鶴山의 草幕舍廊房

Free Opinion

[넷향기] 모음

鶴山 徐 仁 2015. 2. 9. 16:11

진정한 성공
최윤규

랄프 왈도 에머슨은 이런 말을 했습니다.
"자신이 한때 이곳에 살았음으로 인해 단 한 사람의 인생이라도 행복해지는 것, 이것이 진정한 성공이다."

그 말을 듣고 저는 이렇게 바꿔봤습니다.
"상상은 비용이 전혀 들지 않는다. 자유로운 상상으로 세상을 이롭게 하는 것, 이것이 진정한 성공이다."
이것은 제가 생각하는 상상적인 성공입니다.

비용이 들지 않는 이로운 상상을 하기 위해서는 먼저 무엇을 해야 할까요?
관찰해야 합니다.
어떻게 관찰하고 세밀하게 분석하는 것은 굉장히 중요합니다.
어떤 화가가 이렇게 말했습니다.
"그 누구도 자신이 어느 정도 나무의 입장이 되어보지 않고서는 나무를 제대로 그려낼 수 없다.
또한 단순히 어린이의 겉모습이나 윤곽만을 공부한다고 해서 곧 어린이를 그릴 수 있는 것은 아니다.
화가는 상당히 오랜 시간 동안 어린이의 동작과 노는 모습을 관찰함으로써 그들의 본성에 깊숙이 파고들어 갈 수 있게 되는 것이다.
그때야 비로소 화가는 어린이가 어떤 자세를 취하고 있더라도 그를 자유자재로 그릴 수 있는 것이다."
생각하고 관찰하고 상상하고 추론하고 분석하고 끄집어 내는 것, 그 힘이 바로 성공적인 상상을 만드는 지름길입니다.

시인 김남조는 성냥을 보고 시를 지었다.
성냥갑 속에서 너무 오래 불붙기를
기다리다 늙어버린 성냥개비들
유황 바른 머리를 화약지에 확 그어
일순간 맞불 한 번 그 환희로
화영도 겁 없이 환하게 환하게
몸 사루었음을.

단순히 그냥 한번 성냥을 쳐다보고 지은 것은 아니겠죠.
꾸준히 바라보고 관찰하는 것, 사소한 모습을 보고 세밀하게 관찰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그래서 저도 김남조 시인처럼 성냥을 바라보며 이런 생각을 했습니다.
'성냥이 없었으면 성냥팔이 소녀는 무엇을 팔고 다녔을까?'
'성냥을 불 켜는 용도 말고 무엇으로 쓸 수 있을까?'

다양한 생각과 관찰의 힘을 얻기 위해서는 우리 주변의 어린아이들이 아무 할 일 없이 빈둥대며 노는 것처럼 보여도 그냥 내버려 둬야 합니다.
그렇게 노는 시간에 하루 종일 개미만 관찰하거나 하루 종일 개와 놀고 있어도 관찰했던 모든 기억들은 아이의 머릿속에 저장되는 것입니다.
어른들이 보기에 쓸모없어 보이는 그 일조차 그 아이에게는 먼 훗날 생각의 기초가 될 수 있다는 것이죠.

전화기를 보면서 이런 생각을 해보았습니다.
전화 요금 많이 나오잖아요. 그래서 이런 전화기를 만들었으면 좋겠습니다.
무조건 1분만 통화되고 같은 번호로 다시 통화하려면 10분을 기다려야 하는 전화기
이 전화기의 핵심은 '용건만 간단히', 그리고 1분 안에 핵심을 전하는 기술을 배운다는 것이죠.

또 이런 생각도 있습니다.
임종 시 남기고 싶은 '마지막 1분' 사업입니다.
누구든지 갑자기 불의의 사고가 닥칠 수 있죠. 그때 미리 회원으로 가입해 놓고 사람들에게 남기고 싶은 마지막 1분을 녹음해 놓는 겁니다.
불의의 사고 때, 또는 자신이 지정한 날짜에 자신이 저장했던 1분의 녹음된 내용이 전화기에 저장되어있는 모든 사람에게 전달되는 겁니다.
말도 안 되죠? 그러나 가능할 것 같습니다.

병원에서 의사들이 사용하는 청진기를 보면서 이런 생각을 했습니다.
'저 사람들은 소리를 들을 수 있겠구나. 그런데 어떻게 소리를 판별할까?
그렇다면 소리를 듣는 게 중요할까?, 아니면 소리를 판별하는 게 중요할까?'
그러면서 고민을 해봤습니다.
'과연 소리를 듣고 판별하려면 화가가 그림을 그리듯이, 시인이 시를 쓰듯이, 어린아이가 개미를 관찰하듯이 깊숙이 관찰하고 듣고 고민하고 노력했어야만 그것이 가능하겠다는 것이죠.
그래서 이런 생각을 했습니다.
'마음이 들이는 청진기는 못 만들까?, 마음이 들리는 휴대폰은 못 만들까?, 마음이 들리는 게임기는 못 만들까?'

이 세상에 있는 모든 발명품 중에서 영국 인디펜던트가 선정한 '세상을 바꾼 100가지 발명품'을 발표한 적이 있었습니다.
그 발명품을 보면서 이런 생각을 했습니다.
'이 사람들은 기본적으로 내면에 사랑의 감정이 있는 사람들이구나.'
그렇다면 세상을 바꾼 100가지 발명품에는 어떤 것이 있는지 소개하겠습니다.
냉장고. 나침반. 헤드폰. 칫솔. 휴대전화. 체중계, 전구. 브래지어. 체온계. 전자레인지. 수세식 변기, 우산. 현미경. 종이 클립. 카메라. 포스트잇, 성냥. 고무줄. 아이팟. 낚싯바늘. 청진기. 활.
화살, 컴퓨터 자판. 지우개. 연필. 주전자. 주판. 건전지, 지퍼. 자전거. 단추. 불. 철조망. 텔레비전. 자물쇠, 바코드. 안전면도기. 전기면도기. 기관총. 마우스, 안경. 아스피린… 등이 있습니다.
이렇게 많은 것들의 상상력의 핵심은 바로 미래의 여정을 바라볼 수 있다는 것입니다.

수많은 발명품을 만들어서 세상을 이롭게 했듯이 결국 진정한 성공은 내가 하는 생각, 내가 하는 발상, 그 모든 것으로 나만이 혜택을 보는 게 아니라,
이 세상 모든 사람들에게 공평하게 이로움을 전하는 것이 바로 진정한 상상이라고 생각합니다.

감사합니다.

 

 

 

 

50세 이후 건강은 자기책임
이시형

안녕하십니까? 이시형입니다.
암, 고혈압, 당뇨를 죽음의 3중주라고 합니다.
그러나 우리에게는 두 가지가 더 있습니다.
한 가지는 간장병이고 또 한 가지는 대사증후군이라는 내장 복부비만입니다.

간장병은 한국 의사가 세계 최고의 수준입니다.
현대아산병원에서 간 이식수술을 2천 건을 했다고 합니다. 단일 병원에서 이렇게 많이 했다는 것은 세계 기록이 아닐까 생각합니다.
그만큼 간장병이 많다는 사실입니다. 한편으로는 창피한 일입니다.

우리는 죽을 때 이런한 생활습관병으로 죽게 됩니다.
문제는 대부분의 생활습관병이 자각증상이 없다는 사실입니다.
병이 이미 진행되었는데도 눈치채지 못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가령 동맥경화증은 동맥이 좁아져 20% 밖에 남지 않아도 평소 생활에는 아무런 지장이 없습니다.
그러다가 어느 날 동창회라도 나가서 100m를 달린다든지, 마라톤을 풀코스로 뛴다든지 하면 끔찍한 불상사가 생길 수 있습니다.

암도 조기에 발견되면 80% 완치된다고 합니다. 문제는 조기에는 증상이 없다는 사실입니다.
몸이 이상해서 병원에 가면 벌써 3기, 4기, 말기 암으로 진행되고 난 후입니다.
얼마 전에는 한 내과 전문의가 본인이 당뇨병인 줄도 모르고 지냈다고 합니다.
따라서 이런 병들은 조기검진이 필요하고 그래서 이제는 치료보다 예방이 중요합니다.
많은 직장에서 강제로 건강검진을 받게 합니다.
그런데 결과를 확인하러 오는 사람은 별로 없습니다. 마치 남의 일인 양 생각합니다.

한국의 40대를 '死십대'라고 합니다.
왜냐하면 이 무서운 생활습관병들은 대부분 40대에 발병합니다.
그때가 되면 타고난 방어 체력은 떨어지고 생활습관은 제일 고약한 때가 바로 한국의 40대입니다.
폭음, 폭식 그야말로 샌드위치 세대 아닙니까?
그리고 회사의 모든 책임은 40대가 지게 됩니다. 그래서 휴식도 없고 수면도 없습니다.

이래서 장수 의사로 유명한 일본의 히노하라 박사는
"인간은 타고난 유전자로 40세까지는 산다. 그 이후론 제2의 유전자로 살아야 하는데 그것이 건강한 생활습관이다."라고 말했습니다.
참으로 명언입니다.
건강상 위기의 40대입니다.
특히 한국의 40대 남성 사망률은 세계 최고이자, 동년배 여성의 3배라는 보고도 있습니다.
올바른 생활습관으로 제2의 건강 유전자를 키워야 하지만 이것은 하루아침에 되는 게 아닙니다.

30대, 혹은 20대부터 시작해야 합니다.
문제는 한국 30대 직장인들의 회식문화가 아주 고약합니다.
폭탄주는 물론 에어컨을 켜놓은 방에서 담배를 피우고 기름진 고기를 숯불에 구워 먹고 게다가 2차, 3차를 갑니다.
누구 한사람 사고가 나야 귀가하는, 어떻게 보면 아주 결사적입니다.

40대를 별 탈 없이 잘 넘기면 50대는 축복받은 세대가 됩니다.
이렇게 50대가 되면 평균 수명에 10년을 추가합니다.
여성은 90세, 남성은 80세가 보장됩니다.
이것이 의학적인 여명 계산법입니다.
30, 40대 생활습관이 일생의 건강을 좌우하게 된다는 사실을 잊지 마시기 바랍니다.

감사합니다.

 

 

 

 

따로 또 같이!
박상희

제가 정말 좋아하는 말이 하나 있습니다. 그건 바로 ‘따로. 또 같이.’ 라는 말인데요.
이런 명칭이 80년대에 그룹사운드도 있었죠? 저는 ‘따로. 또 같이.’ 이 말을 참 좋아합니다.
왜냐하면 따로 있을 수도 있고 같이 있을 수도 있는 사람이 정말 건강한 사람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제가 상담했던 한 여대생이 있었습니다.
이 여대생은 요즘 많은 젊은 학생들이 그렇듯이 혼자 있는 걸 참 못하는 학생이었습니다.
남자친구랑 헤어지고 나면 단 며칠이라도 혼자 있을 수 있는 시간을 가질 수 있어야 하는데 남자친구와 헤어졌다고 해서 바로 그날로 그날 저녁에 또 새로운 남자친구를 만나기 위해서 친구들과 술도 마셔야 되고 단 하루도 혼자 있는 것을 못 견뎌 하곤 했습니다. 물론 그렇기 때문에 계속해서 인간관계에 문제가 많이 발생했죠.
부부간에도 마찬가지라고 생각합니다. 어떤 부부는 사랑한다는 명목으로 모든 가족과 또 아내나 남편을 꽉 구속해서 “움직이지 마라. 너와 나는 하나다.” 이렇게 뭉쳐 있곤 하죠. 또 어떤 부부나 가족은 너무 응집하지 못하고 완전히 일탈해 버려서 너는 너, 나는 나. 그리고 자식은 자식대로. 이런 슬픈 모습도 보곤 합니다. 그래서 가장 건강하고 아름다운 모습은 따로도 있을 수 있고 같이도 있을 수 있는 거죠. 물론 물리적으로도 그렇고 심리적으로는 더 말할 것 없습니다.

저는 개인적으로 교회에서 성가대의 지휘를 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어떤 때에는 독창이 ‘저 멀리 뵈는 시온성’ 이런 독창노래를 선택하고 싶을 때가 있고요,
어떤 때에는 정말 모든 화음이 이루어져야 되는 ‘할렐루야’ 이런 곡을 선택하고 싶을 때가 있죠.
그런데 언제나 합창곡을 선택해야 되고 언제나 독창곡을 선택하게 되면 참 재미가 없겠죠?
이건 오케스트라 음악을 들을 때에도 제가 같이 느끼는 마음인데요.
어떤 날은 플롯의 독주연주가 너무나 아름답게 느껴질 때가 있고요,
또 어떨 때에는 모든 악기가 같이 울리는 오케스트라의 연주가 멋있을 때도 있습니다.
이건 인생에서도 마찬가지가 아닐까 싶습니다.
때로는 혼자서 아름다운 선율을 내는 시간이 필요하고요, 또 때로는 다 같이 어울리는 그런 합창의 느낌도 필요하죠.
 
혹시 이 방송을 보시는 분께서도 “나는 혼자 있는 것만 좋아.” 그런 분이 계신가요? 또 아니면 반대로 “나는 혼자 있는 것이 너무나 싫어. 항상 누구랑 함께 있고 싶어.” 만약 이런 마음이 드시는 분이 있으시다면 오늘은 한번 반대로 해보시죠. 항상 혼자 있는 분은 용기를 내어서 주변의 지인들에게 연락을 한번 해보세요. 그리고 항상 누군가가 곁에 있어줘야 하는 의존적인 분들은 오늘 하루만큼은 혼자서 씩씩하게 남은 시간을 보내보시기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