鶴山의 草幕舍廊房

Faith - Hymn

네 손을 늘어뜨리지 말라(습 3:14-20) 외 2

鶴山 徐 仁 2017. 8. 5. 10:39
8월 5일 (토)
네 손을 늘어뜨리지 말라(습 3:14-20)
  
 

14. 시온의 딸아 노래할찌어다 이스라엘아 기쁘게 부를찌어다 예루살렘 딸아 전심으로 기뻐하며 즐거워할찌어다
15. 여호와가 너의 형벌을 제하였고 너의 원수를 쫓아내었으며 이스라엘 왕 여호와가 너의 중에 있으니 네가 다시는 화를 당할까 두려워하지 아니할 것이라
16. 그 날에 사람이 예루살렘에게 이르기를 두려워하지 말라 시온아 네 손을 늘어뜨리지 말라
17. 너의 하나님 여호와가 너의 가운데 계시니 그는 구원을 베푸실 전능자시라 그가 너로 인하여 기쁨을 이기지 못하여 하시며 너를 잠잠히 사랑하시며 너로 인하여 즐거이 부르며 기뻐하시리라 하리라
18. 내가 대회로 인하여 근심하는 자를 모으리니 그들은 네게 속한 자라 너의 치욕이 그들에게 무거운 짐이 되었느니라
19. 그 때에 내가 너를 괴롭게 하는 자를 다 벌하고 저는 자를 구원하며 쫓겨난 자를 모으며 온 세상에서 수욕 받는 자로 칭찬과 명성을 얻게 하리라
20. 내가 그 때에 너희를 이끌고 그 때에 너희를 모을찌라 내가 너희 목전에서 너희 사로잡힘을 돌이킬 때에 너희로 천하 만민 중에서 명성과 칭찬을 얻게 하리라 나 여호와의 말이니라

 
  
  
 

앞 단락에서 본 당시 예루살렘의 모습은 너무도 패역하고 포학하고 더러워 더 이상 구제할 수도 바로 잡을 수도 없는 성읍처럼 보였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질투의 불>로 그들을 다 소멸하실 것이라고 하셨습니다. 그러나 우리는 오늘 다시 한 번 하나님의 풍성하신 은혜를 대하며 감사와 경이의 마음을 품게 됩니다.

<시온의 딸아 노래할지어다 이스라엘아 기쁘게 부를지어다 ... 여호와가 네 형벌을 제거하였고 이스라엘 왕 여호와가 네 가운데 계시니 ... 두려워하지 말라 시온아 네 손을 늘어뜨리지 말라>(14-16절).
<네 손을 늘어뜨리지 말라>는 말씀은 <기운을 내라, 낙심하지 말라, 체념하지 말라, 절망하지 말라>는 뜻입니다. 정말 하나님의 사랑은 불가사의한 사랑입니다. 하나님의 용서와 형벌을 제하심은 끝도 한도 없으십니다. 그토록 책망하시고 질투하시고 분노하시다 다시금 이렇게 끌어안으시며 <화를 당할까 두려워하지 말라>(15절)고 하시고, <여호와가 너의 가운데 계시며, 구원을 베푸실 것이고, 너로 말미암아 기쁨을 이기지 못하신다고 하시고, 잔잔히 사랑하시며 너로 말미암아 즐거이 부르며 기뻐하리라>(17절)고 하십니다.
그뿐이 아닙니다. <내가 너를 괴롭히는 자를 다 벌하고 저는 자를 구원하고 쫓겨난 자를 모으며 수욕받는 자로 하여금 칭찬과 명성을 얻게 하리라>(19절)고 하십니다.
이게 바로 하나님의 사랑이고 하나님의 용서고 축복입니다.

그런데 여기에는 <너희가 돌이킬 때>(20절)라는 단서가 있음을 놓치지 마십시오. 내가 말할 수 없는 고독의 심연에 빠져들 때, 내 영혼이 고아처럼 버려졌다고 느낄 때 꼭 하나님의 이 <네 손을 늘어뜨리지 말라>는 말씀을 기억하십시오. 그리고 다시 용기를 내시고 희망을 가지십시오. 돌이켜 회개하므로 말씀하신 이 축복의 약속이 당신의 것이 되게 하십시오.

 
  
  
 

-CCM <너희 하나님 여호와가>를 한 번 불러 보십시오.
-최근 겪으신 것 중에 <손을 늘어뜨릴>만한 절망적인 일이 있으셨습니까?
-본문 19절 말씀을 적어보십시오.

 
  
  
 

주님, 그토록 진노하시며 <질투의 불>로 소멸하시리라 하셨던 예루살렘에 대해 <네 형벌을 제거하였고 원수를 쫓아냈다>며 <노래하라, 기뻐하며 즐거워하라>고 하신 말씀을 생각해 봤습니다. <두려워하지 말고 네 손을 늘어뜨리지 말라>고 위로하시고 격려하신 말씀도 들었습니다. 저희들 여기서 진정한 하나님의 사랑과 은혜를 깨닫게 해주시옵소서. 하나님의 질투와 분노의 본심을 읽게 하시옵소서. <돌이킬 때에 너희에게 천하 만민 가운데서 명성과 칭찬을 얻게 하리라>하신 말씀의 의미도 놓치지 않고 깊이 회개하는 저희들 되게 해주시옵소서.

 
  
   
 

신앙생활은 탐욕을 버려야

탐욕은 이와 같이 인간을 파괴한다.
인간의 평화를 깨고 화평을 깨고
인간의 행복을 깨어버린다.
왜냐하면 탐욕은 그 뒤에서 마귀가 조종하고 있기 때문이다.
요한1서 3장 8절에 "죄를 짓는 자마다 마귀에게 속하나니
마귀는 처음부터 범죄 함이니라. 하나님의 아들이 나타난 것은
마귀의 일을 멸하려 하심이니라"고 했다.
그러므로 예수 이름으로 마귀를 물리치기 바란다.
죄 짓게 하는 탐욕의 마귀를 예수 이름으로 물리치기 바란다.
우리의 화평을 깨는 마귀를 물리치기 바란다.
‘예수 이름으로 나아갈 때 우리 앞에 누가 서리요
예수 이름으로 나아갈 때 승리를 얻었네.‘
-김찬종 목사의 ‘행복한 인생’에서-

 
   
 
  
 


탐욕은 우리에게 주시는 하나님의 복을 받지 못하게 합니다.
탐욕이 있기에 십일조를 드리지 못하며.
탐욕이 있기에 감사하지 못합니다.
구제하지 못합니다.
탐욕이 있기에 인색하고 탐욕이 있기에 자꾸 움켜쥡니다.
예수 이름으로 나아가 승리를 얻고 싶습니까?
탐욕을 버리십시오. 신앙생활은 탐욕을 버려야 합니다.
그래야 승리할 수 있습니다.
그래야 심령이 부흥하고 은혜로운 삶을 살 수가 있는 것입니다.

 
   
    
 

이사야 14:27

 

만군의 여호와께서 경영하셨은즉 누가 능히 그것을 폐하며
그의 손을 펴셨은즉 누가 능히 그것을 돌이키랴
For the LORD Almighty has purposed, and who can thwart him
His hand is stretched out, and who can turn it back?

 
    
 
  
 FIM국제선교회 유해석 선교사
 5분칼럼(유해석선교사)
  
  



8월 4일 (금)
질투의 불(습 3:8-13)
  
 

8. 나 여호와가 말하노라 그러므로 내가 일어나 벌할 날까지 너희는 나를 기다리라 내가 뜻을 정하고 나의 분한과 모든 진노를 쏟으려고 나라들을 소집하며 열국을 모으리라 온 땅이 나의 질투의 불에 소멸되리라
9. 그 때에 내가 열방의 입술을 깨끗케 하여 그들로 다 나 여호와의 이름을 부르며 일심으로 섬기게 하리니
10. 내게 구하는 백성들 곧 내가 흩은 자의 딸이 구스 하수 건너편에서부터 예물을 가지고 와서 내게 드릴찌라
11. 그 날에 네가 내게 범죄한 모든 행위를 인하여 수치를 당하지 아니할 것은 그 때에 내가 너의 중에서 교만하여 자랑하는 자를 제하여 너로 나의 성산에서 다시는 교만하지 않게 할 것임이니라
12. 내가 곤고하고 가난한 백성을 너의 중에 남겨 두리니 그들이 여호와의 이름을 의탁하여 보호를 받을찌라
13. 이스라엘의 남은 자는 악을 행치 아니하며 거짓을 말하지 아니하며 입에 궤휼한 혀가 없으며 먹으며 누우나 놀라게 할 자가 없으리라

 
  
  
 

<... 온 땅이 나의 질투의 불에 소멸되리라>(8절).
하나님은 질투의 하나님이십니다.
<여호와는 질투라 이름하는 질투의 하나님임이니라>(출 34:14).
처음 십계명을 주시면서도 <네 하나님 여호와는 질투하는 하나님인즉 나를 미워하는 자의 죄를 갚되 아버지로부터 아들에게로 삼사 대까지>(출 20:5) 이르게 하신다고 경고하셨습니다.

<질투>란 히브리어 <카나>의 번역인데 이는 <자신에게 속한 소중한 것들을 지키시는 하나님의 거룩한 사랑의 열정>을 가리킵니다. 따라서 <하나님의 질투>란 <하나님의 사랑>의 또 다른 이름이라 볼 수 있을 것입니다. 생각해 보면 사실 우리는 하나님이 질투하셔야 할 아무런 자격도 가치도 없는 자들입니다. 그럼에도 하나님이 우리에 대해 질투까지 하신다는 것은 우리가 하나님의 특별한 사랑의 대상이라는 의미에 다름 아닙니다. 하나님은 우리를 사랑하시되 질투하시기까지 하시며 또 우리에게도 그 만큼의 사랑을 주문하십니다. 그래서 우리가 다른 신을 섬기거나 우상에게 절하면 소멸하는 불이 나와 우리에게 저주를 가져다줍니다(신 4:24). 질투하시는 하나님처럼 그의 택하신 백성들도 마치 질투하듯 그분을 사랑하고 믿어야 합니다. 오직 하나님의 사랑에만 집중해야 합니다. 누군가가 나보다 하나님을 더 사랑하면 질투를 느껴야 합니다. 누군가가 나보다 말씀을 더 많이 알고, 나보다 더 성령충만하고, 나보다 더 희생하며 헌신하면 질투심을 가져야 합니다.

그럼에도 스바냐 시대 예루살렘은 결코 그렇지 못했다는 것입니다. 질투하시는 여호와의 사랑에 부응하지 못하고 도리어 질투의 불에 소멸되는 하나님의 진노와 화만을 자초했을 뿐이었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사랑을 배신하지 마십시오. 우리가 믿는 하나님은 질투하는 분이심을 결코 잊지 마십시오.

 
  
  
 

-<사랑>과 <질투>의 관계를 말씀해 보십시오.
-신구약 성경에서 <하나님의 질투>와 관련된 말씀들을 한 번 찾아 보십시오.
-<질투의 불>이란 곧 <사랑의 분노>를 뜻합니다. 왜, 어느 때 하나님이 <질투의 불>을 발하실까요?

 
  
  
 

주님, 하나님은 사랑이시며 또 질투십니다. 저희를 사랑하시기에 또 질투하십니다. 그래서 저희는 오직 하나님만을 사랑하고 하나님만을 좇아야 합니다. 하오나 스바냐 시대 예루살렘은 거룩한 성 답지 않게 하나님의 질투와 분노를 사 결국은 <소멸되리라>라는 선고를 피하지 못했습니다. 오늘 저희도 이 말씀에 저희 자신을 비춰보게 하사 하나님의 <질투의 불>을 자초하는 어리석음을 범하지 않게 해주시옵소서.

 
  
   
 

주님 안에서만 참 행복이 있다

행복이란 무엇입니까?
기쁜 것입니다. 즐거운 것입니다.
근심이 없는 것입니다. 평안한 것입니다.
건강한 것입니다. 일용할 양식에 걱정이 없는 것입니다.
희망하는 직장을 얻는 것입니다.
불치병이 치료되는 것입니다.
소원이 성취되는 것입니다.
사랑하는 사람과 결혼하는 것입니다.
내가 하는 일에 만족을 느끼며 사는 것입니다.
이 행복은 주님 안에서만 이루어질 수 있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나를 사랑하시는 것을 확신할 때 행복이 있습니다.
-김찬종 목사의 ‘행복한 인생’에서 -

 
   
 
  
 


성도들의 인생은 불신자의 인생보다 더 행복해야 합니다.
그런데 이 행복은 세상이 주는 것이 아닙니다.
세상에서 아무리 형통한다 해도
세상 것은 있다가 없고, 없다가 있는 것입니다.
물질 또한 한이 없습니다.
가지면 더 많이 갖고 싶은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주님 안에서만 참 행복이 있습니다.
이 은혜가 참 행복입니다.

 
   
    
 

로마서 11:6

 

만일 은혜로 된 것이면 행위로 말미암지 않음이니 그렇지 않으면
은혜가 은혜 되지 못하느니라.
And if by grace, then it is no longer by works; if it were,
grace would no longer be grace.

 
    
 
  
 서울이태원교회 지성호 목사
 믿음의 삶
  
  





8월 3일 (목)
패역하고 더러운 곳 (습 3:1-7)
  
 

1. 패역하고 더러운 곳, 포학한 그 성읍이 화 있을찐저
2. 그가 명령을 듣지 아니하며 교훈을 받지 아니하며 여호와를 의뢰하지 아니하며 자기 하나님에게 가까이 나아가지 아니하였도다
3. 그 가운데 방백들은 부르짖는 사자요 그 재판장들은 이튿날까지 남겨 두는 것이 없는 저녁 이리요
4. 그 선지자들은 위인이 경솔하고 간사한 자요 그 제사장들은 성소를 더럽히고 율법을 범하였도다
5. 그 중에 거하신 여호와는 의로우사 불의를 행치 아니하시고 아침마다 간단 없이 자기의 공의를 나타내시거늘 불의한 자는 수치를 알지 못하는도다
6. 내가 열국을 끊어 버렸으므로 그 망대가 황무하였고 내가 그 거리를 비게 하여 지나는 자가 없게 하였으므로 그 모든 성읍이 황폐되며 사람이 없으며 거할 자가 없게 되었느니라
7. 내가 이르기를 너는 오직 나를 경외하고 교훈을 받으라 그리하면 내가 형벌을 내리기로 정하기는 하였거니와 너의 거처가 끊어지지 아니하리라 하였으나 그들이 부지런히 그 모든 행위를 더럽게 하였느니라

 
  
  
 

<패역하고 더러운 곳, 포학한 그 성읍>(1절)이란 대체 어디를 두고 한 말씀일까요? 하나님의 성전이 있는 거룩한 성 예루살렘입니다. 예루살렘이<명령을 듣지 아니하며 교훈을 받지 아니하며 여호와를 의뢰하지 아니하며 자기 하나님에게 가까이 나아가지 아니하였다>(2절)고 하십니다.
그 거룩한 성이 이제는 악명 높은 곳이 되었고 언제나 정욕만을 좇아 육체의 쓸 것만을 잔뜩 쌓아놓고 포식하는 게걸스러운 성이 되고 말았다는 것입니다. 우리는 여기서 그 외면적 삶이 어떠한 모습으로 치장되어 있든 보다 근본적이고 본질적인 중요함은 우리 자신이 지금 딛고 있는 자리의 기초가 어떤 것인가를 되돌아보는 일임을 새삼 깨닫게 됩니다. 그 되돌아봄의 철저함이 없으면 오늘 우리도, 과거 예루살렘도 어느 날엔가는 삶의
그 밑바닥에서부터 철저하게 무너져 내리는 뼈아픈 고통을 피하지 못한다는 것입니다. 말하자면 <총체적인 자기 변혁의 열병>을 앓지 않고서는
결국 <진실과 공의로움이 존재하기 어려운 소망 없는 시대>가 재생산되고 지속된다는 사실을 직시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자칫 잘못하면 우리 역시도 그런 시대와 삶의 급류 속에 휩쓸려 과연 어느 것이 옳은 것인지 그른 것인지도 모를 혼돈의 와중에 살면서 함께
붕괴되고 만다는 것입니다. 스바냐 시대 예루살렘이 바로 그랬습니다.
그럼에도 문제는 그들이 그 더러운 물결의 검은 포말을 흑진주쯤으로 알고 움켜쥐려는 어리석음에 깊이 빠져있었다는 것입니다.
<그의 선지자들은 경솔하고 간사한 사람들이요 그의 제사장들은 성소를 더럽히고 율법을 범하였도다>(4절).
<너는 오직 나를 경외하고 교훈을 받으라 그리하면 내가 형벌을 내게로 정하기는 하였지만 너의 거처가 끊어지지 아니하리라 하였으니
그들이 부지런히 그들의 모든 행위를 더럽게 하였느니라>(7절). 어느 때나 패역한 시대를 위해 필요한 것은
예루살렘처럼 하늘을 찌를 듯 높이 솟은 성채가 아니라 그것이 무너진 터 위에 세우는 순종과 겸손과 사랑입니다.

 
  
  
 

-왜 거룩한 성 예루살렘이 패역하고 더럽고 포학한 성읍으로
추락했을까요?
-스바냐 시대의 선지자들과 제사장들은 어떠했습니까?
-<너는 오직 나를 경외하고 교훈을 받으라>(7절)며 그렇게 하면 어떻게 하시겠다고 합니까?

 
  
  
 

주님, 거룩한 도성 예루살렘도 하나님의 명령을 듣지 않고, 교훈을 받지 않고, 여호와께 의뢰하지 않으면
결국 패역하고 더러워지고 포학한 성읍으로 전락할 수밖에 없음을 깨닫습니다. 스바냐 시대의 예루살렘은 참혹했습니다.
백성들은 물론 방백들, 재판장, 선지자, 제사장들까지도 성소를 더럽히고 율법을 범하며 하나님의 영광을 욕되게 했습니다.
<그들이 부지런히 그들의 모든 행위를 더럽게>했다고 했습니다. 오늘 저희도 말씀에 자신을 비춰보며 회개하게 하시고
새롭게 결단할 수 있게 해주시옵소서.

 
  
   
 

늘 성령 안에서 기도하라

성령님은 우리가 무엇을 구하고
어떻게 기도해야 하는지 모를 때도 우리를 위하여 간구하신다.
온갖 기도와 간구로 늘 성령 안에서 기도하라.
한 영혼을 구원하는 일, 복음 전하는 일은
성령님이 도와주셔야 한다.
또 이것을 위하여 늘 깨어서 끝까지 참으며,
모든 성도를 위하여 간구하고
또한 복음전도자를 위하여 기도해야한다 .
그리고 복음전도자가 입을 열 때에 하나님께서 말씀을 주셔서,
담대하게 복음의 비밀을 알릴 수 있도록,
기도해 주어야한다.
-서철 목사의 ‘복음전도자를 위한 기도’에서-

 
   
 
  
 


우리는 모든 복음전도자를 위하여 기도해야하고.
늘 깨어서 끝까지 참으며
성령의 능력으로 기도해야합니다
복음전도자들이 복음의 비밀을 말할 수 있도록 기도하십시오.
복음전도자에게 필요한 것은 전도의 능력과 담대한 마음입니다.
그리고 담대한 마음은 복음을 전할 때
누구를 만나든지 망설이거나 두려워하지 않고
힘껏 전할 수 있게 하는 것입니다.
전도의 능력은 복음을 전할 때 사람들이
복음을 받아들일 수 있게 하는 능력입니다.
이는 사람에게서 나오는 것이 아니라
성령님이 하시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신명기 28:6

 

네가 들어와도 복을 받고 나가도 복을 받을 것이니라
You will be blessed when you come in and blessed when you go out.

 
    
 
  
 주신장로교회 황요한 목사
 십자가에 달린 예수를 전하려면 십자가에 못박힌 설교자가 필요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