄지라도 사랑이 없으면 내게 아무 유익이 없느니라

4. 사랑은 오래 참고 사랑은 온유하며 시기하지 아니하며 사랑은 자랑하지 아니하며 교만하지 아니하며

5. 무례히 행하지 아니하며 자기의 유익을 구하지 아니하며 성내지 아니하며 악한 것을 생각하지 아니하며

6. 불의를 기뻐하지 아니하며 진리와 함께 기뻐하고

7. 모든 것을 참으며 모든 것을 믿으며 모든 것을 바라며 모든 것을 견디느니라

8. 사랑은 언제까지나 떨어지지 아니하되 예언도 폐하고 방언도 그치고 지식도 폐하리라

9. 우리는 부분적으로 알고 부분적으로 예언하니

10. 온전한 것이 올 때에는 부분적으로 하던 것이 폐하리라

11. 내가 어렸을 때에는 말하는 것이 어린 아이와 같고 깨닫는 것이 어린 아이와 같고 생각하는 것이 어린 아이와 같다가 장성한 사람이 되어서는 어린 아이의 일을 버렸노라

12. 우리가 지금은 거울로 보는 것 같이 희미하나 그 때에는 얼굴과 얼굴을 대하여 볼 것이요 지금은 내가 부분적으로 아나 그 때에는 주께서 나를 아신 것 같이 내가 온전히 알리라

13. 그런즉 믿음, 소망, 사랑, 이 세 가지는 항상 있을 것인데 그 중의 제일은 사랑이라

본문 해석

 우리의 가족을 보면 가족 구성원 하나하나를 이해하는 것은 쉽지 않다는 것을 인정할 수 밖에 없습니다. 안다고 생각했다가도 어느 순간 전혀 이해하기 힘든 상황을 마주하게 됩니다. 하지만 한편으로 가족을 보면 이해한다고 해서 사랑하는 것은 아니라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그렇게 서로 맞지 않음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가족을 사랑합니다. “이해할 수 없어도 사랑할 수 있습니다.” 이해가 먼저가 아니라 사랑이 먼저입니다. 

 우리의 신앙에도 마찬가지입니다. 하나님에 대해서 “내가 하나님을 알고 이해하면 순종하고 사랑하겠습니다.”라고 하는 말은 사실 불가능한 말입니다. 오늘 말씀을 보면 12절에 ‘우리가 지금은 거울로 보는 것 같이 희미하나 그 때에는 얼굴과 얼굴을 대하여 볼 것이요 지금은 내가 부분적으로 아나 그 때에는 주께서 나를 아신 것 같이 내가 온전히 알리라’라는 말씀은 여기서는 하나님을 온전히 알 수 없고, 하나님의 나라에 들어가면 온전히 알게 될 것이라는 말이 아닙니다. 사도 바울이 정말로 말하고 싶은 것은, 지식이나 은사로 하나님을 아는 것은 온전한 것이 아니며, 사랑해야 온전히 알 수 있다는 이야기를 하고 싶은 것입니다. 사랑해야 우리의 머리로가 아니가 우리의 온 몸으로 하나님을 알 수 있습니다. 그래서 성경은 “서로 이해하라”고 말하지 않고, “서로 사랑하라”고 말하는 것입니다. 

 사랑해야 알게 됩니다. 요한복음 13장 34절을 보면 “너희가 서로 사랑하면 이로써 모든 사람이 너희가 내 제자인 줄 알리라.”라고 말씀하십니다. 우리가 다른 사람에 대하여 그들의 손을 잡아 주고 사랑하기 시작하면, 우리가 하나님의 사랑을 진정으로 깨닫게 될 뿐만 아니라 모든 사람들이 우리 안에 하나님의 사랑이 있음을 깨닫게 된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을 전할 때도 마찬가지입니다. 하나님에 대해서 계속 이야기한다고 해서 하나님을 알게 되는 것이 아니라, 우리가 사랑하게 되면 그들이 하나님을 알게 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이해가 먼저가 아니라 사랑이 먼저입니다. 그래서 사랑하는 자리에 가야합니다. 하나님의 사랑을 다 알아서 가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사랑을 온전히 알기 위해서 가야합니다. 

 오늘 하루의 삶에서 누군가 이해되지 않는 행동을 하거나 이해되지 않는 상황이 닥칠 때, 사랑으로 손을 내밀 수 있는 믿음을 가집시다. 손을 내밀어서 잡아주면, 그제야 알게 될 것입니다. 우리를 향한 하나님의 뜻과 사랑을... 그리고 하나님을 찬양하게 될 것입니다. 오늘 우리 모두가 그런 하루가 되기를 소원합니다.          

결단과 적용

 나의 삶에서 이해되지 않는 행동을 하는 사람이나 상황이 무엇이 있는지 생각해 보고 정리해 봅시다. 

그리고 이해하려는 노력을 내려놓고 사랑의 손을 내밀어 봅시다. 

오늘의 기도

 주님! 나는 지금까지 이해해야 사랑할 수 있다고 생각해 왔습니다. 

하지만 말씀을 따라 이제는 이해하기 위해 사랑하는 사람이 되기를 소원합니다. 

사랑해야 알게 된다는 진리를 잊지 않게 하시고 오늘 하루 그렇게 살아갈 수 있도록 인도해 주시옵소서. 

인문학 큐티더 보기
고난 속의 불꽃
인문학 나눔

“독일어 앙스트블뤼테Angstbllite 는 

환경이 열악해져 이듬해에 죽을 것을 예감한 전나무가 

유난히 화려한 꽃을 피우는 임상학적 현상을 지칭합니다.  

그런데 이 말은 ‘불안’을 뜻하는 앙스트Angst, anxiety와 

‘개화’를 뜻하는 블뤄테 bliite, blossom의 합성어입니다(중략). 

생명체가 살아 있음을 온몸으로 보여주는 마지막 순간이지요.

”유영만 고두현 공저(共著) 《곡선이 이긴다》 

(리더스북, 118쪽) 중에 나오는 구절입니다. 

‘역경’을 뒤집으면 ‘경력’이 됩니다.  

고난 중에라도 절정의 꽃,  앙스트블뤄테를 경험할 수 있습니다. 

기독 메시지

시므온은 늘 성전에 올라와 식민지 생활을 하던 이스라엘을 위해 

기도하던 경건한 사람이었습니다.  

그는 성령의 감동을 따라 메시아를 보기 전에는 죽지 않을 것이라는 약속을 받았습니다.  

그가 마침내 아기 예수님을 보게 됩니다.  

러자 시므온은 마지막 힘을 다해 아기 예수님을 마음껏 축복하였습니다.  

그리고 이런 고백을 합니다. 

“주재여 이제는 말씀하신 대로 종을 평안히 놓아 주시는도다.”  

(눅2:28-30)이 축복 기도를 라틴어로 옮겨놓은 것의 첫 두 단어가  

‘눈크 디미티스(Nunc Dimitis)!’입니다.  “이제야 편히 놓아 주시는군요!” 온 

영혼을 바쳐 사명을 다한 사람이 드리는 영광스러운 고백입니다.  

존 콜트레인은 재즈의 성인(聖人)이라 불리는 미국 재즈 색소폰 연주자입니다.  

그는 한때 마약에 취해 살다가 죽을 뻔했고, 마약과 술을 끊고 

하나님 안에서 새로운 삶을 살았습니다.  한번은 그가 온 힘을 집중해 

“사랑”(A Love Supreme)을 연주한 후 이런 고백을 하였습니다. 

눈크 디미티스(Nunc Dimitis)!  모든 영혼을 쏟은 최고의 연주를 한 후 

시므온과 똑같이 고백한 것입니다.  생명보다 소중한 진리를 발견한 사람은 

복이 있습니다.  

그 길을 온 영혼을 바쳐 달려가는 사람은 

그 어느 때를 만나도 불꽃같은 삶을 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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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사야 51장 11절
고린도전서 15:10

여호와께 구속 받은 자들이 돌아와 노래하며 시온으로 돌아오니 영원한 기쁨이 그들의 머리 위에 있고 슬픔과 탄식이 달아나리이다 

The ransomed of the LORD will return. They will enter Zion with singing; everlasting joy will crown their heads. Gladness and joy will overtake them, and sorrow and sighing will flee away.

도서 큐티더 보기
겸손

겸손은 형제자매를 함부로 무시하지 않는 것이다. 

우리는 모든 성도에게서 영적으로 배울 수 있다. 

겉으로 보기에 나보다 나이가 어리고 학벌이 달리고 

신앙 연륜이 얼마 안 되는 듯 해도, 내게 없는 무언가가 그에게 있을 수 있다. 

하나님은 우리가 서로 배우고 도전받도록 우리를 한 공동체에 두셨다. 

따라서 우리 주변의 모든 형제자매가 나의 선생님이 될 수 있다.

-한홍의 [아멘 다음이 중요하다] 중에서-

 

성숙한 공동체와 성도는 나와 다른 사람에 대해서 끝까지 겸손의 태도를 놓치지 않습니다. 

보이는 것으로 사람을 평가하거나 보이는 것으로 무시하는 태도는 옳지 않습니다. 

교회는 서로에게 겸손합니다. 나이와 신앙 연륜, 

직분과 상관없이 서로 존경하는 마음으로 대할 수 있어야 합니다. 

누구나 내가 없는 한 가지를 가지고 있습니다. 

배우기를 기뻐하는 사람은 겸손한 사람입니다. 

겸손한 사람을 통해 하나님의 일은 세상 가운데 드러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