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자녀에게 무엇을 물려주겠습니까 - 창세기 26장 1~10절 |
| | | | | | 1 아브라함 때에 첫 흉년이 들었더니 그 땅에 또 흉년이 들매 이삭이 그랄로 가서 블레셋 왕 아비멜렉에게 이르렀더니 2 여호와께서 이삭에게 나타나 이르시되 애굽으로 내려가지 말고 내가 네게 지시하는 땅에 거주하라 3 이 땅에 거류하면 내가 너와 함께 있어 네게 복을 주고 내가 이 모든 땅을 너와 네 자손에게 주리라 내가 네 아버지 아브라함에게 맹세한 것을 이루어 4 네 자손을 하늘의 별과 같이 번성하게 하며 이 모든 땅을 네 자손에게 주리니 네 자손으로 말미암아 천하 만민이 복을 받으리라 5 이는 아브라함이 내 말을 순종하고 내 명령과 내 계명과 내 율례와 내 법도를 지켰음이라 하시니라 6 이삭이 그랄에 거주하였더니 7 그 곳 사람들이 그의 아내에 대하여 물으매 그가 말하기를 그는 내 누이라 하였으니 리브가는 보기에 아리따우므로 그 곳 백성이 리브가로 말미암아 자기를 죽일까 하여 그는 내 아내라 하기를 두려워함이었더라 8 이삭이 거기 오래 거주하였더니 이삭이 그 아내 리브가를 껴안은 것을 블레셋 왕 아비멜렉이 창으로 내다본지라 9 이에 아비멜렉이 이삭을 불러 이르되 그가 분명히 네 아내거늘 어찌 네 누이라 하였느냐 이삭이 그에게 대답하되 내 생각에 그로 말미암아 내가 죽게 될까 두려워하였음이로라 10 아비멜렉이 이르되 네가 어찌 우리에게 이렇게 행하였느냐 백성 중 하나가 네 아내와 동침할 뻔하였도다 네가 죄를 우리에게 입혔으리라 11 아비멜렉이 이에 모든 백성에게 명하여 이르되 이 사람이나 그의 아내를 범하는 자는 죽이리라 하였더라 | | | | |
| | | | | | 오늘 이삭이 겪은 일을 보면서, 떠오르는 일이 없으십니까? 오늘 이삭과 리브가에게 일어난 사건은 바로 창세기 20장에 아브라함에게 일어났던 일과 매우 흡사합니다. 오늘 본문을 보면, 가나안 땅에 기근이 들었을 때 하나님은 이삭에게 애굽으로 내려가지 말라고 말씀하시면서 블레셋 지역의 그랄 땅에 거하라고 말씀하십니다. 이삭은 그 말씀에 순종해서 그랄 땅에 거합니다. 그러나 블레셋 사람들이 자신의 아내 때문에 자신을 해할 것이 두려워서 이삭은 리브가를 자신의 누이라고 말합니다.
그러던 어느 날, 아비멜렉은 이삭이 리브가를 껴안는 것을 보았습니다. 남매 사이에는 그런 일이 일어날 수 없어서 아비멜렉은 이삭을 데려다가 “네가 어찌 우리에게 이렇게 행하였느냐 백성 중 하나가 네 아내와 동침할 뻔하였도다. 네가 죄를 우리에게 입혔으리라”라고 훈계합니다. 왜냐하면 아비멜렉은 이삭의 아버지 아브라함이 자신의 아내 사라를 누이라고 말한 것을 믿고, 사라를 데려다가 자신의 아내로 삼으려고 했던 일로 인해서 하나님의 벌을 받을 뻔한 사건을 기억하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아비멜렉은 이삭에게 말합니다. “네가 죄를 우리에게 입혔느니라”
아직 그랄 지역의 어떤 사람도 이삭의 아내 리브가로 인해서 죄를 범하지는 않았지만, 아비멜렉은 누구든지 이삭의 아내를 통해서 죄를 지을 수 있다는 것을 너무나 잘 알고 있기 때문에 이렇게 말하는 것입니다.
이 본문을 읽으면서, ‘왜 이삭은 이렇게 거짓말 하는 일을 서슴없이 할 수 있었을까’라고 생각해 보았습니다. 어쩌면, 이삭이 성장하면서, 아버지 아브라함이 필요에 따라서 아내를 누이라고 말하는 것을 목격했기 때문이 아니었을까요? 물론, 창세기 20장은 이삭이 태어나기 이전에 일어난 사건이지만, 이삭이 이렇게 할 수 있었던 것은 평소 아브라함이 했던 일들의 결과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똑같은 실수를 범하고, 똑같은 죄를 범하는 아브라함과 이삭... 이것은 우연의 결과가 아니라, 자녀가 보고 자란 결과라고 말할 수 있을 겁니다. 어쩌면 아버지가 필요에 의해서 거짓말을 하는 것을 대수롭지 않게 생각한 결과일 수도 있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자녀를 키울 때, 두려워해야 합니다. 자녀가 무엇을 보고 무엇을 따라 할지를 떨리는 마음으로 생각해야 합니다. | |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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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 | | 우리는 자녀를 어떻게 가르치고 있습니까? 나에게 이익이 된다면, 내가 필요하다면 거짓말을 하는 것도 가능하다고 가르치고 있습니까? 아니면, 하나님의 법도를 따라서 거짓말을 하는 것이 잘못된 것이라고 가르치고 있습니까? 아니, 당신이 그렇게 살아가는 모습을 보여주고 있습니까? 오늘, 우리가 아주 작은 것에 민감하게 자녀를 교육하기를 두 손 모아 기도합니다. | | | | |
| | | | | | | 누군가가 창으로 가슴을 푸욱 찌를 때 | 제가 전에 섬기던 목사님께서 항상 강조하신 말씀이 있다. 목사는 누군가가 창으로 가슴을 푸욱 찌를 때 그때 잘해야 한다는 것이다. 억울하다고 변명하거나 아프고 힘들다고 그 창을 뽑아서는 안 된다는 거다. 그 창을 부여잡고 십자가를 생각하며 기도하라는 것이다. 그 창을 십자가의 사랑으로 녹여내면 결국 하나님께서 문제를 풀어주신다는 것이다. 그것이 바로 목사가 승리하는 비결이라는 것이다. 그런데 아직도 내 모습을 보면 참 멀었다는 생각이 든다. 조금만 힘들어도 나도 모르게 원망이 나온다. 속이 상해서 잠 못 이루기도 한다. 그것은 내가 십자가 앞에 온전히 죽지 못하고 내 욕심이, 내 뜻이 살아있다는 증거이다. -안두익 목사의 ‘어떤 삶이 행복한 삶입니까’에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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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 | | | 사도 바울은 “나는 날마다 죽노라”(고전15:31) 고백합니다. 우리가 죽는다는 것은 십자가에 자신을 못 박는 것입니다. 내가 사는 것이 아니라 내 안에 예수 그리스도가 사는 것입니다. 우리는 나를 사랑하사 나를 위하여 자신을 십자가에서 버리신 그리스도를 따르는 믿음의 길을 걸어야 합니다. 이것이 하나님의 사람들이 추구해야 할 존재방식입니다. 우리의 영성은 ‘자아를 얼마나 죽였는가?’입니다. 아무리 은혜를 받고, 스스로 은사를 가졌다 할지라도 아직도 내 안에 혈기가 죽지 않고, 내 고집과 내 주장이 살아있다면 더 엎드려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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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 | | | | | | 베드로전서 4:8 | | 무엇보다도 뜨겁게 서로 사랑할지니 사랑은 허다한 죄를 덮느니라 Above all, love each other deeply, because love covers over a multitude of sin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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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 주신장로교회 황요한 목사 | | 반 죽은채로 인생을 사는 것은 산 송장입니다2 | |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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