鶴山의 草幕舍廊房

Faith - Hymn

이것이 무엇입니까(출 16:11-21)

鶴山 徐 仁 2017. 12. 13. 11: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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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벽종소리 - 365일 하나님과 행복한 삶의 동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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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월 13일 (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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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 본문 이것이 무엇입니까(출 16:11-21)

11. 여호와께서 모세에게 일러 가라사대
12. 내가 이스라엘 자손의 원망함을 들었노라 그들에게 고하여 이르기를 너희가 해 질 때에는 고기를 먹고 아침에는 떡으로 배부르리니 나는 여호와 너희의 하나님인줄 알리라 하라 하시니라
13. 저녁에는 메추라기가 와서 진에 덮이고 아침에는 이슬이 진 사면에 있더니
14. 그 이슬이 마른 후에 광야 지면에 작고 둥글며 서리 같이 세미한 것이 있는지라
15. 이스라엘 자손이 보고 그것이 무엇인지 알지 못하여 서로 이르되 이것이 무엇이냐 하니 모세가 그들에게 이르되 이는 여호와께서 너희에게 주어 먹게 하신 양식이라
16. 여호와께서 이같이 명하시기를 너희 각 사람의 식량대로 이것을 거둘지니 곧 너희 인수대로 매명에 한 오멜씩 취하되 각 사람이 그 장막에 있는 자들을 위하여 취할지니라 하셨느니라
17. 이스라엘 자손이 그같이 하였더니 그 거둔 것이 많기도 하고 적기도 하나
18. 오멜로 되어 본즉 많이 거둔 자도 남음이 없고 적게 거둔 자도 부족함이 없이 각기 식량대로 거두었더라
19. 모세가 그들에게 이르기를 아무든지 아침까지 그것을 남겨 두지 말라 하였으나
20. 그들이 모세의 말을 청종치 아니하고 더러는 아침까지 두었더니 벌레가 생기고 냄새가 난지라 모세가 그들에게 노하니라
21. 무리가 아침마다 각기 식량대로 거두었고 해가 뜨겁게 쪼이면 그것이 스러졌더라

본문 해석

인생을 살다가 하나님을 불평해보신 적이 있습니까? 

성경을 보면 하나님이 우리의 원망과 불평에 대해 어떻게 하셨는지 알 수 있습니다. 

특히 출애굽기는 내용 전체가 이스라엘 백성들의 불평과 그에 대한 하나님의 응답에 대한 이야기입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오늘 말씀에 그들이 먹을 것이 없자 하나님과 모세를 원망합니다. 

그들의 원망과 불평은 이것이 처음이 아니었습니다. 홍해 앞에 있었을 때도, 홍해를 건너서 마라에 있을 때도... 

수도없이 그들은 불평했습니다. 그럴 때마다 하나님은 그 불평까지도 응답하십니다. 

불평은 나쁜 것이긴 하지만, 반면에 불평을 한다는 것은 불평하는 대상을 의지하기 때문에 하는 것이기도 합니다. 

우리도 우리 뜻대로 되지 않을 때, 끊임없이 불평합니다. 하지만 하나님은 그런 불평에 대해서도 응답하시는 분이십니다. 

정말 문제는 우리가 문제와 상황에 부딪혔을 때조차도 하나님을 찾지 않는다는 데 있습니다. 

하나님은 우리의 불평도 하나님이 응답하시는 증거로 삼으십니다. 

오늘 하나님이 그 불평에 대한 응답으로 만나를 주시는데, 한 가지 원칙을 주십니다. 

아침에 이슬이 내릴 때 만나가 내리는데, 어떤 사람은 많이 거두고 어떤 사람은 적게 거둡니다. 

어떤 사람은 몸이 아파서 거두러 나가지 못하여 먹지 못하고, 어떤 사람이 힘이 있어 많이 거두고 쌓아둡니다. 

그래서 하나님이 정하신 원칙이, 하루가 지나면 그것을 썩게 하십니다. 하나님은 만나를 주실 때, 

모든 이스라엘 백성들이 다 같이 누리도록 만나를 내려주시는데, 

그것을 어느 한 사람이 많이 취하여 불공평하게 배분되는 것에 대해서 경고하신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말씀해 주신 주기도문에도 “우리에게 일용할 양식을 주옵시고”라고 말씀하십니다. 

“나에게”가 아니가 “우리에게”입니다. 이것을 만나의 메시지와 연결됩니다. 

어떤 사람이 많이 거두어 창고에 쌓아두고 내어놓지 않음으로 인하여, 

누군가는 굶고 눈물겨워하는 것을 보고 다음 날에 그것을 썩게 하신 것입니다. 

그 다음부터 이스라엘 백성들은 더 이상 쌓아 둘&n bsp;이유가 없었기 때문에 자연스럽게 많이 거두면 

몸이 불편하여 거두지 못한 사람들에게 나누기 시작합니다. 이것이 우리 인생을 향한 하나님의 중요한 뜻입니다. 

이스라엘에는 두 개의 바다가 있습니다. 성경에서는 바다라고 표현하지만 사실은 강입니다. 

갈릴리 바다와 사해입니다. 갈릴리 바다와 사해는 연결되어 있어서 갈릴리 바다의 물이 흘러 사해로 들어갑니다. 

하지만 갈릴리 바다는 살아있고, 사해는 죽어 있습니다. 사해가 죽은 바다인 이유는 흘려보내지 않기 때문입니다. 

우리에게 주신 것도 흘려보내지 않으면 당장은 행복할 것 같지만, 그것은 분명 썩게 되어 있습니다. 

오늘 우리에게 주신 은혜를 흘려보내며, “나의 양식”이 아닌 “우리의 양식”을 위해 기도하는 하루가 되기를 소원합니다.      

결단과 적용

 - 우리는 “일용할 양식”이 아닌 “쌓아 놓을 양식”을 위해 걱정하고 기도하고 있는 것은 아닌지 삶을 돌아봅시다. 

 - 나에게 주신 은혜를 흘려보내기 위해 결단해야 할 것이 무엇인지 생각해 봅시다.    

오늘의 기도

주님! “최소한 이 정도는 나에게 필요하다.”고 간구했던 것들이 욕심이었으며, 

하나님의 은혜를 흘려보내지 못하는 자세였음을 회개합니다. 

오늘 하루 “어떻게 쌓을지”가 아니라 “어떻게 흘려보낼지”를 기도하고 순종하는 하루가 되기를 소원합니다.  

인문학 큐티더 보기
여자의 허영 남자의 허영
인문학 나눔

“여자의 허영은 기껏해야 예쁜 치마나 근사한 헤어스타일,  

기분을 풀려고 가는 클럽 정도일 뿐 인생 전체를 거는 법이 없다.  

특히 가정이나 아이,결혼과 장례 등에서는 매우 현실적인 태도를 보인다.  

반면 남자의 허영은 일단 시작되면 밑도 끝도 없다.  

세계를 정복하겠다거나 천하에 이름을 알리고 후세에 명성을 전하겠다며 

인생에서 가장 좋은 시절을 기꺼이 희생한다.” 

 

저우귀핑 저(著) 정세경 역(譯) 「잠시 멈춤이 필요한 순간(한빛미즈, 149쪽)」 중에 나오는 구절입니다. 

기독 메시지

“미꾸라지국 먹고 용트림한다”는 말이 있습니다.  

소인배가 큰 인물인 척 허세를 부릴 때 쓰는 말입니다.

‘허영!’하면 대개 여자를 떠올립니다.  

그러나 여성의 허영은 기껏해야(?) 아름다운 외모와 수려한 겉모습을 추구합니다.  

고가(高價)의 돌멩이로 치장하기 위해 온 가족들을 피곤하게 할 정도입니다.  

그러나 남자의 허영은 다릅니다. 

세계 정복을 한다면서 가족 뿐만이 아니라 온 나라 온 세상 사람들을 수렁으로 집어 넣습니다.  

바울 사도는 빌립보 교인들에게 생명이 넘치는 기쁜 삶을 살기 위하여 허영을 버리라고 편지합니다.   

“아무 일에든지 다툼이나 허영으로 하지 말고 오직 겸손한 마음으로 각각 자기보다 남을 낫게 여기고” (빌2:3)

여기서 ‘허영’을 영어 번역으로 보면 ‘베인 글로리!(vain-glory)’라고 되어 있습니다.  

‘글로리(glory)’ 란 ‘영광’ 이라는 의미이고, ‘베인 (vain)’ 은 ‘비어 있다’ 는 뜻입니다. 

‘속이 비어 있는 영광’ 그것이 바로 허영입니다.  

토마스 아퀴나스도 허영을 가리켜 거짓된(vain) 영광(glory)이라고 하였습니다.  

내가 이 정도의 사람이라고 남에게 보여주고 싶은 욕망! 

허영은 헛된 것, 바람 같이 없어지는 것의 상징입니다.

그림 큐티더 보기
창세기 18:14
고린도전서 15:10

여호와께 능하지 못한 일이 있겠느냐 기한이 이를 때에

내가 네게로 돌아오리니 사라에게 아들이 있으리라

Is anything too hard for the LORD ?

I will return to you at the appointed time next year and Sarah will have a son.

도서 큐티더 보기
교회

교회는 공동체이자 가족이다. 진실한 공동체가 건강한 교회의 가장 중요한 요소이다. 

진실한 공동체는 일차적으로 신앙 고백을 공유하는 공동체이다. 

한 신앙 고백을 위해 함께 예배하고 성경 공부하고 서로 가치고 배우는 공동체이다. 

또한 진실한 공동체는 이차적으로 삶을 나누는 공동체이다. 

일상의 삶을 나누고, 마음과 생각을 나누고, 

나아가 주머니를 나누는 곳이 공동체이다. 

말과 혀로만 사랑하는 것이 아니라 행함과 진실함으로 사랑하는 곳, 

그곳이 공동체이고 교회이다.

-이진오의 [재편] 중에서-

 

하나님은 교회를 공동체로 세우셨습니다. 

각 지체의 연합함을 통해 하나님의 나라를 이루어 가게 하셨습니다. 

이를 위하여, 다른 지체를 더 요긴하고 아름답고 귀하게 여기는 마음이 필요합니다. 

가족공동체 안에서 함께 신앙을 고백하는 ‘우리’가 있어야 합니다. 

또한 ‘일상’을 나누는 삶이 있어야 합니다. 

지체의 부족함을 채우는 지혜로움이 건강한 교회를 이루어 가는 시작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