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 | | | | | 2. 백성들아 너희는 다 들을지어다 땅과 거기에 있는 모든 것들아 자세히 들을지어다 주 여호와께서 너희에게 대하여 증언하시되 곧 주께서 성전에서 그리하실 것이니라 3. 여호와께서 그의 처소에서 나오시고 강림하사 땅의 높은 곳을 밟으실 것이라 4. 그 아래에서 산들이 녹고 골짜기들이 갈라지기를 불 앞의 밀초 같고 비탈로 쏟아지는 물 같을 것이니 5. 이는 다 야곱의 허물로 말미암음이요 이스라엘 족속의 죄로 말미암음이라 야곱의 허물이 무엇이냐 사마리아가 아니냐 유다의 산당이 무엇이냐 예루살렘이 아니냐 6. 이러므로 내가 사마리아를 들의 무더기 같게 하고 포도 심을 동산 같게 하며 또 그 돌들을 골짜기에 쏟아내리고 그 기초를 드러내며 7. 그 새긴 우상들은 다 부서지고 그 음행의 값은 다 불살라지며 내가 그 목상들을 다 깨뜨리리니 그가 기생의 값으로 모았은즉 그것이 기생의 값으로 돌아가리라 | | | | |
| | | | | | <주 여호와께서 너희에게 대하여 증언하시되 곧 성전에서 그리하실 것>(2절)이라며 심판을 선포합니다. <... 산들이 녹고 골짜기들이 갈라지기를 불 앞의 밀초 같고 비탈로 쏟아지는 물 같을 것>(4절)이라고 합니다. 그런데 그게 <다 야곱의 허물로 말미암음이요 이스라엘 족속의 죄로 말미암음이라>(5절)고 하십니다. 그렇다면 당시의 <야곱의 허물과 이스라엘의 죄>란 과연 무엇이었을까요?
<미가>라는 이름의 뜻이 무엇이라고 했습니까? <여호와와 같은 자가 누구냐> 아닙니까? 그렇습니다. 이 세상에서 하나님과 같은 분은 다시없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의 위대성과 유일성을 강조하는 <미가> 선지자의 이름은 다분히 상징적입니다. 그러나 당시 유다와 이스라엘, 사마리아와 예루살렘은 전혀 아니었습니다. 그들은 우상숭배에 탐닉하며 영적 행음에 빠져 있었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이 <그 새긴 우상들은 다 부서지고 그 음행의 값은 다 불살라지며 내가 그 목상들을 다 깨뜨리리니 그가 기생의 값으로 모았은즉 그것이 기생의 값으로 돌아가리라>(7절)고 하셨습니다. 미가 시대는 이렇게 우상숭배를 드러내놓고 행하는 종교적 음행과 가난한 사람, 고아, 과부, 객 같은 약자들을 박대하고 착취하고 폭압하는 사회적 죄악이 만연해 있었습니다. 그랬기 때문에 저 변방 모레셋 출신의 미가 선지자가 누구보다 더 진지하고 더 절실하게 분노하고 고발하고 예언할 수 있었던 것입니다.
B.C. 721년 결국 앗수르 왕 살만에셀과 사르곤이 쳐들어와 사마리아가 폐허더미로 변하고 말았습니다. 그로 말미암아 이스라엘의 열두 지파 중 열 지파가 온 세계로 흩어지고 사마리아는 아예 사라져 버리고 말았습니다. <기생의 값>(7절)이란 바알 신전의 창녀들이 행음하여 번 돈을 뜻하는 것으로 우상과 목상을 깨뜨리므로 그 모든 것을 다 허무하게 하시겠다는 말씀입니다. 야곱의 허물과 이스라엘의 죄악을 응징하시고 심판하시는 하나님의 공의로우심을 높이 찬양합시다. | | | | |
| | | | | | -본문이 지적하는 야곱의 허물과 이스라엘의 죄를 꼽아 보십시오. -하나님이 야곱의 허물과 이스라엘의 죄를 어떻게 응징하시고 심판하겠다고 하십니까? -7절이 말씀하는 <음행의 값>, <기생의 값>이란 무엇을 뜻할까요? | |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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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 | | 주님, 미가 시대 남북 왕조의 중심이었던 사마리아와 예루살렘에는 음행의 값, 기생의 값으로 세운 산당과 목상 같은 우상들이 즐비했고, 백성들은 거기서 우상을 숭배하며 저마다 깊은 영적 간음에 빠져 있었습니다. 하나님은 의로운 미가 선지자를 통해 <산들이 높고 골짜기가 갈라지고 비탈이 쏟아지는 물 같을> 것이라며 무서운 심판을 경고하셨습니다. <우상들은 다 부서지고 그 음행의 값이 다 불살라> 질 것이라며 예고하셨습니다. 저희들 과거 유다와 이스라엘의 죄상을 기억하며 더욱 바르게 더욱 신실하게 오직 하나님만을 섬기며 살아가도록 은혜 베풀어 주시옵소서. | | | | |
| | | | | | | 하나님을 바라며 산다고 하는 것은 | 하나님께서는 여러분들의 마음이 한 결 같이 하나님에게 붙어있기를 원하신다. 어떤 이유와 구실과 동기로 비롯된 것이라 할지라도 하나님만을 바라보면서 살아가지 못하는 우리의 불신앙적인 삶을 정당화할 수는 없다. 그렇기 때문에 믿음을 가진 사람들은 하나님을 바랄 수 없을 것 같은 상황에서 하나님을 바랐다. 그들의 하나님을 향한 바램은 환경으로부터 하나님을 향한 바램이 아니라 자신 속에 있는 하나님을 향한 바램이었고, 환경이 그들을 하나님을 바라며 살도록 만들어 준 것이 아니라 그들의 마음이 하나님께 고정되고 하나님을 향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김남준 목사의 ‘도움과 방패되신 하나님’에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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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 | | | 우리가 하나님을 바라며 산다고 하는 것은 삶이 기쁨이나 슬픔이나 즐거움이나 고통이나 모든 것을 하나님에게 두고 산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하나님의 이름이 높아지고 자신 속에, 또 다른 사람들의 마음속과 모여 살아가는 이 세상에 이루어지고, 세상의 주권도 하나님 앞에 복종하는 그런 세상을 갈망하면서 사는 것입니다. 그들의 생사 간 유일한 소망은 하나님의 보호와 사랑을 입는 것이며 하나님께서 그 백성들에게 완전한 사랑을 보여주시고, 하나님의 놀라운 사랑을 본 받으며 모든 좋은 것이 하나님께로부터 온다고 하는 사실을 기억하면서 바라보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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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 | | | | | | 그 인자하심이 영원함이로다 | | 강한 손과 펴신 팔로 인도하여 내신 이에게 감사하라 그 인자하심이 영원함이로다 with a mighty hand and outstretched arm; His love endures foreve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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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 주신장로교회 황요한 목사 | | 십자가를 지려고 하면 오히려 십자가가 나를 지고 갑니다(1) | |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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