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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ree Opinion

[넷향기] 이동환 교수의 "마음의 에너지를 믿으시나요?" 외 1

鶴山 徐 仁 2016. 8. 8. 11:04
마음의 에너지를 믿으시나요?
이동환

여러분, 마음 에너지를 믿으시나요?
마음은 힘을 가지고 있다는 것이 여러 가지 방법으로 증명되고 있습니다. 일상생활 속에서도 느낄 수 있습니다.
제가 기억하는 것 중 하나는 우리나라에서 있었던 거대한 사건, 2002년 월드컵입니다.
전 국민의 마음을 모아서 빨간 티셔츠를 입고 많은 붉은 악마들이 응원을 했죠.
그 마음 에너지가 선수들에게 전달되어 엄청난 기록을 세웠죠. 지금 생각해봐도 그 마음 에너지의 힘은 분명히 있다고 생각됩니다.

얼마 전 리더십 세미나에서 많은 분들과 이야기를 나누던 중에 한 여성분의 재미있는 이야기를 들었습니다.
직장에 아무도 돌보지 않는 화초가 하나 있었는데 누구도 물을 주지 않아 거의 죽어가는 상태였다고 합니다.
그 화초를 살리고 싶어서 물을 줬지만 좀처럼 나아지지 않았다고 합니다.
하지만, 끝까지 포기하지 않고 그 화초를 책상에 올려놓고 온 마음을 담아서 사랑을 주었다고 합니다.
일하면서 틈틈이 화초를 쓰다듬으며 "난 너를 사랑해"라고 말하며 주위의 만류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열심히 사랑을 주었다고 합니다.
그러자 신기하게도 살아날 것 같지 않던 화초가 2주 만에 빛깔이 변하면서 살아났다고 합니다. 그러면서 그분은 자기의 마음 에너지가 통했다고 말했습니다.

사람 간에는 어떻게 전달될까요? 진심으로 상대방의 마음을 공감해주고 그 마음을 지지해줄 때 마음의 힘이 전달되는 것 같습니다.
얼마 전에 이런 일이 있었습니다. 제주도 강의를 갔다가 돌아오는 길에 비행기를 탔는데, 바로 옆자리에 어떤 아주머니가 아기를 안고 있었습니다.
기껏해야 돌 정도 지난 남자아이였는데, 저는 걱정이 되었습니다. '비행기를 한 시간 정도를 타야 하는데, 그동안 아이가 보채지 않고 있을 수 있을까?'
아니나 다를까 30~40분 정도 지나자 아기가 보채기 시작했습니다. 엄마가 아무리 달래도 소용이 없었습니다.
옆에서 걱정이 되어 아기를 보니, 그 아기와 눈이 딱 마주쳤습니다. 저는 고개를 숙이고 눈을 마주치면 그 아기에게 이렇게 속삭였습니다.
"너, 정말 힘들겠구나, 어린 네가 이 좁은 비행기에 갇혀 꼼짝없이 있으려니 얼마나 답답하고 힘들겠니. 어떡하면 좋니?"
비록 아기가 알아듣지는 못하겠지만, 그래도 계속해서 공감을 줬더니 신기하게도 그 아기가 저를 바라보고 칭얼거림을 멈추고 이내 잠이 들었습니다.
이해하지 못할 아기였지만 제 마음을 담아서 전달하려고 노력했더니 그 마음 에너지가 통했는지 그 아기가 편하게 잠드는 것을 보면서 마음 에너지는 정말로 있고, 이 에너지를 전달할 수 있는 것은 사람 간의 공감과 지지가 아닐까 생각됩니다.

이 영상을 보시는 많은 분들, 주위의 가까운 분들과 함께 마음을 공감하시고 지지해 주시면서 마음 에너지를 전달하시기 바랍니다.
실제로 저는 환자들을 돌보면서 환자들의 마음을 지지하는 것은 너무나도 중요하다는 것을 많이 느꼈고, 더 중요한 것은 남들한테 지지를 받는 것도 중요하지만 내가 내 마음을 공감하고 지지하는 '희망'을 갖는 순간에 환자들이 더 빨리 치료되는 것을 많이 보았습니다.
서로 혹은 스스로 마음을 공감하고 지지하는 것은 너무나 중요한 마음 에너지를 살리는 길이라고 생각합니다.

감사합니다.






잘못을 뒤집어 씌우려고 우울하다
이병준

안녕하십니까? 부부 Fun더하기 이병준입니다.
다 큰 자녀에게 대한 상담요청이 많아지고 있는데요, 중고등학생은 물론 대학에 들어간 성인자녀들에 대한 요청도 많습니다.
그나마 바락 바락 대들고 따지고 덤벼드는 일명 ‘싸가지’ 없는 것도 문제지만 덤벼들지도 않고 따지지도 않는데 웃음, 활력은 하나도 없고 게으름과 무기력에 빠진 채 하루 하루를 보내는 자녀 또한 문제입니다.
두 가지 양상 다 아이들이 부모를 향해서 “네가 한 짓이 뭔 줄 알어?”라고 하는 것입니다.
생물학적으로는 성장이 발달된 어른의 개체가 되었음에도 사고 방식이나 의식수준은 영유아기 수준에 머물러 있는 경우를 말합니다.
안타까운 것은 이런 현상이 점점 많아지고 있다는 것이고, 부모들이 못되거나 기준치 미달이 아니라 좋은 부모들임에도 불구하고 아이들이 그렇다는 점입니다.

수동공격성의 방식
우울에 빠지는 것은 일종의 공격성의 표현입니다. 공격성을 외부로 표현하면 ‘투사(projection)’ 이라고 하고 내부로 표현하면 ‘내사(introjection)’라고 합니다.
물론 정신분석에서 말하는 ‘내사(introjection)’의 개념은 조금 다릅니다만 여기선 투사를 비교하기 위한 상대개념으로 사용하고 있습니다.
두 개념 다 ‘자기’ 라는 감옥에 갇힌 상태입니다.
원래 영유아기, 특히 영아기의 아기는 ‘자기’라는 세계에 갇혀 삽니다. 그 때는 엄마라는 대상(Object)가 필요한 모든 것을 알아서 채워줍니다. 아기는 자기가 원하기만 하면 모든 것이 다 채워지는 것을 경험하지요.
그런데 원하는 것이 즉각 채워지지 않을 때 그 이유를 외부로 돌립니다. 치아가 나기 시작하는 유아가 엄마 젖꼭지를 깨무는 표면적 공격성을 드러내거나 토하거나 먹지 않는 것으로 수동적 공격성을 드러내기도 합니다.
어쨌든 둘 다 주어진 메시지는 “엄마가 나 한테 한 짓이 뭔 줄 알어?” 라는 것이죠.

투사...자기 세계 속에 갇힌 인간..
두 딸을 시집보내고 남편이 정년퇴직하고 집에 있게 되면서 아내의 우울과 분노, 극단적으로 치닷는 성향 때문에 힘겨워 죽겠다는 남자가 상담을 요청했습니다.
끊임없이 추궁하고 따지고 덤벼드는 아내, 어떨 때 심각한 우울에 빠져서 저라다 삶을 포기하지는 않을까 염려스럽기도 하고, 어떨 땐 분노에 치를 떨면서 손톱을 세우고 덤벼들거나 칼을 들고 덤벼들 때도 있고 그 살기에 무섭다고 하소연 합니다.
상담실에서 보는 남자의 눈물은 참 뭐라고 설명해야 할지 가슴 아픈 부분입니다. 남편은 자상하고 친절한 스타일이라고 직장에서 인기가 높았습니다. 특히 여직원들 사이에서 더 그랬습니다.
그러던 중 같은 사무실에 근무하던 여성과 카카오톡을 더러 주고 받는 것을 아내가 확인합니다. 남자가 가끔 속상한 부분을 하소연하고 그 쪽 여성도 자기 답답한 부분을 하소연하는 내용이었는데, 그것을 아내가 보고 아주 깊은 내연의 관계라 단정내리고 그때부터 노골적으로 닦달하고 남편을 못살게 구는 것이었습니다.
명백한 증거까지 생겼으니 더 말해 무엇하겠냐는 것입니다. 그녀의 경우는 이 일이 아니라 이십 몇 년의 결혼생활 내내 이어져 왔던 모습이었습니다.

잘못의 주체가 나임을 인정하자
카인이 자기에게서 문제를 찾았다면 어떻게 했을까요? 만약 그랬다면 비록 동생에게서라도 묻고 배웠을 것입니다.
동생 입장에서도 형이 배우러 왔다면 얼마든지 기쁜 마음으로 가르쳐 줬을 테고, 동생아벨이 이 지적해 준 부분을 고쳤다면 카인 역시 자신의 제사가 수용되는 경험을 했을 겁니다.
그랬다면 ‘때문에’를 연발하며 이를 갈던 관계에서 ‘덕분에’을 연발하며 함께 춤을 추는 관계가 되었을 겁니다. 

넷향기 가족 여러분!
여러분은 잘못을 시인하고 시인으로 사시겠습니까?
아니면 끝까지 뒤집어 씌우다 분노를 뒤집어 쓴채 인상쓰고 사시겠습니까?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