鶴山의 草幕舍廊房

Faith - Hymn

말이나 혀가 아니라, 행함과 진실함으로 사랑합시다. (요한일서 3장 16-24절)

鶴山 徐 仁 2019. 5. 22. 20: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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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05월 22일 (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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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 본문 말이나 혀가 아니라, 행함과 진실함으로 사랑합시다. (요한일서 3장 16-24절)

16. 그가 우리를 위하여 목숨을 버리셨으니 우리가 이로써 사랑을 알고 우리도 형제들을 위하여 목숨을 버리는 것이 마땅하니라

17. 누가 이 세상의 재물을 가지고 형제의 궁핍함을 보고도 도와 줄 마음을 닫으면 하나님의 사랑이 어찌 그 속에 거하겠느냐

18. 자녀들아 우리가 말과 혀로만 사랑하지 말고 행함과 진실함으로 하자

19. 이로써 우리가 진리에 속한 줄을 알고 또 우리 마음을 주 앞에서 굳세게 하리니

20. 이는 우리 마음이 혹 우리를 책망할 일이 있어도 하나님은 우리 마음보다 크시고 모든 것을 아시기 때문이라

21. 사랑하는 자들아 만일 우리 마음이 우리를 책망할 것이 없으면 하나님 앞에서 담대함을 얻고

22. 무엇이든지 구하는 바를 그에게서 받나니 이는 우리가 그의 계명을 지키고 그 앞에서 기뻐하시는 것을 행함이라

23. 그의 계명은 이것이니 곧 그 아들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을 믿고 그가 우리에게 주신 계명대로 서로 사랑할 것이니라

24. 그의 계명을 지키는 자는 주 안에 거하고 주는 그의 안에 거하시나니 우리에게 주신 성령으로 말미암아 그가 우리 안에 거하시는 줄을 우리가 아느니라

본문 해석

 오늘 성경을 통해 사도 요한은 우리에게 부담스러운 말씀을 하십니다. “그가 우리를 위하여 목숨을 버리셨으니 우리는 이로써 사랑을 알고 우리도 형제들을 위하여 목숨을 버리는 것이 마땅하니라.” 주변에 힘든 형제들을 위로하고 그들을 도와주고 일으켜 세워주는 것 정도라면 생각해 볼 텐데... “목숨을 버리는 것이 마땅하다.”는 말씀 앞에 우리는 서게 됩니다. 아마 아무도 이 질문에 당당하게 대답할 수 없을 것입니다. 하지만 성경의 사람들은 계속해서 우리에게 이 이야기를 합니다. 우리는 선택을 해야 합니다. 이 이야기를 ‘나의 성경’에서 빼버리던지, 아니면 비록 내가 지금 “그것을 할 수 없습니다.”라고 고백할 수밖에 없지만 이 말을 거룩한 부담감으로 오늘 내 삶의 기도제목으로 삼는 것입니다. 

 오늘 말씀은 사도요한이 지금 우리 교회의 모습처럼 ‘말과 혀로만 사랑한다.’고 하면서 행함과 진실함이 없는 초대교회를 향하여 한탄하는 마음으로 이 편지를 쓰고 있는 것으로 보입니다. “여러분, 말과 혀가 아니라 주의 마음과 심장과 손으로 사랑하십시오.” 사도요한이 말씀하는 초점은 “목숨을 버리자.”라는 데 있는 것이 아니라 주의 마음으로 사랑하지 않으면, 우리가 모여서 하나님을 예배하는 모든 것들이 헛된 것이 될 수 있다는 데 있습니다. 

 요한은 4장 20절에서 직격탄을 날립니다. “누구든지 하나님을 사랑하노라하고 그 형제를 미워하면 이는 거짓말하는 자니 보는 바 그 형제를 사랑하지 아니하는 자는 보지 못하는바 하나님을 사랑할 수 없느니라.” 

 성경이 이렇게 줄기차게 말하고 있는 이유는 그 방법이 아니고서는 하나님을 사랑을 나타낼 방법이 없기 때문입니다. 교회에 처음 나오는 분들의 이야기를 들어보면, 많은 분들이 이런 이야기를 하시는 것을 보게 됩니다. “내가 아직 하나님은 잘 모르겠지만, 그 집사님의 사랑을 통해 하나님이 사랑을 느낄 수 있었습니다.” 

 그래서 사도 요한은 4장 12절에 이렇게 말씀합니다. “어느 때나 하나님을 본 사람이 없으되 만일 우리가 서로 사랑하면 하나님이 우리 안에 거하시고 그의 사랑이 우리 안에 온전히 이루어지느니라.” 우리가 서로 사랑할 때, 하나님이 사랑이 우리 가운데 임하시고 그 사랑이 하나님이 사랑이심을 나타내는 방법이 되는 것입니다. 

 ‘내가 하나님께 예배하는 것은 좋지만, 내 주의 사람들의 이야기를 들어주고 함께 하는 것은 귀찮다’고 생각한다면 그것은 진정한 신앙생활이 아닙니다. 그뿐만 아니라 나는 하나님을 알아가고 있다고 생각하지만, 실상은 하나님을 모르는 길로 가고 있는 것입니다. 

 오늘 우리의 삶, 우리의 신앙생활이 우리와 함께 하게 하신 사람들을 통해 하나님의 사랑을 나타내고 하나님을 알아가는 길로 회복되기를 원합니다. 오늘 하루 어렵지만 잠시 멈추어 나에게 허락하신 사람들을 돌아보며 그들과 함께 하는 하루가 되기를 기도합니다.   

결단과 적용

 - 하나님을 열심히 찾고 예배한다고 하면서 그것이 신앙의 이기주의가 되어 다른 사람을 돌아볼 여유가 없어진 것은 아닌지 우리의 삶을 돌이켜 봅시다. 

 - 다른 사람과 함께 하나님의 사랑을 나누는 삶이되기 위해 결단해야 할 것은 무엇입니까?

오늘의 기도

 주님! 나는 하나님 앞에서 열심히 잘 살아왔다고 생각했습니다. 하지만 그것이 지극히 나만을 위한 이기주의에 빠져있는 것이었으며, 실제로는 하나님의 사랑에서도 멀어지고 있었다는 사실을 몰랐습니다. 오늘 하루의 삶에서 잠시 멈추어 하나님이 나에게 보내주셔서 사랑을 나누게 하신 사람들을 볼 수 있는 마음을 허락해 주시옵소서.

인문학 큐티더 보기
내 마음에 이것이 있었기에
인문학 나눔

“기름때 찌든 작업복을 입고 있을 때도 나는 프란츠 카프카를 읽고 있었다.  

아무도 사 가지 않는 그림 옆에 서서 

고개를 들 수 없을 때도 나는 알베르 카뮈를 읽고 있었다.  

도스토예프스키와 말라르메,스타니슬라프스키와 헤르만 헤세가 있어, 

나는 절망하지 않았다.  하나님이 계셨기에 나는 절망하지 않았다.

”이철환 저(著) 「곰보빵」 (꽃삽, 155쪽) 중에 나오는 구절입니다. 

입시학원 강사와 야학 교사로 일하던 청년이 있었습니다.  

기름 때 찌든 작업복을 입고 괴물같은 기계 아래 누워 공돌이 생활을 하였고,  

산동네 판잣집을 돌아 다니며 싸구려 양말도 팔았습니다.  

리어커에 사과를 한가득 싣고 팔기도 했던 그였습니다.  

가난한 살림이었지만 밤을 새워 그림을 그리며 화가의 꿈을 품었습니다.  

그림을 팔기 위해 돈암동에 있는 여자 중학교와 마로니에 공원과 정독 도서관 앞으로 갔지만,  

아무도 그의 그림을 사지 않았습니다.  그림은 자신의 존재이기도 자존감이기도 한데 

그는 고개를 들 수가 없었습니다. 글을 쓰기 시작했습니다.  

오랜 시간 원고를 쓰는 동안 우울증이 밀려왔고, 

이명까지 들리게 되면서 낙심에 빠지게 되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포기하지 않고 수없이 글을 수정하며 완성하였습니다.  

완성한 원고를 들고 다섯 군데 출판사를 찾아 갔지만 모두 거절 당했습니다.  

마침내 여섯 번째 출판사가 그의 책을 출판하기로 합니다.  

이후 낮고 헐한 이웃들의 눈물과 웃음을 실은 그의 책은 300만이 넘는 사람들이 읽게 됩니다. 

「연탄길」의 작가 이철환씨의 이야기입니다. 

이 모든 시련 속에서도 그를 일어서게 한 것은 마음 속에 있는 꽃들 때문이었습니다. 

“기름때 찌든 작업복을 입고 있을 때도 나는 프란츠 카프카를 읽고 있었다... 

하나님이 계셨기에 나는 절망하지 않았다.”

그 마음 속에 카프카의 글만 있어도 힘이 솟았는데, 

하물며 하나님의 말씀이 있다면 어찌되겠습니까.  

마음의 지성소에 하나님의 말씀이 있는 사람은 반드시 살아 납니다.

기독 메시지

“이 말씀은 나의 고난 중의 위로라. 주의 말씀이 나를 살리셨기 때문이니이다.” (시119:50)

그림 큐티더 보기
시편 116편 1절
고린도전서 15:10

여호와께서 내 음성과 내 간구를 들으시므로 내가 그를 사랑하는도다  

I love the LORD, for he heard my voice; he heard my cry for mercy. 

도서 큐티더 보기
십자가에 죽으신 것이 참으로 사실이라면

영국의 캠브리지 대학에 C. T. 스터드라는 학생은

예수 그리스도를 영접하고

 선교사가 되어 부와 명예를 모두 버리고 중국 땅으로 갔습니다. 

 10여 년 후에 생명의 위협을 느낄 정도로 쇠약해져서

 영국으로 돌아와 투병 생활을 하던 중 

 다시 아프리카에 가기로 결심합니다.

 주위 사람이 모두 만류했습니다. 

그러나 이때 스터드는 모든 시대를 사는 그리스도인에게

 의미 있는 말을 남겼습니다. 

“하나님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가 이 땅에 오셔서 

날 구원하기 위해서 십자가에 죽으신 것이 참으로 사실이라면,

 내가 그를 위해 바치는 희생은

 그 어떤 것도 지나친 희생일 수 없습니다.” 

 -황유석 목사의 ‘주님의 부활이 사실이라면

그 분을 위한 어떤 것도 헛되지 않다’에서-

 

고생과 희생이 있습니다. 

고생은 자기 의지가 아닌 타인의 의지에 의해

 어쩔 수 없이 하는 것이고, 

희생은 자신의 마음에 감동되어 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기독교는 고생의 종교가 아니라 희생의 종교입니다.

  복 받을 정도의 헌신은 하지 않으면서. 

복 받길 원하고 있지는 않은지 자신을 돌아보십시오.

 베다니 마리아는 300데나리온의 향유를 깨뜨려

 주님의 발을 씻긴 그 헌신으로 

지금까지 가장 아름다운 헌신의 여인이 되었습니다.

 “한 알의 말이 땅에 떨어져 죽으면

 많은 열매를 맺으리라”<요12:2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