鶴山의 草幕舍廊房

Faith - Hymn

벌거벗은 몸으로 끌려가리라 (나 2:1-7) 외 2

鶴山 徐 仁 2017. 6. 22. 09:35
6월 22일 (목)
벌거벗은 몸으로 끌려가리라 (나 2:1-7)
  
 

1. 파괴하는 자가 너를 치러 올라왔나니 너는 산성을 지키며 길을 파수하며 네 허리를 견고히 묶고 네 힘을 크게 굳게 할지어다
2. 여호와께서 야곱의 영광을 회복하시되 이스라엘의 영광 같게 하시나니 이는 약탈자들이 약탈하였고 또 그들의 포도나무 가지를 없이 하였음이라
3. 그의 용사들의 방패는 붉고 그의 무사들의 옷도 붉으며 그 항오를 벌이는 날에 병거의 쇠가 번쩍이고 노송나무 창이 요동하는도다
4. 그 병거는 미친 듯이 거리를 달리며 대로에서 이리저리 빨리 달리니 그 모양이 횃불 같고 빠르기가 번개 같도다
5. 그가 그의 존귀한 자들을 생각해 내니 그들이 엎드러질 듯이 달려서 급히 성에 이르러 막을 것을 준비하도다
6. 강들의 수문이 열리고 왕궁이 소멸되며
7. 정한 대로 왕후가 벌거벗은 몸으로 끌려가니 그 모든 시녀들이 가슴을 치며 비둘기 같이 슬피 우는도다

 
  
  
 

니느웨 성읍의 패망이 생생하게 묘사된 부분입니다.
니느웨를 멸망시킬 침략군들의 위용과 멸망 이후 니느웨의 처참한 상황이 적나라하게 그려지고 있습니다.
<그 병거는 미친 듯이 거리를 달리며 대로에서 이리저리 빨리 달리니 그 모양이 횃불 같고 빠르기가 번개 같도다>(4절). 이렇듯 나훔 선지자는 전쟁이 바로 코앞에 닥친 것으로 예언합니다.

B.C. 612년경의 니느웨는 그야말로 난공불락의 요새였습니다.
성벽의 길이는 13km의 직사각형이었고, 높이는 30m 였습니다. 성벽 위는 6대의 마차가 나란히 달릴 수 있을 만큼 넓었고, 성 주위에는 18m 깊이의 인공 연못이 조성되어 그 어떤 적도 침범할 수 없는 거의 완벽한 구조의 철옹성이었습니다. 그럼에도 1절 말씀은 사실상 조롱에 가까운 표현입니다. <어디 성을 지켜보려므나 어디 네 길을 파수하고 허리를 질끈 동이고 힘을 다해 막아보려므나!> 다시 말해 너희들이 아무리 발버둥치며 저항하고 사수하려해도 그 모든 노력이 다 수포로 돌아갈 것이라는 말씀입니다. 왜냐하면 그것은 하나님이 주도하시는 보복이요 심판이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은 여기서 앗수르의 죄악상을 분명히 밝히십니다. 그들이 이스라엘의 영광을 훼손하고 약탈했으며 야곱의 포도나무 가지를 해쳤기 때문이라는 것입니다. 이는 이미 오래 전에 행한 일이지만 하나님은 잊지 않고 계시다 이제 앗수르 제국과 그 수도인 니느웨에 그 죄책을 물으신다는 것입니다. <강들의 수문이 열리고 왕궁이 소멸되며 정한대로 왕후가 벌거벗은 몸으로 끌려가니 그 모든 시녀들이 가슴을 치며 비둘기 같이 슬피 우는도다>(7-7절). <정한 대로>란 하나님이 뜻하신대로, 니느웨의 멸망이 다 하나님의 계획대로 이루어진다는 말씀입니다. 역사는 우연이나 혹은 사람의 의지나 노력이 아니라 오직 하나님께서 정하신대로, 하나님의 간섭과 계획대로 흘러간다는 사실을 다시 한 번 깊이 확인하게 되는 대목이 아닐 수 없습니다.

 
  
  
 

-1절에서 말씀하는 <파괴하는 자>란 역사적으로 어느 나라 혹은 누구를 뜻하는 것일까요(렘 50:23)?
-7절에서 말씀하는 <벌거벗은 왕후>란 역사적으로 어떤 왕후를 가리킬까요?
-당신은 역사의 모든 것이 하나님의 <정하신 대로>(7절)이루어짐을 믿으십니까?

 
  
  
 

주님, 때로는 역사가 비틀거리는 것 같고, 혹은 뒷걸음질을 치는 듯 보이기도 하지만 궁극적으로는 하나님께서 <정하신 대로> 흘러감을 깨닫습니다. 한 때 잘 나가던 앗수르와 니느웨였지만 결국은 하나님의 준엄하고도 공의로우신 심판을 피해 가지 못하고 마침내 왕궁이 소멸되고 왕후가 벌거벗은 몸으로 끌려가는 최후를 맞게 됐습니다. 저희들 다시 한 번 역사의 진정한 주인이신 하나님의 존재와 그 사역을 생각하며 신앙을 고백할 수 있도록 성령으로 함께해 주시옵소서.

 
  
   
 

참된 교회

교회는 구원을 받았으니 그저 각자의 주관에 따라 세상에서 인정받고 성공하기 위해 열심히 살라고 권하고 위로하는 모임이 되어서는 안 됩니다. 교회는 세상과는 다른 하나님의 의를 구하며 살도록 교육하고 격려하여 그리스도를 믿어 새 생명을 얻은 자들이 점차 그리스도에게까지 자라 가는 영적인 성장을 경험하게 해야 합니다. 교회는 이처럼 영혼을 살찌우는 생명의 양식이 공급되는 통로입니다.
-박순용의 [참된 교회로 돌아오라] 중에서-

 
   
 
  
 


교회는 하나님이 세우신 목표가 있습니다. 그 중에 하나가 위로입니다. 그러나 위로가 최종 목적은 아닙니다. 누구든지 변하여 새사람이 되어 주의 일들을 감당하는 그리스도의 군사가 되길 원하십니다. 교회는 돌봄과 함께 믿는 자의 사명이 무엇이며, 누구를 따라가야 하는지를 가르쳐야 합니다. 세상 판단과 상식으로 도배하여 정죄하거나 힐난하는 집합장소가 되면 안 됩니다. 교회는 주님의 오심을 세상에 알리며, 그분이 구원자로 오시기에 믿어야 함을 가르쳐야 합니다.

 
   
    
 

시편 128:5

 

여호와께서 시온에서 네게 복을 주실지어다 너는 평생에 예루살렘의 번영을 보며
May the LORD bless you from Zion all the days of your life; may you see the prosperity of Jerusalem,

 
    
 
  
 비젼교회 윤여재 목사
 믿음은 순종입니다
  
  



6월 21일 (수)
자신에게 책임질 기회를 주십시오. (창 13:5~13)
  
 

5. 아브람의 일행 롯도 양과 소와 장막이 있으므로
6. 그 땅이 그들이 동거하기에 넉넉하지 못하였으니 이는 그들의 소유가 많아서 동거할 수 없었음이니라
7. 그러므로 아브람의 가축의 목자와 롯의 가축의 목자가 서로 다투고 또 가나안 사람과 브리스 사람도 그 땅에 거주하였는지라
8. 아브람이 롯에게 이르되 우리는 한 친족이라 나나 너나 내 목자나 네 목자나 서로 다투게 하지 말자
9. 네 앞에 온 땅이 있지 아니하냐 나를 떠나가라 네가 좌하면 나는 우하고 네가 우하면 나는 좌하리라
10. 이에 롯이 눈을 들어 요단 지역을 바라본즉 소알까지 온 땅에 물이 넉넉하니 여호와께서 소돔과 고모라를 멸하시기 전이었으므로 여호와의 동산 같고 애굽 땅과 같았더라
11. 그러므로 롯이 요단 온 지역을 택하고 동으로 옮기니 그들이 서로 떠난지라
12. 아브람은 가나안 땅에 거주하였고 롯은 그 지역의 도시들에 머무르며 그 장막을 옮겨 소돔까지 이르렀더라
13. 소돔 사람은 여호와 앞에 악하며 큰 죄인이었더라

 
  
  
 

우리가 흔히 하나님께 맡긴다는 말을 합니다. 하지만 이 말은 오해의 여지가 있습니다. 이 말은 모든 선택을 하나님이 해 주신다고 생각하며 사는 것을 말하는 것은 아니기 때문입니다.
오늘 말씀은 아브라함과 롯에 대한 이야기입니다. 아브라함은 아버지를 잃은 조카, 롯을 항상 챙기며 살았습니다. 가나안 땅에 기근이 들자 아브라함은 롯을 데리고 이집트로 내려갔습니다. 아브라함과 롯은 이곳에서 부자가 됩니다. 부자가 되니까 문제가 생겼습니다. 재산과 양떼들이 많아지니까 아브라함과 롯의 목자들 사이에 갈등이 생긴 것입니다. 이에 아브라함은 롯에게 롯의 선택에 따라 자신은 반대로 가겠다고 말합니다. 그러자 롯은 기다렸다는 듯이 자신의 눈에 보기에 좋은 동쪽 땅을 가기로 결정합니다. 버르장머리 없이...
롯은 전형적인 의존적인 자아를 가진 사람이었습니다. 그래서 자신만이 아니라 가족 모두가 힘겨운 삶을 살아가게 됩니다. 의존적인 성향을 가진 사람을 보면, 정말 좋은 부모님께 사랑받으며 자란 사람인 경우가 많습니다. 너무 사랑한 나머지 실패할 기회조차 주지 않은 것입니다. 아브라함도 이러한 실수를 한 것은 아닌가 라고 생각해 보게 됩니다. 하나님은 우리가 책임적인 존재로 살아가기를 원하십니다.
창세기 3장을 보면서 믿지 않는 사람들이 항상 하는 질문이 있습니다. “왜 하나님은 선악과를 만드셔서 인간이 죄를 짓게 하셨을까? 그냥 만드시지 않으셨으면 되는 것이 아닌가?”
하나님은 우리를 로봇처럼 만들지 않으시고, 책임질 수 있는 존재로 만드셨습니다. 회개는 책임적인 자아를 가진 사람만이 할 수 있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구원도 책임적인 자아에게 해당되는 개념입니다.
하나님이 모든 것을 인도하시는 것이 아니라 우리를 책임지는 존재로 만드신 이유는 의존적인 자아를 가진 사람들의 문제점 때문입니다. 의존적인 자아를 가진 사람들은 다른 사람을 핑계 댑니다. 하나님께서 소돔과 고모라를 멸망시키신다고 하셔서, 아브라함이 롯을 위해 하나님께 중보 할 때도, 정작 롯은 기도하지 않았습니다. 또한 소돔과 고모라 땅이 멸망당할 것을 알려주러 온 천사들을 마을 남자들이 상관하려고 때도, 자신의 딸들을 그들에게 넘겨줍니다. 이것이 의존적인 자아를 가진 사람들의 폐해입니다. 롯은 자신이 죽는 한이 있어도 가족과 천사들을 위해 싸워야 했습니다. 하지만 롯은 가족을 희생해서 상황을 무마시킵니다.
하나님이 우리에게 원하시는 삶은 우리의 눈에 문제의 환경들을 보여주실 때, 나에게 맡겨주신 상황을 책임지며 그 가운데 하나님의 형상을 드러내기를 결단하는 사람입니다. 오늘 하루 우리에게 허락하신 모든 삶에서 책임지는 삶을 통해 하나님의 형상을 드러내는 삶을 살게 되기를 소원합니다.

 
  
  
 

- 오늘 하루를 살아가며 나에게 보여주시는 상황들을 하나님이 나에게 허락하신 상황이라고 믿고 책임지는 행동이 무엇일지를 생각해 봅시다.

 
  
  
 

주님! 지금까지 하나님께 맡긴다고 말하면서 정작 믿음으로 책임져야할 상황들까지도 회피하려 했던 것을 회개합니다. 하나님이 모든 은혜를 나에게 허락해 주셨으니, 이제는 하나님의 은혜에 책임지는 자아로 살아갈 수 있도록 인도해 주시옵소서.

 
  
   
 

격려의 힘

누군가를 돕기 위해 노력을 쏟아서 하는 격려의 힘은 배가 된다. 감동은 감동을 낳는다. 당신이 한 사람에게 미친 긍정적인 효과가 클수록 그 사람도 주변 사람들에게 긍정적인 영향을 준다. 격려는 물 위에 떨어진 돌처럼 파장 효과를 일으킨다. 문제는 우리도 모르게 망설이는 경향이 있다는 것이다. 왜 그럴까? 도움이 필요한 사람을 만나지 못했기 때문이 아니라 그저 누군가가 나타나기만을 기다리기 때문이다. 격려하는 사람들은 그렇지 않다. 당당하게 앞으로 나아가며 바로 돕기 시작한다.
-존 맥스웰의 [격려가 필요한 당신에게] 중에서-

 
   
 
  
 


우리가 주님을 믿는다면, 우리는 주님이 지신 십자가의 삶을 따라가야 합니다. 주님이 우리를 죄인이라 칭하지 아니하시고 친구라고 말씀하십니다. 격려입니다. 격려는 그 사람 안에 용기를 불어넣는 일입니다. 누군가의 인생을 향하여 격려했다면 그 영혼이 다시 주님을 보고 일어섭니다. 우리는 우리의 입술로 하나님을 찬양하고 영혼을 향하여 격려해야 합니다.

 
   
    
 

시편 18:1

 

나의 힘이신 여호와여 내가 주를 사랑하나이다
I love you, O LORD, my strength.

 
    
 
  
 사랑과평안의교회 박상혁 목사
 하나님 앞에 애통함을 추구함
  
  




6월 20일 (화)
넓은 마음 (고후 6:11~13)
  
 

11. 고린도인들이여 너희를 향하여 우리의 입이 열리고 우리의 마음이 넓어졌으니
12. 너희가 우리 안에서 좁아진 것이 아니라 오직 너희 심정에서 좁아진 것이니라
13. 내가 자녀에게 말하듯 하노니 보답하는 것으로 너희도 마음을 넓히라

 
  
  
 

1817년 3월에 제정 러시아는 8년과 미국과의 교섭 끝에 알래스카라는 그 거대한 땅을 당시 720만불에 한화로 약 100억 정도의 금액을 받고 팔아버립니다. 그 땅을 팔아버린 이유는 국토가 너무 커서 관리하기가 힘들다는 것이었습니다. 그러나 지금의 알라스카는 3가지 보고를 지닌 땅으로 무한한 잠재력이 있는 노다지 땅으로 밝혀지고 있습니다. 석유의 매장량이 무진장하며, 푸른 산림이 대단하고, 금을 비롯한 지하자원의 매장량이 많다는 것입니다. 러시아 사람들이 보기에는 그렇고 그런 땅이었지만 실제로는 엄청난 잠재력이 있었다는 것입니다. 그리스도인에 삶에도 엄청난 잠재력이 있다는 사실을 우리가 모르고 있다는 것은 안타까운 일입니다. 하나님의 사람인 나에게 있는 잠재력이 무엇인가를 발견해야 하고, 발견했다면 그것을 계속 개발해야 합니다. 그래야 하나님이 주신 풍성한 은혜와 축복을 누릴 수 있는 것입니다.
먼저 내가 받은 은혜가 무엇이고 받은 복이 무엇인지를 발견하고 내가 인정하고 감사함으로 그 일을 행해야 할 것입니다. 우리는 너나 할 것 없이 적은 것에 대해서 소홀히 하는 경향이 많이 있는 것 같습니다. 하나님은 적은 일을 통해 우리를 시험하십니다. 작은 일을 내가 하드라도 하나님의 은혜로 생각하고 감사함으로 감당하는 넓은 마음이 있어야 합니다. 바울은 고린도 교회를 향하여 ‘부모가 자녀에게 말하듯 하노니 너희는 마음을 넓히라’(13)고 권면하고 있습니다. 마음은 그릇과 같아서 그릇이 커야 많이 담을 수가 있지 않겠습니까? 그래서 지혜로운 사람은 자기 마음을 늘 살피는 것입니다.
혹시 내 마음이 사탄에게 도적 맡지는 않았는지, 내 마음이 좁아빠지지는 않은지, 내 마음에 쓸데없는 것으로 가득 채워져 있는 것은 아닌지를 살펴야 합니다. 하나님의 은혜와 말씀과 성령으로 채워져야 할 내 마음이 세상적인 어떤 잡동사니와 같은 것들로 가득 채워져 있는 것은 아닌지, 그렇다면 쫓아 내어버리고 비워야 합니다. 예수님께서도 팔복을 말씀하시며 ‘심령이 가난한 자는 복이 있나니 천국이 저희 것이며, 마음이 청결한 자는 복이 있나니 저희가 하나님을 볼 것이라’고 했습니다. 청결한 마음, 깨끗한 마음, 가난하고 순수하고 넓은 마음을 주님은 복된 마음이며 복된 자라고 하셨습니다.
천하에 지혜로운 솔로몬 왕, 그는 본래부터 지혜로운 사람은 아니었습니다. 그가 하나님 앞에 일천번제를 드리고 난 후에 하나님 앞에 기도합니다. 하나님 저에게 지혜를 주십시오. 저에게 넓은 마음을 주십시오. 이렇게 하나님 앞에 기도했더니 하나님께서 솔로몬에 기도제목을 기쁘게 받으시고 지혜와 총명을 주셨습니다. 열왕기상 4장 29절에서 ‘하나님이 솔로몬에게 지혜와 총명을 심히 많이 주시고 또 넓은 마음을 주시되 바닷가의 모래 같이 하시니’라고 기록되어 있습니다. 솔로몬은 그래서 전무후무한 지혜로운 왕으로 솔로몬의 영광에 대해 예수님께서도 이야기 할 정도로 하나님 앞에 큰 은혜와 복을 받게 된 것입니다. 우리가 마음을 키우고 마음을 넓혀야 합니다. 많은 사람들이 허물을 덮어주고 그를 위해서 기도해주고 격려해주어야 합니다. 하나님께서 더 큰 은혜를 채워 주실 것입니다.

 
  
  
 

- 내가 받은 은혜와 나의 마음의 크기는 어떠한지 살펴보십시다.
- 마음을 키우기 위하여 내가 해야 할 일은 무엇인지 기록해 보십시다.
- 주안에서 나의 잠재력을 보고 계발하기 위해 성령님의 도움을 구하십시오.

 
  
  
 

주 하나님, 저를 택하시고 사용하시니 감사합니다. 적다고 불평하지 않게 하시고 약한 나를 강하게 하시어 사용해 주옵소서. 은혜 안에 강하게 하시고 넓은 마음 주시어서 이웃을 넉넉히 품을 수 있는 믿음의 그릇으로 사용하여 주시옵소서.

 
  
   
 

구원을 얻는 방법

구원을 얻는 방법에는 두 가지가 있는데, 하나는 믿는 가정에서 태어나 별다른 큰 경험 없이 예수를 믿는 것이고, 또 하나는 중간에 예수를 믿게 되어 갑작스런 변화와 경험 속에서 예수를 믿는 것입니다. 후자가 전자보다 훨씬 더 구원의 확인이 명확하고 감격적이며 신이 납니다. 그러나 그러한 사람만이 구원을 얻은 것과 그 구원이 자신에게 인식되는 것은 동일한 경험으로 나타나는 경우도 있고 차이가 있는 경우도 있습니다.
-박영선의 [신앙클리닉] 중에서-

 
   
 
  
 


하나님을 만나는 방법이 태어나면서 모태에서 시작된 모태신앙, 그리고 인생의 한 시점에 찾아오신 주님을 만나는 신앙이 있습니다. 무엇이 더 좋고 나쁨의 문제가 아니라 그 속에 하나님에 대한 신앙고백과 간증이 있는지가 중요합니다. 서로가 부러워 할 수 있지만 그것보다 방식의 문제가 아니라 그분에 동행하는 나의 존재인지를 점검해야 합니다. 주님 안에 거하는 사람은 천국을 소유한 사람입니다.

 
   
    
 

사무엘상 30:6

 

백성들이 자녀들 때문에 마음이 슬퍼서 다윗을 돌로 치자 하니 다윗이 크게 다급하였으나 그의 하나님 여호와를 힘입고 용기를 얻었더라

David was greatly distressed because the men were talking of stoning him; each one was bitter in spirit because of his sons and daughters. But David found strength in the LORD his God.

 
    
 
  
 김옥엽 시인
 내 몸은 내 것이 아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