鶴山의 草幕舍廊房

Faith - Hymn

하나님을 앞에서의 삶 외 1

鶴山 徐 仁 2017. 1. 30. 16:03
1월 30일 (월)
하나님을 앞에서의 삶 (잠언 22: 1-5 )
  
 

1. 많은 재물보다 명예를 택할 것이요 은이나 금보다 은총을 더욱 택할 것이니라
2. 가난한 자와 부한 자가 함께 살거니와 그 모두를 지으신 이는 여호와시니라
3. 슬기로운 자는 재앙을 보면 숨어 피하여도 어리석은 자는 나가다가 해를 받느니라
4. 겸손과 여호와를 경외함의 보상은 재물과 영광과 생명이니라
5. 패역한 자의 길에는 가시와 올무가 있거니와 영혼을 지키는 자는 이를 멀리 하느니라

 
  
  
 

구정 명절입니다. 새해를 어떻게 시작해야 할까요? 새 마음으로 시작해야 합니다. 하나님 앞에서 새로운 기도제목을 정리하고, 약속의 말씀을 붙잡고 다 지키지 못해도 도전해야 합니다. 특히 주일을 성수하고 예배에 성실하게 참석해야 합니다. 예배는 하나님의 존재를 믿는 자만이 가능한 것이고, 살아계신 하나님과의 만남의 시간이기에 가치 있는 시간입니다. 신앙인의 예배드리는 행위는 하나님만이 창조주이시며, 내 삶의 주인이시고, 나의 섬김의 유일한 대상이라는 신앙 고백적 간증의 의미를 지니고 있습니다. 하나님을 인정한다고 하면서 예배드리지 않는 것은 거짓말입니다. 예배가 중요한 것은 여호와 하나님을 경외하는 최고의 행위이기 때문입니다.
신앙인에게 예배만큼 소중한 것은 없기에 예배에 집중하고 목숨을 걸어야 합니다. 예배는 축복과 저주의 지름길임을 가인의 예배를 통해 보여주고 있습니다(창4장). 하나님은 인간을 예배자로 창조하셨고, 예배자로 부르셨습니다. 먼저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예배자가 되고 자녀들에게도 예배신앙을 가르치고 정립시켜야 합니다.
본문 말씀은 현대를 살아가는 우리에게 중요한 말씀입니다. 왜냐면 뭐가 중요한 것인지를 확실하게 밝혀주고 있습니다(1). 물질보다 명예가 중요하고, 은금 재물보다 하나님의 은총이 더 중요한데 이런 정리를 못하고, 사람들은 하나님의 은총보다 명예와 쾌락과 오직 돈 재물에 집착하고 있습니다. 오늘날 세속화와 맘몬사상은 교회 공동체와 신앙인을 타락시키고 있습니다. 돈되는 일이라면 윤리와 도덕과 상식도 무시하고 행하는 세상입니다. 가난한 것은 죄가 아니며 저주도 아닙니다. 열심을 다하지 못한 것이 잘못이지, 깨끗하게 살면서 가난한 것은 은혜입니다. 정직하지 못하고 수단 방법을 다 동원하여 부자가 되었다면 그것은 축복이 아닙니다. 깨끗한 부자로 청지기의 사명 다하며, 하나님 앞에서 슬기롭게 살아가야 합니다(2-3). 어리석은 자는 이것을 구분 못하고 나아가다가 해를 당하게 됩니다.
한해를 어떻게 살아가야 하나요? 하나님과 사람 앞에 겸손해야 합니다(4). 모든 것은 은혜로 생각해야 합니다. 자기 잘났다고 생각하지 말고 겸손히 주의 은혜를 구해야 합니다. 하나님은 겸손한 자에게 은혜를 주십니다. 그리고 여호와를 경외하는 삶을 살아야 합니다. 그러면 3가지의 축복을 약속하고 있습니다. 먼저, 재물로 여기에서 말하는 재물은 행복, 번영, 부귀의 뜻으로 물질적으로 크게 번성한다는 것입니다(시편112:1-3). 다음은 영광으로 영광이란 많은 사람들에게 알려지도록 이름이 빛나는 것을 의미합니다. 누구에게나 주님을 겸손히 잘 섬기고 경외함으로 이런 영광스러운 은혜가 임하게 됩니다. 마지막은 생명으로 여기서의 생명은 두 가지 뜻이 있습니다. 하나는 이 땅에 살아가는 동안 육신적으로 강건하게 살아가고, 기력이 쇠하지 않는 삶을 살아가는 것입니다. 다른 하나는 내세에 하나님의 나라에서 영생하는 것을 가리킵니다. 하나님을 경외하며 사는 자에게 이와 같은 복을 주실 것을 약속하셨습니다.

 
  
  
 

- 지금까지 나의 예배의 자세는 어떠했는지 살피고, 예배의 승리자로 살기위해 다짐합시다.
- 나의 물질관은 어떤지요? 물질의 종이 아닌 지배하는 청지기로 살기로 결단하고 기도합시다.
- 나와 내 가족들이 겸손함을 유지하고, 주님을 경외함으로 약속의 복을 누리도록 중보기도하세요.

 
  
  
 

좋으신 하나님, 돌아보니 모든 것이 주의 은혜임을 고백합니다. 이 한해도 주님께 맡기오니 선한 목자가 되시어 인도하여 주옵소서. 올해는 정말 주님을 경외하는 삶을 살기 원합니다. 예배에 집중하게 하시고 겸손함으로 주신 직분과 사명 다함으로 충성된 종으로 살게 하옵소서.

 
  
   
 

광풍 앞에서 하나님의 음성을

사람들은 사업이 만신창이가 되어 내려앉았을 때,
무서운 질병에 걸려 소망이 사라졌을 때,
비로소 하나님이 살려주시면 이런 사람이 되겠다고 다짐한다.
복음을 위하여 살겠다는 기도를 드린다.
꼭 위기를 만나야 인생의 제자리를 찾으려 고민한다는 말이다.
그러나 평소에 자신의 자리를 찾은 사람들은
위기 때 그런 기도를 드릴 필요가 없다.
주님을 위해 살겠다고 눈물을 흘리며 재차 다짐할 필요가 없다.
이미 그는 하나님이 원하시는 길을 찾았고, 그 길을 향해 가고 있으니
광풍 따위야 하나님의 손에 맡겨진 작은 문제일 뿐이다.
광풍 앞에서 도리어 하나님의 음성을 듣는다.
상황이 최악이라 해도 그 앞에서 하나님의 음성을 듣는다.
그리고 하나님께서 역사하실 크고 놀라운 일을 기대한다.

-한근수 목사의 ‘광풍 앞에 선 바울처럼’에서-

 
   
 
  
 


광풍 앞에 서보면 신자들이 하나님 앞에서 제대로 살고 있는지,
아니면 자기 마음대로 살았는지 알 수 있습니다.
광풍 앞에서 두려움에 휘말리는 사람들은 광풍이 무섭습니다.
이대로 인생이 끝나버릴 것 같은 고민에 빠집니다.
하지만 광풍을 두려워하지 않는 신자는
이 일로 인하여 더 빨리 가는 은혜를 체험하게 될 것입니다.
광풍 속에서 도리어 하나님의 음성을 듣는
준비된 신자가 되십시오.
하나님은 고난을 통하여 우리를 더 빨리
더 온전한 모습으로 인도하실 것입니다.

 
   
    
 

항상 기뻐하라

 

우리에게 소망이 있음은
우리에게 주신 약속 때문입니다.
믿음의 선배들이 그 길을 걸어갔기 때문입니다.

-변정희 작가

 
    
 
  
 주신장로교회 황요한 목사
 송곳의 뾰쪽한 끝 은결국 자기를 뚫고 나온다
  
  



1월 28일 (토)
옷을 찢지 말고 마음을 찢으라 (요엘 2:12-17)
  
 

12. 여호와의 말씀에 너희는 이제라도 금식하고 울며 애통하고 마음을 다하여 내게로 돌아오라 하셨나니
13. 너희는 옷을 찢지 말고 마음을 찢고 너희 하나님 여호와께로 돌아올지어다 그는 은혜로우시며 자비로우시며 노하기를 더디하시며 인애가 크시사 뜻을 돌이켜 재앙을 내리지 아니하시나니
14. 주께서 혹시 마음과 뜻을 돌이키시고 그 뒤에 복을 내리사 너희 하나님 여호와께 소제와 전제를 드리게 하지 아니하실는지 누가 알겠느냐
15. 너희는 시온에서 나팔을 불어 거룩한 금식일을 정하고 성회를 소집하라
16. 백성을 모아 그 모임을 거룩하게 하고 장로들을 모으며 어린이와 젖 먹는 자를 모으며 신랑을 그 방에서 나오게 하며 신부도 그 신방에서 나오게 하고
17. 여호와를 섬기는 제사장들은 낭실과 제단 사이에서 울며 이르기를 여호와여 주의 백성을 불쌍히 여기소서 주의 기업을 욕되게 하여 나라들로 그들을 관할하지 못하게 하옵소서 어찌하여 이방인으로 그들의 하나님이 어디 있느냐 말하게 하겠나이까 할지어다

 
  
  
 

설날 아침입니다. 모쪼록 행복한 설 연휴 되시길 빕니다. 올 설은 이래저래 많은 아픔과 우려로 몹시 가라앉은 분위기에서 맞았지만 그래도 지난 어느 해 설보다 복되고 강건하시길 진심으로 바라마지 않습니다.

본문은 여전히 <이제라도 금식하고 울며 애통하고 마음을 다하여 여호와께로 돌아오라>(12절)고 합니다. 그런데 이 때 가장 중요한 것은 <옷을 찢지 않고 마음을 찢는 것>(13절)입니다. <옷을 찢는 것>은 무서운 재앙이나 극심한 재난이 닥쳤을 때 이스라엘이 행했던 전통적이고도 관습적인 행위였습니다(창 37:29-35). 본래 마음을 찢는다는 의미의 상징적인 표현이었지만 나중에는 그런 의미를 상실하고 위선적이고도 습관적인 의미로 퇴색되자 요엘 선지자가 여기서 다시 내적인 심령의 통회를 요청하고 나선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신앙적인 감정을 표현하는 여러 외적 표시들은 자칫 가식적일 때가 많습니다. 의외로 사람들은 의식들을 좋아하고, 누구나 그것으로 신앙생활을 떼우려 합니다. 그러나 옷을 찢는 것과 같은 외적인 종교의식들은 우리의 눈과 귀만 즐겁게 하고 안도하게 할 뿐 궁극적으로는 우리를 기만하는 것에 불과합니다. 참 경건을 떠난 모든 형식이나 의식은 헛된 것입니다. 중심을 드리지 않고 의식만 드리는 예배, 마음을 찢지 않고 옷만 찢는 회개는 가증한 것입니다. 그것으로 곧 자기 할 일을 다 했다고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의식이란 성도들의 마음속 깊은 곳에서 역사하시는 성령에 의해 고백되는 진실한 신앙의 표현이어야 합니다. 마음을 찢으라는 것은 성령에 의해 체험되는 엄숙하고도 은밀한 슬픔을 말합니다. 어떻게 대리석 만큼이나 단단한 우리의 마음을 마치 옷을 찢듯 찢을 수 있을까요? 어떻게 강퍅한 우리의 마음이 금식하며 애통할 수 있을까요? <은혜로우시며 자비하시며 노하기를 더디하시며 인애가 크신>(13절) 하나님이 역사하시면 얼마든지 우리가 변할 수 있고, 또 새로워질 수 있음을 믿읍시다. 부디 정월 초하루인 이 설날 아침부터 옷이 아니라 마음을 찢으므로 새 출발하는 복된 성도들 되시길 진심으로 기원합니다.

 
  
  
 

-설날 아침 당신은 하나님 앞에서 무슨 다짐을 새롭게 하셨습니까?
-당신은 혹 각종 종교적 의식으로 신앙생활을 대신하고 있지는 않습니까?
-당신은 옷이 아니라 마음을 찢으며 하나님 앞에서 통회하신 적이 있습니까?

 
  
  
 

주님, 여호와의 날이 임박한 그 최후의 순간에도 하나님은 <이제라도 금식하고 울며 애통하라 마음을 다하여 내게로 돌아오라>(12절)고 호소하셨습니다. 옷을 찢지 않고 마음을 찢으며 회개하면 하나님은 은혜로우시고 자비로우시고 노하기를 더디하사 그 뜻을 돌이켜 재앙을 면케 하시리라고 하셨습니다. 그러므로 지금이라도 나팔을 불어 금식일을 선포하고 성회를 소집하라고 당부하셨습니다. 오늘 이 말씀이 저희에게도 큰 깨달음과 결단과 구원의 나팔 소리가 되게 해 주시옵소서.

 
  
   
 

그러나 지금 비록 그러하다 해도

가난한 사람은 가난만 극복된다면 바로 살겠다고 말한다.
환자는 건강만 회복된다면 사람답게 살아보겠다고 한다.
사업가는 일이 성공한다면 멋있게 살아보겠다고 다짐한다.
현재 내 눈 앞에 부딪힌 불행만 극복된다면
만사를 멋지게 풀어갈 것이라고 생각들을 한다.
하지만 만일 그 환경이 불행하게도 바꾸어지지 않는다면,
그래도 언제까지 그렇게 말하겠는가?
아니다. 그리스도인의 삶은 가난할 때에도 바로 사는 것이며,
병약할 때에도 사람답게 사는 것이며,
사업이 어려울 때에도 멋있게 살아가야 한다.
현재 내 눈 앞에 닥친 불행이 제거되지 않을지라도
인생을 멋지게 풀어가야 한다.
그래야 어떤 환경에도 속박당하지 않는 진정한 자유자가 될 것이다.

-한근수 목사의 ‘광풍 앞에 선 바울처럼’에서-

 
   
 
  
 


사람들은 지금 불행하기 때문에,
지금 형편이 어렵기 때문에, 지금 때가 아니기 때문에
아무 것도 할 수 없다고 말합니다.
그러나 지금 자신이 비록 그러하다 해도
중심은 흔들리지 말아야 하며 할 일은 해 나가야 합니다.
인생의 폭풍 앞에서도 용기를 잃지 않는 사람이 되어야 합니다.
감옥에서도 하나님의 사랑을 생각하며 위기와 고통을 극복한 것처럼,
신자가 사는 삶의 방법을 배우십시오.
어떤 환경에서도 마음의 자유를 빼앗기지 않는
멋진 믿음의 사람이 되시려면.

 
   
    
 

복이 있도다

 

여호와를 경외하며 그의 길을 걷는 자마다
복이 있도다 (시편 128:1)
우리의 다음세대가 하나님을 아는 복을
풍성히 누리길 기도합니다.

-변정희 작가

 
    
 
  
 믿음은 듣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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