鶴山의 草幕舍廊房

Faith - Hymn

여호와의 위임(학 1:12-15)

鶴山 徐 仁 2017. 8. 12. 11:06
8월 12일 (토)
여호와의 위임(학 1:12-15)
  
 

12. 스알디엘의 아들 스룹바벨과 여호사닥의 아들 대제사장 여호수아와 남은바 모든 백성이 그 하나님 여호와의 목소리와 선지자 학개의 말을 청종하였으니 이는 그들의 하나님 여호와께서 그를 보내셨음을 인함이라 백성이 다 여호와를 경외하매
13. 때에 여호와의 사자 학개가 여호와의 명을 의지하여 백성에게 고하여 가로되 나 여호와가 말하노니 내가 너희와 함께하노라 하셨느니라 하니라
14. 여호와께서 스알디엘의 아들 유다 총독 스룹바벨의 마음과 여호사닥의 아들 대제사장 여호수아의 마음과 남은바 모든 백성의 마음을 흥분시키시매 그들이 와서 만군의 여호와 그들의 하나님의 전 역사를 하였으니
15. 때는 다리오왕 이년 유월 이십 사일이었더라

 
  
  
 

<그때에 여호와의 사자 학개가 여호와의 위임을 받아 백성에게 말하여 이르되 여호와가 말하노니 내가 너희와 함께 하노라 하니라>(13절).
보십시오. 백성들이 그 말씀을 듣고 감동을 받고 은혜를 느끼는 일 조차도 다 하나님이 하신다고 말씀하지 않습니까?
<여호와께서 스알디엘의 아들 유다 총독 스룹바벨의 마음과 여호사닥의 아들 대제사장 여호수아의 마음과 남은 모든 백성의 마음을 감동시키시며 그들이 와서 만군의 여호와 그들의 하나님의 전 공사를 하였으니>(14절). 사람은 결코 사람의 마음을 움직이거나 감동시킬 수 없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누구든, 어떤 신분이나 어떤 지위에 있는 자든 능히 움직이사 일하게 하시고 새롭게 결단하게 하실 수 있습니다. 이것은 특히 하나님의 위임으로 사역하는 사람들이 명심할 일입니다. 자신의 능력이나 언변이나 노력으로 사람들을 움직이고 감동받게 하고 결단하게 하려는 시도는 결국 실패합니다. 하나님의 위임이나 위탁에 최선을 다하며 하나님이 친히 그 일을 통해 사람들을 감동시키시고 결단케 해주시기를 기도해야 합니다. <만군의 여호와가 그들의 하나님의 전 공사를> 하게 하셨다는 말씀을 잊지 마십시오. 누구나 이 점에 대한 이해와 확신이 있다면 조바심이나 좌절 같은 인간적인 요인 때문에 하나님의 뜻을 그르쳐지는 일은 없을 것입니다. 오직 하나님의 위임, 주님의 위탁에 성실합시다. 무엇보다 학개 선지자를 통해 그 점을 배웁시다. 사람의 마음을 움직이고, 감동을 받고, 결단하는 일 등은 다 하나님의 역사에 달린 것임을 깨닫고 기도합시다.
그래서 오래 방치된 성전 재건이 재개되고 또 완공에 이르는 놀라운 결과가 나타나게 합시다.

 
  
  
 

-주님이 위임하신 일은 내가 하되 사람들을 감동시키는 일은 하나님이 하신다는 사실을 믿으십니까?
-하나님이 사람을 감동시키사 어떤 일을 성사시키신 간증이 있으십니까?
-지금 하나님이 당신에게 위임하신 말씀이나 일이 있다면 어떤 것입니까?​

 
  
  
 

주님, 선지자는 자신의 말이 아닌 하나님이 위임하신 말씀을 증거하고 선포하는 사람입니다.
학개 선지자가 전한 성전 재건에 관한 말씀도 다 하나님이 그에게 위임하신 말씀이었습니다.
그러나 학개 선지자의 언변이나 화술 때문이 아니라 하나님이 백성들의 마음을 움직이시고 감동을 받게 하사
그들이 재건을 결단하고 나섰다고 했습니다. 그렇습니다. 저희는 단지 하나님의 위임에 최선을 다할 뿐입니다.
감동과 결단은 오직 하나님께서 행하시는 사역임을 다시 한 번 깊이 깨닫게 해주시옵소서.

 
  
   
 

십자가에 대한 자랑을 회복하라

육신의 정욕, 안목의 정욕, 이생의 자랑은 다 지나가는 것이다.
오직 십자가를 자랑하는 삶만이 영원한 것이다.
십자가에 대한 자랑을 회복하기 바란다.
우리가 이 십자가만 자랑할 때 어떤 일이 일어날까?
자기애가 사라진다.
시기, 질투, 분노할 이유가 사라지게 되는 것이다.
많이 가진 자, 적게 가진 자가 아무 의미가 없게 된다.
직장 상사가 별로 무서워지지 않게 된다.
그래서 공동체 안에서 아무 편견 없이
서로를 사랑할 수 있게 되는 것이다.
-이익환 목사의 ‘십자가를 회복하라’에서-

 
   
 
  
 


하나님은 이생의 자랑거리를 많이 가진 자가 아니라
오직 충성스러운 자, 십자가를 자랑하고
십자가의 삶을 살아가는 자를 보상하실 것입니다.
우리가 구원의 확신을 갖고 있다 할지라도
육신의 정욕, 안목의 정욕, 이생의 자랑에
반복적으로 나 자신을 내어준다면
그것이 아무리 달콤한 것이라도 그것은
사탄의 미끼를 무는 것 밖에 되지 않는 것입니다.
십자가를 자랑할 때 자기애가 사라집니다.
이것이 사는 길입니다.

 
   
    
 

시편 138:7

 

내가 환난 중에 다닐지라도 주께서 나를 살아나게 하시고 주의 손을 펴사 내 원수들의 분노를 막으시며 주의 오른손이 나를 구원하시리이다.

Though I walk in the midst of trouble, you preserve my life; you stretch out your hand against the anger of my foes, with your right hand you save me.

 
    
 
  
 서울이태원교회 지성호 목사
 믿음의 삶 10
  
  



8월 11일 (금)
구멍 뚫린 전대(학 1:3-11)
  
 

3. 여호와의 말씀이 선지자 학개에게 임하여 가라사대
4. 이 전이 황무하였거늘 너희가 이 때에 판벽한 집에 거하는 것이 가하냐
5. 그러므로 이제 나 만군의 여호와가 말하노니 너희는 자기의 소위를 살펴 볼찌니라
6. 너희가 많이 뿌릴찌라도 수입이 적으며 먹을찌라도 배부르지 못하며 마실찌라도 흡족하지 못하며 입어도 따뜻하지 못하며 일군이 삯을 받아도 그것을 구멍 뚫어진 전대에 넣음이 되느니라
7. 나 만군의 여호와가 말하노니 너희는 자기의 소위를 살펴 볼찌니라
8. 너희는 산에 올라가서 나무를 가져다가 전을 건축하라 그리하면 내가 그로 인하여 기뻐하고 또 영광을 얻으리라 나 여호와가 말하였느니라
9. 너희가 많은 것을 바랐으나 도리어 적었고 너희가 그것을 집으로 가져갔으나 내가 불어 버렸느니라 나 만군의 여호와가 말하노라 이것이 무슨 연고뇨 내 집은 황무하였으되 너희는 각각 자기의 집에 빨랐음이니라
10. 그러므로 너희로 인하여 하늘은 이슬을 그쳤고 땅은 산물을 그쳤으며
11. 내가 한재를 불러 이 땅에, 산에, 곡물에, 새 포도주에, 기름에, 땅의 모든 소산에, 사람에게, 육축에게, 손으로 수고하는 모든 일에 임하게 하였느니라

 
  
  
 

<이 성전이 황폐하였거늘 너희가 이때에 판벽한 집에 거주하는 것이 옳으냐>(4절).
이 모습을 보다 못해 하나님이 학개 선지자를 통해 말씀하셨습니다. <내 뜻은 그게 아니다. 나는 지난 15년 동안 너희가 나의 성전을 재건하기를 기다렸다. 나의 일을 최우선으로 생각하기를 기다렸다.> 학개 선지자는 바로 이런 하나님의 뜻을 전달하며 회개를 촉구합니다.
주님은 분명히 <먼저 그의 나라와 그의 의를 구하라 그리하면 이 모든 것을 너희에게 더하시리라>(마 6:33)고 하셨습니다.
우리는 누구나 자신의 일을 생각하기 전에 먼저 하나님의 일을 생각해야 합니다.
우리의 뜻과 생각을 내세우기 전에 먼저 하나님의 뜻과 생각을 물어야 합니다.

 
  
  
 

-당신의 삶의 최우선 순위는 무엇입니까?
-학개 시대 유다 백성들이 하나님의 성전 재건에 무책임했던 이유는 무엇이었습니까?
-본문 4절의 하나님의 물음에 답해 보십시오.​

 
  
  
 

주님, 과거 학개 시대의 유다 백성들처럼 저희도 언제나 내 뜻, 내 생각, 내 고집, 나의 필요가 우선이고 먼저입니다.
하나님의 뜻이나 하나님의 일은 항상 핑계와 변명과 합리화로 후순위입니다. 저희의 악함을 용서해 주시옵소서.
저희의 그릇된 삶의 원칙에 대한 깊은 반성과 회개를 허락해 주시옵소서.
결국은 그게 먹을지라도 배부르지 못하게 하고 마실지라도 흡족하지 못하며 입어도 따뜻하지 못하고 삯을 받아도 그것을 구멍 뚫린 전대에 넣음과 같은 꼴이 되게 하는 원인이 됨을 깊이 깨닫게 해주시옵소서.

 
  
   
 

하나님보다 나를 더 사랑하면

안타까운 것은 지금 우리가 사는 시대는
자기애에 빠진 시대라는 것이다.
너 자신을 사랑하라고 대놓고 광고하는 시대다.
우리는 지금 육신의 정욕을 부추기는
문화의 홍수 속에서 살아가고 있다.
안목의 정욕을 따라 외모나 외관을 가꾸는데
힘쓰며 사는 세대 속에 살아간다.
보이는 게 중요하고, 남보다 더 소유하는 데서 안정감을 누린다.
이 모든 것이 결국 이생의 자랑과 연결된다.
나르시즘에 빠진 세상에서
자기애는 채워도채워도 채워지지 않는다.
먹음직도 하고 보암직도 하고 지혜롭게 할 만큼
탐스러운 선악과 열매는 오늘날도 우리 앞에 놓여 있다.
하나님보다 나를 더 사랑하라는 것이다.
이 자기애의 열매를 따 먹을 때 하나님과의 관계는 죽는다.
이웃과 나 자신과의 관계도 죽는다.
-이익환 목사의 ‘십자가를 회복하라’에서-

 
   
 
  
 


우리는 세상 속에 살기 때문에
세상의 영향력에 휘둘리지 않을 수가 없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세상을 십자가에 못 박는 작업이 필요한 것입니다. 그리고 세상을 향해 끌리는 나의 성향도
십자가에 못 박아야 하는 것인데. 이것이 자기부인입니다.
자기애는 오직 자기부인을 통해 극복되는 것입니다.
바울은 빌립보서 1:20-21에서 .
“살든지 죽든지 내 몸에서 그리스도가 존귀하게 되게 하려 하나니 이는 내게 사는 것이 그리스도니 죽는 것도 유익함이라”
바울의 자기 부인 선언입니다.
바울처럼 삶에서 오직 그리스도가 존귀하게 됨을 선택하십시오.
진정한 그리스도인이라면

 
   
    
 

베드로후서 1:2

 

하나님과 우리 주 예수를 앎으로 은혜와 평강이 너희에게 더욱 많을지어다.

Grace and peace be yours in abundance through the
knowledge of God and of Jesus our Lord.


 
    
 
  
 요나3일영성원 장덕봉 목사
 참된 지도자가 되고 싶습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