鶴山의 草幕舍廊房

Faith - Hymn

다시는 욕을 당치 않으리라 외 1

鶴山 徐 仁 2017. 2. 2. 22:10
2월 2일 (목)
다시는 욕을 당치 않으리라 (요엘 2:18-24)
  
 

18. 그 때에 여호와께서 자기의 땅을 극진히 사랑하시어 그의 백성을 불쌍히 여기실 것이라
19. 여호와께서 그들에게 응답하여 이르시기를 내가 너희에게 곡식과 새 포도주와 기름을 주리니 너희가 이로 말미암아 흡족하리라 내가 다시는 너희가 나라들 가운데에서 욕을 당하지 않게 할 것이며
20. 내가 북쪽 군대를 너희에게서 멀리 떠나게 하여 메마르고 적막한 땅으로 쫓아내리니 그 앞의 부대는 동해로, 그 뒤의 부대는 서해로 들어갈 것이라 상한 냄새가 일어나고 악취가 오르리니 이는 큰 일을 행하였음이니라 하시리라
21. 땅이여 두려워하지 말고 기뻐하며 즐거워할지어다 여호와께서 큰 일을 행하셨음이로다
22. 들짐승들아 두려워하지 말지어다 들의 풀이 싹이 나며 나무가 열매를 맺으며 무화과나무와 포도나무가 다 힘을 내는도다
23. 시온의 자녀들아 너희는 너희 하나님 여호와로 말미암아 기뻐하며 즐거워할지어다 그가 너희를 위하여 비를 내리시되 이른 비를 너희에게 적당하게 주시리니 이른 비와 늦은 비가 예전과 같을 것이라
24. 마당에는 밀이 가득하고 독에는 새 포도주와 기름이 넘치리로다

 
  
  
 

<그때에>(18절)란 이스라엘이 <시온에서 나팔을 불어 거룩한 금식일을 정하고>(15절) 회개한 때, 여호와께 부르짖어 돌아온 때를 가리킵니다. 그렇습니다. 반드시 돌아와야만, 회개해야만 비로소 회복이 시작되고, <여호와께서 그의 백성을 사랑하시고 불쌍히 여기실 것이라>(18절)고 합니다. <그들에게 응답하사 새 포도주와 기름을 흡족히 주실 것이고, 다시는 다른 나라들 가운데서 욕을 당하지 않게 하실 것>(19절)이라고 합니다. 그 뿐 아닙니다. <내가 북쪽 군대, 즉 앗수르와 바벨론을 메마르고 적막한 땅으로 쫓아내시리라>(20절)고도 하십니다. 그러므로 <땅이여 두려워하지 말고 기뻐하며 즐거워 할지어다 여호와께서 큰 일을 행하셨음이로라>(21절), 그러셨습니다. <그가 너희를 위하여 비를 내리시되 이른 비 늦은 비를 적당히 주사>(23절) <마당에는 밀이 가득하고 독에는 새 포도주와 기름이 넘치게 하시리라>(24절)고 하십니다.

이게 바로 회개하고 여호와께로 돌아오는 자에게 약속하신 하나님의 축복입니다. 누가복음 15장의 돌아 온 탕자의 비유와도 같습니다. <아들이 이르되 아버지 내가 하늘과 아버지께 죄를 지었사오니 지금부터는 아버지의 아들이라 일컬음을 감당하지 못하겠나이다 하나 아버지는 종들에게 이르되 제일 좋은 옷을 내어다가 입히고 손에 가락지를 끼우고 발에 신을 신기라 그리고 살진 송아지를 끌어다가 잡으라 우리가 먹고 즐기자 이 내 아들은 죽었다가 다시 살아났으며 내가 잃었다가 다시 얻었노라 하니 그들이 즐거워하더라>(21-24절). <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이와 같이 죄인 한 사람이 회개하면 하늘에서는 회개할 것 없는 의인 아흔아홉으로 말미암아 기뻐하는 것보다 더하리라>(눅 15:7). 이는 의인이 덜 귀하다나는 뜻이 아니라 죄인의 회개를 최상급으로 강조하기 위한 표현입니다. 하나님은 이토록 죄인들의 회개를 바라시고, 집 나간 자식이 돌아오기를 고대하고 계신다는 것입니다. 새해에는 회개의 결단에 더욱 용감합시다. 아버지께로 돌아가는 결심을 미루거나 지체하지 맙시다.

 
  
  
 

-금식하며 회개한 자에게 약속하신 축복들을 다시 한 번 정리해 보십시오.
-<이른 비와 늦은 비>(23절)는 여호와의 충만한 은혜를 상징합니다. 어째서 그럴까요?
-하나님이 의인 아흔아홉보다 죄인 한 사람이 회개하는 것을 더 기뻐하시는 이유가 무엇일까요?

 
  
  
 

주님, 이스라엘 백성이 시온에서 나팔을 불어 금식일을 선포하고 회개하면, 그래서 하나님께로 돌아오면 하나님이 자기의 백성을 극진히 사랑하사 그들을 불쌍히 여기시고 은혜와 축복을 베푸시되 곡식과 새 포도주와 기름을 흡족히 주신다고 했습니다. 다시는 남에게 욕을 당하지 않게 하신다고 했습니다. 적들을 다 쫓아내고 이른 비와 늦은 비를 적당하게 주사 복되게 하신다고 했습니다. 저희로 하여금 회개의 복, 다시금 돌아온 자가 누리게 될 축복이 어떤 것인지를 깨닫게 하사 더 이상 지체하거나 회개를 미루는 어리석음을 범하지 않게 해주시옵소서.

 
  
   
 

하나님께 돌아와야 선을 행할 수 있게 된다

무엇이 선이고 무엇이 악인지 아는 게 선을 이루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 돌아와야 비난했던 악에서 벗어나 선을 행할 수 있게 된다.
악한 자를 심판하고 정죄하고 격리하고 벌하고
선을 소리 높여 외치고 고백한다고 해서 되는 게 아니라,
하나님께 돌아와야 선을 행할 수 있게 되고,
비로소 악을 정죄하던 자리에서
자신의 선함으로 인하여 둘을 대비시킬 수 있게 된다.
그게 신자들의 현실의 책임이다.

-박영선 목사의 ‘다시 보는 로마서’에서-

 
   
 
  
 


선함이란 우열을 구별하고 옳고 그른 것을 찾는 것이 아니라,
인간이라는 존재의 가치가 뭔가? 얼마나 아름다운가? 를
세상 앞에 보일 수 있게 하는 것입니다.
`우린 그런 것 안 해!` 그 걸로는 너무나 가난한 것입니다.
`우린 도둑질 안 해, 우린 살인 안 해`
그렇게 해서는 우리는 아무것도 아닌 것입니다.
저들이 사망에 불과할 때 우리는 생명이고,
저들이 다만 싸울 때 우리는 사랑이기에
다른 것임을, 말할 수 있는 것입니다.
그것이 복음이 우리에게 전하는 주제이며
죽은 자리에서 생명과 생명의 위대함으로 가는 그 열쇠이며
그 약속이며 그 내용인 것입니다.

 
   
    
 

항해

 

우리의 구원의 선장되신 예수님
우리를 진리로 이끌어주시는 예수님
다음세대가 그 말씀의 바다로 깊이있게
나아가길 기도합니다.

 
    
 
  
 FIM국제선교회 유해석 선교사
 5분칼럼(유해석선교사)
  
  



2월 1일 (수)
당신은 영적인 것에 관심을 가지고 있습니까? (시편 63:1-7)
  
 

1. 하나님이여 주는 나의 하나님이시라 내가 간절히 주를 찾되 물이 없어 마르고 황폐한 땅에서 내 영혼이 주를 갈망하며 내 육체가 주를 앙모하나이다
2. 내가 주의 권능과 영광을 보기 위하여 이와 같이 성소에서 주를 바라보았나이다
3. 주의 인자하심이 생명보다 나으므로 내 입술이 주를 찬양할 것이라
4. 이러므로 나의 평생에 주를 송축하며 주의 이름으로 말미암아 나의 손을 들리이다
5. 골수와 기름진 것을 먹음과 같이 나의 영혼이 만족할 것이라 나의 입이 기쁜 입술로 주를 찬송하되
6. 내가 나의 침상에서 주를 기억하며 새벽에 주의 말씀을 작은 소리로 읊조릴 때에 하오리니
7. 주는 나의 도움이 되셨음이라 내가 주의 날개 그늘에서 즐겁게 부르리이다

 
  
  
 

우리 안에 정말 영적인 일에 대한 갈망이 있으십니까? 우리가 예배를 드리고 성경공부를 하고 제자양육을 하는 것이 영적인 것을 추구하는 것과 다를 수 있다는 사실을 기억해야 합니다. 내가 예배를 드리고 열심히 기도하고 있다고 내가 영적인 일에 대한 열망이 있는 것이라고 착각하는 사람들이 있다면 오늘 말씀을 통해 우리 자신을 돌아보기 원합니다.
오늘 시편은 다윗이 광야에서 쓴 시편입니다. 광야에서는 정말 구할 것이 많습니다. 먹을 것도 필요하고 추위를 피할 곳도 필요하고 살아가야할 곳도 필요합니다. 그런데 다윗은 오늘 주님을 갈망합니다. 먹을 것을 위해서가 아니라, 추위를 피할 곳을 얻기 위해서가 아니라 주님 자체를 갈망합니다. 다윗의 기도는 온통 주님을 찾는 기도입니다.
우리의 갈망은 우리의 자녀이거나 나의 사업일 때가 대부분인데 다윗은 광야에서 자신의 평안을 위해서 기도하지 않습니다. 주님을 목마름으로 애타게 찾는 기도를 드립니다. “하나님이 함께 하시지 않으면 내가 살아갈 힘이 없습니다.”라고 기도하는 것입니다. 다윗도 문제를 해결시켜 달라는 기도를 하지만 다윗의 기도의 이면에는 주님을 찾는 기도가 있었다는 사실을 기억해야 합니다.
다윗처럼 밤새워가며 주님을 찾았던 경험이 있으십니까? 나의 인생의 문제를 위해서는 고민하고 밤을 지새우는데, 정작 주님을 위해서 그렇게 하신 적이 있으십니까? 다윗은 어떻게 이렇게 고백할 수 있었을까? 다윗은 세상의 어떤 것도 자신의 만족을 채울 수 없다는 사실을 알고 있었습니다. 그리스도인과 그리스도인이 아닌 사람을 나누는 기준은 그 사람이 영적인 것에 관심을 가지고 있느냐 입니다. 아무리 교회를 몇 십년 다녔다고 하더라도 영적인 일에 관심이 없다면 그 사람은 그리스도인이 아닙니다.
그리스도인이란 영적인 눈이 열린 사람입니다. 세상의 것을 바라보며 그 가운데 하나님이 주시는 영적인 의미를 발견할 줄 아는 것이 영적인 눈이 열리 사람입니다. 영적인 것을 세상을 이길 수 있는 도구 정도로 생각한다면 그 사람은 영적인 사람이 아닙니다. 하나님의 임재하심은 그 정도 수준의 것이 아닙니다. 성경을 우리들에게 말합니다. 하나님의 임재는 모든 것을 바꿀 수 있는 능력이라고 말합니다.
우리는 기도가 호흡이라고 말합니다. 그런데 다윗처럼 기도가 끊어지면 호흡이 끊어지는 것처럼 그렇게 애통하며 주님을 찾고 있는지... 이제 주님을 찾는 열정을 회복하기를 원합니다. 다윗처럼 주님을 찾고 주님을 만나며 주님 안에 거하는 것이 유일한 우리의 기도제목이 되기를 소망합니다.

 
  
  
 

- 실제로는 하나님을 찾지 않고 있으면서 예배나 기도 같은 종교적 행위를 하는 것으로 신앙생활의 만족을 느끼고 있는 부분이 있는지 점검하기를 원합니다.

 
  
  
 

주님! 내가 다시 주님 앞에 가난한 자로 서기 원합니다. 마치 모든 것을 이룬 것처럼 부요한 자로 하나님 앞에 서 있는 교만함을 없애 주시고, 다윗처럼 주님이 없이는 나의 인생은 껍데기일 뿐임을 인정하고 다시 주님을 애타게 찾는 자리를 회복하기 원합니다.

 
  
   
 

“그를 힘입어” 새로운 존재로

인간은 세속적인 욕망을 이루고
불안을 해소해야만 살 수 있는 존재가 아니다.
인간은 그 이상의 존재이다.
욕망보다는 삶의 대의(大義)나 하나님의 소명이나
궁극적 가치에 헌신하는 것이 인간이기도 하며,
그 과정에서 엄습하는 불안과 두려움에도 불구하고
묵묵히 갈 길을 가는 존재가 인간이기도 한 것이다.
이렇게 살아가는 사람들에게 하나님이란 소원성취를 빌며
사람들이 바치는 제물을 기다리는 그런 존재가 아니다.
하나님은 장애물들을 기적처럼 없애주시는 분이 아니다.
그런 장애물들을 극복할 수 있는 힘을 주시는 분이시다.
그러기에 인간은 그런 하나님을 힘입어
하나님의 대의와 소명과 가치를 끊임없이 추구해야하며,
그 과정에서 쓰러졌다가도 다시 일어나
자신이 걸어야 할 길을 묵묵히 걸어가야 한다.

-이 민재 목사의 ‘그를 힘입어 살며...’에서-

 
   
 
  
 


우리의 종교심이 왜곡되거나 곁길로 새면 안 됩니다.
욕망을 이뤄줄 우상을 만들거나 두려움을 해소해줄 우상을
숭배하는 쪽으로 빠져도 안 됩니다.
진정한 하나님을 “더듬어 찾아 발견하는 것”으로 나아가야 합니다.
바울은 ‘우리가 그를 힘입어 살며 기동하며 존재하느니라’ 라고 했습니다.
삶의 문제 앞에서 하나님을 힘입어 살아가십시오.
최상의 가치를 찾을 수 있게 해달라고 기도하면서
의연하고 늠름하게 살아가십시오.
장애물 앞에서는 무기력하게 주저앉을 것이 아니라
하나님을 힘입어 주어진 사명을 향해 힘차게 기동한다면.
이때 우리 역시 “그를 힘입어” 새로운 존재로 빚어질 것입니다.

 
   
    
 

참 좋은 친구

 

예수님 보다 좋은 친구가 어디 있나요.
우리의 마음을 알고,
기꺼이 함께 해주는 가장 좋은 친구

-김종석 작가

 
    
 
  
 김옥엽 시인
 땅의 유산, 영원한 유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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