鶴山의 草幕舍廊房

Faith - Hymn

자신을 성결하게 하라(수 3:1-6)

鶴山 徐 仁 2019. 5. 23. 20: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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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05월 23일 (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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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 본문 자신을 성결하게 하라(수 3:1-6)

1. 또 여호수아가 아침에 일찍이 일어나서 그와 모든 이스라엘 자손들과 더불어 싯딤에서 떠나 요단에 이르러 건너가기 전에 거기서 유숙하니라

2. 사흘 후에 관리들이 진중으로 두루 다니며

3. 백성에게 명령하여 이르되 너희는 레위 사람 제사장들이 너희 하나님 여호와의 언약궤 메는 것을 보거든 너희가 있는 곳을 떠나 그 뒤를 따르라

4. 그러나 너희와 그 사이 거리가 이천 규빗쯤 되게 하고 그것에 가까이 하지는 말라 그리하면 너희가 행할 길을 알리니 너희가 이전에 이 길을 지나보지 못하였음이니라 하니라

5. 여호수아가 또 백성에게 이르되 너희는 자신을 성결하게 하라 여호와께서 내일 너희 가운데에 기이한 일들을 행하시리라

6. 여호수아가 또 제사장들에게 말하여 이르되 언약궤를 메고 백성에 앞서 건너라 하매 곧 언약궤를 메고 백성에 앞서 나아가니라

본문 해석

드디어 요단을 도하할 날이 다가왔습니다. 

<사흘 후에 관리들이 진중으로 두루 다니며 백성들에게 명령하여 이르되 너희는 레위 사람 제사장들이 너희 하나님 여호와의 언약궤 메는 것을 보거든 너희가 있는 곳을 떠나 그 뒤를 따르라>(2-12절). 

사흘이란 이스라엘이 싯딤을 떠나 요단 강가에 이른 지가 3일이 지난 시점이라는 뜻입니다. 이렇게 요단 기슭에서 3일을 유숙한 것은 도하작전 준비를 최종 마무리하기 위해서였습니다. 

여호수아가 관리들로 하여금 백성들에게 전달하게 한 요단강 도하 수칙은 지극히 단순했습니다. 무조건 제사장들이 멘 여호와의 언약궤를 뒤따라가라는 것입니다. 

언약궤는 하나님의 임재를 상징하고 그 뒤를 따른다는 것은 오로지 그분의 인도하심만을 받겠다, 그분의 이끄심에 전적으로 순종하겠다는 뜻입니다. 

이스라엘은 광야생활 중에도 줄곧 그렇게 언약궤가 앞서가고 백성들은 그 뒤를 따라 행진했습니다(민 10:33-36). 

 

이제 내일 실시할 요단강 도하작전을 앞두고 여호수아가 백성들에게 마지막 명령을 내립니다. <너희는 자신을 성결하게 하라>(5절). 왜냐하면 <내일 여호와께서 너희 가운데 기이한 일을 행하실 것>이기 때문이라고 했습니다. 

여기 나오는 <성결>을 공동번역에서는 <목욕 재계>로 옮겼는데 원어 <코데쉬>는 의복을 빤다든가, 사체를 피하고, 여인을 멀리하는 등의 외부적 성결보다는 심령의 성결, 내적이고도 영적인 성결을 강조하는 말씀으로 보는 것이 더 옳을 듯 합니다. 

내일이야말로 거룩하신 하나님께서 놀라운 기적을 행하실 날이므로 그 <기이한 일>에 참여할 백성들은 당연히 자신을 성결케 해야 마땅하다는 것입니다.

 

예나 지금이나 하나님의 택하심을 입은 사람들은 거룩한 백성, 성도로서 늘 <자신을 성결하게> 관리해야 합니다. 그래야 그분이 베푸시는 <기이한 일>들에 참여할 수 있습니다. 

결단과 적용

-레위지파라고 해서 모두 제사장이 되는 것은 아니었습니다. 제사장은 오직 누구의 자손에 한정되었을까요?(민 3:1-4)

-여호와의 언약궤 속에 담긴 내용물을 적어 보십시오(히 9:4)

-성도에게는 왜 <성결>이 필수인지를 설명해 보십시오. 

오늘의 기도

주님, 가나안 입성을 뒤해 요단강 기슭까지 오는 과정에도 이스라엘은 언제나 여호와의 언약궤를 앞세우고 뒤를 좇아왔습니다. 

내일 이루어질 요단강 도하도 그렇게 언약궤 뒤를 따라 건너라고 했습니다. 

주님, 이 원리는 이 시대 저희에게도 그대로 적용되어야 합니다. 

부디 주님보다 앞서는 일이 없게 하시고 자신을 부단히 성결케 하며 매사에 주님의 뒤를 따르는 저희들 되게 해주시옵소서. 

인문학 큐티더 보기
그대 있음에 내가 있고
인문학 나눔

“그대의 근심 있는 곳에 나를 불러 손잡게 하라(중략)

그대 있음에 삶의 뜻을 배우니, 오, 그리움이여그대 있음에 내가 있네. 

나를 불러 그 빛에 살게 해.” 김남조 시인의 시 「그대 있음에」 중에 나오는 구절입니다. 

인간이란 무엇인가?  이 철학의 근원적 질문에 대한 서구 철학의 답변은 끝없이 이어졌습니다.  

기존의 서구 철학자들이 인간의 본질을 밝히는데 중점을 둔 것은 ‘이성’ 이었습니다.  

인간은 이성적 존재라는 것입니다.  그런데 이성만 가지고는 인간을 제대로 파악할 수 없었습니다.  

그래서 인간을 더 이상 이성적 존재가 아닌 의지나 욕망, 충동 등 다양한 관점으로 해석하였습니다.  

그러나 그 누구도 만족스러운 답을 주지 못했습니다.  

이런 가운데 유대인 철학자 마틴 부버는 명저 「나와 너」에서  “삶은 만남” 이라고 하며,  

관계의 개념으로 인간의 본질을 파악하고자 하였습니다.  

인간은 인간과 더불어 있을 때 인간이라고 하며 ‘사이존재’로서의 인간을 말했습니다.  

김남조 시인의 말처럼 네가 있음에 내가 있고, 내가 있음에 네가 있다는 것입니다.  

부버에 의하면 인간이 세계에 대해 가질 수 있는 두 가지의 주요한 태도(혹은 관계)가 있습니다.  

첫째는, ‘나-그것’의 관계로 표현되는 사물적인 관계입니다.  

둘째는, ‘나-너’의 관계로써 표현되는 인격적 만남의 세계입니다.  

이 둘 중에 자신이 어떤 관계를 형성하느냐에 따라 삶의 양상도 달라진다고 하였습니다.  

‘나-그것’의 관계는 대상을 이용하는 비인격적 관계입니다. 이해관계 소유관계입니다.  

‘나-너’의 관계는 서로가 전 존재를 기울이는 인격적 대화적 관계입니다.  

부버는 이렇듯 ‘나-너’의 관계가 되는 것을 ‘만남’이라고 하였습니다.  

그러면서 어느 덧 ‘나-그것’이 된 관계를 ‘나-너’의 관계로 변화시킬 때 

인간은 존재의 기쁨을 느낄 것이라 하였습니다.   

하나님마저도 ‘나-그것’의 관계를 만들어 알라딘 램프의 종을 부리듯 

자신의 욕망에 이용하는 우리들의 오만함을 질타하는 소리입니다. 

기독 메시지

“예수께서 이르시되 네 마음을 다하고 목숨을 다하고 뜻을 다하여 

주 너의 하나님을 사랑하라 하셨으니” (마22:38)

그림 큐티더 보기
시편 21편 2절
고린도전서 15:10

그의 마음의 소원을 들어 주셨으며 그의 입술의 요구를 거절하지 아니하셨나이다 (셀라)

O LORD, the king rejoices in your strength. How great is his joy in the victories you give!

도서 큐티더 보기
타인 용서하기

용서란 참 어려운 일입니다. 

나에게 상처를 준 사람은 그런 줄도 모르고 있을 때, 

혹은 나에게 사과할 마음이 전혀 없어 보일 때, 

분노는 더욱 커지고 용서의 길은 멀어집니다. 

때로는, 나에게 상처를 준 사람이 사과를 하는데도 그것을 받아들이기가 힘듭니다. 

‘나는 이렇게 아픈데, 너는 말 한마디로 짐을 벗으려고 하느냐?’는 생각에 속이 뒤틀립니다. 

때로는 상처가 너무 크기에 용서는 불가능하다고 여겨지는 경우도 있습니다. 

용서는 어렵습니다. 불가능해 보입니다. 용서하기가 싫을 때도 있습니다... 

하지만, 나의 앙심과 증오와 원한을 통해 내가 벌하고 있는 사람은 

정작 나에게 상처를 준 그 사람이 아니라 나 자신이라는 사실을 아십니까? 

나의 원한과 증오심으로써 상처를 줄 수 있는 사람은 나 자신밖에 없음을 아십니까?

-김영봉의 [사랑하는 사람은 누구나 아프다] 중에서-

 

우리는 수많은 인간관계를 맺고 살아갑니다. 

누군가의 말처럼 최고의 승리자는 관계의 승리자입니다. 

하지만 관계속에서 작고 큰 상처를 주기도 하고 받기도 합니다. 

그래서 상처를 관리하는 법을 알아야 승리자가 될 수 있습니다. 

그런데 그 상처가 다른 사람으로부터 내게 와서, 

결국 상처를 해결하지 못하고 살아가는 

내 자신이 상처를 준다는 사실을 알아야 합니다. 

상처가 상처를 주는 것은 원망과 증오속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내 자신임을 기억해야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