鶴山의 草幕舍廊房

Free Opinion

[넷향기] 이병준 대표의 "삶의 마지막 순간에 인간은 무엇을 생각할까?" 외 2

鶴山 徐 仁 2016. 2. 20. 18:32
삶의 마지막 순간에 인간은 무엇을 생각할까?
이병준

몇해 전 극작가 손톤 와일더의 <우리 읍내> 라는 연극을 보았습니다. 
이미 떠난 이승에 미련을 못 버린 에밀리는 살아생전 지극히 평범한 어느 하루로 돌아가게 해 달라고 간청합니다.  그 소원이 이뤄져 잠깐 이승으로 돌아간 에밀리는 살아있는 사람들이 너무 많은 것들을 당연하게 여긴다는 사실을 알게 됩니다. 그 안타까움을 독백으로 표현합니다.

“나는 살아있을 때 주변에서 일어나는 일을 전혀 깨닫지 못했어. 아무도 그런 점에 관심을 기울이지 않았지... 이제 작별인사를 할 게. 안녕, 세상아... 안녕, 길거리의 나무들.. 안녕, 아빠 엄마 안녕, 재깍거리는 시계... 가을 정원의 해바라기. 안녕, 맛있는 샌드위치와 커피, 그리고 새로 다린 드레스와 뜨거운 목욕... 잠을 자고 깨어나는 일. 사람들이 이렇게 멋진 것들을 깨닫지 못하다니...”
지극히 평범한 일상인데 죽어본 사람은 그 평범이 평범이 아니었다는 것을 알게 됩니다.

수년간 말기 암 환자를 진료한 한 일본인 의사가 천명이 넘는 암 말기 환자들의 죽음을 접하며 그들이 남긴 이야기를 정리하여 책으로 출간하였습니다.
‘죽을 때 후회하는 25가지’였습니다. 그 내용은 이렇습니다.
1. 자신의 몸을 소중히 하지 않았던 것
2. 유산을 어떻게 할까 결정하지 않았던 것
3. 꿈을 실현할 수 없었던 것
4. 맛있는 것을 먹지 않았던 것
5. 마음에 남는 연애를 하지 않았던 것
6. 결혼을 하지 않았던 것
7. 아이를 낳아 기르지 않았던 것
8. 악행에 손 댄 일
9. 감정에 좌지우지돼 일생을 보내 버린 것
10. 자신을 제일이라고 믿고 살아 온 것
11. 생애 마지막에 살려는 의지를 보이지 않았던 것
12. 사랑하는 사람에게 '고마워요'라고 말하지 않았던 것
13. 가고 싶은 장소를 여행하지 않았던 것
14. 고향에 찾아가지 않았던 것
15. 취미에 시간을 할애하지 않았던 것
16. 만나고 싶은 사람을 만나지 않았던 것
17. 하고 싶은 것을 하지 않았던 것
18. 사람에게 불친절하게 대했던 것
19. 아이를 결혼시키지 않았던 것
20. 죽음을 불행하다고 생각한 것
21. 남겨진 시간을 소중히 보내지 않았던 것
22. 자신이 산 증거를 남기지 않았던 것
23. 종교를 몰랐던 것
24. 자신의 장례식을 준비하지 않았던 것
25. 담배를 끊지 않았던 것

대부분 다 '껄' '껄' 하는, 하지 못한 일에 대한 후회들입니다.
후회란 보통 두 가지입니다.
한 일에 대한 후회와 안 한 일에 대한 후회입니다.
그런데 이중에서 해보지 않은 일에 대한 후회가 훨씬 크다는 것을 조금 전 사례에서 보면 알 수 있습니다.
한 일에 후회는 상대적으로 짧습니다.
그런데, 동시에 한 일에 대한 것은 ‘경험’이라는 소중한 자원이 남습니다.
그러나 해보지 않은 일에 대한 후회는 정말 후회막급(後悔莫及) 한 일로 계속 남습니다.
그래서 어떤 면에선 해 보고 욕먹는 게 안해 보고 욕먹지 않는 것 보다 낫습니다.
후회의 내용도 대부분 가족과 연관된 내용들입니다.
오늘 해야 할일이 있다면 바로 시행하십시오.
내일은 나의 날이 아니다. 어제도 이미 지나갔다. 오늘만이 나의 날이다.
이 구호를 외치는 것이 카르페 디엠이라는 말입니다.
과거는 지나갔고 내일은 나의 날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이렇게 살았다면 이 사람은 마지막 순간에 웃을 수 있고 여유를 가질 수 있습니다. 미련을 갖지 않게 됩니다.
그렇게 살아야 세상에 대한 미련 없이 멋진 모습으로 삶의 마지막을 맞이할 수 있지 않을까요?

세상을 떠난 소설가 박완서 선생님도
“나이가 드니 마음 놓고 고무줄 바지를 입을 수 있는 것처럼 나 편한대로 헐렁하게 살 수 있어서 좋고 안하고 싶은 것 안할 수 있어서 좋다. 다시 젊어지고 싶지도 않다. 안하고 싶은 걸 안하고 싶다고 말할 수 있는 자유가 얼마나 좋은데 젊음과 바꾸겠는가. 다시 태어나고 싶지도 않다. 난 살아오면서 볼 꼴 못 볼 꼴 충분히 봤다. 한번 본 거 두 번 보고 싶지 않다. 한번이면 충분하다. 한 겹 두 겹 어떤 책임을 벗고 점점 가벼워지는 느낌을 음미하면서 살아가고 싶다. 소설도 써지면 쓰겠지만 안 써져도 그만이다.” 라고 하였습니다.
< 토지>의 작가 박경리 선생님도 “모진 세월 가고 아아 편안하다.
늙어서 이리 편안한 것을. 버리고 갈 것만 남아서 참 홀가분하다.”라는 얘기를 하면서 죽음을 맞이하였습니다.

이렇게 죽음을 맞이할 수 있다는 것은 하루하루를 성실이 보냈고 지금 여기를 살았고 일상의 것들이 소중하다는 것을 알고 느꼈던 사람들만이 고백할 수 있는 것들입니다.
오늘 여러분들이 누리고 있는 일상이 나에게 가장 소중한 행복의 자원임을 꼭 기억할 수 있기를 바랍니다.





오하라 여자의 콩떡 한 개
홍하상

안녕 하십니까 홍하상입니다.
교토에는 '오하라메'라는 유명한 콩떡이 있다. 찹쌀에 검은 콩을 꾹꾹 눌러 박은 볼품없는 떡이다. 값도 아주 싼 동전  한잎의 싸구려 떡이다. 헌데 이 볼품없는 떡은 교토의 명물 중의 하나이다.
오하라메.<오하라의 여자>라는 뜻이다.
일본의 수도였던 교토의 인근에 오하라라는 작은 마을이 있다. 하늘이 동전만 하게 보이는 산촌이다. 논과 밭이 거의 없는 찢어지게 가난한 마을이어서 도무지 먹고 살 길이 없는 곳이다.

그 오하라 마을 여자들은 생계를 위해 산에 가서 나무를 자르고 패서  한단의 나무를 만든다.
그리고 한단의 나무를 머리에 이고 교토로 간다. 오하라와 교토는 차로 한 시간 거리이다. 그러나 머리에 한단의 나무를 이고 걷자면 서너시간이 걸려야 교토에 닿을 수 있다.
아침에 죽 한 그릇을 떠먹고 오전 내내 걸어 그녀들은 교토에 도착한다. 그리고 교토의 니시키 시장을 찾아 거기서 한단의 나무를 판다. 나무 한단이라야 요즘 돈으로 불과 5천원.
그녀들은 그 5천원의 돈으로 보리 한 홉을 사서 다시 오하라로 돌아간다. 오후 내내 걸어야 해가 질 때쯤이면 오하라에 도착할 수 있다.
오하라 마을엔 그녀의 어린 자식들이 어머니가 돌아올 때를 눈이 빠지게 기다리고 있다. 어머니의 보리 한 홉이 있어야 그날 저녁을 먹을 수 있기 때문이다. 오하라의 여자는 서둘러 집으로 돌아가려 한다.
그러나 보리죽 한 그릇을 먹고 점심을 건너뛴 그녀의 발걸음은 천근만근이다.

오하라로 나가는 교토의 데마치 야나기 거리에 다와라야깃토미(俵屋吉富)라는 떡집이 있다. 그 좌판에는 먹음직스러운 콩떡이 있다.
오하라의 여자는 망설이고 망설이지만, 너무 배가 고파서 도저히 오하라까지 걸어갈 기운이 없다.
눈앞에 자식들의 얼굴이 어른거리지만, 그거라도 한 개 사먹지 않으면 기진맥진해서 도저히 집에 까지 걸어갈 수가 없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떡 한 상자는 열 개.한 상자를 다 살수는 없다.
결국 그녀는 콩떡을 하나만 팔 수 없냐고 물어 본다.주인은 고개를 가로 젓는다.
옷차림은 거지나 진배없이 더럽고, 게다가 장작을 머리에 이고 오느라고 땀 냄새는 진동을 한다. 떡집 주인은 행색이 너무나 초라한 그녀들에게 떡을 팔고 싶은 마음조차 없다.

처음에 떡장수는 그녀들에게 떡을 팔지 않았다. 행색이 너무 더러웠기 때문이다. 그러나 곧 그녀들이 오하라 마을의 나뭇단 장수인 것을 알게 되었다.
비로소 그녀들이 내민 동전 한 푼이 얼마나 힘들게 번 것인가를 눈치 챈 것이다.
떡집 주인의 고개가 숙여진다. 한 닢의 동전이지만 그녀들에게는 천금보다 더 소중한 돈이기 때문이다.
그 다음날 떡집 주인은 오하라여자들이 사먹는 콩떡을 좀 더 크고 실하게 만들었다. 그리고 <낱개도 판매>라고 써 붙였다. 비록 단 한 개의 떡을 팔아주는 고객이지만 그들을 없이 여겼던 자기 자신이 부끄러웠기 때문이다.
이것이 그 유명한 '오하라메 콩떡'의 사연이다.

'하찮은 액수의 손님이라도 소홀히 하지 마라.
그들의 동전 한 잎이 얼마나 힘들게 번 것인가를 생각하라.
손님을 차별하지 하라.
오늘 돈이 없다고 해서 내일도 돈이 없다는 보장이 있는가.'

일본의 상인들은 그런 사실을 오하라메의 나뭇단 장수들로부터 배웠다. 그리고 그 배움을 지금까지 실천하고 있다.
오늘날 오하라메라는 콩떡은 교토의 명물이 되었지만, 그 콩떡 속에 숨어있는 사연을 일본 과자장인들은 알고 있기에 일본의 과자가게에서는 단 한 개의 과자를 사는 고객이라도 정성껏 그 한 개의 과자를 포장해 준다.
오하라여자들의 콩떡 이야기를 알고 있기 때문이다.

요즘 교토에서는 해마다 4월 셋째주에는 '오하라메 마쓰리'라는 것을 한다.
오하라의 나뭇단장수처럼 나무한단과 깡총한 하오리 옷을 입고 바로 그 오하라 여자들이 걷던 길을 나뭇단을 머리에 이고 걸어보는 축제이다.
참가비는 2천엔. 그 옛날, 자식들을 굶기지 않기 위해서, 공부를 가르치기 위해서 그렇게 고생하던 어머니들을 생각해보기 위해서이다.
우리는 어떤가. 으리뻑적한 대형백화점이 즐비하고 해외의 명품브랜드가 넘친다.
그걸 살려고 줄을 서고 있다.
동전 한 닢의 소중함이 잊혀지고, 강남의 골목에는 밤마다 음식점의 네온사인으로 불야성이다.
그러나 잊지마라. 바로 대형 백화점과 불야성의 식당들 뒤에서
바로 우리의 어머니, 재래시장 상인들은 그 동전을 벌기위해 새벽부터 나와있다는 사실을...
우리 어머니들의 고생을 다시한번 생각해보는 풍요의 시대에 우리는 살고 있다.
2만불 국가의 대한민국, 너무나 잘살고 있지만 과거의 가난, 과거의 근면검소함이 잊혀지고 있는 것 같아서 안타까운 현실이다.






태극권 명상
최환석

태극권에 대해서 말씀드리겠습니다.
태극권은 움직이는 운동이자, 무술에서 시작되었습니다.
태극권에는 닉네임이 있는데 바로 '움직이는 명상(moving meditation)'입니다.
어떻게 보면 이것은 서로 상충되는 이야기입니다.
'운동이면 운동이고, 명상이면 명상이지 어떻게 이럴 수 있느냐?' 하겠지만, 제 연구를 살펴보며 말씀드리겠습니다.

최근에는 'Movement & body-Centered Therapy'라며 운동을 하면서 내 몸을 살피는 것이 중요한 치료법이 되었습니다.
그래서 태극권은 치료적인 요소가 있습니다. 바로 유산소 운동의 효과가 있기 때문이죠.
첫 번째, 놀랍게도 시속 6Km/h의 속도로 걷는 운동 효과가 있습니다.
두 번째, 여러 가지 스트레칭 동작들이 포함되어 있습니다.
세 번째, 균형, 자세에 미치는 효과가 있고,
마지막으로 제가 가장 중요하게 여기는 이완 요법의 요소가 있습니다.
그래서 태극권은 운동이면 운동, 이완이면 이완 이러한 치료적인 요소가 있다고 생각됩니다.

물론, 태극권이 다가 아니죠.
이 'Movement & body-Centered Therapy'라는 것은 태극권뿐만 아니라 요가, 필라테스, 알렉산더 테크닉, 펠덴크라이스 테크닉이 모두 같은 범주에 속해있기 때문에
혹시 요가를 하고 계시다면 제가 말씀드린 태극권을 요가로 바꿔서 생각하셔도 됩니다.

이러한 동작 요법의 철학에선 신체의 움직임으로 질병을 치료하기도 한다는 것이죠.
신체의 운동, 동작은 건강을 약속하는 결정적인 요인이 됩니다. 그리고 규칙적인 운동은 질병을 호전시키고 가끔은 완치시킵니다.
결국 운동은 가장 효과적인 건강 유지 수단이 됩니다.
그래서 태극권과 요가는 치료 수단으로서의 가능성이 크게 대두되기 때문에 대증 요법으로 자리 잡고 있습니다.
물론, 모든 운동 프로그램이 모든 환자에게 적합한 것은 아닙니다. 그래서 각자에게 맞는, 본인이 좋아하는 운동을 선택하는 게 중요합니다.

태극권 명상이 가능할까요? 운동과 명상이 같이 갈 수 있을까요?
그것도 시속 6Km/h의 속도로 걷는 운동량을 가진 태극권이 과연 명상으로서의 요소가 있을지 살펴보겠습니다.

운동을 하는 중 자율 신경이 어떻게 될까요?
운동을 하게 되면 교감 신경이 흥분되어 맥박이 빨라지고 혈압이 올라가는 것으로 생각되기 쉽습니다.
그런데 그 이전에 부교감 신경이 먼저 떨어집니다. 그래서 운동 도중에 발생하는 돌연사와 관련이 있다고 생각됩니다.

운동 중 자율 신경이 어떻게 되는지 살폈더니 6Km/h의 속도로 걸을 때와 태극권을 할 때 맥박이 동일하여 운동량이 같다고 봅니다.
게다가 6Km/h의 속도로 걷는 것보다 태극권을 할 때 부교감 신경이 1/2 정도 덜떨어집니다.
그래서 태극권이 운동보다 자율 신경을 안정시키는 효과가 있다고 조사되었습니다.

태극권 명상은 태극권을 하면서 명상을 한다는 것인데 그렇다면 어떻게 해야 할까요?
먼저 태극권을 하면서 '나는 편안하다.'라고 릴랙스하려는 노력을 계속해야 합니다. 그러면서 내 몸에 어떤 게 있는지 봐야 합니다.
그래서 태극권을 하면서 이완 훈련, 이완 반응을 같이 해야 합니다.
동작 하나를 해도 릴랙스할 수 있고 이완되게 스스로에게 주문을 걸어야 합니다. 그러면서 잘 되고 있는지를 느끼는 거죠.
명상을 하든, 태극권을 하든 '변했구나', '좋아지는구나'라는 이득이 없다면 재미가 없을 겁니다.
태극권 동작을 하면서 '내 몸이 이완되는구나', '긴장되었던 내 몸이 이완되는구나', '릴랙스 되는구나'
이러한 이완 반응을 느낀다면 한없이 내가 좋다고 느낀다면 태극권의 전율을 계속 이어나갈 수 있을 겁니다.
이것이 한 마디로 태극권 명상이 아닌가 생각합니다.

태극권에는 각각의 동작이 뜻하는 의미가 있습니다.
백학이 날갯짓한다고 해서 '백학량시'라고 합니다. 가슴을 쭉 펴면서 백학이 날갯짓을 하듯 동작을 일치시킵니다.
'운수'라는 동작은 구름 위에서 구름을 해친다는 상상을 하면서 동작을 합니다.
'복호'라는 동작은 다리를 살짝 들어 호랑이 등에 얹혀 놓는다고 상상하며 동작을 합니다.
이완하려는 시도와 심상 유도를 같이 하면, 움직이는 동작이면서 그 자체만으로도 명상이 될 수 있습니다.
결국 '내가 참 좋다', '더 이상 이런 쾌감은 있을 수 없다', '황홀하다'라고 느끼게 됩니다.
그래서 태극권 명상이라고 표현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