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회력으로 성령강림절의 시작은 예수님이 승천하시던 날부터 120명의 성도들이 예수님의 명령하신 마가의 다락방에 모여 기도하였는데
열흘째 되던 날에 그 모인 곳에 성령이 임함으로 시작되었기 때문입니다.
이 영적인 사건은 갑자기 되어진 것이 아니라 요엘 선지자를 통해 예언된 말씀대로 이루어진 일입니다(요엘2:28-29).
베드로 사도도 이 사실을 설교하였습니다(행2:16-21).
뿐만아니라, 예수님께서도 십자가를 지시기 전부터 “내가 아버지께 구하겠으니 그가 또 다른 보혜사를 너희에게 주사 영원토록 너희와 함께 있게
하시리니”(요14:16-17)라고 말씀하신 바 있으며, 또한 승천하시기 직전에도 아버지의 약속하신 것을 기다려라... 너희는 몇 날이 못 되어 성령으로
세례를 받으리라(행1:4-5)고 하셨습니다. 바로 이 말씀대로 이루어진 사건이 성령 강림의 사건입니다.
본문은 그 때의 상황을 잘 보여 주고 있습니다. 오순절이 되어 그들이 모두 한 자리에 모였습니다.
그런데 갑자기 하늘에서 급하고 강한 바람 소리가 있고, 그들이 앉아 있던 온 집안을 가득 하였습니다.
그리고 불꽃의 혀처럼 여러 갈래로 갈라져 각 사람위에 임하였습니다.
그 결과 그들 모두가 성령으로 충만하여 자신들도 알지 못하는 방언으로 말하기 시작하였습니다.
그 때 열다섯 나라 사람들이 예루살렘에 모였었는데 놀라서 신기하게 여기며 이렇게 말했습니다.
‘보라 이 말하는 사람들이 다 갈릴리 사람이 아니냐 우리가 우리 각 사람의 난 곳 방언으로 듣게 되는 것이 도대체 어찌 됨이냐?’(7-8).
크리스천은 ‘성령 받은 사람’이어야 합니다. 그렇지 않으면 냉정하게 말씀드려서 크리스천이 아닙니다.
“만일 너희 속에 하나님의 영이 거하시면 너희가 육신에 있지 아니하고 영에 있나니 누구든지 그리스도의 영이 없으면 그리스도의 사람이 아니라”(롬8:9).
성령 충만의 사건이 초대교회에만 주어진 사건이 아닙니다. 지금도 이 성령 충만의 역사는 계속되고 있습니다.
그러면 성령 충만은 무엇을 의미하는 것일까요? 많은 사람들이 성령 받음과 성령세례와 성령 충만에 대해서 정확한 정의를 내리지 못하고 있습니다.
성령을 받음은 일평생의 신앙생활하면서 단 한 번 경험하게 됩니다. 그리고 그렇게 경험한 성령은 우리를 떠나지 않습니다.
그리고 그 성령께서 임하실 때 우리는 거듭남의 체험을 하게 됩니다. 이렇게 성령으로 거듭나는 것을 성령세례를 받았다고 말할 수 있습니다.
즉 성령 받음과 성령세례는 같은 것입니다. 그러나 성령 충만은 성령을 처음 받을 때 경험할 수 있기도 하지만, 그 이후에도 수시로 반복해서 할 수
있으며 계속적으로 경험할 수 있습니다.
때문에 성령을 받고 성령 충만의 경험을 했어도 얼마든지 성령 충만에서 멀어질 수도 있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본문에서 보면 120명의 성도들이 경험한 것은 성령을 받음과 동시에 성령세례를 받은 것은 물론이거니와 또한 성령 충만도 동시에 경험한 것입니다.
성령 충만한 결과 베드로는 담대하게 복음을 전할 수 있었고, 제자들을 비롯한 120명의 성도들은 죽음의 두려움 없이 능력 있게 복음을 전할 수 있었던 것입니다.
그들은 자원해서 유무상통한 성도의 교제가 가능했으며, 그 결과 백성들에게도 칭송을 받는 자리에까지 나아가게 되었습니다(45-47).
성령 충만을 사모하십시오. 그리고 성령 충만 할 때까지 기도하십시오. 매일 성령 충만을 유지하며 살아가시기 바랍니다. 행복한 신앙생활의 비결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