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천공항 집어삼킬 불가사리인가… 中 다싱 국제공항 준공
입력 2019.07.20 06:46
세계 최대 꿈꾸는 베이징 다싱 국제공항
지난 6월 중국 베이징 남쪽 다싱구에서 거대한 불가사리 모양 건축물이 공개됐다. 중국이 800억위안(약 13조7000억원)을 투자해 짓고 있는 베이징의 두 번째 국제공항, 다싱(大興)국제공항이다. 27㎢ 크기의 '불가사리 공항'은 서울 동대문 디자인 플라자(DDP)를 디자인한 세계적 건축가 자하 하디드(영국) 작품이다.
다싱공항은 최신 기술을 집약한 스마트 공항으로 건설되고 있다. 10만명이 동시에 사용해도 속도가 느려지지 않는 5G 이동통신망이 깔린다. 규모는 크지만 걷는 거리를 최대한 단축해 여객 터미널 중앙에서 가장 먼 탑승구까지도 8분 이내에 걸어갈 수 있다고 한다. 그 비밀은 세계 공항 최초로 출발층을 두 층으로 만들어 탑승구를 효율적으로 분산했기 때문이다. 영국의 가디언지는 이런 다싱공항을 '새로운 세계 7대 기적' 중 하나로 꼽았다.
다싱공항은 시험 운영을 거쳐 9월 말 1단계 시설을 오픈할 예정이다. 1단계는 연간 4500만명을 수용할 수 있는 규모다. 중국 당국은 2025년에는 현재 인천공항과 같은 7200만명 규모로 시설을 확장할 계획이다. 목표는 2040년까지 1억명이다. 현재 이용객 기준 세계 최대 공항인 미국 하츠필드-잭슨 애틀랜타 공항(1억명)에 필적하는 공항을 짓겠다는 것이다.
중국 당국은 베이징과 톈진 사이에 짓는 다싱공항을 국가 발전을 위한 '신동력원'이라고 밝히고 있다. 중국은 다싱공항 인근에 '시진핑 신도시'라 부르는 '슝안신구'도 건설할 계획인데 다싱공항은 이 경제권의 중심이 될 것으로 보인다. 베이징, 톈진 등 다싱공항 주변을 아우르는 인구는 무려 7500만명에 이른다.
베이징 공항 규모, 인천공항 배로
다싱공항이 개항하면 베이징의 공항 규모가 기존 서우두(首都)공항과 다싱공항을 합쳐 연간 1억3000만명으로 불어나게 된다. 한국에서 2시간 거리에 인천공항(7200만명)보다 배가 큰 공항이 생기는 셈이다.
다싱공항의 등장은 사실상 베이징 공항의 경쟁력 업그레이드로 이어진다. 그동안 서우두공항에 몰린 승객을 분산해 효율성을 높일 수 있기 때문이다. 베이징의 관문인 서우두공항은 그동안 심각한 체증을 앓아왔다. 연간 8600만명 규모의 공항에 1억명이 오가니 무리가 따를 수밖에 없다. 그래서 연착이 잦고 승객들은 보안 검색대 앞에 길게 줄을 서야 했다. 마땅히 시설을 확장할 공간도 없어 9년째 세계에서 둘째로 붐비는 공항 타이틀을 이어가고 있다.
중국 당국은 서우두와 다싱공항을 상하이의 푸둥, 훙차오공항처럼 묶어 효율성을 높일 계획이다. 항공 전문가들은 "그동안은 연착이 잦고 복잡한 서우두공항 환승을 꺼리는 승객이 많았지만 이제 상황이 달라질 수 있다"고 예상했다. 장기적으로는 시설 확장이 어려운 서우두공항보다 외곽의 다싱공항이 베이징의 주력 공항 노릇을 할 것이라는 전망도 나온다.
中, 도시 10곳에 '허브'… 공항 굴기
다싱공항 개항은 동북아 '허브(hub·중심) 공항' 자리를 놓고 벌일 한·중 경쟁의 서막이다. 중국 당국은 2020년까지 84조원을 투자해 중국 전역에 공항 66곳을 신설하겠다고 발표했다. 주요 도시 10곳에는 세계적 수준의 허브 공항을 짓기로 했다. 베이징, 상하이, 광저우, 청두뿐만 아니라 선전, 하얼빈, 충칭, 시안, 쿤밍, 우루무치 등에도 허브 공항이 들어선다. 그래서 지금 중국 곳곳에서는 동시다발로 공항 신설·확장 공사가 진행 중이다. 이른바 '공항 굴기(崛起·우뚝 섬)'라고 할 만하다. 짓고 있는 공항 대부분이 현재 인천공항보다 크다. 그리고 저마다 연간 수송 여객 1억명대 경쟁을 예고하고 있다.
서부 내륙의 중심 청두는 2020년 8000만명 규모의 제2 공항 개항을 앞두고 있다. 베이징, 상하이에 이어 세 번째로 '1도시 2공항' 체제를 만드는 것이다. 기존 공항과 합치면 청두 지역 공항은 한 해 1억3000만명을 처리할 수 있는 규모가 된다. 중국에서 둘째로 많은 승객이 오가는 상하이 푸둥공항도 올 10월 터미널을 더 열 예정이다. 그러면 인천공항보다 큰 8000만명 규모로 거듭나게 된다. 중국 정부는 푸둥공항을 장기적으로 1억6000만명 규모로 키울 계획이다.
중국은 국민의 소득 수준이 높아지면서 항공 수요도 급성장하고 있다. 2007~2017년 10년간 중국의 중산층 인구는 3배가 늘었는데 같은 기간 항공 승객 규모도 3배가 성장했다. 아직은 국내선 위주이지만 해외로 나가는 국제선 승객도 빠르게 늘고 있다. 국제공항협의회(ACI)에 따르면, 중국 10대 공항을 이용한 승객은 2014년 3억7970만명에서 지난해 5억758만명으로 연평균 7.5% 늘었다. 같은 기간 국제선 승객은 5705만명에서 9754만명으로 연평균 14.3%씩 증가했다. 증가 폭이 2배가량 큰 것이다.
항공업계에선 2020년대 중반에는 중국이 세계 1위 항공 시장인 미국을 추월할 것이라는 전망이 나온다. 국제공항협의회에 따르면 2017년에 전년 대비 여객 수가 가장 많이 늘어난 세계 30대 공항 중 12곳이 중국 공항이었다. 이들의 성장률은 15.7%에 달했다. 같은 기간 인천공항(7.4%)의 곱절 수준이다.
다싱공항 개항을 앞두고 인천공항은 비상이 걸렸다. 인천공항공사는 이미 관련 용역을 시작했다. 중국의 움직임이 한국 항공·공항 산업에 위협이 될 가능성이 크기 때문이다. 인천공항은 2023년 1억명 규모로 시설을 확장할 계획이지만 중국은 이미 2025년 서우두와 다싱공항 시설을 1억6000만명 수준으로 키우겠다고 밝힌 상태다.
중국이 공항을 대거 확충하면 근처에 있는 인천공항 손님이 줄어들 수밖에 없다. 그동안 인천공항을 거쳐 미국이나 유럽으로 가던 중국인들이 자국 공항에서 바로 떠날 수 있기 때문이다. 중국 항공사들은 이미 해외로 눈을 돌리고 있다. 2014년 27개였던 중국발 북미 직항 노선은 지난해 58개로 4년 만에 2배로 늘었다. 인천공항의 주 환승 고객인 동남아 승객들도 갈아탈 가능성이 크다. 그동안 동남아 승객들은 인천공항을 통해 북미를 오가는 경우가 많았다.
이런 상황은 이미 수치로 나타나고 있다. 2013년 18.7%까지 상승했던 인천공항의 환승률은 이후 지속적으로 하락해 지난해 11.7%까지 떨어졌다. 환승률은 전체 국제선 여객 중 인천공항을 거쳐 다른 나라로 간 여객 비율을 말하는데 허브 공항의 중요 지표 중 하나다. 경쟁 공항들은 보통 30% 안팎이다. 최근에는 한국 승객들도 저렴한 중국 항공을 타고 서우두공항을 거쳐 유럽으로 가는 경우가 많은데 이런 추세가 더 확산될 것으로 보인다.
국토교통부 출신의 한 전문가는 "우리나라 코앞에서 거대한 공룡들이 쑥쑥 자라고 있는 것"이라며 "(국내 항공·공항 산업이) 중국에 따라잡힐 날이 몇 년 남지 않았다"고 우려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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