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학 줄 세우는 대학생들
자기 학교는 무조건 옹호… 상대 학교는 비방·욕설
온라인 논쟁 넘어서 실제 폭력 사건 벌어지기도
-학생들 싸움에 대학도 가세
한양대, 중앙대생 고소하자 중앙대도 고소로 맞대응
경희대·梨大·아주대 등도 법적 대응 나선 적 있어
-수시 전형 확대가 원인?
수능 점수 外 기준 늘어나 대학 간 서열 모호해져
CEO·국회의원 수 따지고 캠퍼스 크기 놓고도 경쟁
그러자 중앙대가 맞대응에 나섰다. 중앙대는 "우리도 대응하지 않을 수 없다는 판단 아래 학교 명예를 훼손하는 글에 강력히 대응키로 했다"며 인터넷에 중앙대 비방 글을 계속 올린 IP 13개를 지난 3일 서울중앙지검에 고소했다. 중앙대 관계자는 "글 맥락을 볼 때 한양대 학생이 다수 포함됐을 것으로 추측하고 있다"고 말했다. 한양대 측은 "중앙대가 고소한 대상은 네티즌일 뿐 아직 한양대 학생이란 증거는 없다"는 입장이다.
학원가에서는 이번 사태를 지난 2008년 두산이 인수한 이후 중앙대가 약진하며 나타난 결과라고 해석한다. 한 입시 전문가는 "중앙대는 두산 인수 이후 컨설팅 업체 맥킨지의 컨설팅을 받고 학문 단위 구조 조정을 거치는 등 무섭게 치고 나갔다"며 "어느 대학이 더 좋은 대학인지를 둘러싸고 학교와 학생들이 자존심 대결을 벌이는 것 같다"고 말했다.
대학가에서 학교를 비방하는 네티즌을 상대로 법적 대응에 나선 것은 이번이 처음이 아니다. 최근 2~3년 동안 경희대·이화여대·아주대 등도 자기 대학을 비방한 네티즌을 경찰에 수사 의뢰하거나 고소한 일이 있다. 이번에 고소를 당한 A씨도 Why?와 가진 통화에서 "(온라인상의 대학 비방전은) 아주 오래전부터 계속돼왔다"며 "그 연장선상에 내가 끼어들었을 뿐이다"라고 말했다.
- 일러스트=박상훈 기자
◇서열에 목매는 '대학 훌리건'
대학가에선 온라인상에서 자기 학교는 치켜세우고, 다른 대학은 가차 없이 깎아내리는 극성 네티즌을 '대학 훌리건'이라고 부른다. 스포츠에서 자기 팀에 대한 지나친 애정으로 폭력적 행동까지 서슴지 않는 극성팬 '훌리건'과 하는 짓이 비슷하다 해 붙은 이름이다.
대학 훌리건의 역사는 약 15년 전 시작됐다. 2000년 한 포털 사이트에 '훌리건 천국'이란 카페가 개설됐다. "대학 서열 놀이를 하겠다"고 노골적으로 선포한 곳으로, 회원 수는 12일 현재 7만5415명에 이른다. 운영자는 공지를 통해 이곳을 '대학 훌리건들이 모여 대학 서열에 관한 담론을 자유롭게 할 수 있는 곳'이라고 소개하고 있다.
이곳의 주요 게시판은 'VS 게시판'과 '대학 서열 게시판'이다. VS(versus의 약자) 게시판에선 특정 대학 특정 과를 두 개 걸어놓고 어디가 더 서열이 높은지 투표와 댓글로 논하는 놀이가 진행된다. 최근엔 '한양대 법대 vs 성균관대 법대'란 글이 올라왔는데 온갖 욕설을 동원해 양쪽을 비방하는 댓글이 40개 넘게 달렸다. 대학 서열 게시판에는 말 그대로 대학 서열 관련 자료가 올라온다. '2014학년도 로스쿨 입학자 출신 대학 현황' '국내 500대 기업 CEO 출신 대학 현황' 등의 자료를 통해 대학 서열을 논하는 식이다.
훌리건 천국과 쌍벽을 이루는 곳은 최근 고소전의 계기가 된 디시인사이드 4년제 대학 갤러리다. 2006년쯤 생긴 이곳은 회원 가입 없이도 활동할 수 있어 올라오는 글이 훨씬 많고 자극적이다. 포털 사이트의 지식 서비스 게시판도 대학 훌리건의 주요 활동 무대. '어느 대학이 더 좋으냐'는 고등학생들의 질문이 자주 올라오는데, 대학 훌리건들은 경쟁적으로 답변을 달고 있다.
◇근거 없는 서열 만들기 난무… 폭력 사건으로 발전도
전문가들은 대학 훌리건이 늘어난 데 대해 '입시 전형의 변화로 대학 간 서열이 모호해졌기 때문'이라고 분석한다. 오종운 이투스 청솔 평가이사는 "과거엔 학력고사나 수능 점수 등 필기시험 점수만으로 어느 대학을 가느냐가 결정되곤 했지만, 2002년 다양한 기준을 활용해 신입생을 뽑는 수시 제도가 도입된 이후엔 이 공식이 깨졌다"고 말했다. 현재 서울 주요 대학은 신입생의 70% 정도를 수시로 선발하고 있다.
신입생이라는 '인풋(input)'이 서열을 판가름하는 기준으로 판별력을 잃으면서 주목받기 시작한 것이 졸업생이라는 '아웃풋(output)'이다. 대학 훌리건들이 '최근 5년간 대학별 국회의원 배출 현황' 등을 근거로 내세우며 서열 싸움에 열을 올리는 이유다. 최근엔 6·4 지방선거 당선자들의 출신 대학을 두고도 서열 논쟁이 일었다. 서울의 한 명문 사립대 관계자는 "캠퍼스 크기나 시설 현황까지 들먹이며 서열 싸움을 하는 모습이 상대방 흠집내기에 열중하는 정치권을 보는 것 같다"고 했다.
이런 서열 싸움은 거짓과 비방의 난무, 폭력 사건으로도 발전한다. 7년간 대학 훌리건의 활동을 지켜봐 온 대학원생 문모(26)씨는 "자료 조작, 허위 사실 날조 등이 심심찮게 벌어진다"며 "욕설 가득한 글 때문에 불쾌감과 모욕감을 느끼는 경우도 많다"고 했다. 지난 2012년 3월엔 디시인사이드 4년제 대학 갤러리에서 서울시립대 졸업생 구모(38)씨가 모교를 비하하는 글에 격분, 해당 글을 올린 김모(28)씨를 찾아가 무차별 폭행해 경찰에 입건된 적도 있다.
전문가들은 "여전히 서열을 요구하는 사회가 대학 구성원에게 과도한 영향을 끼친 데서 비롯된 부작용"이라고 진단한다. 정근식 서울대 사회학과 교수는 "대학 훌리건의 행위는 '모교의 평가를 높이겠다'는 관점에서 볼 때도 백해무익한 행위"라면서 "진정 모교의 발전을 바란다면 타 대학을 비방할 시간에 모교에 건설적인 비판과 제언을 내놓는 게 바람직할 것"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