鶴山의 草幕舍廊房

Faith - Hymn

피의 성이여 (나 3:1-7)

鶴山 徐 仁 2017. 6. 24. 10:02
6월 24일 (토)
피의 성이여 (나 3:1-7)
  
 

1. 화 있을진저 피의 성이여 그 안에는 거짓이 가득하고 포악이 가득하며 탈취가 떠나지 아니하는도다
2. 휙휙 하는 채찍 소리, 윙윙 하는 병거 바퀴 소리, 뛰는 말, 달리는 병거,
3. 충돌하는 기병, 번쩍이는 칼, 번개 같은 창, 죽임 당한 자의 떼, 주검의 큰 무더기, 무수한 시체여 사람이 그 시체에 걸려 넘어지니
4. 이는 마술에 능숙한 미모의 음녀가 많은 음행을 함이라 그가 그의 음행으로 여러 나라를 미혹하고 그의 마술로 여러 족속을 미혹하느니라
5. 보라 내가 네게 말하노니 만군의 여호와의 말씀에 네 치마를 걷어 올려 네 얼굴에 이르게 하고 네 벌거벗은 것을 나라들에게 보이며 네 부끄러운 곳을 뭇 민족에게 보일 것이요
6. 내가 또 가증하고 더러운 것들을 네 위에 던져 능욕하여 너를 구경 거리가 되게 하리니
7. 그 때에 너를 보는 자가 다 네게서 도망하며 이르기를 니느웨가 황폐하였도다 누가 그것을 위하여 애곡하며 내가 어디서 너를 위로할 자를 구하리요 하리라

 
  
  
 

니느웨는 <피의 성>(1절)이었습니다.
불의한 침략 전쟁을 통해, 합법이라는 미명하에 벌어지는 불의한 재판을 통해, 야만적인 살인 행위를 처벌하지 않고 비호하는 불의한 일들을 통해 수많은 무죄한 피가 흘러 넘쳤습니다. 또한 거기에는 거짓이 가득했습니다. 진실이 사라졌고 정직한 자를 찾아 볼 수가 없었습니다. 자신이 누구에게 해를 끼치고 있는지에 대해 신경을 쓰는 자는 아무도 없었습니다. 그들은 부를 쌓기 위해 남의 것을 빼앗았고, 거짓을 일삼으며 무죄한 자들의 피를 흘렸습니다.

그뿐 아닙니다. <마술에 능숙한 미모의 음녀가 많은 음행을 함이라 그가 그의 음행으로 여러 나라를 미혹하고 그의 마술로 여러 족속을 미혹하느니라>(4절). 니느웨는 영적 음행인 우상숭배로 자신을 더럽혔을 뿐 아니라 <미모의 음녀>로 하여금 이웃나라들까지 유혹하여 우상숭배에 빠지게 했습니다. 탁월한 미모에다 신기한 마술까지 행하며 사람들을 홀렸기 때문에 당시 니느웨가 전파하는 우상숭배는 그 파급효과가 대단히 컸습니다. 그래서 결국 하나님이 그 <피의 성>에 대해 심판을 선고하시며 <보라 내가 네게 말하노니 네 치마를 걷어 올려 네 얼굴에 이르게 하고 네 벌거벗은 것을 나라들에게 보이며 네 부끄러운 곳을 뭇 민족에게 보일 것이요 내가 또 가증하고 더러운 것들을 네 위에 던져 능욕하여 너를 구경거리가 되게 하리라>(5-6절). <그 때에 너를 보는 자가 다 네게서 도망하며 이르기를 니느웨가 황폐하였도다 누가 그것을 위하여 애곡하며 어디서 너를 위로할 자를 구하리요>(7절).
형통할 때 잘 나갈 때 자신의 부와 권력을 과시하며 거드름을 피운 사람일수록 그가 몰락했을 때 더 큰 수치와 수모를 당하게 된다는 사실을 기억하십시오. 앗수르와 니느웨가 바로 그랬습니다. 누구도 그를 동정하거나 위로하지 않았습니다. 오히려 박수를 치며 통쾌해 할 만큼 증오하고 외면했습니다. 이렇듯 당시 니느웨는 하나님으로부터도 이웃으로부터도 철저하게 버림받을 만큼 심판과 멸망을 자초했던 것입니다.

 
  
  
 

-본문이 왜 니느웨를 <피의 성>이라고 했는지 다시 한 번 그 이유를 확인해 보십시오.
-본문 4절에 나오는 <미모의 음녀>란 어떤 여인이었습니까?
-당시 주변의 이웃들마저도 니느웨를 외면한 이유는 무엇이었습니까?

 
  
  
 

주님, 니느웨는 물이 모인 연못처럼 은과 금과 아름다운 기구가 풍족한 성읍이었으나 또한 그곳은 피의 성이었습니다. 살인과 포악과 탈취와 거짓이 가득하고 미모의 음녀가 마술을 부리며 사람들을 미혹하며 우상에게 절하게 하는 그런 영적 간음의 도성이었습니다. 그래서 결국은 하나님께도 이웃에게도 버림받고 심판받는 불행한 성읍이 되고 말았습니다. 어디에서도 그들을 위하여 애곡하고 위로하는 자는 없었다고 했습니다. 그 옛날 니느웨와 앗수르가 오늘 이 시대 저희들에게도 큰 깨달음이 되게 해주시옵소서.

 
  
   
 

절망 말라

분명히 보편적 기준으로 보면 입다는 완전한 제로의 인생이었습니다. 낙제생이었습니다. 천한 신분의 바닥 인생이었습니다. 사람들은 그를 인정해 주지 않았고, 그의 형제들마저도 그를 외면했습니다. 입다는 사람들의 멸시와 천대와 조롱을 한 몸에 받던 사람이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그를 기억하셨습니다. 사람들은 그를 버렸지만 하나님은 그를 버리지 않았습니다. 하나님은 사람들이 버린 입다를 이스라엘 민족을 구원하는 사사로 세우셨습니다. 사람들은 그를 천한 인생으로 취급했지만 하나님은 그를 존귀한 인생으로 다루었습니다.
-이승희의 [하나님과 함께 걷다] 중에서-

 
   
 
  
 


늘 인간의 눈과 하나님의 눈이 다름을, 우리의 판단과 하나님의 기준이 다름을 인정해야 합니다. 하나님이 중요하게 여기는 가치가 무엇인지 보이기 시작하면 우리는 합당한 하나님의 사람으로 살 수 있습니다. 하나님은 수많은 사람들이 있지만 그 중에서 사용하시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하나님의 은혜를 입은 자는 하나님이 찾으시는 은혜의 사람입니다.

 
   
    
 

마태복음 10:31

 

두려워하지 말라 너희는 많은 참새보다 귀하니라
So don't be afraid; you are worth more than many sparrows.

 
    
 
  
 주신장로교회 황요한 목사
 가시고기(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