鶴山의 草幕舍廊房

Faith - Hymn

심판과 영광 외 1

鶴山 徐 仁 2017. 4. 27. 22:28
4월 27일 (목)
심판과 영광 (미 1:1)
  
 

1. 유다의 왕들 요담과 아하스와 히스기야 시대에 모레셋 사람 미가에게 임한 여호와의 말씀 곧 사마리아와 예루살렘에 관한 묵시라

 
  
  
 

미가서의 주제는 두 가지입니다. 먼저는 택하신 백성들의 허물에 대한 정죄와 징벌이고, 다음은 이스라엘의 구원과 메시아 왕국의 영광입니다. 미가서는 처음부터 끝까지 이런 위협과 약속, 심판과 하나님의 자비가 서로 엇갈립니다.

<미가>란 <여호와와 같은 자가 누구냐>(7:18)는 뜻으로 하나님은 그 누구와도, 그 무엇과도 비교할 수 없는 분이심을 강조하는 이름인데 실제 미가의 삶에는 하나님이 전부였고, 또 그가 본 하나님은 거룩하시고 의로우시며 사랑이신 하나님이셨습니다. 미가는 유다 남쪽 모레셋의 미천한 평민 출신의 선지자로 정치적 혹은 종교적으로 그릇 행하는 사람들과 싸운 투사였으며 특히 가난한 자들을 옹호한 선지자였습니다. 뿐만 아니라 그리스도가 태어나실 곳을 아주 구체적으로 예언한(5:2) 선구자적인 선지자이기도 했습니다.

그의 예언의 특색은 비유를 자주 사용하고 말을 매우 재치있게 구사한다는 것입니다. 그는 죄를 엄격하고 강경하게 다루었지만 마음과 정서만큼은 연민이 많고 부드러워 몹시 애석해 하며 슬퍼했던 대단히 동정적인 사람이었습니다. 평화에 대한 미가의 예언도 자주 인용되는 구절입니다. <무리가 그 칼을 쳐서 보습을 만들고 창을 쳐서 낫을 만들 것이며 이 나라와 저 나라가 다시는 칼을 들고 서로 치지 아니하며 다시는 전쟁을 연습하지 아니하고>(4:3).
정치적으로는 혼란하고 종교적으로는 깊이 타락했던 유다의 11대 요압 왕과 12대 아하스 왕, 13대 히스기야 왕 시대 하나님은 이런 미가 선지자를 통해 <너희는 여호와의 말씀을 들을지어다>(1:2, 3:1, 6:1)하는 외침과 함께 유다의 죄와 멸망과 회복을 선포하셨습니다.
암울하고 불안한 당시의 역사적 상황은 황폐해진 사마리아와 유다 곳곳의 참상과 함께 이 미가서 곳곳에 배어 있어 짙은 슬픔과 고통의 근거가 되고 있습니다.

그리고 이 미가서를 보고 있노라면 지금 우리의 사정과 아픔과 모순이 자꾸만 오버랩 됩니다. 그래서 이게 먼 옛날, 아득한 유다의 이야기가 아니라 오늘 이 시대 우리의 이야기임을 깨닫게 됩니다. 그래도 다행인 것은 미가서의 절정과 결론이 하나님의 마지막 심판이 아니라 자비라는 것입니다.
<...주께서는 죄악과 그 기업에 남은 자의 허물을 사유하시며 인애를 기뻐하시므로 진노를 오래 품지 아니하시나이다. 다시 우리를 불쌍히 여기셔서 우리의 죄악을 발로 밟으시고 우리의 모든 죄를 깊은 바다에 던지시리다>(7:18-19).

 
  
  
 

-미가와 같은 시대(대략 BC 735년에서 700년 사이)에 활동한 선지자들을 꼽아 보십시오.
-미가가 활동한 시대의 유다 왕들을 꼽아 보십시오.
-<미가>란 이름의 뜻은?

 
  
  
 

주님, 미가 선지자가 저희에게 친숙한 것은 그가 일찍이 그리스도의 탄생지를 구체적으로 예언한 영성 깊은 선지자였기 때문입니다. <베들레헴 에브라다야 너는 유다 족속 중에 작을지라도 이스라엘을 다스릴 자가 네게서 나올 것이라>(5:2). 뿐만 아닙니다. 미가의 시대야말로 오늘 이 시대와 너무도 흡사하여 미가 선지자의 예언이 곧 이 시대 저희에게 주신 하나님의 메시지로 믿고 더욱 진지하게 들으며 결단하게 하시옵소서.

 
  
   
 

내 사랑의 결과에 연연하지 말라

갈수록 세상이 악해지고 있다.
하지만 세상의 법칙과 반하는 것은 그리스도를 믿는 자들의 마음이다.
이러한 새로워지는 사람들의 모임이 교회이나
사람들의 모임이다 보니 역시 온전치 못하다.
사람은 태어날 때부터 하나님을 거역하는 본성이 있어
인간의 조직은 결코 선할 수 없으나 하나님이 함께 하므로 소망이 있다.
하나님이 교회를 지키고 우리를 이끄시는 데 이것을 ‘견인’이라고 한다.
에서는 하나님의 얼굴을 구하는 자가
선한 행동을 하게 된다고 했다.
하나님 없는 선한 일은 단순한 종교행위이지 성령의 열매는 아니다.
우리의 선함이 하나님께 속하였다는 것이 중요하고
그 결과로 선을 행한다는 사실이다.
-작자 미상의 글 ‘하나님께 집중하라’에서-

 
   
 
  
 


하나님을 만나는 것이 중요한데
형제 사랑 속에서 하나님을 만나는 것입니다.
원수를 사랑하라는 의미는 내가 고통 받는 자리에서
하나님께 그들을 맡기는 것입니다.
한 교회 내에서도 선인과 악인이 공존하고 있습니다.
하나님께 모든 것을 맡기면 내 사랑의 결과에 연연하지 않게 됩니다.
‘너희는 먼저 그의 나라와 의를 구하라’는 말씀처럼
하나님께 집중하고 나머지는 덤으로 생각하고 받으십시오.
하나님만 바라보게 되고 나의 선한 행위에 대한
감사의 대가를 바라지 않게 될 것입니다.

 
   
    
 

요한복음 6:20

 

이르시되 내니 두려워하지 말라 하신대
But he said to them, "It is I; don't be afraid."

 
    
 
  
 요나3일영성원 장덕봉 목사
 얼마나 크게 생각하십니까?
  
  



4월 26일 (수)
내 삶에 주어진 것들을 소중하게 여기며 삽시다 (창 25:24-34)
  
 

24 그 해산 기한이 찬즉 태에 쌍둥이가 있었는데
25 먼저 나온 자는 붉고 전신이 털옷 같아서 이름을 에서라 하였고
26 후에 나온 아우는 손으로 에서의 발꿈치를 잡았으므로 그 이름을 야곱이라 하였으며 리브가가 그들을 낳을 때에 이삭이 육십 세였더라
27 그 아이들이 장성하매 에서는 익숙한 사냥꾼이었으므로 들사람이 되고 야곱은 조용한 사람이었으므로 장막에 거주하니
28 이삭은 에서가 사냥한 고기를 좋아하므로 그를 사랑하고 리브가는 야곱을 사랑하였더라
야곱이 죽을 쑤었더니 에서가 들에서 돌아와서 심히 피곤하여
29 야곱에게 이르되 내가 피곤하니 그 붉은 것을 내가 먹게 하라 한지라 그러므로 에서의 별명은 에돔이더라
30 야곱이 이르되 형의 장자의 명분을 오늘 내게 팔라
31 에서가 이르되 내가 죽게 되었으니 이 장자의 명분이 내게 무엇이 유익하리요
32 야곱이 이르되 오늘 내게 맹세하라 에서가 맹세하고 장자의 명분을 야곱에게 판지라
33 야곱이 떡과 팥죽을 에서에게 주매 에서가 먹으며 마시고 일어나 갔으니 에서가 장자의 명분을 가볍게 여김이었더라

 
  
  
 

오늘 본문의 말씀은 이삭이 리브가와 결혼해서 쌍둥이 아들을 낳는 장면입니다. 아들 둘이 쌍둥이로 태어나는데 참 요란합니다. 먼저 나온 아기는 붉고 전신이 털옷 같아서 이름을 ‘에서’라고 부릅니다. 두 번째로 나온 아기는 에서의 발꿈치를 붙잡고 나와서 ‘야곱’이라고 부릅니다.
이삭이 나이 60세에 나은 아들이 얼마나 귀했겠습니까? 두 아들을 얼마나 사랑했겠습니까? 그런데 두 아들은 달라도 너~무 달라서, 에서는 사냥꾼으로 성장하고, 야곱은 조용한 성격으로 장막 안에 있는 것을 좋아합니다. 이삭은 용맹한 에서를, 어머니 리브가가 야곱을 좋아하는 것이 어찌 보면 당연한 일입니다.
그런데 야곱은 에서가 태어나면서 갖게 된 장자라는 직분은 너무나도 부러워했습니다. 오늘 본문의 말씀을 보면, 에서가 사냥을 하고 돌아와서 피곤한 것을 보고서 야곱은 에서에게 ‘팥죽을 줄 테니 장자의 명분을 오늘 내게 팔라’고 요청합니다. 장자의 명분은 이스라엘 사회에서 매우 중요한 것입니다.
그런데 에서는 너무나도 쉽게 대답합니다. “내가 죽게 되었으니 이 장자의 명분이 내게 무엇이 유익하리요.” 사실 배가 고픈 것이 얼마나 죽을 만큼 힘들었는지 모르겠지만, 정황으로 볼 때, 에서가 말하는 ‘죽게 되었다’는 의미는 그렇게 심각한 상황은 아니었을 겁니다. 그런데 에서는 장자라는 직분을 너무나 가볍게 생각합니다. 이 일로 인해서 앞으로 엄청난 일이 벌어진다는 것을 깨닫지 못합니다.
오늘 우리가 살아가는 이 세상에도 각자에게 주어진 삶의 직분이 있습니다. 내가 원해서 하고 있는 일도 있겠지만, ‘장자’처럼 각자에게 주어진 몫이 있을 겁니다. 가정에서도, 사회에서도, 교회에서도... 하나님은 우리에게 그 역할을 주셨을 때, 분명한 이유가 있을 겁니다. 나를 부르시고, 그 일을 맡겨주신 것이 우연이 아니라, 하나님의 계획이 있다고 믿는 것이 신앙입니다. 아무리 적은 일이라도, 그 일을 충성되게 행하는 것이 나를 이 땅에 보내신 분의 뜻인 줄 믿습니다. 오늘 그 일을 멋지고, 신나게 이루어 봅시다!

 
  
   
 

예수 안에 있는 자는 살리심을 받은 자

사실 우리 인간은 이미 허물과 죄로 죽었던 자였다.
그런데 하나님께서 우리를 살려주신 것이다.
모든 의욕을 상실해버리면 삶 자체가 벌써
죽음의 길을 헤매고 있는 것이다.
오늘 우리는 살았는데 왜 죽은 자같이 사는가?
죽은 자같이 살지 말고 산 자같이 살아야 된다.
더구나 예수 안에 있는 자는 살리심을 받은 자이다.
예수 안에서 구원을, 영생을 받은 자이다.
예수 안에서 얻은 자이다.
우리는 예수 안에서
하나님의 영원한 세계를 보장받은 자인 줄 믿으시기 바란다.
-피종진 목사의 ‘여호와께로 돌아가자’에서-

 
   
 
  
 


어려움이 있어도
마음고생이 있어도 여호와께로 돌아가서
그 짐을 다 풀어놓고 하나님 앞에 은혜를 입어야합니다.
우리의 짐을 피할 수는 없습니다.
주님께서도 ‘수고하고 무거운 짐 진 자들’이라고 인정을 했습니다.
우리는 모든 것을 주님께 맡겨야 합니다(잠 16:3).
어떤 분은 같은 짐을 지고 살면서도 천하 태평합니다.
걱정이 하나도 없습니다.
그런데 어떤 분은 얼굴이 벌써 죽을 상(像)입니다.
우리 하나님은 살리는 영이십니다. 주 안에는 생명이 있습니다.
“주의 약속은 어떤 이의 더디다고 생각하는 것같이 더딘 것이 아니라
오직 너희를 대하여 오래 참으사 아무도 멸망치 않고
다 회개하기에 이르기를 원하시느니라.”(벧후3:9) 고 말씀했습니다.
하나님은 한사람이라도 멸망 받는 것을 원치 않으십니다.

 
   
    
 

마태복음 10:31

 

두려워하지 말라 너희는 많은 참새보다 귀하니라
So don't be afraid; you are worth more than many sparrows.

 
    
 
  
 비젼교회 윤여재 목사
 믿음은 들어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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