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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넷향기] 이현정 원장의 "신라시조 흉노족"

鶴山 徐 仁 2015. 1. 9. 19:33
신라시조 흉노족
이현정

신라는 원래 김씨왕조가 아니라 바로 박씨가 먼저 왕이 되는 시조였고, 나중에 석씨를 거쳤다.
왕조의 성씨가 바뀌는 데도 불구하고 나라명이 바뀌지 않는 것은 역사상 신라밖에 없다.
더구나 다른 왕조들과도 완연하게 다른 여러 가지 특성이 있다.
성씨가 다른 왕이 되는 것 뿐 아니라 사위가 왕이 되고, 여자가 왕이 되고, 황후가 왕이 죽은 후 다음 왕이나 또 다른 왕족과 혼인하고 등등.
지금으로선 상상하기도 힘든 여러 가지 형태가 신라왕조에서 나타난다.

중국은 한무제 때 고조선을 정벌하고 기원전 108년에 한사군을 설치한다.
그런데, 한사군 중에서 임둔과 진번은 오래가지 못하고 낙랑과 현도로 편입되고 만다.
기원전 82년에 임둔과 진번에서 사라진 현은 도대체 어디로 갔을까?
즉, 이때 한사군과 함께 도래한 흉노족들 중에 중국의 영향력에서 벗어나려는 세력들이 대거 한국 남쪽으로 이주한 것으로 보인다.

삼국사기에 보면 신라 건국년인 기원전 57년에 앞서 고조선의 유민이 남하해서 6개마을을 이루고 살다가 신라를 건국한 것으로 기록되어 있고,
신라가 건국되기 전에 중국 진나라 땅에서의 강력한 정변은 결국 한나라의 진나라 땅 오르도스의 흉노정벌밖에 없다.
이 흉노정벌은 중국 한나라가 국가의 모든 역량을 집중한 것이었고, 흉노 포로만 십수만에 달하는 엄청난 사건이었다.
즉, 오르도스에서 포로가 된 흉노족들이 한사군 설치와 함께 남하한 것이 강력한 증거가 된다.
삼국사기에서 신라 건국기 초기에 낙랑과의 분쟁이 심함을 알 수 있다. 즉, 한사군에서 이탈한 흉노족들은 마한과 동맹해서 한사군에 대항했고, 한사군 측에서는 도망친 흉노족을 벌하기 위해서 계속 신라를 공격한 것으로 보여 진다.

이렇게 중국으로부터 독자적인 세력으로 자리한 신라흉노들은 기원전 57년 흉노 분열기에 독립하게 되는데, 이때 지도자가 박혁거세다. 박혁거세가 흉노족이란 증거가 너무나 많다.
박혁거세의 부인도 알영이라고 하였는데, 이것은 흉노 왕들의 알지와 같은 뜻으로 보여 진다.
또한, 박혁거세는 서라벌을 금성이라고 칭해서 너무나 명백한 흉노족 도시임을 나타내고 있다.
또한 중국에 박씨가 거의 없기 때문에 박씨라고 한 성의 의미에 합당한 이유는 ‘소박상무(素朴尙武)’라고 하는 한자어로 볼 수있다.
이는 북방유목민의 장점이 바로 소박한 삶속에서 무를 숭상함으로써 이루어진 것이다.
신라흉노들은 흉노의 장점이었던 소박상무의 정신을 되살려서 자신들의 영광을 재현하고자 기리는 마음으로 박씨 성을 딴 것이다.
신라역사 전체에서 초기의 박혁거세와 그 몇몇 후손들 외에 박씨는 김씨의 허상일 수도 있다.
박혁거세라고 명명한 것도 알고 보면 김씨들이 한 것이다.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