鶴山의 草幕舍廊房

Faith - Hymn

요나의 분노 외 3

鶴山 徐 仁 2017. 4. 24. 16:44

4월 22일 (토)
요나의 분노 (욘 4:1-11)
   
 

1. 요나가 매우 싫어하고 성내며
2. 여호와께 기도하여 이르되 여호와여 내가 고국에 있을 때에 이러하겠다고 말씀하지 아니하였나이까 그러므로 내가 빨리 다시스로 도망하였사오니 주께서는 은혜로우시며 자비로우시며 노하기를 더디하시며 인애가 크시사 뜻을 돌이켜 재앙을 내리지 아니하시는 하나님이신 줄을 내가 알았음이니이다
3. 여호와여 원하건대 이제 내 생명을 거두어 가소서 사는 것보다 죽는 것이 내게 나음이니이다 하니
4. 여호와께서 이르시되 네가 성내는 것이 옳으냐 하시니라
5. 요나가 성읍에서 나가서 그 성읍 동쪽에 앉아 거기서 자기를 위하여 초막을 짓고 그 성읍에 무슨 일이 일어나는가를 보려고 그 그늘 아래에 앉았더라
6. 하나님 여호와께서 박넝쿨을 예비하사 요나를 가리게 하셨으니 이는 그의 머리를 위하여 그늘이 지게 하며 그의 괴로움을 면하게 하려 하심이었더라 요나가 박넝쿨로 말미암아 크게 기뻐하였더니
7. 하나님이 벌레를 예비하사 이튿날 새벽에 그 박넝쿨을 갉아먹게 하시매 시드니라
8. 해가 뜰 때에 하나님이 뜨거운 동풍을 예비하셨고 해는 요나의 머리에 쪼이매 요나가 혼미하여 스스로 죽기를 구하여 이르되 사는 것보다 죽는 것이 내게 나으니이다 하니라
9. 하나님이 요나에게 이르시되 네가 이 박넝쿨로 말미암아 성내는 것이 어찌 옳으냐 하시니 그가 대답하되 내가 성내어 죽기까지 할지라도 옳으니이다 하니라
10. 여호와께서 이르시되 네가 수고도 아니하였고 재배도 아니하였고 하룻밤에 났다가 하룻밤에 말라 버린 이 박넝쿨을 아꼈거든
11. 하물며 이 큰 성읍 니느웨에는 좌우를 분변하지 못하는 자가 십이만여 명이요 가축도 많이 있나니 내가 어찌 아끼지 아니하겠느냐 하시니라

 
   
   
 

결국 요나의 인간적인 감정, 민족적인 배타심이 적나라하게 드러났습니다. 단순하면서도 간결했던 요나의 메시지에 큰 성 니느웨가 통째 회개하고 돌아오자 하나님도 그 뜻을 돌이키셔서 심판 계획을 철회하셨다고 했습니다. 그러자 이번에는 <요나가 매우 싫어하고 성내며>(1절) 하나님께 항의성 기도를 올렸다고 합니다. 도대체 뭐가 싫고 뭐 때문에 요나가 성을 냈다는 겁니까?

그는 자신이 니느웨에서 이룩한 복음의 성취보다 민족적 감정에 더 지배당했습니다. 유다 백성이 아닌 이방 민족이 회개하고 구원 받고 복 받는 게 너무 못마땅하고 싫었던 겁니다. 끝까지 회개하지 않고 악하게 살다 멸망당해야 할 민족이 왕으로부터 백성에 이르기까지, 짐승들까지 다 금식하며 회개하여 멸망은커녕 구원받고 축복 받게 된 사실이 짜증나 성질을 부렸다는 것입니다. 나는 은혜 받는 게, 옳고 마땅하지만 당신이 은혜 받고 회개하는 꼴은 못 봐주겠다는 심보입니다.

그런데 실은 이게 바로 나의 모습이요 오늘 우리들의 모습 아닙니까? 우리는 일본 사람들에게 선교사를 파송해 복음을 전하면서도 내심은 그들이 회개하지 않고 버티다 멸망하기를 바라고 있는지도 모릅니다. 본문 2절 이하에 나오는 요나의 기도를 보면 참 어이가 없습니다. <여호와여 내가 고국에 있을 때에 이러하겠다고 말씀하지 아니하였나이까 그러므로 내가 빨리 다시스로 도망하였사오니 ...> 내가 이방인들의 회개나 구원 받는 꼴은 절대 못 본다고 하지 않았습니까? 그래서 제가 다시스로 도망치지 않았습니까? 그럼에도 이게 뭡니까 <원하건대 이제 내 생명을 거두어 가소서 사는 것보다 죽는 것이 내게 나음이니이다>(3절).

선지자라는 사람의 민족적 편견이 지나치게 극단적입니다. 우리는 교회 안에서도 내가 미워하고 싫어하는 사람이 잘 되는 것을 참 용납하지 못합니다. 내가 미워하는 사람이 은혜 받고 회개하며 눈물 흘리는 것도 못마땅해 합니다. 끝까지 회개하지 않고 강퍅하게 굴다 하나님의 징계를 받아야 속이 시원할 텐데 회개하면 하나님이 마음을 돌이키실 것 아닙니까? 따라서 요나야말로 오늘 우리들의 모습이요 나의 실상임을 누구도 부인하기 어려울 것입니다. 이런 요나와 오늘 우리들에 대한 하나님의 답변은 이렇습니다. <네가 수고도 아니하였고 재배도 아니하였고 하룻밤에 났다가 하룻밤에 말라버린 이 박넝쿨을 아꼈거든 하물며 이 큰 성읍 니느웨에는 좌우를 분변하지 못하는 자가 십이만여 명이요 가축도 많이 있나니 내가 어찌 아끼지 아니하겠느냐>(10절).

 
   
   
 

-당신은 당신이 미워하는 어떤 사람이 끝까지 회개하지 않기를 바라신 적이 없습니까?
-요나가 뭘 <매우 싫어하고>, 무엇 때문에 <성냈다>고 합니까?
-요나가 왜 하나님께 <내 생명을 거두어 가소서>(3절)하며 기도했습니까?

 
   
   
 

주님, 요나에게서 오늘 저희의 모습을 봅니다. 요나가 니느웨 사람들에게 하나님의 경고의 말씀을 전하면서도 그들이 회개하여 하나님이 작정하신 화를 면하게 되는 일은 원치 않았던 것처럼 저희도 저희가 싫어하고 미워하는 사람의 구원은 바라고 있지 않은지도 모릅니다. 오히려 그들이 화를 당하고 하나님의 심판을 받게 되길 원하고 있는지도 모릅니다. 그러나 그것은 결코 하나님의 선하신 뜻이 아님을 깨닫게 해주시옵소서. 하나님은 모두가, 모든 민족이 회개하여 징계나 심판이 아닌 은혜와 축복을 누리며 살기를 바라신다는 사실을 바르게 분별하게 하시옵소서.

 
   
     
 

엄청난 가치로 변화가 되는 것은

0은 아무리 그리고 또 그려도 아무것도 없는 제로이다.
0을 쭉 그려서 12개로 나열해 놓았다고 생각해도
역시 아무것도 없는 영이다.
그러나 이 영들이 있는 맨 앞에 1자를 써 놓는다면
1조라는 엄청난 가치로 변화가 되는 것이다.
오늘 우리는 아무것도 아니다.
보리떡 5덩어리나 작은 물고기 2마리에 불과하다.
숫자적으로 아무런 의미가 없는 0과 같은 제로이다
.그러나 우리가 주님의 손 안에 있을 때에는
가치가 변하고 신분과 위치가 변한다.
우리는 제로와 같이 아무 가치가 없는 존재이지만
우리 앞에 JX가 함께 계실 때에는 놀라운 숫자로 변화되는 것이다.
이처럼 주님의 손길은 우리를 축복해 주시는 손길이요
우리를 변화시켜주시는 손길이다.
-이무웅 목사의 ‘예수님의 손’에서-

 
     
 
   
 


내가 아무리 아침 일찍 일어나 늦게 누워도
하나님께서 축복을 부어주시지 않으면
인간의 수고는 아무것도 아니라는 말씀입니다.
물론 우리가 열심히 노력하고 수고하고 땀을 흘려서
어떠한 목적을 달성할 수가 있습니다.
그러나 이런 것들은 모두가 다 일시적이고 제한적인 것입니다.
0밖에 안 되는 무능력한 인간도 하나님의 손에 붙들리면
상상할 수 없는 능력 있는 일을 할 수가 있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진정한 축복은 하나님께서 주셔야 합니다.
그래야 그 삶이 기름지고 풍성하며
그 축복이 무너지지 아니하고 바닥이 나지 않습니다.

 
     
       
 

의심

 

누가복음 24:38
예수께서 이르시되 어찌하여 두려워하며 어찌하여 마음에 의심이 일어나느냐
He said to them, "Why are you troubled, and why do doubts rise in your minds?

 
       
 
   
  비젼교회 윤여재 목사
  고난당할때 의심치 말라
   
   

 

 

4월 21일 (금)
니느웨의 회개 (욘 3:1-10)
   
 

1. 여호와의 말씀이 두 번째로 요나에게 임하니라 이르시되
2. 일어나 저 큰 성읍 니느웨로 가서 내가 네게 명한 바를 그들에게 선포하라 하신지라
3. 요나가 여호와의 말씀대로 일어나서 니느웨로 가니라 니느웨는 사흘 동안 걸을 만큼 하나님 앞에 큰 성읍이더라
4. 요나가 그 성읍에 들어가서 하루 동안 다니며 외쳐 이르되 사십 일이 지나면 니느웨가 무너지리라 하였더니
5. 니느웨 사람들이 하나님을 믿고 금식을 선포하고 높고 낮은 자를 막론하고 굵은 베 옷을 입은지라
6. 그 일이 니느웨 왕에게 들리매 왕이 보좌에서 일어나 왕복을 벗고 굵은 베 옷을 입고 재 위에 앉으니라
7. 왕과 그의 대신들이 조서를 내려 니느웨에 선포하여 이르되 사람이나 짐승이나 소 떼나 양 떼나 아무것도 입에 대지 말지니 곧 먹지도 말 것이요 물도 마시지 말 것이며
8. 사람이든지 짐승이든지 다 굵은 베 옷을 입을 것이요 힘써 하나님께 부르짖을 것이며 각기 악한 길과 손으로 행한 강포에서 떠날 것이라
9. 하나님이 뜻을 돌이키시고 그 진노를 그치사 우리가 멸망하지 않게 하시리라 그렇지 않을 줄을 누가 알겠느냐 한지라
10. 하나님이 그들이 행한 것 곧 그 악한 길에서 돌이켜 떠난 것을 보시고 하나님이 뜻을 돌이키사 그들에게 내리리라고 말씀하신 재앙을 내리지 아니하시니라

 
   
   
 

물고기 뱃속에서 나온 요나에게 하나님의 말씀이 임했습니다. <일어나 저 큰 성읍 니느웨로 가서 내가 네게 명한 바를 그들에게 선포하라>(2절). 이번에는 요나가 즉각 순종하여 성읍으로 들어가 하루 종일을 다니며 외쳤습니다. <사십 일이 지나면 니느웨가 무너지리라>(4절).
당시 요나가 증거한 메시지는 지극히 단순했습니다. 미사여구를 동원해 장황하게 설교한 게 아닙니다. 사람들을 설득하려고 애를 쓰지도 않았습니다. 하나님의 말씀 그 자체만을 간결하게 전했을 뿐입니다.

그럼에도 이방 도성 니느웨에 놀라운 일이 벌어졌습니다. <니느웨 사람들이 하나님을 믿고 금식을 선포하고 높고 낮은 자를 막론하고 굵은 베옷을 입은지라>(5절). 심지어는 <왕이 보좌에서 일어나 왕복을 벗고 굵은 베옷을 입고 재위에 앉았다>(6절)고 했습니다. <왕과 그의 대신들이 조서를 내려 ... 사람이나 짐승이나 소 떼나 양 떼나 아무것도 입에 대지 말지니 곧 먹지도 말 것이요 물도 마시지 말 것이며 ... 힘써 하나님께 부르짖을 것이며 각기 악한 길과 손으로 행한 강포에서 떠날 것이라>(7-8절). 대대적인, 민족적인 회개운동이 일어나고 금식과 기도 운동이 급속히 확산되면서 그들 운명에 놀라운 기적이 일어났습니다. <하나님이 뜻을 돌이키시고 그 진노를 그치사 우리가 멸망하지 않게 하시리라>(9절)고 확신한 그대로 정말 하나님이 그 진노를 철회하셨습니다. <하나님이 그들이 행한 것 곧 그 악한 길에서 돌이켜 떠난 것을 보시고 하나님이 뜻을 돌이키사 그들에게 내리리라고 말씀하신 재앙을 내리지 아니 하시니라>(10절).

호세아서가 이스라엘 백성의 회개를 원하시는 하나님의 예언서였다면 이 요나서는 이스라엘 뿐 아니라 세계의 모든 민족들이 회개하고 돌아오기를 바라시는 하나님의 예언서입니다. 그 점에서 구약의 요나서야말로 가장 신약적인 성경이라 할 것입니다. 세상에서 회개하여 용서 받지 못할 개인이나 나라는 없습니다. 불과 30일 후에 멸망이 예정돼 있었던 니느웨도 대대적인 회개운동으로 결국 하나님이 그 뜻을 돌이켰다는 사실을 기억하십시오.

 
   
   
 

-요나의 선포에 대해 당시 니느웨 성 사람들이 어떻게 반응했는지 다시 한 번 확인해 보십시오.
-회개하는 민족이나 개인에 대해서는 하나님도 그 뜻을 돌이키신다는 사실을 믿으십니까?
-요나가 니느웨에서 외친 말씀을 적어보십시오.

 
   
   
 

주님, 니느웨는 이방인들이 사는 이방의 성읍이었음에도 요나가 전한 말씀 앞에서 왕과 온 백성, 짐승들까지도 금식하며 베옷을 입고 회개했습니다. 그렇습니다. 하나님은 미쁘시고 의로우나 <우리가 우리의 죄를 자백하면 우리의 죄를 사하시고 모든 불의에서 우리를 깨끗하게>(요일 1:9) 하심을 믿습니다. 부디 요나가 전한 하나님의 심판의 예언 앞에서 회개한 니느웨에게서 많은 것을 느끼고 깨닫고 배우는 저희들 되게 해주시옵소서.

 
   
     
 

나의 손길, 누구를 위하여 사용하는가?

노아는 120년 간 하나님에 명령대로 방주를 지어
온 가족이 구원을 받았으며
아론과 훌은 기도하는 모세의 손을 부축하고
협력해 주므로 승리하게 되였으며
고넬료의 손길은 왼손이 하는 것을 오른손이 모르게 구제하여
하나님이 기억한바 되었으며
베드로와 요한의 손은 성전 미문에 앉아 구걸하는
앉은뱅이를 붙들어 일으켜 주므로
새로운 삶을 살게 해 주는 능력의 손이 되었다.
이처럼 성경에 나타나는 손길은 여러 종류가 있는데
오늘 나의 손길은 어떠한 종류의 손인가?
-이무웅 목사의 ‘예수님의 손’에서-

 
     
 
   
 


아침에 일어나서 우리는 이 손을 가지고
하루 종일 많은 일을 합니다.
청소도 하고 밥도 먹고 일도하고 무엇을 만들기도 하고
글도 쓰고 악기도 연주하고 그림도 그리고
운동도 하고 헤아릴 수도 없이 많은 일들을 합니다.
그런데 이 수많은 일들이 모두가 다 나를 위하여 하는 것이고
나의 어떤 성취와 충족을 위하여
이기적인 도구로 쓰여지고 있는지 점검해 보십시오.
아니면 남을 위해 헌신하고 희생하며
약한 자에게 사랑을 베풀고 힘과 용기를 주는
예수님의 손길을 닮아가고 있는지.

 
     
       
 

잠언 8:17

 

나를 사랑하는 자들이 나의 사랑을 입으며 나를 간절히 찾는 자가 나를 만날 것이니라
I love those who love me, and those who seek me find me.

 
       
 
   
  FIM국제선교회 유해석 선교사
  5분칼럼
   
   

 

 

4월 20일 (목)
요나의 기도 (욘 2:1-10)
   
 

1. 요나가 물고기 뱃속에서 그의 하나님 여호와께 기도하여
2. 이르되 내가 받는 고난으로 말미암아 여호와께 불러 아뢰었더니 주께서 내게 대답하셨고 내가 스올의 뱃속에서 부르짖었더니 주께서 내 음성을 들으셨나이다
3. 주께서 나를 깊음 속 바다 가운데에 던지셨으므로 큰 물이 나를 둘렀고 주의 파도와 큰 물결이 다 내 위에 넘쳤나이다
4. 내가 말하기를 내가 주의 목전에서 쫓겨났을지라도 다시 주의 성전을 바라보겠다 하였나이다
5. 물이 나를 영혼까지 둘렀사오며 깊음이 나를 에워싸고 바다 풀이 내 머리를 감쌌나이다
6. 내가 산의 뿌리까지 내려갔사오며 땅이 그 빗장으로 나를 오래도록 막았사오나 나의 하나님 여호와여 주께서 내 생명을 구덩이에서 건지셨나이다
7. 내 영혼이 내 속에서 피곤할 때에 내가 여호와를 생각하였더니 내 기도가 주께 이르렀사오며 주의 성전에 미쳤나이다
8. 거짓되고 헛된 것을 숭상하는 모든 자는 자기에게 베푸신 은혜를 버렸사오나
9. 나는 감사하는 목소리로 주께 제사를 드리며 나의 서원을 주께 갚겠나이다 구원은 여호와께 속하였나이다 하니라
10. 여호와께서 그 물고기에게 말씀하시매 요나를 육지에 토하니라

 
   
   
 

요나는 1장에서 선장으로부터 <자는 자여 일어나서 네 하나님께 구하라>(6절)는 요구를 받습니다만 실제 그가 기도했다는 말씀은 없습니다. 그러나 그가 비로소 기도하기 시작했습니다. <요나가 물고기 뱃속에서 그의 하나님 여호와께 기도하여 이르되>(1절). 하나님의 진노로 환난을 당하자, 물고기 뱃속에 갇히자 마침내 기도하기 시작한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환난 당할 때가 바로 기도할 때입니다. 환난에 처할 때 우리는 마음이 낮아지고 부드러워지며 진지해져 기도의 필요성을 느끼게 됩니다. 하나님도 그때는 우리가 반드시 기도하기를 바라십니다. <그들이 고난 받을 때에 나를 간절히 구하리라>(호 5:15). 요나가 그랬던 것처럼 우리도 죄로 말미암아 환난을 자초했을 때 무엇보다 먼저 기도해야 하나님이 우리를 반갑게 맞아 주십니다. 사실 세상에서 기도하기에 적절하지 않은 공간은 없습니다. 이렇듯 요나는 물고기 뱃속에서도 기도했습니다. <나는 각처에서 사람들이 기도하기를 원하노라>(딤전 2:8). 땅의 어느 곳이든 하늘로 나아가는 길은 똑같습니다. 물고기 뱃속은 밀폐되고 어두운 지하 감옥이나 다를 바 없었지만 요나는 거기에서도 하나님 앞에 나아갈 수 있었고, 부르짖어 기도할 수 있었습니다. 마치 바울과 실라가 사슬에 매인 채로 감옥에서 기도했듯 요나도 그렇게 깊음 가운데서 기도하여 응답을 받았습니다. <내가 스올의 뱃속에서 부르짖었더니 주께서 내 음성을 들으셨나이다>(2절).

당시 요나는 두 가지를 기도했습니다. < ... 다시 주의 성전을 바라보겠다>(4절)는 것과 <감사하는 목소리로 주께 제사를 드리며 나의 서원을 주께 갚겠다>(9절)는 것이었습니다. 그러자 <여호와께서 그 물고기에게 말씀하시며 요나를 육지에 토하니라>(10절) 그랬습니다. 요나의 이런 극적인 이야기와 기도 응답이 오늘 우리들에게도 큰 깨달음과 도전이 되길 빕니다.

 
   
   
 

-환난이 닥칠 때 당신도 진심어린 기도의 필요성을 느끼십니까?
-세상에서 기도할 수 없는 공간이 있을까요?
-하나님이 물고기 뱃속에서 드린 요나의 기도를 들으시고 어떻게 응답하셨습니까?

 
   
   
 

주님, 저희들 요나를 통해 환난 중에 취해야 할 최선의 선택이 곧 기도임을 배웠습니다. 또 기도란 어디서도 가능하고 기도가 불가능한 곳이란 없다는 사실도 확인했습니다. 부디 저희도 언제 어디서나 기도하게 하사 스올 같은 물고기 뱃속에서 토해냄을 받게 해주시옵소서.
기도가 저희에게 주어진 최선의 해법이요 대안임을 깊이 깨닫게 해 주시옵소서.

 
   
     
 

하나님의 영원한 세계를 보장받은 자는

사실 우리는 이미 허물과 죄로 죽었던 자였다.
그런데 하나님께서 우리를 살려주신 것이다.
모든 의욕을 상실해버리면 삶 자체가
벌써 죽음의 길을 헤매고 있는 것이다.
오늘 우리는 살았는데 왜 죽은 자같이 사는가?
죽은 자같이 살지 말고 산 자같이 살아야 한다.
더구나 예수 안에 있는 자는 살리심을 받은 자이다.
예수 안에서 구원을 받은 자. 예수 안에서 영생을 얻은 자이다.
우리는 예수 안에서 살리심을 받은 자인 줄 믿으시기 바란다.
오늘의 어려움이 있어도 인내하면서 극복해야 된다.
-피종진 목사의 ‘여호와께로 돌아가자’에서-

 
     
 
   
 


이 세상은 걱정 근심이 없는 곳이 없습니다.
우리는 모든 것을 주님께 맡겨야 합니다(잠 16:3).
어떤 분은 같은 짐을 지고 살면서도 얼굴을 보면
걱정이 하나도 없습니다. 항상 명랑하고 쾌활합니다.
그런데 어떤 분은 얼굴이 벌써 죽을 상(像)입니다.
우리 하나님은 살리는 영이십니다. 주 안에는 생명이 있습니다.
“주의 약속은 어떤 이의 더디다고 생각하는 것같이
더딘 것이 아니라 오직 너희를 대하여 오래 참으사
아무도 멸망치 않고 다 회개하기에 이르기를 원하시느니라” (벧후3:9)
하나님은 한사람이라도 멸망 받는 것을 원치 않으십니다.

 
     
       
 

시편 63:1

 

하나님이여 주는 나의 하나님이시라 내가 간절히 주를 찾되 물이 없어 마르고 황폐한 땅에서 내 영혼이 주를 갈망하며 내 육체가 주를 앙모하나이다
O God, you are my God, earnestly I seek you; my soul thirsts for you, my body longs for you, in a dry and weary land where there is no water.

 
       
 
   
  요나3일영성원 장덕봉 목사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4월 19일 (수)
하나님은 모든 사람을 사랑하십니다 (창 25:1-10)
   
 


1 아브라함이 후처를 맞이하였으니 그의 이름은 그두라라
2 그가 시므란과 욕산과 므단과 미디안과 이스박과 수아를 낳고
3 욕산은 스바와 드단을 낳았으며 드단의 자손은 앗수르 족속과 르두시 족속과 르움미 족속이며
4 미디안의 아들은 에바와 에벨과 하녹과 아비다와 엘다아이니 다 그두라의 자손이었더라
5 아브라함이 이삭에게 자기의 모든 소유를 주었고
6 자기 서자들에게도 재산을 주어 자기 생전에 그들로 하여금 자기 아들 이삭을 떠나 동방 곧 동쪽 땅으로 가게 하였더라
7 아브라함의 향년이 백칠십오 세라
8 그의 나이가 높고 늙어서 기운이 다하여 죽어 자기 열조에게로 돌아가매
9 그의 아들들인 이삭과 이스마엘이 그를 마므레 앞 헷 족속 소할의 아들 에브론의 밭에 있는 막벨라 굴에 장사하였으니
10 이것은 아브라함이 헷 족속에게서 산 밭이라 아브라함과 그의 아내 사라가 거기 장사되니라

 
   
   
 

오늘 말씀은 아브라함이 175세의 나이로 하나님의 부르심을 받아서 세상을 떠난 사건을 기록하고 있습니다. 아브라함은 자신이 죽기 전에 이삭에게 소유를 물려주고, 또한 다른 자녀들에게도 재산을 나눠주었습니다. 모든 일을 깨끗이 정리하고 생을 마감합니다. 성경은 아브라함이 “나이가 높고 늙어서 기운이 다하여 죽어 자기 열조에게로 돌아가매‘라고 기록합니다. 아브라함은 자신의 수(壽)를 다 누렸습니다. 아마도 이것은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에게 주신 가장 큰 축복일 겁니다.
그런데 아브라함이 장례를 치루고 있는 아들의 명단을 보십시오? 거기에 어떤 이름이 나옵니까? 바로 하갈을 통해서 낳은 아들, 이스마엘의 이름(9절)이 나옵니다. 이스마엘은 아브라함의 집에서 쫓겨났고 버림받은 줄 알았는데, 성경은 아브라함의 장례를 치르는 곳에 이스마엘도 함께 있었다고 기록합니다. 이 대목을 묵상하면서, 아브라함은 이스마엘을 버린 것이 아니라, 다만 함께 거처하지 않았다는 것을 깨닫습니다. 이 당시에 이삭과 이스마엘은 원수로 지내며 싸우지 않았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하나님은 이삭을 선택하고 이삭만 축복하시고, 이삭만 사랑하신 것이 아니라, 이스마엘에게 약속하신 12족장의 아버지로 세우시겠다는 약속도 지키신 분이라는 사실을 깨닫게 됩니다. 성경은 하나님을 믿는 사람들의 믿음의 기록이지만, 하나님은 모든 사람을 향한 보편적인 사랑은 멈추신 적이 없다는 사실을 깨닫습니다. 하나님은 오늘도 모든 열방이 하나님께 돌아오기를 기다리시고, 행하시는 일을 멈추지 않는다는 것을 깨닫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교회에서 만난 사람들, 믿음의 가정만이 아니라, 오늘 내가 만나는 모든 사람에게 그리스도의 향기가 되어야 하는 이유를 발견합니다. 하나님이 십자가에서 우리 모두의 죄를 위해서 죽으신 이유를 발견합니다.

 
   
   
 

‘하나님! 오늘 나를 통해서 메마른 땅에 샘물 나게 하시고, 나를 통해서 가난한 영혼, 목마른 영혼이 주사랑 알게 하옵소서!’

 
   
     
 

오직 시련 너머에서 다가오고 있는

지금, 여러분에게 어려운 일이 있는가?
그 시련 속에서도 하나님의 축복을 바라다보며
감사할 수 있기를 바란다.
바울은 풍랑 속에서도 감사했다.
그는 풍랑 속에서도 주위에 있는 사람들을 가르쳤고
감사의 기도를 드렸다.
그는 그 풍랑 이후에 올 축복을 바라다 볼 수 있었다.
이것은 참으로 전향적인 시각이고 믿음이다.
시련 속에서 감사할 수 있는 것은 어떻게 가능한가?
그것은 오직 시련 너머에서 다가오고 있는
축복을 볼 수 있을 때에 가능하다.
시련은 위장된 축복이다
-김의환 박사의 ‘풍랑 속에서도 감사’에서-

 
     
 
   
 


. 우리는 위장된 축복의 실체를
전향적인 시각으로 바라다 볼 수 있어야 합니다.
모든 것이 잘 되었다면 우리는 교회에 나오지 않았을 수도 있습니다.
지금쯤 세상과 벗하여 주님과 원수 된 삶을
사는 자가 되었을지도 모릅니다.
우리 삶의 풍랑을 통해서 하나님께서 우리를 흔드시고
우리를 일깨우심으로 우리가 주님 앞으로 나아온 것입니다.
병도, 고통도, 물질적인 고난도
모두 위장된 축복이라는 사실을 믿음으로 받아드리십시오
고난 이후의 축복을 예비하신 하나님께서 역사하실 것입니다.

 
     
       
 

시편 107:9

 

그가 사모하는 영혼에게 만족을 주시며 주린 영혼에게 좋은 것으로 채워주심이로다
for he satisfies the thirsty and fills the hungry with good things.

 
       
 
   
  사랑과평안의교회 박상혁 목사
  마귀와 마귀위 일을 멸하러 오신 예수 그리스도 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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