鶴山의 草幕舍廊房

Faith - Hymn

예수님을 기다리는 사람들 (눅 2:25-33)

鶴山 徐 仁 2018. 12. 19. 09: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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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2월 19일 (수)
말씀 큐티더 보기
성경 본문 예수님을 기다리는 사람들 (눅 2:25-33)

25. 예루살렘에 시므온이라 하는 사람이 있으니 이 사람이 의롭고 경건하여 이스라엘의 위로를 기다리는 자라 성령이 그 위에 계시더라
26. 저가 주의 그리스도를 보기 전에 죽지 아니하리라 하는 성령의 지시를 받았더니
27. 성령의 감동으로 성전에 들어가매 마침 부모가 율법의 전례대로 행하고자 하여 그 아기 예수를 데리고 오는지라
28. 시므온이 아기를 안고 하나님을 찬송하여 가로되
29. 주재여 이제는 말씀하신대로 종을 평안히 놓아 주시는도다
30. 내 눈이 주의 구원을 보았사오니
31. 이는 만민 앞에 예비하신 것이요
32. 이방을 비추는 빛이요 주의 백성 이스라엘의 영광이니이다 하니
33. 그 부모가 그 아기에 대한 말들을 기이히 여기더라

본문 해석

지금 교회력으로 대강절을 보내고 있습니다. 대강절은 예수님의 오심을 기다리는 4주간의 절기입니다. 

‘있어도 되고, 없어도 되는 것’에 대한 기다림이 아니라 생명을 가진 모든 존재가 반드시 기다려야할 ‘구원’에 대한 것입니다. 

얼마 전 캘리포니아에서 산불이 났을 때, 사람들이 비가 내리기를 간절히 기도했던 것처럼, 처절하고 갈급한 기다림입니다.  

 

오늘 말씀에 등장하는 시므온이라는 사람은 메시야가 오기를 그렇게 간절히 기다렸던 사람입니다. 

그런데 오늘 성경에 시므온이 ‘이스라엘의 위로’를 기다렸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이 ‘위로’라는 단어는 헬라어로 ‘파라클레오’라는 단어인데, 

‘성령’을 말하는 ‘보혜사’가 ‘파라클레토스’입니다. 이 말은 ‘곁에서 부른다.’, ‘곁에서 돕는다.’라는 뜻입니다. 

시므온이 기다렸던 ‘위로’는 단순한 위로가 아니라, ‘떠나지 않고 늘 곁에서 온전한 구원으로 인도하실 분’을 기다린 것입니다.

 

인간은 항상 자신을 위로해 줄 무엇인가를 찾습니다. 우리가 열심히 일하는 이유도 사람에게 인정받고 그에게 위로받고 싶은 마음, 돈을 벌어서 

돈으로 위로 받고 싶은 마음 때문입니다. 하지만 누군가에게 위로 받으려고 했다가 오히려 상처를 받은 경험을 하게 됩니다. 

돈이 위로가 될 줄 알았는데, 돈이 오히려 우리의 인생을 절망으로 빠뜨리는 것을 경험하게 됩니다. 

우리는 대강절에 우리를 온전히 위로하실 수 있는 분을 기다립니다. 왜냐하면 그 분이 우리를 창조했으며, 우리에게 필요한 것이 무엇인지를 

가장 잘 아시는 분이기 때문입니다. 주님만이 우리를 온전히 위로하실 수 있는 분이십니다. 

 

그런데 오늘 시므온이 예수님을 기다린 장소는 성전이었습니다. 아마도 시므온은 그 날만 성전에 올라갔던 것이 아니었을 것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받은 이후에 계속해서 틈만나면 성전에서 올라가서 기도했을 것입니다. 왜 성전에서 기도하는 것이 중요할까? 

우리가 어디에서 기도해도 하나님은 우리의 기도를 들으십니다. 솔로몬도 그가 성전을 지었을 때, 그렇게 고백합니다. 

“하나님이 참으로 사람과 함께 땅에 계시리이까 보소서 하늘과 하늘들의 하늘이라도 주를 용잡하지 못하겠거든 하물며 내가 건축한 

이 성전이오리이까”(왕하 6:18) 하지만 이런 솔로몬에게 하나님께서 성전에서 하는 기도에 응답하시겠다고 말씀하십니다. 

그렇게 그 약속 위에 교회가 세워진 것입니다. 교회에서 기도하기를 기뻐하는 사람이 되어야 합니다. 

그래야 하나님을 향한 우리의 기도의 염원을 잃어버리지 않을 수 있습니다. 

 

대강절을 보내며 우리의 진정한 위로이신 예수님을 간절히 기다리되, 하나님이 나에게 허락하신 교회에서 기도하기를 사모하는 우리가 되기를 

바랍니다. 

결단과 적용

대강절을 지내며 시므온처럼 시간을 내어 교회에 가서 기도하는 스케줄을 짜고 힘들어도 지키기를 결단해 봅시다. 

오늘의 기도

주님! 내가 있는 곳에서 기도하며 예수님을 기다리겠다고 말했지만, 사실 그것은 신앙의 게으름을 핑계 대는 거짓이었습니다. 

이 대강절에 ‘오셔도 되고 안 오셔도 되는 듯’이 주님을 기다리는 자가 아니라, ‘주님이 오시지 않으면 살 수 없다.’고 처절하게 고백하며 간절히 

기다리는 신앙을 회복하기를 원합니다.

인문학 큐티더 보기
오늘을 즐겨라? 오늘을 잡아라?
인문학 나눔

“나는 어느 날 우연히 ‘카르페 디엠’ 이라는 간판을 두 번이나 봤다.

‘카르페 디엠’ 은  ‘지금 이 순간을 즐겨라’로 번역되는 라틴어다(중략).

하지만 같은 날 보았던 두 곳의 해석은 달랐다.

카페에선 ‘오늘을 잡아라!’로, 술집에선 ‘오늘을 즐겨라!’라고 써 놓았다.

(중략) 결국 인생은 ‘오늘을 즐긴다!’ 라는 마음으로 살아가는 자와 

‘오늘에 충실하자!’ 라는 자세로 살아가는 두 종류가 있는 듯하다.” 

 

한억만 저(著) 「나도 행복할 수 있을까?」 (따스한 이야기, 73쪽) 중에 

나오는 구절입니다. 

영화 「죽은 시인의 사회」 이후로 더욱 유명해져 많이 인용되는 

‘카르페 디엠’은 에피쿠로스 학파의 시인 호라티우스의 시에 나온 

경구입니다. 

“현재를 잡아라(즐기라), 가급적 내일이란 말은 최소한만 믿어라.”

(Carpe diem, quam minimum credula postero)

“카르페 디엠, 퀴암 미니멈 크레둘라 포스테로”

‘카르페 디엠’ 은 받아 들이는 사람에 따라, “오늘(현재)을 잡아라” 로

해석하는 사람이 있고,  “오늘을 즐겨라” 로 해석하는 사람이 있습니다.

두 해석 중 어느 것이 옳으냐는 아무도 대답할 수 없습니다.

그러나 더욱 중요한 해석이 있습니다.

‘카르페 디엠’보다 ‘메멘토 모리’(죽음을 기억하라)가 먼저입니다.

기독 메시지

인간은 영원을 사모하는 존재로 태어났습니다.

‘영원’이 해결되지 않은 ‘오늘’은 늘 무언가에 쫓기는 듯한 

존재론적 불안이 가득합니다.

영원의 문제는 그 무엇으로도 풀 수 없습니다.  

오직 하나님 안에 있을 때 영원의 삶을 살 수 있습니다. 

 

“하나님이 모든 것을 지으시되 때를 따라 아름답게 하셨고

또 사람들에게는 영원을 사모하는 마음을 주셨느니라.” (전3:11상) 

그림 큐티더 보기
창세기 39장 9절
고린도전서 15:10

그런즉 내가 어찌 이 큰 악을 행하여 하나님께 죄를 지으리이까

How then could I do such a wicked thing and sin against God?

도서 큐티더 보기
부르신 부름을 좇아가십시오

“지도자가 되길 꺼려하는 사람,

 사람들 앞에 서면 말을 더듬는 사람, 

상부에 쉽게 순종하지 않는 사람, 

직무지침을 때려 부수었다고 해도 

좋을 만큼 성깔 있는 사람,

 말하는 대신 주먹을 휘두르고 폭력으로 

분쟁을 해결하려고 하는 사람.” 

이 사람은 누구일까요?

 하나님으로부터 부름 받기 전에 모세의 모습입니다. 

어떻게 보면 미성숙하고 불안정한 인물 같습니다. 

무엇을 할 만한 지도자가 결코 될 수 없는 인물로 보입니다.

 그러나 이 모세가 하나님을 만났을 때에 

그는 믿음의 사람이 되고 하나님이 쓰실만한 

민족의 지도자로 바뀌어지게 됩니다. 

-김경헌 목사의 ‘네가 선 곳은 거룩한 땅이라’에서- 

 

분명히 모세는 타고난 지도자는 아닌 것 같습니다. 

삶의 자리에서 누군가에게서 강력하게 부름을 받으면

 그의 삶이 변화되고 지도자의 길을 가게 됩니다.

사람의 부름이 아니라 하나님이 부르신 부름을

 마음속에 경험하게 될 때는 

그 은총과 그 역사란 말로 다 할 수가 없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부르신 부름을 좇아가십시오.

하나님을 만나면 타고난 지도자가 아니라 할지라도

하나님의 일에 쓰임 받을 수 있을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