鶴山의 草幕舍廊房

Faith - Hymn

다시 엘로 올라가야 합니다(창35:1~7)

鶴山 徐 仁 2017. 8. 9. 09:59
8월 9일 (수)
다시 엘로 올라가야 합니다(창35:1~7)
  
 

1. 하나님이 야곱에게 이르시되 일어나 벧엘로 올라가서 거기 거하며 네가 네 형 에서의 낯을 피하여 도망하던 때에 네게 나타났던 하나님께 거기서 단을 쌓으라 하신지라
2. 야곱이 이에 자기 집 사람과 자기와 함께한 모든 자에게 이르되 너희 중의 이방 신상을 버리고 자신을 정결케 하고 의복을 바꾸라
3. 우리가 일어나 벧엘로 올라가자 나의 환난날에 내게 응답하시며 나의 가는 길에서 나와 함께하신 하나님께 내가 거기서 단을 쌓으려 하노라 하매
4. 그들이 자기 손에 있는 모든 이방 신상과 자기 귀에 있는 고리를 야곱에게 주는지라 야곱이 그것들을 세겜 근처 상수리나무 아래 묻고
5. 그들이 발행하였으나 하나님이 그 사면 고을들로 크게 두려워하게 하신고로 야곱의 아들들을 추격하는 자가 없었더라
6. 야곱과 그와 함께한 모든 사람이 가나안 땅 루스 곧 벧엘에 이르고
7. 그가 거기서 단을 쌓고 그곳을 엘벧엘이라 불렀으니 이는 그 형의 낯을 피할 때에 하나님이 그에게 거기서 나타나셨음이더라

 
  
  
 

신앙생활을 하다보면 넘어질 때가 있고, 알지 못하는 사이에 하나님과 너무 멀리 떨어져서 어디서부터 다시 시작해야할지 모를 때가 있습니다. 정말 행복하게 주님 따라가고 싶었는데, 하루아침에 무너져서 ‘내가 진짜 주님을 믿어왔나?’라는 이런 의심까지 생길 때가 있습니다. 그 가운데 요셉은 벧엘에서 하나님을 만납니다. 그리고 하나님께서 자신의 인생을 인도해 주실 것이라는 믿음을 갖게 됩니다. 그래서 요셉은 하나님의 축복을 받은 후 하나님의 꿈을 안고 세겜에서 살게 됩니다. 하지만 세겜에서 요셉은 뜻밖에 상황을 만나게 됩니다. 그것은 그의 딸 디나가 강간을 당하는 사건이었습니다. 이것은 요셉에게 수치스러운 일이었습니다. 또한 그 과정에서 요셉의 아들들은 추악한 복수를 하는 죄를 짓게 됩니다. 오늘 그런 야곱에게 하나님이 나타나셔서 “일어나서 베델로 올라가라”고 말씀하십니다. 처음 하나님을 만나 그의 이름을 불러 주셨던 곳으로 가라고 하십니다. 벧엘로 올라가라는 하나님의 음성은 오늘 우리에게 주시는 말씀입니다. 지금 야곱처럼 넘어져서 일어나려고 하는데 어디서부터 시작해야할지 모르겠다면 벧엘로 올라가야 합니다. 처음 하나님 앞에서 예배드리던 마음, 하나님이 전부라고 기도하던 그 자리로 오늘 주님과 함께 올라가야 합니다. 하나님이 우리를 그 곳에서 기다리고 계십니다. 하나님은 넘어진 그를 세우셔서 벧엘에 세우십니다.벧엘이 어디입니까? 야곱이 아무것도 없을 때, 하나님만으로 만족했던 자리입니다. 거부가 되어 자식들과 함께 행복하게 살 것 같았던 세겜이 아니라, 주님 한 분 만으로 내 인생의 모든 것들이 충분함을 고백했던 벧엘에 서면, 다시 그 신앙이 회복될 수 있습니다. 이 음성을 듣고 야곱은 벧엘로 그냥 올라가지 않습니다. 몸을 깨끗이 하고 자신의 귀걸이와 우상들을 상수리나무 밑에 묻고 올라갑니다. 당시의 귀걸이는 지금처럼 장신구의 역할도 했지만 자신을 지켜주는 부적 같은 것이었습니다.
요셉은 다시 하나님이 자신의 삶이 전부라는 고백을 했던 벧엘로 올라가며 그 신앙을 회복하기를 결단합니다.
오늘 우리의 삶에 요셉처럼 하나님의 은혜의 자리로 올라가기 위해 땅에 영원히 묻어버려야 할 것들이 있다면,
결단하며 우리의 벧엘로 올라가는 하루가 되기를 소원합니다.

 
  
  
 

- 나에게 벧엘, 하나님이 나를 만나주시고 온전한 은혜를 주셨던 곳은 어디입니까? 그 때의 은혜를 기억해 봅시다.
- 지금 다시 나의 벧엘로 올라가기 위해 버려야 할 것들은 무엇인지 생각해 봅시다.

 
  
  
 

주님! 주님의 온전한 은혜를 깨닫고 주님 한 분만으로 만족했던 그 곳으로 돌아가기를 원합니다.
그러기 위해 내가 결단하고 내려놔야 할 것들이 있다면 담대히 내려놓을 수 있도록 인도해 주시옵소서.

 
  
   
 

성도란 앞을 향해 경주하는 자

많은 것을 잡은 줄로 여긴다면 경주할 이유가 없다.
예수님처럼 되어 버렸다고 생각하면 그럴 필요가 없다는 말이다.
어떤 사람은 자신의 더러운 피는 다 흘러서 빠져 버렸고
예수님의 피로 차 있다고 하는데 새빨간 거짓말이다.
예수님의 보혈은 속죄함을 받는 것이지
예수님의 피가 내 육신 속으로 들어오는 것은 아니다.
속죄함은 영혼에 힘을 주는 것이고 말씀에 순종하여 헌신할 때
육신에 힘을 주는 것이다.
바울은 주님의 뜻대로 살기 위해서 경주자처럼 뒤를 보지 않고
앞만 보고 달려 나간다 했다.
달리는 사람이 뒤를 힐끗 힐끗 돌아본다면 제대로 달릴 수가 있겠는가? 예수 믿는 사람들은 다 경주하는 사람들인지라
뒤의 것들은 다 잊어야 한다.
-윤희주 목사의 ‘푯대를 향하여’에서-

 
   
 
  
 


지난날 예수 잘 믿었던 것, 성공했던 것,
또 실패했던 것들을 잊어 버려야 합니다.
회개할 것은 회개하고 감사할 것은 감사하고 잊어버려야 합니다. 잘한 것은 감사하면서 잊어버리고
잘못한 것은 회개하면서 잊어버리십시오.
왜냐? 성도란 앞을 향해 경주하는 자이기 때문입니다.
‘형제들아 나는 아직 내가 잡은 줄 로 여기지 아니하고
오직 한 일 즉 뒤에 있는 것은 잊어버리고 앞에 있는 것을...‘
(히브리서 3:1)

 
   
    
 

빌립보서 4:7

 

그리하면 모든 지각에 뛰어난 하나님의 평강이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너희 마음과 생각을 지키시리라.
And the peace of God, which transcends all understanding, will guard your hearts and your minds in Christ Jesus.

 
    
 
  
 비젼교회 윤여재 목사
 사랑은 때를 분별할 줄 압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