鶴山의 草幕舍廊房

Faith - Hymn

죄와 벌 외 2

鶴山 徐 仁 2016. 12. 24. 22:29

12월 24일 (토)
죄와 벌(호세아 9:10-17)
   
 

10. 옛적에 내가 이스라엘을 만나기를 광야에서 포도를 만남 같이 하였으며 너희 조상들을 보기를 무화과나무에서 처음 맺힌 첫 열매를 봄 같이 하였거늘 그들이 바알브올에 가서 부끄러운 우상에게 몸을 드림으로 저희가 사랑하는 우상 같이 가증하여졌도다
11. 에브라임의 영광이 새 같이 날아 가리니 해산하는 것이나 아이 배는 것이나 임신하는 것이 없으리라
12. 혹 그들이 자식을 기를지라도 내가 그 자식을 없이하여 한 사람도 남기지 아니할 것이라 내가 그들을 떠나는 때에는 그들에게 화가 미치리로다
13. 내가 보건대 에브라임은 아름다운 곳에 심긴 두로와 같으나 그 자식들을 살인하는 자에게로 끌어내리로다
14. 여호와여 그들에게 주소서 무엇을 주시려 하나이까 아이 배지 못하는 태와 젖 없는 유방을 주시옵소서
15. 그들의 모든 악이 길갈에 있으므로 내가 거기에서 그들을 미워하였노라 그들의 행위가 악하므로 내 집에서 그들을 쫓아내고 다시는 사랑하지 아니하리라 그들의 지도자들은 다 반역한 자니라
16. 에브라임은 매를 맞아 그 뿌리가 말라 열매를 맺지 못하나니 비록 아이를 낳을지라도 내가 그 사랑하는 태의 열매를 죽이리라
17. 그들이 듣지 아니하므로 내 하나님이 그들을 버리시리니 그들이 여러 나라 가운데에 떠도는 자가 되리라

 
   
   
 

러시아의 작가 도스토예프스키가 1866년에 완성한 장편소설 <죄와 벌>은 가난한 학생 라스콜니코프가 고리대금업자인 노파를 살해하고 죄 의식에 시달리다 고독과 자기 희생으로 살아가는 창녀 소냐의 순수한 마음에 감동을 받아 자수합니다. 작가는 라스콜니코프의 모순에 직면한 심각한 고민을 투철한 심리분석을 통해 박진감 있게 묘사해 나갑니다. 1860년대 러시아 사회의 방황하는 청년들을 대표하는 라스콜니코프를 통해 추상적 이론이 인간에 가한 학대와 그것에 대한 인간성의 보복, 그리고 종교적 심리의 소중함을 깊이 있게 일깨워 준 작품입니다.

오늘 본문의 이스라엘도 마찬가집니다. <... 그들이 바알브올에 가서 부끄러운 우상에게 몸을 드림으로 저희가 사랑하는 우상 같이 가증하여졌도다>(10절). 바알브올 사건에서 하나님이 받으신 충격은 그들을 오랫동안 시험하고 유혹한 게 아니고 단지 우상의 제단을 설치하고 여자들이 나서서 그들을 불렀을 뿐인데 이스라엘이 곧바로 하나님을 떠나 우상과 합하여 더러운 자가 되고 말았다는 사실에 있습니다. 이것은 우리 안의 죄성이 얼마나 심각하고 뿌리가 깊은가를 여실히 보여주는 사례입니다. 우리의 부패가 얼마나 신속하게 이루어지는가를 보여주는 단적인 예입니다. 아무리 좋은 신앙이라 해도 한순간 부패할 수 있습니다. 우리의 믿음이 퇴색하는 순간, 그 틈새로 발람의 교훈이 비집고 들어오고, 이세벨의 거짓 종교가 비집고 들어옵니다. 교회가 타락하는데도 결코 오랜 시일이 걸리지 않습니다. 모든 것이 한순간에 이루어집니다. 따라서 우리는 방심하면 안 됩니다. 자신을 믿어서도, 남을 믿어서도 안 됩니다. 매순간 오직 주님만을 믿고 의지하고 말씀 앞에서 부단히 순종의 무릎을 꿇어야 합니다.

죄에 대한 하나님의 응징과 벌을 보십시오.
<... 임신하는 것이 없으리라>(11절).
<... 그 자식을 없이하여 한 사람도 남기지 아니할 것이라>(12절).
<... 그 자식들을 살인하는 자에게로 끌어내리로다>(13절).
<... 내가 그 사랑하는 태의 열매를 죽이리라>(16절).
<... 그들이 여러 나라 가운데에 떠도는 자가 되리라>(17절).
회개와 진실한 믿음으로 이 <죄와 벌>의 악순환의 고리를 끊읍시다.

 
   
   
 

-민수기 25장에 나오는 <바알브올> 사건을 얘기해 보십시오.
-인간의 뿌리 깊은 죄성에 관해 얘기해 보십시오.
-이스라엘의 죄에 대한 하나님의 징벌을 얘기해 보십시오.

 
   
   
 

주님, 하나님은 이스라엘을 <무화과나무의 첫 열매>를 보심 같이 하셨지만 이스라엘은 그런 하나님의 사랑을 배신하고 바알브올에 가서 부끄러운 우상에게 자기의 몸을 드렸다고 했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이 진노하사 벌을 내리시되 그들에게 화가 미치게 하시고 그들의 자식들을 살인하는 자에게로 끌어내리라고 하셨습니다. 저희로 하여금 이 이스라엘의 죄와 하나님의 벌을 생각하게 하사 축복과 은혜를 누릴지언정 하나님의 진노를 사 벌을 자초하는 일이 없도록 성령으로 단단히 지켜 주시옵소서.

 
   
     
 

침묵은 하나님의 언어이다

태초에 침묵이 있었다. 창조는 침묵과 함께 시작되었다.
침묵 속에서 하나님은 생각하셨다.
침묵 속에서 하나님은 상상하셨다.
침묵 속에서 하나님은 계획하셨다.
침묵 속에서 하나님은 창조할 피조물을 품으셨다.
침묵은 하나님의 언어이다. 침묵은 말이 없다.
침묵은 말이 없는 언어이다. 소리가 없는 언어이다.
침묵 속에 담긴 언어는 무게가 있다. 깊이가 있다.
침묵 중에 나온 언어는 생명이 있고 넘치는 에너지가 있다.
침묵 중에 나온 언어는 사람들의 영혼을 살린다.
-강준민 목사 의 ‘침묵의 지혜’에서-

 
     
 
   
 


침묵 중에 나온 언어는 새 역사를 창조합니다.
침묵 중에 나온 하나님의 말씀이 천지를 창조했습니다.
말이라고 해서 다 말이 아니며 참된 말은 침묵 속에서 나온 말입니다.
침묵으로 품은 말속에 참된 의미가 있습니다.
생명이 있고 능력이 있습니다.
그런 까닭에 침묵할 줄 아는 사람의 언어에는 깊이가 있습니다.
침묵할 줄 아는 지혜를 가지십시오.
침묵할 줄 아는 사람은 하나님을 닮은 사람입니다.

 
     
       
 

십자가를 기억하라

 

그는 실로 우리의 질고를 지고
우리의 슬픔을 당하였거늘
우리는 생각하기를 그는 징벌을 받아
하나님께 고난을 당한다 하였노라
“대신 지신 그 십자가를 기억하라”

-강대연 작가

 
       
 
   
  주신장로교회 황요한 목사
  관용은 문명의 유일한 테스트다
   
   

 

 

12월 23일 (금)
형벌의 날 보응의 날(호세아 9:1-9)
   
 

1. 이스라엘아 너는 이방 사람처럼 기뻐 뛰놀지 말라 네가 음행하여 네 하나님을 떠나고 각 타작 마당에서 음행의 값을 좋아하였느니라
2. 타작 마당이나 술틀이 그들을 기르지 못할 것이며 새 포도주도 떨어질 것이요
3. 그들은 여호와의 땅에 거주하지 못하며 에브라임은 애굽으로 다시 가고 앗수르에서 더러운 것을 먹을 것이니라
4. 그들은 여호와께 포도주를 부어 드리지 못하며 여호와께서 기뻐하시는 바도 되지 못할 것이라 그들의 제물은 애곡하는 자의 떡과 같아서 그것을 먹는 자는 더러워지나니 그들의 떡은 자기의 먹기에만 소용될 뿐이라 여호와의 집에 드릴 것이 아님이니라
5. 너희는 명절 날과 여호와의 절기의 날에 무엇을 하겠느냐
6. 보라 그들이 멸망을 피하여 갈지라도 애굽은 그들을 모으고 놉은 그들을 장사하리니 그들의 은은 귀한 것이나 찔레가 덮을 것이요 그들의 장막 안에는 가시덩굴이 퍼지리라
7. 형벌의 날이 이르렀고 보응의 날이 온 것을 이스라엘이 알지라 선지자가 어리석었고 신에 감동하는 자가 미쳤나니 이는 네 죄악이 많고 네 원한이 큼이니라
8. 에브라임은 나의 하나님과 함께 한 파수꾼이며 선지자는 모든 길에 친 새 잡는 자의 그물과 같고 그의 하나님의 전에는 원한이 있도다
9. 그들은 기브아의 시대와 같이 심히 부패한지라 여호와께서 그 악을 기억하시고 그 죄를 벌하시리라

 
   
   
 

이스라엘의 죄에 대해 오랫동안 인내하시던 하나님께서 마침내 <형벌의 날>과 <보응의 날>을 선포하셨습니다. <형벌의 날이 이르렀고 보응의 날이 온 것을 이스라엘이 알지라 선지자가 어리석었고 신에 감동하는 자가 미쳤나니 이는 네 죄악이 많고 네 원한이 큼이니라>(7절).

죄는 언제나 하나님과의 관계를 망가뜨립니다. 이스라엘은 하나님의 은혜 안에서 그 축복을 잘 관리하며 지속하지 못하고 고멜처럼 천하고 값싼 우상에 몸과 영혼을 팔고 말았습니다. <이스라엘아 너는 이방 사람처럼 기뻐 뛰놀지 말라 네가 음행하여 네 하나님을 떠나고 각 타작 마당에서 음행의 값을 좋아하였느니라>(1절). 호세아가 외친 <형벌의 날, 보응의 날>이 오면 이스라엘은 멸망을 피해 멀리 달아난 곳에서도 혹독한 심판과 재앙을 겪게 될 것입니다. 기쁨과 감격이 있어야 할 명절과 여호와의 절기에도 오직 슬픔과 고통이 임할 것입니다. 하나님의 진노와 심판을 피할 수 있는 곳은 이 세상 그 어디에도 없기 때문입니다. <보라 그들이 멸망을 피하며 갈지라도 애굽은 그들을 모으고 놉은 그들을 장사하리니 그들의 은은 귀한 것이나 찔레가 덮을 것이요 그들의 장막 안에는 가시덩굴이 퍼지리라>(6절).

따라서 하나님의 백성들은 형벌과 보응의 날이 아니라 승리와 응답의 날을 위해 감사와 찬양과 복종의 나날을 살아야 합니다. 9절에 나오는 <기브아의 시대>란 이스라엘 백성들이 사사시대 말기 레위인의 첩을 윤간한 기브아 사람들을 6백 명만 남기고 모두 살육했던 무법시대를 가리킵니다.

지금 우리나라 사정도 만만치 않습니다. 대통령의 탄핵소추안이 국회를 통과하여 대통령의 직무가 정지되고 헌법재판소에 탄핵 심판이 청구됐습니다. 가히 정치적 형벌의 날 최고 권력에 대한 보응의 날을 맞은 셈입니다.
<... 이는 네 죄악이 많고 네 원한이 큼이니라>(7절).
<... 여호와께서 그 악을 기억하시고 그 죄를 벌하시리라>(9절).

부디 이 나라에서 하루 속히 형벌과 보응의 먹구름이 걷히고 여호와의 축복과 은혜의 새날이 도래하길 진심으로 기원합니다.

 
   
   
 

-호세아 선지자가 경고한 <형벌의 날, 보응의 날>에 닥칠 재앙은?
-호세아 선지자가 경고한 <명절 날과 절기의 날>(5절)에 임할 심판은?
-<기브아 시대>(9절)의 부패상을 적어 보십시오.

 
   
   
 

주님, 누구도 하나님을 떠나 우상과 놀아나는 한, 하나님 외에 다른 그 무엇에 도움을 구하고 옛 기브아 시대처럼 부패하는 한 결코 하나님의 혹독한 형벌과 보응을 피할 수 없음을 깨닫습니다. 저희는 어떤 경우에도 하나님의 진노를 사지 않도록 성령으로 지키시고 이끌어 주시옵소서. 지금 이 나라가 큰 위기에 처한 가운데 가히 무정부 상태에 놓였사오니 모쪼록 이 하나님의 엄혹한 형벌과 보응을 회개와 기도와 결단으로 잘 극복하고 오히려 축복과 은혜의 새 국면을 맞을 수 있도록 성령으로 도와주시옵소서.

 
   
     
 

가능하면 남의 말은 좋게 하라

누군가를 비난하고 정죄하는 일은 무척 쉽고,
말에 어폐가 좀 있지만, 또 재미도 있다.
걱정해 주는 것처럼, 또 진심으로 충고해 주는 척하면서
상처에 소금을 뿌리는 아픔을 끼쳐주는 일도
그리 어렵지 않은 일이다.
간간이 주변에 불미스러운 추문으로 이름이
오르내리는 분들이 있다.
그에 대한 기대감과 비례해서 충격의 파장은 크고
소문은 확산된다.
그런데 때로는 무책임하게 침소봉대하여 말들이 말을 낳고
또 말을 만들어 겉잡을 수가 없게 된다.
특히 사이버 상에서의 소문은 진위 확인은 고사하고
유통기한도 없이 가히 언어폭력 수준이다.
이럴 땐 말을 옮기지 말고 그저 위하여 기도해 주는 것이 좋다.
그게 어려우면 걱정스러운 마음으로 지켜보는 것이 낫다.
-작자 미상의 글 ‘비난과 침묵’에서-

 
     
 
   
 


사실 추문에 연루된 사람들에 대해 우리가 걱정한답시고
이리저리 글을 펴다 나를 정도로 우리는 걱정하지도 않으며,
또 실제로 당사자와 친하지 않은 경우가 대부분입니다.
조금 더 혹평하면 그저 자기도 모르는 사이에 호기심에 따라
소문내는 참새 입방아 노릇만 하게 되고
결국 상처를 재생산하며 마귀의 도구가 되는 것입니다.
가능하면 남의 말은 좋게 하는 것이 좋습니다.
그것이 어려우면 차라리 침묵이 나을지 모릅니다.
격려할 수 없다면 오히려 비난보다는
침묵이 그 사람을 위하는 길이기 때문입니다.

 
     
       
 

아버지의 뜻을 이루소서

 

그러나 나의 원대로 마시옵고
아버지의 원대로 하옵소서
주님의 뜻을 이루소서
“그렇게 간절히 엎드리셨던
겟세마네의 순종을 기억하라”

-강대연 작가

 
       
 
   
  비젼교회 윤여재 목사
  감사한 사람의 풍성한 삶
   
   

 

 

12월 22일 (목)
들나귀처럼(호세아 8:8-14)
   
 

8. 이스라엘은 이미 삼켜졌은즉 이제 여러 나라 가운데에 있는 것이 즐겨 쓰지 아니하는 그릇 같도다
9. 그들이 홀로 떨어진 들나귀처럼 앗수르로 갔고 에브라임이 값 주고 사랑하는 자들을 얻었도다
10. 그들이 여러 나라에게 값을 주었을지라도 이제 내가 그들을 모으리니 그들은 지도자의 임금이 지워 준 짐으로 말미암아 쇠하기 시작하리라
11. 에브라임은 죄를 위하여 제단을 많이 만들더니 그 제단이 그에게 범죄하게 하는 것이 되었도다
12. 내가 그를 위하여 내 율법을 만 가지로 기록하였으나 그들은 이상한 것으로 여기도다
13. 그들이 내게 고기를 제물로 드리고 먹을지라도 여호와는 그것을 기뻐하지 아니하고 이제 그들의 죄악을 기억하여 그 죄를 벌하리니 그들은 애굽으로 다시 가리라
14. 이스라엘은 자기를 지으신 이를 잊어버리고 왕궁들을 세웠으며 유다는 견고한 성읍을 많이 쌓았으나 내가 그 성읍들에 불을 보내어 그 성들을 삼키게 하리라

 
   
   
 

<그들이 홀로 떨어진 들나귀처럼 앗수르로 갔고 ...>(9절).
<들나귀>란 히브리어 <페레>로 발이 빠르고 좀처럼 길들여지지 않으며 들에서 자유로이 뛰노는 <야생나귀>를 가리킵니다. 이 나귀는 호세아 당시만 해도 메소포타미아를 중심으로 아라비아 지역에 많이 서식했지만 지금은 거의 찾아볼 수 없다고 합니다. 창세기 16:12은 하갈에게 <이스마엘과 그 후손이 들나귀 같으리라>는 하나님의 말씀을 전하는데 이 예언은 3천 년의 역사 속에서도 여전히 문명생활을 마다하고 낙타나 말을 타고 창을 든 채 광활한 자연을 누비며 난폭하고도 거칠게 살아가는 베두인들과 사라센(Saracens) 족에 의해 그대로 성취되었습니다.

예레미야는 이스라엘 백성들이 이방의 신들을 갈망하는 모습을 마치 들암나귀가 욕정에 헐떡거리는 것과 같다고 했고(렘 2:24), 이스라엘 땅에 임할 가뭄에 대해서도 들나귀가 나무 없는 산에서 풀을 구하지 못해 헐떡이는 모습에 비유하기도 했습니다(렘 14:6). 오늘 본문도 이스라엘이 임자 없는 들나귀처럼 아무런 돕는 손길도 없이 앗수르로 끌려갔다는 사실을 말씀합니다.

8절에서는 범죄한 이스라엘이 온 세계 가운데서 천대와 멸시를 당할 것이고 토기장이가 마음에 들지 않아 깨뜨려버리는 그릇과 같은 신세가 될 것이라고 했습니다. 실제 이스라엘은 선지자들의 거듭된 만류에도 불구하고 기어이 앗수르에게 조공을 바치며 굴욕적인 동맹을 맺었고, 또 그들의 우상을 수입하여 음란하게 섬겼습니다.

그러나 이스라엘의 그같은 처신과 행보는 그들에게 평안을 가져다 주기는커녕 도리어 멸망을 안겨 줄 것이라는 말씀입니다. <그들이 여러 나라에게 값을 주었을지라도 이제 내가 그들을 모으리니 그들은 지도자의 임금이 지워준 짐으로 말미암아 쇠하기 시작하리라>(10절). 하나님 없이 홀로 이방종교와의 혼합을 통해 정욕에 날뛰다 결국 굶주림과 목마름에 시달리며(렘 14:6) 맹수와도 같은 앗수르에게 삼키우고 말 것이라는 말씀입니다. 나라나 개인이나 하나님 없이 홀로 들나귀처럼 떨어지면 과거 이스라엘처럼 멸망할 수밖에 없다는 사실을 깊이 명심할 일입니다.

 
   
   
 

-당신에게도 <홀로 떨어진 들나귀> 같은 경험이 있으십니까?
-당신은 하나님이 즐겨 드시는 그릇입니까? <즐겨 쓰지 아니하는 그릇>(8절) 입니까?
-당신은 과거 이스라엘처럼 하나님보다는 오히려 이방나라인 앗수르의 도움을 받고자 한 적이 없습니까?

 
   
   
 

주님, 호세아 시대 이스라엘은 홀로 떨어진 들나귀처럼 하나님을 등지고 앗수르에게로 가서 제살 길을 찾았으나 결국은 그들이 지워 준 짐으로 말미암아 쇠할 것이라고 하셨습니다. 하나님이 그들을 기뻐하지 아니하시고 그 죄악을 벌할 것이기 때문입니다. 또한 하나님은 유다가 견고한 성읍을 많이 쌓았으나 내가 그 성읍에 불을 보내어 그 성들을 삼키게 하리라고도 하셨습니다(13-14절). 부디 고집 센 들나귀가 아니라 하나님이 즐겨 쓰시는 그릇이 되어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성도로 살아가도록 은혜 베풀어 주시옵소서.

 
   
     
 

그 풍성한 선하심과 인자하심을 경험하도록

죄인은 주로 하나님이 기뻐하지 않는 것을 통하여,
하나님을 경험한다.
하나님의 진노든, 하나님의 심판이든, 하나님의 무서움이든,
이런 것을 통하여 하나님을 경험할 때가 대부분이다.
아담과 하와가 동산에서 선악과를 따먹은 다음에
하나님이 지나가시는 소리를 듣고 무서워 한 것처럼
대다수의 사람들은 좋은 방법보다는
나쁜 방법으로 하나님을 경험한다.
죄인은 하나님을 기뻐하기보다는 두려워함으로
하나님을 생각하려고하는 데, 이런 사람일수록
그리스도인은 하나님의 그 풍성한 선하심과 인자하심을
경험하게 하도록 애써야한다.
-김영준 목사의 ‘하나님은 왜 도덕적으로 개입하시는가?’에서-

 
     
 
   
 


인간이 하나님이 기뻐하시지 않는 것을 통하여
하나님을 경험한다는 것은 참으로 불행한 일입니다.
왜냐하면 하나님을 나쁜 분으로 만들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을 무서운 분, 두려운 분, 내가 피하고자 하는 분으로
생각한다면 그건 하나님을 왜곡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믿음의 사람들은 사명을 가지고 알려주어야 합니다.
하나님은 원래 좋으신 하나님.
선하심과 인자하심으로 평생 우리를 지키시는 분이라는 것을.

 
     
       
 

그날을 위해 등불을 밝히며

 

세상에서는 너희가 환난을 당하나 담대하라
내가 세상을 이기었노라
“승리하신 주님, 사랑하는 주님이 오실 때
등불을 밝히며 기쁨으로 맞이하겠습니다.”
-강대연 작가

 
       
 
   
  명성엘림교회 김성환 목사
  예수님의 마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