鶴山의 草幕舍廊房

Faith - Hymn

멍에 메지 아니한 암송아지 (신 21:1-9)

鶴山 徐 仁 2018. 12. 20. 14: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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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2월 20일 (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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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 본문 멍에 메지 아니한 암송아지 (신 21:1-9)

1.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네게 주어 얻게 하시는 땅에서 혹시 피살한 시체가 들에 엎드러진 것을 발견하고 그 쳐 죽인 자가 누구인지 알지 못하거든
2. 너의 장로들과 재판장들이 나가서 그 피살한 곳에서 사면에 있는 각 성읍의 원근을 잴 것이요
3. 그 피살한 곳에서 제일 가까운 성읍 곧 그 성읍의 장로들이 아직 부리우지 아니하고 멍에를 메지 아니한 암송아지를 취하고
4. 성읍의 장로들이 물이 항상 흐르고 갈지도 심지도 못하는 골짜기로 그 송아지를 끌고 가서 그 골짜기에서 그 송아지의 목을 꺾을 것이요
5. 레위 자손 제사장들도 그리로 올찌니 그들은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택하사 자기를 섬기게 하시며 또 여호와의 이름으로 축복하게 하신 자라 모든 소송과 모든 투쟁이 그들의 말대로 판결될 것이니라
6. 그 피살된 곳에서 제일 가까운 성읍의 모든 장로들은 그 골짜기에서 목을 꺾은 암송아지 위에 손을 씻으며
7. 말하기를 우리의 손이 이 피를 흘리지 아니하였고 우리의 눈이 이것을 보지도 못하였나이다
8. 여호와여 주께서 속량하신 주의 백성 이스라엘을 사하시고 무죄한 피를 주의 백성 이스라엘 중에 머물러 두지 마옵소서 하면 그 피 흘린 죄가 사함을 받으리니
9. 너는 이와 같이 여호와의 보시기에 정직한 일을 행하여 무죄자의 피 흘린 죄를 너희 중에서 제할찌니라

본문 해석

본문은 범인을 알 수 없는, 피살된 사체를 발견했을 때 처리하는 방식을 일러준 속죄법입니다. 

<... 피살된 시체가 들에 엎드러진 것을 발견하고 그 쳐 죽인 자가 누구인지 알지 못하거든>(1절). 대개 이런 경우 현대 국가에서도 미제 사건으로 

흐지부지 끝나고 마는 예가 적지않은데 당시 이스라엘은 하나님이 통치하시는 신정이었던 만큼 그런 사건의 처리와 해결도 다 하나님의 뜻에 

합당하게 이루어져야 했습니다. 

<... 아직 부리지 아니하고 멍에를 메지 아니한 암송아지를 취하여>(3절). 

여기서 말씀하는 <암송아지>는 남의 피를 흘린 자의 죄를 대속하기 위한 제물입니다. 

특히 아직 수레와 쟁기를 끌도록 목에 멍에를 메게 한 적이 없는 암송아지란 <흠 없고 티 없는 대속의 제물>을 의미하며 이는 곧 우리의 죄를 

대속하시기 위해 자신의 몸을 바치신 <죄 없으신 주님>을 예표한다고 볼 수 있습니다(히 4:15, 벧전 2:22-25).

 

<송아지의 목을 꺾으라>(4절)고 한 것은 대속의 제물인 송아지의 피를 흘리게 하기 위해섭니다. 

피 흘림이란 성경이 말씀하는 대속의 필수 요건입니다(히 9:22). 

애굽에서 종살이하던 이스라엘 백성들은 유월절 어린양의 피 흘림이 없었다면 출애굽하지 못했고, 십자가에 달려 피 흘리신 주님의 대속의 죽음이 

없었다면 오늘 우리들의 속죄도 없었습니다. <속량하신>(8절)의 원뜻은 <끊다>로 이는 누구에게 얽매여 있는 자를 대가를 지불하고 풀어 주는 행위를

가리킵니다. 또 <사함을 받으리니>는 <덮다>는 뜻으로 암송아지의 피가 무죄한 자의 피를 흘린 허물을 덮어 살인자의 죄책을 진 성읍 사람들의 죄를 

마치 없는 것인 양 가려 준다는 의미이므로 성경이 말씀하는 대속의 원리를 잘 드러내고 있다하겠습니다. 

 

우리가 주님의 보혈로 의롭다 칭함을 받는 것(칭의)도 다 이런 원리 때문임을 잊지 말 일입니다(엡 1:7).

결단과 적용

-아득한 고대 이스라엘에 가해자를 알 수 없는 변사체를 처리하는 이런 자세한 규례와 법이 있었다는 사실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본문의 멍에를 메지 아니한 암송아(3절)가 대속의 제물로 희생되신 주님의 예표였다는 사실에 대해서는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왜 피 흘림 없이는 대속이 불가능할까요?

오늘의 기도

주님, 그게 개인이든 한 성읍 주민이든 인간의 죄를 관리하시고 처리하시는 하나님의 세심하신 배려에 다시 한 번 감사와 영광을 돌리지 않을 수 없습니다. 

그렇습니다. 저희도 다 멍에를 메지 않은 암송아지와 같은 주님의 대속의 피 흘리심으로 나음을 입고 또 속죄의 은혜를 누리게 된 사람들입니다. 

부디 주님의 그 희생제물 되심을 잊지 않고 늘 감사하며 주님 뜻에 합당한 모습으로 살아가기에 부족함이 없게 해주시옵소서.

인문학 큐티더 보기
어떻게 영감을 얻는가?
인문학 나눔

“등단을 하기 전에 ‘술은 문학적 고민을 풀 수 없고,

술로 풀리는 고민은 문학적 고민일 수 없다’는 결론을 내리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예전부터 고민을 풀려고 술에 의지한 적이 없으며,

술이 과한 후배에게 그 사실을 일깨우며 충고도 꽤나 했습니다.

그래서 저는 『태백산맥』 『아리랑』 『한강』 을 쓰는 20년 동안 

술을 한 번도 마시지 않았습니다.  많은 사람이 이 사실을 믿지 않고, 

어떤 문인은 괴물 대하듯이 하기도 합니다.”

 

조정래 저(著) 「황홀한 글 감옥」(시사N북, 251쪽) 중에 나오는 구절

입니다. 

영감 없는 작품은 소금 없는 음식 같습니다. 

어떻게 영감을 얻는가?  이 주제는 비단 예술인이나 작가 뿐만이 아니라 

모든 부류의 사람들에게 중요한 과제입니다.  

영감의 지성소에 닿고자 기이하고 엽기적인 행동을 하거나 술을 마시는 등 

독한 자극을 하는 경우가 있습니다. 그렇게 해서라도 영감의 변두리에 

텃치 다운하려는 애처로움을 이해합니다. 그러나 신실한 삶의 자세가 

쌓이고 쌓일 때, 감동적인 영감이 피어나는 경우가 많습니다. 

「그래서 그들은 바다로 갔다」「펠리컨 브리프」 로 유명한 소설가 

존 그리샴은 미국 남부에서 변호사를 하다가 소설가가 된 인물입니다.  

그는 변호사 일을 하면서 매일 새벽 5시에 일어나 5시 30분에 사무실에 

도착해 글을 썼습니다.  

그가 정한 목표는 매일 글 한 쪽을 쓰는 것이었습니다.

10분이 걸리는 날도 있었고 한 시간이 걸리는 날도 있었다고 합니다.

중요한 것은 매일 새벽 5시 30분부터 글 한 쪽씩이라는 성실한 자세를 

유지하는 것이었습니다. 

일본의 노벨 문학상 후보인 무라카미 하루키도 마찬가지입니다.

최상의 글을 위하여 마라톤을 하며 최상의 몸을 만들고,

매일 일정한 분량의 글을 성실하게 쓰는 가운데 그의 독특한 문학 세계가 

피어났습니다. 

「태백산맥」도 작가의 천재적인 인싸이트가 아닌 

성실한 연구와 신실한 삶의 자세에서 나왔습니다.

기독 메시지

“게으른 자는 마음으로 원하여도 얻지 못하나 

부지런한 자의 마음은 풍족함을 얻느니라.” (잠13:4)

그림 큐티더 보기
데살로니가전서 5장 18절
고린도전서 15:10

범사에 감사하라 이것이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너희를 향하신 하나님의 뜻이니라

give thanks in all circumstances, for this is God’s will for you in Christ Jesus.

도서 큐티더 보기
자기 믿음

인간이 참 자유에 이르는 길은 

하나님을 앎에서 비롯됩니다. 

그런데 많은 사람들이 자신이 생각하는 

하나님을 믿고 예배합니다. 

하나님에 대한 잘못된 이해를 갖게 되면 

그들은 자신이 믿는 믿음의 노예가 됩니다. 

바리새인과 서기관들이 그러했습니다. 

그들은 누구보다 열심히 하나님을 섬겼고 

하나님을 향한 믿음이 삶의 전부였습니다. 

그러나 그들은 자신들에게 생명을 주지 못하는 

‘자기 믿음’의 노예에 불과했을 뿐입니다.

-최병성의 [복음에 안기다] 중에서-

 

하나님을 믿는 것에 엄격해야 합니다. 

우리는 우리가 정한대로, 

우리가 생각한대로 믿음 생활을 합니다. 

바리새인의 삶이 우리 안에도 있습니다. 

모든 사람들의 상처가 자신의 생각대로 

되지 않는 것에 대한 상처일 때가 많습니다. 

성경은 누구든지, 자기 부인과 

십자가를 지라고 말씀합니다. 

이제 자기 믿음에서 벗어나 

하나님을 믿는 믿음으로 가야 합니다. 

이것이 바로 교회의 회복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