鶴山의 草幕舍廊房

Faith - Hymn

하나님을 꿈꾸는 인생 (창 37:5-11)외 1

鶴山 徐 仁 2018. 6. 19. 09: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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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6월 19일 (화)
말씀 큐티더 보기
성경 본문 하나님을 꿈꾸는 인생 (창 37:5-11)

5. 요셉이 꿈을 꾸고 자기 형들에게 고하매 그들이 그를 더욱 미워하였더라
6. 요셉이 그들에게 이르되 청컨대 나의 꾼 꿈을 들으시오
7. 우리가 밭에서 곡식을 묶더니 내 단은 일어서고 당신들의 단은 내 단을 둘러서서 절하더이다
8. 그 형들이 그에게 이르되 네가 참으로 우리의 왕이 되겠느냐 참으로 우리를 다스리게 되겠느냐 하고 그 꿈과 그 말을 인하여 그를 더욱 미워하더니
9. 요셉이 다시 꿈을 꾸고 그 형들에게 고하여 가로되 내가 또 꿈을 꾼즉 해와 달과 열 한 별이 내게 절하더이다 하니라
10. 그가 그 꿈으로 부형에게 고하매 아비가 그를 꾸짖고 그에게 이르되 너의 꾼 꿈이 무엇이냐 나와 네 모와 네 형제들이 참으로 가서 땅에 엎드려 네게 절하겠느냐
11. 그 형들은 시기하되 그 아비는 그 말을 마음에 두었더라

본문 해석

미국 위튼대학교에서 신입생을 대상으로 “미래의 꿈”을 간략하게 적게 하였는데, 97%의 학생이 백지 아니면 무성의하게 답을 했고, 

3%의 학생만 자신의 꿈을 담아 제출했다고 합니다. 

세월이 흐른 뒤 놀라운 것은 자신의 꿈을 제대로 적지 못한 97%보다는 정확하게 자신들의 꿈을 기록했던 3%의 사람들이 보다 진취적이고 성공적인

삶을 살고 있었다는 결과가 나왔습니다. 

우리가 어떠한 꿈을 가지고 사느냐에 따라서 미래는 전혀 다른 결과를 가져 올 것입니다. 

하나님으로부터 온 꿈과 비전을 가지고 있느냐? 아니면 나의 욕심에서 비롯된 야망에 사로잡혀 있느냐를 살펴야 합니다. 

하나님의 사람은 자신을 위한 꿈이 아니라, 하나님을 위한 꿈, 이웃을 위한 꿈을 꾸어야 합니다. 

요셉은 하나님의 꿈을 가진 사람입니다. 그가 꿈을 성취할 수 있었던 과정을 살펴봅시다. 

 

먼저 그는 자신과의 관계에서 성실하였습니다. 요셉은 작은 일에도 성실함으로 최선을 다했습니다. 

아버지의 심부름을 하는 과정을 보면 순종함으로 형들에게로 갔고, 형들이 그곳에 없는 상황에서 다시 형들을 찾아 갑니다(13-17). 

보디발의 집에서 종살이 하면서도 그는 주인의식으로 정직하고 적극적으로 일했습니다. 감옥살이를 하면서도 그는 성실하였기에 인정을 받았습니다.

17살 청년으로 얼마든지 부정적인 생각에 사로잡혀 수동적이며 소극적으로 살 수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요셉은 성실함으로 자신을 관리하였습니다.

요셉은 이집트의 총리가 되었을 때도 성실히 임함으로 어떤 환경에서도 최선을 다했습니다. 

 

또한 그는 하나님과의 관계에서 늘 하나님을 의식하고 하나님과 함께하였습니다. 

아무리 좋은 꿈을 가지고 있어도 하나님께 기도만하고 주어진 환경에서 성실하지 못하면서 꿈의 성취만을 기다리고 있다면 이것은 기복주의입니다.

반대로 꿈을 이루기 위하여 나름 열심히 노력하지만, 하나님 앞에서 기도하지 않고 신앙생활 한다면 이는 인본주의입니다. 

요셉은 성실함으로만 그의 꿈을 이룬 것이 아닙니다. 중요한 것은 하나님이 그와 함께 하셨기 때문임을 성경은 분명히 하고 있습니다(창39:2,3,21). 

 

그리고 요셉은 환경을 초월함으로 인내하였습니다. 꿈은 고난의 터널을 통과해야 현실로 나타납니다. 

그는 꿈 때문에 고난이 시작되었지만 포기하지 않았습니다. 포기함이 없는 인생이 꿈을 이룰 수 있습니다. 

요셉은 꿈꾸는 사람으로 늘 하나님을 의식하며 살았으며, 어떤 유혹과 시련도 극복할 수 있었던 것입니다. 

꿈은 모든 환경을 초월하는 힘이 있습니다.

하나님은 환경을 탓하는 사람을 사용하는 것이 아니라, 환경을 뛰어 넘어 하나님을 바라보는 사람에게 복주십니다. 

요셉의 아름다운 인생은 태어나면서부터가 아니라, 그가 하나님의 꿈을 꾼 시점부터 시작되었습니다. 요셉이 당한 고난의 과정을 오히려 재기의 

발판으로 만드신 하나님은 신실하신 하나님이십니다. 그 하나님과 함께 아름다운 꿈을 이루어 가시기 바랍니다.

결단과 적용

- 나는 지금 어떤 꿈을 꾸고 있나요? 그 꿈이 하나님이 주신 꿈인지 점검해 봅시다.

- 내게 환경을 초월하는 인내와 성실함이 있는지, 보완해야 할 부분을 정리해 봅시다. 

- 나의 생각과 말이 불신앙적인가요, 변화를 위해 주님의 도움을 위해 기도하십시다.

오늘의 기도

신실하신 하나님, 저의 삶을 인도하심 감사합니다. 주님 안에서 꿈을 이루는 삶을 위해 더 성실하고 부지런하게 살아가며, 모두를 더욱 사랑하고 함께하는

삶이 되게 하옵소서. 지금의 어려움도 믿음으로 인내함으로 하나님이 주신 그 비전 이루게 하시옵소서.

인문학 큐티더 보기
니체의 초인(超人)에게
인문학 나눔

“세상에서 제일 어리석은 인생 둘이 있다. 

하나는 영원과 진리에 대한 관심이 없는 인생이고, 또 하나는 영원과 진리에 대한

관심은 있지만 옳지 않은 것에서 그 답을 찾으며 헤매는 인생이다.”

 

한재욱 저(著) 「인문학을 하나님께」 (규장, 42쪽) 중에 나오는 구절입니다. 

니체는 영원에 대한 관심이 지대했습니다. 

그는 자신의 대표적 《짜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에서 이런 고백을 했습니다.

 

“짜라투스트라여,  그대는 아직도 살아 있는가?  왜?  무엇 때문에?  

무엇에 의해?  어디로?  어디에?  어째서?  아직까지도 살아 있다는 

것은 어리석은 일이 아닌가?”

 

니체는 왜, 무엇 때문에, 무엇에 의해, 어디로 가고 있는지, 어째서 사는지 모른다면

살아 있다는 것이 어리석은 일이라고 말할 정도였습니다.

문제는 그 해답을 인간 내(內)에 있는 초인(超人)의 힘으로 풀려고 했다는 것입니다.

‘초인’이 무엇인가에 대한 해석은 다양합니다.  

다만 초인은 어떤 ‘가능성’이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기독 메시지

그러나 우리 속에는 초인도 거인도 없습니다. 

사도 바울이 탄식하며 고백한 것처럼 우리 속에는 죄성 가득한 괴물이 있습니다. 

이것을 인정하고 하나님 안에 살 때 참다운 초인의 삶을 살 수 있습니다. 

 

“내 지체 속에서 한 다른 법이 내 마음의 법과 싸워

내 지체 속에 있는 죄의 법으로 나를 사로잡는 것을 보는도다. 

오호라 나는 곤고한 사람이로다. 이 사망의 몸에서 누가 나를 건져내랴.” (롬7:23,24)

그림 큐티더 보기
욥기 41장5절
고린도전서 15:10

내가 주께 대하여 귀로 듣기만 하였사오나 이제는 눈으로 주를 뵈옵나이다

도서 큐티더 보기
십일조를 취하는 일은 도적질이다

사탄은 우리에게 욕심을 준다. 

사탄은 우리에게 불평을 준다. 

사탄은 우리에게 원망을 준다.

사탄은 우리에게 좌절을 준다.

사탄은 우리에게 실패를 준다. 

특히 탐욕을 준다.

 그래서 십일조와 헌물을 도적질하게 한다. 

그것은 하나님의 것인데도 말이다. 

에덴동산에서 하나님은 아담과 하와에게

 선악과를 먹지 말라고 했다. 

그러나 그들은 선악과를 먹었고

에덴동산에서 쫓겨나고 말았다.

 선악과는 십일조와 같다. 

그러므로 십일조를 우리가 취하는 일은 도적질이다. 

-노성하 전도사의 ′하늘 문′에서-

 

우리가 하나님께 받는 축복은 먼저 영적 축복입니다. 

하나님 나라와 그 의를 구하여야 합니다. 

우리 영혼이 잘되어야 합니다. 

그런 다음 육의 축복도 주십니다.

범사가 잘 될 수 있습니다.

 어렵다, 안된다, 마시고

철저한 십일조 생활을 실천하십시오.

 하나님은 분명히 축복을 주십니다.

 하나님께서 내 사업, 내 가정에 직접 간섭하시는 것입니다.

구체적으로 내 생애에 오셔서축복을 주시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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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6월 18일 (월)
말씀 큐티더 보기
성경 본문 변화, 그 위대한 결단 (롬 12:1-2)

1. 그러므로 형제들아 내가 하나님의 모든 자비하심으로 너희를 권하노니 너희 몸을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거룩한 산 제사로 드리라 이는 너희의 드릴 영적 예배니라
2. 너희는 이 세대를 본받지 말고 오직 마음을 새롭게 함으로 변화를 받아 하나님의 선하시고 기뻐하시고 온전하신 뜻이 무엇인지 분별하도록 하라

본문 해석

사회학자들은 지금 이 시대를 가리켜서 무엇인가를 잃어버린 ‘상실의 시대’라 합니다. 현대인들은 무엇을 잃어버렸을까요? 

삶의 의미를 잃어버리고 살아가고 있습니다. 인생의 의미를 잊고 산다는 것은 하나님이 주신 복을 잊어버렸다는 것입니다. 

자아정체성을 확립하고, 존재가치를 알고, 자존감이 높아야 행복할 수 있습니다. 

전에는 하나님과 상관없이 세상적인 것만을 추구하고 살던 우리가 신분이 바뀌어 지금은 하나님의 자녀입니다. 

내가 지금 살아가고 있는 것은 하나님의 일을 하기 위함입니다. 

그 하나님의 일을 할 때에 중요한 것은 하나님의 선하시고 하나님이 기뻐하시고 하나님에 온전하신 뜻이 무엇인지를 분별하면서 일해야 합니다(2). 

그렇게 되기 위하여 필요한 것은 변화입니다.   

 

이런 변화를 가져오기 위해 중요한 것은 변화를 위한 몸부림입니다. 변화는 가만히 있는데 일어나느냐 절대 그렇지 않습니다. 

변화되려면 무엇인가 결단하고 도전해야 합니다. 영적으로 변화하려면 하나님과의 관계에서 열심을 내야 됩니다. 

부지런히 기도해야 하고, 예배 열심히 참여해야 하고, 말씀을 가까이하는 개인적인 열정이 회복되어야, 신앙적인 활성화가 이루어지는 것입니다. 

변화를 위한 위대한 결단이 없는 어떤 변화는 있을 수 없는 것입니다 

 

먼저 진정한 예배자가 되어야 합니다(1). 교회의 본질적인 사역 중에 가장 중요한 것은 하나님을 향하는 예배입니다. 

성도에게 예배는 그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것입니다. 신령과 진정으로 예배하는 자를 찾으시는 하나님 앞에 바른 예배자로 서야 합니다. 

몸으로 산제사로 드리라는 것은 내 몸이 어디에 있든지, 하나님을 기억하고 그 분의 영광을 위하여, 그 분 중심으로 살아가라는 말씀입니다. 

즉 주일 예배 시간만 지키는 예배가 아니라, 그 날 받은 은혜를 가정과 사회에서 삶으로 드리는 예배가 진정한 예배입니다. 

 

또한 이 세대를 본받지 말아야 합니다(2). 내가 무엇을 얻으려면, 어떤 것을 포기해야 합니다. 

이 세대를 본받고 살아가는 삶에서 단절하고 내려놓아야 할 것이 있다면, 그런 것들을 과감하게 결단하고, 내려놓을 때에 새로운 변화의 상황으로 진입할 수 있는 것입니다.

양손에 뭔가를 잔뜩 쥐고 있는 상태에서는 새로운 것을 취할 수 없는 것과 같습니다. 

 

그리고 늘 마음을 새롭게 해야 합니다(2). 마음이라는 것은 나의 속사람을 의미하는 것입니다. 

말투가 바뀌고 습관 좀 고쳤다고 해서 마음이 새롭게 된 것 아닙니다. 속사람이 바뀌어야 그 사람도 바뀌는 것입니다. 

이 마음을 지키기 위하여 깨어 기도하고. 말씀 안에 거하고 성령 충만해야 합니다(잠4:23). 이 세대는 육신에 욕망을 따라 사는 세상입니다. 신

앙인은 세상 사람들과 똑같은 가치관을 가지고 유행을 쫒아 사는 사람들이 아닙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붙들고 성령의 인도하심을 받으며 살아 갈 때에 하나님의 뜻을 분별하고 사는 승리하는 삶이 가능할 것입니다.

결단과 적용

- 나의 예배생활을 점검하고, 영적 예배자가 되기 위해 개선점을 생각해 봅시다. 

- 이 세대를 본받지 않기 위해 내려놓아야 할 목록들을 구체적으로 정리해 봅시다.

- 승리하는 삶을 위해 오늘부터 행동으로 옮기는 실천을 위해 기도하십시다. 

오늘의 기도

긍휼의 하나님, 선택하시고 불러주심을 감사합니다. 저를 향한 주님의 뜻을 알게 하시고, 미래를 바르게 살아갈 수 있도록 도와주시옵소서. 

이 세대를 본받지 않고 분별할 수 있는 지혜를 주시고, 변화를 위한 결단으로 바른 예배자로 살아가게 하시옵소서.  

인문학 큐티더 보기
놀이
인문학 나눔

“놀이터의 아이들은 그냥 노는 게 아니다.  

학교에서는 가르쳐 주지 않는 인생을 배운다.  

그네에 홀로 앉아 독립을 배운다. 

미끄럼틀을 타고 내려가며 겸손을 배운다. 

철봉에 거꾸로 매달려 용기를 배운다.

모래로 지은 밥을 함께 먹으며 나눔을 배운다.

놀이터는 어른들에게도 개방되어야 한다.”

 

정철 저(著) 「내 머리 사용법」(허밍버드, 194쪽) 중에 나오는 구절입니다. 

 

네덜란드의 문화철학가 호이징가가 「호모 루덴스」에서 지적하듯이,  

인간은 ‘생각하는 존재’를 넘어 ‘놀이하는 존재’입니다. 

놀이를 하면서 비로소 여느 만물과 다른 존재로 살아갑니다.  

즉, 인간은 놀이를 하면서 먹고 사는 문제에서 벗어나 자유로움을 느끼고 

재미를 알게 되었다는 겁니다.  

모처럼 큰 사냥감을 잡으면 배불리 먹고는 축제를 벌였습니다.  

춤도 추고 노래도 부르고 벽에 그림도 그리면서 흥겨운 놀이를 즐겼습니다.  

내일 해가 뜨면 다시 먹고 사는 일로 골치 아프겠지만

놀이의 순간만큼은 뭔가 알 수 없는 흥과 자유가 솟았던 것입니다.  

말하자면 인류는 놀이를 통해 비로소 한 단계 더 높은 생각을 하면서

예술과 문화를 이룰 수 있게 된 것입니다.

기독 메시지

스가랴 선지자는 회복된 예루살렘, 새 예루살렘, 시온와 거리,

천국의 거리를 이렇게 그립니다.

“그 성읍 거리에 소년과 소녀들이 가득하여 거기에서 뛰놀리라.” (슥8:5)

아이들이 마음껏 뛰노는 거리!  신나는 놀이! 가 회복된 하나님 나라의 모습입니다.  

아이들에게 놀이터가 아닌 사냥터를 가르치는 우리가 부끄럽습니다.

네가 먹지 않으면 먹힌다는 둥,  최고의 사냥 총이 있어야 한다는 둥. 

아이들에게 ‘놀이’를 잃은 어른들의 사냥터를 물려주는 것 같아 부끄럽습니다.

그림 큐티더 보기
요한복음 14장27절
고린도전서 15:10

평안을 너희에게 끼치노니 곧 나의 평안을 너희에게 주노라

내가 너희에게 주는 것은 세상이 주는 것과 같지 아니하리니

너희는 마음에 근심도 말고 두려워하지도 말라

도서 큐티더 보기
이것이 복음의 원리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예수님의 십자가 사건과 부활을 통하여 

우리와 화해를 이루시고 용서와 사랑을 베푸시었다.

 죄는 사람이 지었지만 하나님께서는 

예수님의 십자가 죽음으로 해결해주셨다. 

우리 조상 아담은 하나님의 형상과 모습을 따라 지어진 

죄가 없는 완전한 사람이었지만 

 그가 하나님처럼 되고자 선과 악을 알게 하는

 나무의 열매를 먹으므로 신성모독죄를 지었던 것이다. 

이런 아담과 그의 자손들은 하나님의 진노 아래에 놓이게 되어

모두 죄인이 되어서 하나님과의 관계가 끊어지게 되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는 그의 아들을 사람의 아들로 보내시고 

그로 말미암아 우리와 화해와 평화를 이루셨던 것이다.

이것이 복음이다.

-이창우 목사의 ′하나님께서 우리의 구원을 이루어주십니다′에서-

 

 하나님께서는 그 아들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우리에게 화해의 손을 내미시게 되었습니다. 

그러므로 누구든지 예수님을 하나님이 보내신 아들로 믿고

 받아들이면 하나님께서 평화와 용서를 주시고

 자녀로 nbsp;사랑하여 주십니다. 

예수님을 믿는 사람들은 곧 영원한

생명을 얻고 구원을 얻게 되는 것입니다. 

그리하여 예수님을 믿는 사람들은 

하나님과 끊어졌던 관계를 회복하여

그의 자녀로서 상속자가 되고 

하나님의 축복과 은혜로 살아가게 되므로

 참다운 구원이 이루어지게 되는 것입니다. 

이것이 복음의 원리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