鶴山의 草幕舍廊房

Faith - Hymn

당신은 어떤 그릇이라고 생각하십니까? 외 2

鶴山 徐 仁 2016. 12. 21. 17:30
12월 21일 (수)
당신은 어떤 그릇이라고 생각하십니까?(디모데후서 2:20-26)
  
 

20. 큰 집에는 금 그릇과 은 그릇뿐 아니라 나무 그릇과 질그릇도 있어 귀하게 쓰는 것도 있고 천하게 쓰는 것도 있나니
21. 그러므로 누구든지 이런 것에서 자기를 깨끗하게 하면 귀히 쓰는 그릇이 되어 거룩하고 주인의 쓰심에 합당하며 모든 선한 일에 준비함이 되리라
22. 또한 너는 청년의 정욕을 피하고 주를 깨끗한 마음으로 부르는 자들과 함께 의와 믿음과 사랑과 화평을 따르라
23. 어리석고 무식한 변론을 버리라 이에서 다툼이 나는 줄 앎이라
24. 주의 종은 마땅히 다투지 아니하고 모든 사람에 대하여 온유하며 가르치기를 잘하며 참으며
25. 거역하는 자를 온유함으로 훈계할지니 혹 하나님이 그들에게 회개함을 주사 진리를 알게 하실까 하며
26. 그들로 깨어 마귀의 올무에서 벗어나 하나님께 사로잡힌 바 되어 그 뜻을 따르게 하실까 함이라

 
  
  
 

지금 우리 사회는 혼란을 겪고 있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나라의 큰 위기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우리가 이 모든 과정가운데 근본적으로 잊지 말아야 할 것은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것은 싸움과 미움이 아니라 기도와 화해라는 사실입니다.
지금 최순실 딸 정유라의 글이 화재입니다.
“능력없으면 너희 부모를 원망해라.... 돈도 실력이다.”
그녀의 말은 세상에 어떤 가치관이 팽배한지를 보여주고 있습니다. 우리는 조금만 누리고 가지면 다른 사람에 대해서 함부로 말합니다. 다시 “금수저, 은수저, 흙수저” 논란이 재현되고 있습니다.
바울의 시대에도 이런 일들이 있었던 것을 보게 됩니다. 표현이 참 비슷합니다. 바울이 “금그릇, 은그릇, 나무그릇, 질그릇”으로 비유하는 것을 보면, 당시에도 어떤 사람은 금그릇 같은 사람, 어떤 사람은 은그릇 같은 사람, 어떤 사람은 질그릇 같은 사람이라는 평가가 있었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당시의 바리새인들과, 종교 지도자들은 새리와 창녀들의 신앙을 무시합니다. 그들의 드리는 헌금도 그들의 드리는 기도도 자신들의 비하면 너무 하찮은 것이라고 비웃습니다. 사람의 외형적인 모습을 보면 판단했습니다.
이에 대해 사도바울은 중요한 것은 금그릇이냐, 질그릇이냐가 아니라 저마다 하나님이 주신 모습이 하나님께 어떻게 사용되느냐가 중요하다고 말합니다. 좋은 그릇과 나쁜 그릇의 기준은 금으로 만들었나? 은으로 만들었나가 아니라 깨끗한가? 그렇지 않은가에 있다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주인이 그릇을 사용하고자 할 때 중요한 것은 ‘깨끗한가?’ 이기 때문입니다. 그릇이 깨끗하다는 의미는 ‘하나님을 믿는다’는 말이며 ‘늘 겸손하다’는 말입니다. 우리는 하나님이 쓰시기에 합당한 깨끗한 그릇이 되어야 합니다.
깨끗한 그릇이 준비되었다면 중요한 것은 거기에 무엇을 담느냐 입니다. 질그릇이라도 그 안에 보물을 담는다면 그것은 가장 귀한 가치를 가진 그릇이 됩니다. 우리 안에 예수 그리스도가 있다면 우리는 어떤 모습이든 가장 존귀한 사람입니다. 이것이 하나님의 관점입니다. 하나님은 우리의 겉모습이 아닌 그 안에 보물이 있는가를 보십니다. 그러므로 우리 안에 주님을 담기 위해 비워야 할 것이 무엇인지를 봐야 합니다.
우리가 세상의 기준이 아닌 하나님의 기준을 따라 우리를 깨끗하게 하며, 주님을 담기 위해 비우고, 그 안에 주님을 담는 그리스도인 되기를 바랍니다.

 
  
  
 

- 내 그릇을 깨끗하지 못하게 하는 불평과 교만이 있다면 회개하기 원합니다.
- 내 안에 주님을 담기 위해 먼저 비워야 할 것이 무엇인지 알게 되기를 원합니다.

 
  
  
 

주님! 나의 신세를 한탄하며 하나님을 원망하는 것이 정작 나의 그릇을 더럽게 만드는 것임을 알게 하여 주시옵소서. 주님이 나에게 주신 삶을 감사로 여기며 깨끗이 하여 주님이 기뻐 사용하시는 그릇이 되기를 원합니다. 나를 사용하여 주시옵소서.

 
  
   
 

우리 영혼의 배를 든든하게

우리는 밥 문제를 통해서 우리의 배만 채우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을 만납니다.
우리의 밥을 채우시는 하나님에 대한 믿음이,
우리 영혼의 배를 든든하게 하기 때문입니다.
밥을 먹는 방식을 통해서 우리는 절제와 나눔과 쉼을 배웁니다.
이 절제와 나눔과 쉼이 우리 영혼의 양식이 됩니다.
밥을 먹듯이, 우리는 영혼의 양식을 먹어야 합니다.
물질보다 우리 영혼이 너무나 크고
탐욕은 우리 영혼을 채우기에는 허망하기 때문에
우주보다 크신 하나님으로 채워야 합니다.
-이종철 목사의 ‘하늘 양식이 비같이’에서-

 
   
 
  
 


현대인들의 육신은 살이 쪘지만 영혼은 말라 있습니다.
말씀의 기근입니다.
서구인들이 불교나 명상에 심취하고 인도나 동양의 가난한 나라까지
찾아가는 이유는 영성의 고갈 때문입니다.
영성은 곧 하나님 체험입니다.
인간의 영혼에는 빈 공간이 있습니다.
이 공간을 하나님으로 채우기 전까지는
아무리 물질로 채워도 만족이 없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으로 영혼을 채우십시오.
말씀은 우리의 영을 배부르게 하는 가장 중요한 양식입니다.

 
   
    
 

고백

 

너희는 나를 누구라 하느냐
주는 그리스도시요,
살아계신 하나님의 아들이십니다.
“예, 우리가 믿습니다.
주님. 주님의 교회를 세워주십시오”

-강대연 작가

 
    
 
  
 서울이태원교회 지성호 목사
 하나님을 경외하는 것이 지혜다
  
  



12월 20일 (화)
아름다운 사람으로 살아가기 (빌립보서 1:1-11)
  
 

19. 내가 디모데를 속히 너희에게 보내기를 주 안에서 바람은 너희의 사정을 앎으로 안위를 받으려 함이니
20. 이는 뜻을 같이하여 너희 사정을 진실히 생각할 자가 이밖에 내게 없음이라
21. 그들이 다 자기 일을 구하고 그리스도 예수의 일을 구하지 아니하되
22. 디모데의 연단을 너희가 아나니 자식이 아버지에게 함같이 나와 함께 복음을 위하여 수고하였느니라
23. 그러므로 내가 내 일이 어떻게 될지를 보아서 곧 이 사람을 보내기를 바라고
24. 나도 속히 가게 될 것을 주 안에서 확신하노라
25. 그러나 에바브로디도를 너희에게 보내는 것이 필요한 줄로 생각하노니 그는 나의 형제요 함께 수고하고 함께 군사 된 자요 너희 사자로 내가 쓸 것을 돕는 자라
26. 그가 너희 무리를 간절히 사모하고 자기가 병든 것을 너희가 들은 줄을 알고 심히 근심한지라
27. 그가 병들어 죽게 되었으나 하나님이 그를 긍휼히 여기셨고 그뿐 아니라 또 나를 긍휼히 여기사 내 근심 위에 근심을 면하게 하셨느니라
28. 그러므로 내가 더욱 급히 그를 보낸 것은 너희로 그를 다시 보고 기뻐하게 하며 내 근심도 덜려 함이니라
29. 이러므로 너희가 주 안에서 모든 기쁨으로 그를 영접하고 또 이와 같은 자들을 존귀히 여기라
30. 그가 그리스도의 일을 위하여 죽기에 이르러도 자기 목숨을 돌보지 아니한 것은 나를 섬기는 너희의 일에 부족함을 채우려 함이니라

 
  
  
 

바울은 빌립보 교회에게 괜찮은 두 사람을 소개하며 추천하고 있습니다. 바로 디모데와 에바브로 디도입니다. 우리가 누구를 추천하는 것이 쉬운 것은 아닙니다. 바울이 그 만큼 신뢰했던 디모데와 디도를 생각해 보면서 우리들의 모습도 성찰하는 것도 필요할 것입니다. 세상에서 한 분야에 성공한 자는 한 사람이라도 아름다운 사람으로 살아가는 것은 누구나 가능합니다. 우리는 나의 야망과 성공을 쫓기보다 아름다운 사람이 되기를 원하면서, 외형적인 모습보다 내면적 모습에 더 집중할 때 중심을 보시는 하나님께 합한 사람이 될 줄 믿습니다.
바울의 형편은 로마 지하 감옥에 갇혀 있었지만, 그 동안 복음과 선교를 통해 성령의 열매로 세워졌던 교회 공동체를 걱정하면서 빌립보 교회의 지도자로 디모데를 먼저 추천해 주고 있습니다. 디모데를 추천했던 이유는 바울과 뜻을 같이 하고, 성도의 사정을 진실히 생각해 주고, 자기 일을 구하면서 예수 그리스도의 일과 다른 사람의 일을 구할 줄 아는 모습이 있었기 때문입니다(20-21). 또한 누구나 알만큼 적지 않는 연단을 통과했으며, 바울을 아버지같이 여기면서 복음을 위해 수고한 모습을 보게 됩니다(22). 세 대를 거쳐 신앙을 가진 디모데이지만, 많은 연단을 잘 이겨내고 자립된 신앙을 가졌습니다. 자식에게 많은 유산을 물려줘도 그것을 관리할 수 있는 능력이 없다면 재산이 오히려 독이 될 수도 있습니다. 신앙도 마찬가지입니다.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뜻대로 믿음을 잘 지키면 부모가 심어 놓은 것을 열매로 거두지만, 신앙을 버리면 축복도 은혜도 없게 됩니다. 모세의 후계자 여호수아도 40년간 모세의 곁에서 보좌하며 연단을 통해 가나안 정복을 이끌 수 있는 지도자로 세워진 것을 기억해야 합니다. 그러므로 연단을 두려워하거나 피해가지 말고 사람의 관계 때문에 오든 어려운 환경으로 오는 그 어떤 연단도 잘 견디고 통과해서 하나님께 귀하게 쓰임 받는 믿음의 사람이 되어야 합니다.
바울은 또 한사람 에바브로 디도를 빌립보에 보내는 것이 필요하다고 말합니다(25). 그는 믿음의 형제이며, 함께 수고하고, 군사 된 자로 바울의 쓸 것을 돕는 자라고 강조합니다. 한때는 병들어 죽게 되었으나 하나님의 긍휼이 여기심으로 고침을 받은 은혜를 경험한 자였습니다(27). 바울은 기쁨으로 디도를 영접하고 존귀하게 여길 것을 권면합니다(29). 디도는 죽음에 이르러도 자기 목숨을 돌보지 않고 충성을 다했던 아름다운 모습을 볼 수 있습니다. 우리들도 디모데와 디도처럼 주의 일에 충성을 다하고 주님께 인정받아 마지막 때에 주의 손에 붙들리어 쓰임 받는 성령의 충만한 신앙인으로 살아가기를 소망합니다.

 
  
  
 

- 디모데와 디도처럼 주께 충성스런 모습이 자신에게 있는지 점검해 봅시다.
- 나 자신의 일을 감당하면서 다른 사람에게 도움을 주고 있는지 생각해 봅시다.
- 나에게 주어진 연단을 피하지 말고 이길 수 있도록 주님께 기도하십시다.

 
  
  
 

거룩하신 하나님, 인격적으로 신앙적으로 부족하지만 변함없이 사랑해 주시니 감사합니다. 주님의 사람으로 아름답고 충성된 사람으로 살기 원합니다. 믿음을 주시고 연단을 잘 이겨 나아가게 하시어 맡겨주신 사역들을 잘 감당하고 주님으로부터 인정받는 종이 되게 하시옵소서.

 
  
   
 

하나님나라의 확장을 위하여 일하는가?

기존의 교회 중 어떤 교회는
하나님 나라가 어떤 것인지 조차 모르고 전도하고 있다.
특히 교역자(인간) 중심의 교회는
하나님 나라 확장과는 아무 상관이 없다.
하나님 나라의 왕과 주인은 하나님이시다.
내 안에 하나님 나라가 임한다는 것은 하나님이 나의 주인이 된다는 것이다.
내 자신이 주인이 되거나 인간이나 물질이나 우상이라면
하나님 나라와는 거리가 멀다.
이런 교회로 전도한다고 하나님 나라가 확장되겠는가?
내게 성령의 은사와 능력을 주신 목적과 본질을 알아야 한다.
하나님께 받은 은사와 능력을 통해 하나님을 진정으로
왕으로 모신 곳으로 불신자를 인도하는 것이
하나님 나라 확장이다.
-갈릴리 공동체의 글 ‘하나님 나라 확장을 위해’에서-

 
   
 
  
 


초대교회 성도들이 오순절 성령의 은사를 받고
제일 처음 한 것이 의와 평강과 희락의 공동체를 이루었습니다.
성령의 은사와 능력을 받았어도 복음전파와 하나님 나라 확장을 위해
사용하지 않으면 도리어 화가 있습니다.
교인 수를 늘리기 위한 이기적 목적이 아니라
하나님 나라의 확장을 위하여 주어진 은사를 사용하고 있는지
진실한 마음으로 자신과 교회를 돌아보십시오.
마25장 14- 30절에 나오는 달란트 비유에는
1달란트 받은 사람은 땅에 묻어 두었다가
바깥 어두운 데로 쫓겨나 슬피 울며 이를 갈리라 했습니다.

 
   
    
 

거룩한 예배를 회복하라

 

주님의 사랑하는 곳이 얼룩짐을 아파하셨던
예수님의 분노.
아버지의 거룩한 집을 장사하는 곳으로
만들지 말라
아버지를 만나는 거룩한 곳을 정치하는 곳으로
만들지 말라
이제 우리 삶 가운데 우리가 선포해야 할
거룩한 분노

-강대연 작가

 
    
 
  
 신일교회 배석찬 목사
 아버지와 아들
  
  





12월 19일 (월)
예수 그리스도의 계보 (마태복음 1:1-11)
  
 

1. 아브라함과 다윗의 자손 예수 그리스도의 계보라
2. 아브라함이 이삭을 낳고 이삭은 야곱을 낳고 야곱은 유다와 그의 형제들을 낳고
3. 유다는 다말에게서 베레스와 세라를 낳고 베레스는 헤스론을 낳고 헤스론은 람을 낳고
4. 람은 아미나답을 낳고 아미나답은 나손을 낳고 나손은 살몬을 낳고
5. 살몬은 라합에게서 보아스를 낳고 보아스는 룻에게서 오벳을 낳고 오벳은 이새를 낳고
6. 이새는 다윗 왕을 낳으니라 다윗은 우리야의 아내에게서 솔로몬을 낳고
7. 솔로몬은 르호보암을 낳고 르호보암은 아비야를 낳고 아비야는 아사를 낳고
8. 아사는 여호사밧을 낳고 여호사밧은 요람을 낳고 요람은 웃시야를 낳고
9. 웃시야는 요담을 낳고 요담은 아하스를 낳고 아하스는 히스기야를 낳고
10. 히스기야는 므낫세를 낳고 므낫세는 아몬을 낳고 아몬은 요시야를 낳고
11. 바벨론으로 사로잡혀 갈 때에 요시야는 여고냐와 그의 형제들을 낳으니라

 
  
  
 

교회에 나오면 성경에 관심을 갖게 되고 창세기부터 읽기 시작하여 천지창조부터 족장들의 드라마틱한 이야기를 거쳐 출애굽기까지 재미있게 읽게 됩니다. 그러나 제사법이 나오는 레위기는 내용이 딱딱하고 이해가 힘들어 포기하게 됩니다. 그리고 신약으로 넘어가서 마태복음을 읽게 되는데 첫 장부터 예수님의 족보 이야기가 계속됩니다. 여기서 등장하는 39명의 인물들 중에는 흠이 많은 사람들과 부도덕한 여인들도 이야기도 포함되어 있습니다. 이것은 성경이 좋은 이야기만 묘사한 것이 아니라, 진실과 사실을 그대로 보여주는 하나님의 말씀임을 증명해 주는 것입니다.
또한 이 족보이야기는 하나님은 구약 성경의 약속과 언약을 정확하게 지키시는 신실하신 분이라는 메시지를 담고 있습니다. 하나님은 어떤 분이십니까? 창세기에 등장하는 최초의 복음에서 여자의 후손이 뱀의 머리를 상하게 할 것이라는 약속을 하십니다(창3:15). 여자의 후손이란 예수그리스도를 예표하며, 약속하신 그대로 여자인 마리아에게서 예수님께서 탄생하셨습니다(마1:16). 이사야에서도 이미 예언되었던 약속의 메시아가 신약에서 임마누엘이신 예수님이 오심으로 신실하게 성취되었습니다(사7:14).
아브라함은 믿음의 조상이라고 불립니다. 그는 처음부터 믿음의 조상이 아닌 극히 평범한 자로 살고 있었지만, 하나님께서 일방적으로 선택하여 부르시며 복의 근원이 될 것을 약속해 주셨습니다(창12:2).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을 믿음의 사람으로 만들어 가신 것입니다. 우리들도 토속신앙과 유교문화와 불교에 뿌리 깊은 민족으로 살아가고 있었지만, 우리들이 복음으로 예수 그리스도를 믿게 된 것 자체가 하나님의 은혜이고 기적입니다.
하나님의 주권은 아브라함 자녀 중에 남자답던 이스마엘이 아니라, 약속의 자녀 이삭을 통해 이어지고, 용맹스런 에서가 아니라 욕심꾸러기이며 잔꾀에 능통한 야곱으로, 다시 열두 형제 중 유다는 계대결혼 풍속을 어기다가 다말과의 관계를 통해 얻은 아들로 예수님의 계보는 이여지고 있습니다. 이렇게 하나님의 역사는 윤리적으로 완전한 사람들만이 아니라, 부족하여 죄 많은 사람들을 통해서도 하나님의 은혜를 증거하고 있습니다. 계속에서 예수님의 족보에 거명된 라합은 여리고성의 기생이었지만 믿음으로 구원 받았으며, 룻은 이방여인으로 시어머니가 섬기는 하나님을 섬김으로 은혜를 입었으며, 밧세바는 다윗 왕과의 불륜을 저지른 여인이지만 솔로몬을 낳고 예수님의 족보에 오르게 됩니다.
이처럼 부족한 남자들, 비천한 여인들을 통해 예수 그리스도의 계보가 이여지고 있듯이, 우리가 부족하고 연약할지라도 믿음으로 약속을 붙들고 주의 뜻을 향해 나아갈 때 하나님의 역사는 반드시 이루어질 것입니다. 하나님은 과거를 보시거나 현재 메이는 삶이 아닌 미래를 향해 믿음으로 나아가는 것을 소중하게 생각하시는 분이십니다. 우리는 연약한 인생도 들어 사용하시는 하나님을 믿고 바라보고, 이제는 믿음의 가문을 일으키는 축복의 조상들로 살아가시기 바랍니다.

 
  
  
 

- 예수님의 족보에 나오는 인물들을 보면서 나를 붙드시는 하나님께 감사합시다.
- 하나님은 언약을 지키시는 신실하신 분이라는 사실이 나에게 어떤 도전이 됩니까?
- 나를 선택하신 하나님을 신뢰하고 주의 뜻을 향해 나아갈 것을 결단하십시다.

 
  
  
 

성탄의 계절을 보내며 다시 오실 주님을 기다리며 기뻐하는 믿음 주심을 감사합니다. 주님, 저의 부족함을 살피시사 은혜로 채우시고 주의 영으로 충만케 하시옵소서. 믿음의 사람답게 주의 약속을 붙잡고 늘 승리하는 삶이 되게 하시옵소서.

 
  
   
 

진심을 다한 최선이 필요하다

직장을 구할 능력이 없어 폴란드의 제스 스미스란 제약회사에서
세일즈를 시작한 스미스는
식사 시간과 자는 시간 외에는 고객을 찾아다니며 노력을 했다.
그러나 몇 달 동안 한 건의 실적도 올리지 못해 결국 그만 두었다.
그리고 비록 물건을 팔지 못했지만 얘기라도 들어준 고객들에게
인사나 하려고 감사를 목적으로 고객들을 찾아다녔다.
그런데 고마움을 전하러 간 자리에서 고객들이 약을 사기 시작했다.
아무리 홍보를 해도 꿈쩍도 않던 고객들이
스스로 주문하고 다른 사람에게 추천까지 해주었다.
순전히 감사와 배려의 마음으로 고객들을 대했던 모습이
사람의 마음을 움직였기 때문이다.
이 일로 그는 같은 배려와 친절에도 진심이 있어야 한다는 것을 깨달았고
몇 년 후 폴란드에서 가장 성공한 세일즈맨이 될 수 있었다.
-갈릴리 공동체의 글 ‘진실과 진심으로’에서-

 
   
 
  
 


하나님에게도 사람에게도 언제나
진심을 다한 최선이 필요합니다.
성도들의 이런 노력을 통해 하나님이 영광 받으시고
사람들이 복음을 믿게 됩니다.
모든 마음과 힘을 다해 하나님을 섬기고 사람을 섬기십시오.
반드시 창대하게 될 것입니다.
‘진실한 입술은 영원히 보존되거니와 거짓 혀는
잠시 동안만 있을 뿐이니라’(잠12:19)

 
   
    
 

호산나

 

종려나무 가지를 흔들며 아이들이 외친 고백.
주님 우리를 구원하소서

-강대연 작가

 
    
 
  
 주는교회 강성현 목사
 지나감
  
  


'Faith - Hymn' 카테고리의 다른 글

죄와 벌 외 2  (0) 2016.12.24
Holy Night Peaceful Night - Erin Bode   (0) 2016.12.21
조롱거리가 되리라 외 1  (0) 2016.12.16
당신에게 아둘람 굴은 어디입니까   (0) 2016.12.14
더 좋은 편을 선택하는 지혜   (0) 2016.12.1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