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 교회력으로 대강절을 보내고 있습니다. 대강절은 예수님의 오심을 기다리는 4주간의 절기입니다.
‘있어도 되고, 없어도 되는 것’에 대한 기다림이 아니라 생명을 가진 모든 존재가 반드시 기다려야할 ‘구원’에 대한 것입니다.
얼마 전 캘리포니아에서 산불이 났을 때, 사람들이 비가 내리기를 간절히 기도했던 것처럼, 처절하고 갈급한 기다림입니다.
오늘 말씀에 등장하는 시므온이라는 사람은 메시야가 오기를 그렇게 간절히 기다렸던 사람입니다.
그런데 오늘 성경에 시므온이 ‘이스라엘의 위로’를 기다렸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이 ‘위로’라는 단어는 헬라어로 ‘파라클레오’라는 단어인데,
‘성령’을 말하는 ‘보혜사’가 ‘파라클레토스’입니다. 이 말은 ‘곁에서 부른다.’, ‘곁에서 돕는다.’라는 뜻입니다.
시므온이 기다렸던 ‘위로’는 단순한 위로가 아니라, ‘떠나지 않고 늘 곁에서 온전한 구원으로 인도하실 분’을 기다린 것입니다.
인간은 항상 자신을 위로해 줄 무엇인가를 찾습니다. 우리가 열심히 일하는 이유도 사람에게 인정받고 그에게 위로받고 싶은 마음, 돈을 벌어서
돈으로 위로 받고 싶은 마음 때문입니다. 하지만 누군가에게 위로 받으려고 했다가 오히려 상처를 받은 경험을 하게 됩니다.
돈이 위로가 될 줄 알았는데, 돈이 오히려 우리의 인생을 절망으로 빠뜨리는 것을 경험하게 됩니다.
우리는 대강절에 우리를 온전히 위로하실 수 있는 분을 기다립니다. 왜냐하면 그 분이 우리를 창조했으며, 우리에게 필요한 것이 무엇인지를
가장 잘 아시는 분이기 때문입니다. 주님만이 우리를 온전히 위로하실 수 있는 분이십니다.
그런데 오늘 시므온이 예수님을 기다린 장소는 성전이었습니다. 아마도 시므온은 그 날만 성전에 올라갔던 것이 아니었을 것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받은 이후에 계속해서 틈만나면 성전에서 올라가서 기도했을 것입니다. 왜 성전에서 기도하는 것이 중요할까?
우리가 어디에서 기도해도 하나님은 우리의 기도를 들으십니다. 솔로몬도 그가 성전을 지었을 때, 그렇게 고백합니다.
“하나님이 참으로 사람과 함께 땅에 계시리이까 보소서 하늘과 하늘들의 하늘이라도 주를 용잡하지 못하겠거든 하물며 내가 건축한
이 성전이오리이까”(왕하 6:18) 하지만 이런 솔로몬에게 하나님께서 성전에서 하는 기도에 응답하시겠다고 말씀하십니다.
그렇게 그 약속 위에 교회가 세워진 것입니다. 교회에서 기도하기를 기뻐하는 사람이 되어야 합니다.
그래야 하나님을 향한 우리의 기도의 염원을 잃어버리지 않을 수 있습니다.
대강절을 보내며 우리의 진정한 위로이신 예수님을 간절히 기다리되, 하나님이 나에게 허락하신 교회에서 기도하기를 사모하는 우리가 되기를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