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Weekly BIZ] 연금제도… 폭풍이 다가오고 있다
입력 : 2016.07.23 03:05
고령화로 재원 고갈되면 청년층이 낸 돈으로 노년층 연금 줄 판…
선진국도 신흥국도 세제 개혁해야, 그것도 당장
- ▲ 로런스 코틀리코프 美 보스턴대 교수
재정정책 전문가인 로런스 코틀리코프 미 보스턴대 교수, 일본에 '하류 노인' 문제를 제기한 후지타 다카노리 훗토플러스 대표 등에 이 문제를 폭넓게 물어봤다.
"인구 고령화가 진행되면서 연금 재원이 고갈되면, 청년층이 납입한 돈을 노년층에게 연금으로 지급하는 상황이 올 수 있습니다. 연금 제도를 개혁하지 않고도 지급액을 현 수준으로 유지할 수 있다고 말하는 건, 청년층을 상대로 한 정부 차원의 광범위한 '폰지 사기(실제 자본금이 거의 없는 상황에서 투자자를 끌어모으고 나중에 투자하는 사람의 원금을 앞선 투자자에게 지급하는 다단계 금융사기)'나 마찬가지입니다."
연금 제도 개혁은 전 세계적인 화두다. 선진국들은 연금 재원 고갈을 우려해 현재 65~66세 안팎인 은퇴 연령을 높이고 가입자가 내야 하는 돈을 상향 조정하는 추세다. 정년이 65세인 덴마크, 호주, 벨기에, 독일 등은 오는 2022~2030년까지 이를 67세로 연장한다. 미국도 현재 66세인 정년을 2027년까지 1년 늘린다.
이 과정에서 국민들의 반발도 거세다. 프랑스 정부가 지난 2010년 공적연금 수령 연령을 65세에서 67세로, 연금 수급 개시 연령을 60세에서 62세로 올리는 개혁안을 발표하자 전국적으로 반대 시위가 벌어졌다. 프랑스 국민들은 정부가 대기업에는 세금을 감면해주면서 연금 제도를 개혁하는 꼼수로 부족한 세수를 충당하려 한다며 반발했다. 재원 대부분을 재정으로 충당하는 프랑스 공적연금은 개혁이 이뤄지지 않으면 적자액이 2020년 207억유로(약 26조원)까지 급증할 것으로 전망됐다.
한국의 국민연금도 소득 대체율을 낮추고 오는 2033년까지 수급 연령을 65세로 인상하는 등의 개혁을 진행하고 있지만, 개혁 규모와 시기 등을 두고 여론이 분열된 상황이다.
고령화 시대, 어떤 정책과 개혁이 필요할까. 인구 변화를 반영한 재정 정책을 연구하는 로런스 코틀리코프(Kotlikoff·65) 미 보스턴대 교수를 그의 학교 사무실에서 만났다. 코틀리코프 교수는 미래 지출과 세입 전망치를 반영해 장기적인 시각에서 정부의 재정 건전성을 분석하는 '세대 회계 모델'을 고안한 경제학자다. 그는 "평균수명 증가와 저출산으로 인한 인구 고령화 때문에 지금의 사회보장제도는 지속 불가능한 구조"라며 "정부 차원에서 연금 제도와 세제를 개혁하고, 개인들도 정부에 대한 기대를 낮추고 자체적으로 노후를 대비해야만 한다"고 강조했다.
―사회보장제도를 유지하기 위한 재정 부담이 점점 심화된다고 보시는 겁니까.
"그렇습니다. 나라마다 정도와 규모는 다르지만, 대체로 재정 부담과 재정 적자에 대한 우려가 커지고 있습니다. 미국의 경우엔 현재 가치로 환산한 정부의 모든 지출과 부채, 미래의 세입과 자산 가치 간 차이인 '재정 격차(fiscal gap)'가 199조달러(약 227경3376조원)에 이릅니다. 당장 모든 세금을 53% 인상하거나 재정 지출액을 34% 삭감해야 정부 지출을 현 수준으로 유지할 수 있는 규모입니다. 그런데 개혁을 20년 정도 더 미룬다면, 그때는 미 정부가 채무 불이행을 피하기 위해 세금을 69% 더 걷거나 지출을 42% 삭감해야 합니다.
미국뿐만 아니라 한국과 러시아, 중국 같은 신흥국들도 지속 가능하지 않은 재정 계획을 운용하고 있다고 봅니다. 3~4년 전 정치·경제적으로 큰 문제가 됐던 미국의 재정 절벽 사태를 떠올려보세요. 세금을 낼 수 있는 노동인구는 줄고 부양해야 할 노년층은 급증하는 상황이기 때문에 어떤 정부도 장기적으로는 채무 불이행 위험에서 자유롭지 않습니다. 한국도 낮은 출산율 때문에 인구고령화가 빠르게 진행되고 있어 재정 격차가 계속 확대될 가능성이 큽니다."
―연금 개혁 등은 정치적으로도 민감한 문제입니다.
"인구 고령화 흐름이 진행되면 '세대 간 갈등'을 피할 수 없습니다. 당장 자신에게 돌아올 사회보장제도 축소에 반대하는 노년층과 세금 인상·연금 삭감 등을 우려하는 청년층이 충돌할 수밖에 없어요. 신체적인 능력이 크게 중요하지 않은 지식 분야 전문직 일자리를 두고도 세대 간 갈등이 생길 겁니다. 개혁을 어렵게 만드는 건 '세대 간 도덕성' 문제라고도 볼 수 있습니다. 노년층이 연금 등 사회보장제도로 공적 재원을 다 소비해버리면 다음 세대가 쓸 재원과 사회적 자원이 부족해질 수밖에 없는데, 현재 정부의 지출과 복지 혜택에 대한 경제적인 부담을 미래 세대로 미루는 거죠.
각국 정부는 특정 세대에게만 부담이 편중되지 않도록 사회보장제도와 세제를 개혁하되, 최대한 빠른 시일 안에 단행해야 합니다. 시기를 미루면 미룰수록 세금 인상률이나 복지 혜택 축소 규모 등 충격이 클 겁니다."
코틀리코프 교수의 주장은 세금을 감면하며 동시에 공공 지출을 늘려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정부의 지출 규모가 절대적으로 크다는 뜻이 아니라, 세금을 낼 젊은 인구는 줄어드는데 부양해야 할 노인층은 빠르게 늘어나는 인구 변화를 감안하면 현재 정부의 지출액이 너무 많다는 이유에서다.
"많은 이들이 인구 노령화에 따른 재정 건전성 악화 문제를 간과하고 있다고 봅니다. 미래의 정부 부채와 세출을 현재 가치로 환산하는 과정에서 앞으로 노동 인구가 감소하면서 세입이 얼마나 급감할지를 제대로 반영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아프리카나 중동 같은 일부 지역을 제외하면, 낮은 출산율 때문에 선진국에서는 대체로 인구가 감소세를 보일 겁니다. 한국은 (출산율과 기대수명 등을 고려할 때) 앞으로 50년 안에 인구가 지금보다 20% 정도 감소할 것으로 예상됩니다."
―기술 혁신을 통한 생산성 향상이 정부의 부담을 덜어주지 않을까요.
"신기술이 경제에 미칠 영향을 분석하는 건 꽤 까다로운 문제입니다. 인간의 노동력을 대체할 수 있는 로봇의 도입이 특히 그렇습니다. 새로운 기술이 도입되면 기계가 더 효율적으로 일할 수 있는 분야에서는 일자리를 뺏기는 인간이 생길 수밖에 없어요. 예를 들어 안마사는 안마 기계가, 비서직은 로봇과 스마트기기가 대체하고 고속도로 이용요금도 기계가 받을 겁니다. 자율주행기술이 보급되면 트럭뿐만 아니라 버스·택시·비행기·배 등을 무인으로 운행할 수 있겠죠. 무인차가 운송업계 인력의 7%를 대체할 것이라고 예상합니다. 기계 때문에 일자리를 잃거나 소득이 줄어 세금을 못 내거나 저축도 할 수 없는 집단이 생기지 않겠습니까."
"양적 완화는 국민에게 재정 부담 전가하는 일"
코틀리코프 교수는 정부 지출이나 개인의 소비를 늘려서는 저성장 위기나 경기 침체 문제를 해결할 수 없다고 주장했다. 그는 "경제사를 돌아보면 미국이든 일본이든 소비율이 아닌 저축률이 높을 때 경제성장률도 높았다"며 "저축을 늘리는 게 사회 전체적으로 미래에 투자할 동력을 마련하는 건강한 수단"이라고 말했다.
―양적 완화 정책에도 반대하는 입장이신데요.
"양적 완화 정책을 이용한 정부 지출 확대가 경제에 부정적인 영향을 전혀 끼치지 않을 거라고 생각하는 경제학자는 아무도 없을 겁니다. 미 연방준비제도이사회(연준·FRB)는 양적 완화 정책을 시행해 2007년 이후 약 2조8000억달러를 찍어냈습니다. 본원통화(중앙은행 창구를 거쳐 시중에 풀리는 돈으로, 화폐발행액과 예금은행이 중앙은행에 맡긴 지급준비예치금의 합)보다 거의 5배 많은 규모예요. 그 결과 시중에 유통되는 미 달러화는 약 4조달러에 달하는 것으로 추산됩니다. 일본은행과 유럽중앙은행(ECB)도 재정 격차 문제는 그대로 둔 채 화폐를 찍어내고 있죠. 미 연준이 양적 완화 정책을 중단한 게 그나마 다행입니다.
중앙은행이 화폐를 발행해 통화량을 늘리는 양적 완화 정책은 정부의 부담을 국민에게 떠넘기는 정책이라고 봅니다. 경기가 안 좋아졌을 때 자연스럽게 하락해야 할 물가를 중앙은행이 시중에 푼 돈으로 인위적으로 떠받치는 일이기 때문입니다. 물가가 하락하면 소비자의 구매력은 상대적으로 높아지는 효과가 있는데, 양적 완화 정책으로 돈을 푼 탓에 미 국민이 그런 혜택을 못 본 셈입니다. 반면 미 정부는 국채에 대한 이자 부담을 줄이고 중앙은행은 화폐시뇨리지(화폐 액면가에서 화폐 발행과 유통에 드는 비용을 뺀 나머지로, 중앙은행이 통화를 발행해 얻는 이익)를 챙겼습니다.
결과적으로 정부가 중앙은행을 통해 마련한 재원으로 지출을 늘리면 상대적으로 구매력이 약해진 민간은 소비를 덜 하게 됩니다."
―양적 완화 정책이 투자를 촉진해 경기를 활성화할 것이란 의견도 있습니다만.
"실물 경제에 돈이 돌게 하는 효과는 크지 않다고 봅니다. 예를 들어 미 정부가 30억달러를 들여 신형 항공기를 구입하기 위해 30억달러어치 국채를 발행하고, 미 연준이 화폐를 30억달러 발행해 국채를 사들였다고 가정해봅시다. 미 정부는 결국 중앙은행의 돈을 빌려 항공기를 구입한 것이기 때문에 그에 대한 이자만 지불하는 통화금융(monetary financing)을 한 겁니다. 그런데 이 30억달러는 실물 경제로 유입되지 않고 시중은행의 지급준비금 형태로 중앙은행에 예치되기 쉽습니다. 중앙은행은 그에 대한 이자를 지급하기 위해 또 화폐를 발행하고, 이런 과정이 반복되면 은행시스템은 잠재적인 불안 상태에 놓일 겁니다."
"조금 낮은 생활수준을 각오하라"
코틀리코프 교수는 은퇴 이후의 삶을 정부와 공적연금에만 의지하기 어렵다며, 연금이나 의료보험 등 사회보장혜택의 범위와 규모가 갈수록 줄어들 수 있다는 점을 염두에 두고 개인적으로 노후를 대비해야 한다고 조언한다.
―구체적으로 어떤 준비가 필요합니까.
"미래의 복지는 암묵적 자산·금융자산·가계자산·개인자산 등 네 가지에 좌우됩니다. 암묵적 자산은 공적연금과 의료보험, 기업연금 등을 말합니다. 인구 변화와 재원 고갈 문제 때문에 세대 간 갈등이 벌어지는 부분입니다. 이 암묵적 자산이 기대보다 줄어들 가능성을 고려해 나머지 자산을 확충해야 합니다. 금융자산의 경우 세율 인상이나 투자 이익에 대한 과세에 대비해 다양한 금융자산에 분산 투자해야 합니다. 가계자산은 주택, 자동차, 가전제품 같은 생활에 필요한 것을 말하는데 은퇴 후 소득이 줄어드는 상황을 가정하면 집은 빌리는 것보다 구입하는 편이 좋습니다. 마지막으로 개인자산은 지식, 기술, 건강 같은 인적 자본을 말합니다. 수명이 길어지면서 건강 자본을 관리하는 일이 더 중요해질 겁니다."
코틀리코프 교수는 "평생 조금 낮은 생활수준으로 사는 것을 받아들일 각오를 하고 미래를 위해 저축을 늘려야 한다"며 "자녀들이 독립하면 주택 규모를 줄여 관리비 등 집과 관련된 지출을 줄이고, 가능하면 은퇴를 연기해 저축액과 연금납입액을 늘려야 한다"고 덧붙였다.
☞세대 회계(generational accounting)
로런스 코틀리코프 미 보스턴대 교수와 앨런 아우어바흐 UC버클리대 교수가 현재 재정 적자와 미래 세대의 경제적인 부담을 비교하기 위해 정립한 개념이다. 출산율 하락이나 고령화 같은 인구 변화에 따른 세수 감소와 사회복지제도를 유지하는 데 추가로 필요한 재원 규모 등을 반영해 장기적인 관점에서 정부의 재정 건전성을 평가하는 회계 방법이다.
☞재정 격차(fiscal gap)
현재 정부의 부채와 예산 내역을 미래의 정부 부채와 세입·세출을 현재 가치로 환산해 비교하는 '세대 회계'의 방법론이다. 이 금액이 클수록 향후 예상되는 정부 수입에 비해 재정 지출액이 많다는 뜻이기 때문에, 세금 인상이나 재정 지출 삭감 등 개혁 조치가 필요하다고 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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