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중·일 3국의 최신형 전차가 서로 맞붙는다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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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 2014.02.10 11:42 | 수정 : 2014.02.10 11:50
- (위쪽부터) 한국 K-2 흑표 전차. 중국 99식 전차. 일본 10식 전차
지난해 11월 말 미국의 한 군사전문 인터넷 매체가 세계 10대 주력전차 순위를 정해 보도한 것이 한·일 양국 네티즌들 사이에 화제와 논란이 됐다. 일본의 최신형 10식 전차가 우리 한국군의 차기전차 K-2 ‘흑표’에 뒤지는 것으로 나타났기 때문이다. 이 매체는 화력, 기동성, 방어력을 기준으로 순위를 정했는데, 1위는 독일의 레오파드 2A7+였다.
2위부터 9위는 미국의 M1A2 에이브럼스, 영국 챌린저 2, 우리나라의 K-2 흑표, 이스라엘의 메르카바 Mk4, 일본의 10식 전차, 프랑스의 르클레르, 러시아의 T-90MS, 우크라이나의 오플로트M 등이 차례로 차지했다. 우리나라 K-2 전차가 4위, 일본 10식 전차가 6위를 각각 차지한 것이다.
이에 대해 일본의 군사 매니아 네티즌들이 발끈하고 나섰다. 일본 네티즌들은 K-2는 미완성이고 가상의 카탈로그 스펙일 뿐이며 10식 전차가 서구 미디어들로부터 과소평가받고 있다고 주장했다. 실제로 한·중·일 3국의 최신형 주력전차를 비교해보면 어느 쪽 성능이 앞설까? 중국의 최신형 전차로는 99A2식 전차가 꼽힌다.
일본이 자랑하는 10식 전차는 기존의 74식 및 90식 전차를 대체하기 위해 1990년대부터 개발에 착수됐다. 2012년 이후 본격적으로 실전 배치된 3.5세대 전차다. 현재 주력인 90식 전차에 비해 가볍고 첨단 지휘통제(C4I) 장비를 갖춘 것이 가장 큰 특징이다. 330여대가 생산된 90식 전차는 무게가 50t에 달해 운반할 때 차체와 포탑을 분리해 수송해야 했다.
반면 10식 전차의 무게는 44t으로 줄어 운송이 쉬워졌다. 최신 지휘통제 장비를 갖춰 육상자위대 네트워크와 결합해 전차 간 통신 공유, 보병의 외부 컴퓨터 네트워크 연결로 통합 군사작전을 가능케 한다. 특히 이라크의 대게릴라전에서 얻은 교훈이 반영됐다.
포탑 위쪽에 사수가 전차 외부에 노출되지 않고 안전하게 사격할 수 있는 원격조종 기관총탑을 탑재하고 모듈식 장갑도 달고 있다. 주포는 120㎜ 활강포로 관통력이 강화된 포탄을 발사한다. 10식 전차는 길이 9.48m, 폭 3.24m, 높이 2.3m이고 최고 속도는 시속 70㎞다. 대당 가격이 112억원 수준으로 매우 비싼 게 흠이다.
한국군 차기전차 흑표는 지난 2007년 시제품이 출고됐고 2011년부터 실전배치될 예정이었지만 파워팩(엔진+변속기) 개발 문제로 양산이 지연, 올 들어서야 본격 양산이 시작된다. 일본 10식 전차와 같은 3.5세대 전차로 분류된다. 기존 K-1A1 전차의 포보다 1.3m가량 더 긴 120㎜ 주포를 장착하고 최신형 전차 포탄으로 무장, 북한의 최신형 ‘선군호’ ‘폭풍호’ 전차는 물론 미·일·중·러·유럽의 어떤 전차도 관통할 수 있다고 한다.
미사일 및 레이저 경고장치와 유도교란 통제장치, 복합연막탄 발사장치를 갖춰 국내 전차로선 처음으로 날아오는 적의 대전차 미사일을 교란해 빗나가게 할 수 있다. 대전차 미사일·로켓을 직접 쏘아 맞혀 파괴하는 능동방호 시스템도 갖출 예정이다. 탄약도 자동으로 장전돼 승무원이 종전 4명에서 3명으로 줄었다. 또 다목적 대전차 고폭탄(HEAT-MP)으로 공중에서 전차를 위협하는 공격용 헬기를 직접 쏘아 맞힐 수도 있다.
4.1m 깊이의 강이나 하천을 건널 수 있는데 이는 미국이나 프랑스 신형전차에 비해 우수한 것이다. 울퉁불퉁한 구릉지에서도 시속 50㎞ 이상의 고속(최고속도 시속 70㎞)으로 달릴 수 있고 전차 자세를 높이거나 낮출 수 있어, 산악지형에서 사용하는 데 유리하다. 대당 가격은 78억원으로 일본 10식 전차보다 싸다. 길이 10m, 폭 3.8m, 높이 2.4m로, 무게는 55t이다.
중국의 99식 전차는 1999년 등장해 2001년 이후 배치된 3세대 전차다. 99식, 99G식, 99A1식, 99A2식 등 다양한 모델이 있다. 최신형인 99A2식은 디지털 전장정보 단말기, 개량형(쐐기형) 폭발반응 장갑, 적 대전차 무기를 무력화하는 능동방호 장치 등을 갖추고 있다. 125㎜ 활강포를 탑재하고 있는데 각종 포탄은 물론 대전차 미사일도 쏠 수 있다. 4기의 대전차 미사일을 갖고 있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일부 중국 언론은 99식 전차가 텅스텐 날개안정철갑탄을 사용하면 2000m 거리에서 890㎜의 장갑을, 감손우라늄 철갑탄을 사용하면 같은 거리에서 960㎜의 장갑을 관통할 수 있다고 보도하기도 했다. 디지털 사격통제 및 항법 체계를 갖춰 탐지거리가 7000~9000m에 이른다고 한다. 하지만 대당 가격이 200만달러로 중국 전차로서는 비싼 편이어서 제한된 수량만 도입, 현재 99식 전체 모델을 합쳐 500여대가 배치된 것으로 알려졌다. 99A2식은 길이 11m, 폭 3.52m, 높이 2.37m이고 최고속도는 시속 80㎞다. 무게는 58t에 달한다.
일본의 한 전차 전문가는 “중국 99식 전차가 절대로 일본 10식 전차의 적수가 되지 못하고 10식 전차 1대로 99식 전차 3대를 파괴할 수 있다”고 주장하기도 했다. 하지만 그는 99A2식에 대해선 언급을 피한 것으로 알려졌다.
국방기술품질원이 발간한 ‘2011~2013 세계 주력전차 획득 동향’에 따르면 10식 전차는 국내 배치용으로 제작돼 경량화된 반면 방호력이 약하다. 99A2식 전차는 기동력과 정보화 면에선 다소 취약하지만 다른 부분에 있어선 10식 전차에 뒤지지 않는다고 한다. 실제로 두 전차가 대결을 벌인다면 10식 전차가 먼저 99A2식 전차를 발견할 수 있지만 10식이 첫 사격에서 99A2식을 격파하지 못하면 99A2식의 반격에 직면하게 된다. 특히 99A2식은 포탄보다 사거리가 긴 대전차 미사일을 쏠 수 있어 10식보다 먼 거리에서 적 전차를 파괴할 수 있다.
10식 전차는 신형 사격통제 장치를 탑재해 90식 전차보다 뛰어난 야간작전 능력을 갖췄다. 포탑 안에는 목표 자동추적장치가 탑재돼 있는데 이는 세계에서 이스라엘의 메르카바 Mk4 전차만이 갖고 있는 기능이라고 한다. 99A2식도 세계적으로 우수한 사격통제 장치를 갖추고 있는데 전반적인 장갑관통 능력은 10식 전차와 비슷한 것으로 평가된다. 여러 대의 전차가 함께 움직이는 단체작전에는 10식이 첨단 지휘통제 장비를 통해 99A2식보다 우세한 것으로 분석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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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 KODEF의 공동대표이신 김재창 예비역 육군대장님의 글입니다. | |
홈페이지 |
한 학회에서 발표하신 글입니다. 원 문은 자료실에도 올리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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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 육군대장 김재창
서론:
British Columbia 대학의 정치학교수인 Kalevi Holsti 교수가 “전쟁과 평화의 Cycle” 에 대한 논문을 쓴 것이 있다. Kalevi J. Holsti, Peace and War: Armed Conflicts and international Order 1648-1989 (Cambridge: Cambridge University Press, 1991) 나라와 나라 간에 분쟁이 격화되면 전쟁이 일어난다. 전쟁의 결과는 평화조약이라는 형태로 나타난다. 그러나 그 평화조약이란 것은 승자가 패자에게 자기의 의지를 억지로 받아들이게 하는 문서일 뿐이다. 따라서 평화조약 속에는 늘 패자의 불만과 원한의 싹이 심어져 있게 마련이다. 그 씨(Seed)가 자라면 다시 분쟁이 격화되고 그것이 다음전쟁으로 이어지고 또 다른 평화조약이 체결되는 Cycle을 반복한다는 것이다.
전쟁에 대비하는 사람들의 입장에서 보면 Holsti 교수의 “전쟁과 평화의 Cycle"은 특별한 의미를 지니고 있다. 전쟁이 일어나면, 적대관계 쌍방의 군대가 싸우게 된다. 통상 승자와 패자가 전쟁을 통해서 결정된다. 승자와 패자를 가릴 것 없이 모두 싸웠던 내용을 분석하여 교훈을 찾아낸다. 그 교훈이 씨(Seed)가 되어 마치 나무가 자라나듯 다음 전쟁에 대한 준비를 하게 된다. 그 준비의 결과를 평시에는 평가하기 어렵다. 그것은 오직 다음번 전장에서 승패로 나타날 뿐이다.
독일과 불란서는 1차대전에서 쌍방의 국력이 다 할 때까지 싸웠다. 미국이 불란서 쪽에 가담했을 때에 독일은 더 이상 버틸 힘이 없어서 패자가 되었고 불란서는 승자가 된다. 그러나 불란서가 군사적으로 전장에서 독일을 이긴 것은 아니었다.
전쟁이 끝난 다음, 불란서는 어떻게 이겼는가를 분석하여 교훈을 도출하였고, 독일은 왜 졌는가를 분석하여 교훈을 배우려 했다. 통상, 패자가 승자보다 더 정확한 교훈을 배운다. 불란서와 독일도 예외가 아니었다. 불란서는 튼튼한 진지가 독일군의 공격을 격퇴했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독일은 변화에 초점을 맞추었다. 전장에 등장했던 새로운 과학기술이 미래의 전장을 어떻게 바꾸어 놓을 것인가를 상상한 것이다. 그리고 새로운 Drama의 Scenario를 작성하였다. 불란서가 준비한 것은 마지노선이었고, 독일이 준비한 것은 Panzer 사단과 Blitz Krieg 였다. 2차 대전이 일어났을 때에, Maginot 선과 Panzer 사단의 대결은 싱겁게 끝나 버렸다. 하나는 1세대의 것이었고, 다른 하나는 2세대의 것이었기 때문이다.
1차대전이 끝나고 2차 대전이 일어나기까지 약 20년이라는 시간이 있었다. 불란서와 독일이 나름대로 많은 예산과 인력을 투입하여 다음전쟁을 준비한 기간이었다. 야구선수들도 긴 겨울을 나면서 다음 game을 준비한다. 지난해의 교훈을 기초로 하고, 다음해에 전개될 Game 의 Scenario를 상상하면서 체력을 단련하고 기술을 개발한다. 그것은 마치 군대가 전쟁을 준비하는 Cycle 과 흡사하다. 그러나 근본적으로 다른 것이 하나 있다. 전자는 상금이 걸린 Game 이고, 후자는 국가의 운명이 걸린 결전이다. 그것은 손자가 말해주는 “死生之地, 存亡之道” 이기 때문이다.
우리는 지난전쟁에서 무엇을 배웠는가? 우리는 다음번 전쟁이 어떻게 전개되리라고 생각하고 있는가? 우리는 지금 무엇을 준비하고 있는가? 이런 생각을 할 때면, 독일과 불란서가 생각난다. 1870년 보불전쟁, 1914년 1차대전, 1940년 2차대전. . . , 매번 독일은 새로운 Drama를 연출했다. 그러나 불란서는 지난 예기를 반복하여 준비하는 수준을 넘지 못했다. 군사적 관점에서 본다면, 한쪽은 항상 패배하였고, 한쪽은 항상 승리하였다. 왜 그렇게 되었는가?
어떤 때는 과학기술이 모자랐다. 또 어떤 때는 전술적 사고력이 경직되어 미래를 내다보지 못했다. 그러나 결정적인 것은 과학기술과 전술적 발상을 연결하지 못해 새로운 Drama를 구상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이 교훈은 지금도 우리 눈앞에 전시되어 있다. 보라. 미국이 Gulf 전에서 새로운 Drama를 연출할 때에 Hussein 은 대항할 엄두를 내지 못했다. 한 Game 이 끝난 것이다. 2003년 다른 Game이 시작되었다. 미국이 Iraq 전에 사용한 Scenario 는 또 새로운 것이었다. Shock and Awe 가 그런 것이다. 승자가 되려면 새로운 Drama를 연출해야 한다는 것을 미국은 잘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이것이 승자의 행동 Pattern이다.
본론:
제1장. 과학기술과 전술
1. 현대전은 언제부터 시작 되었는가?
Dupuy 는 현대전이 대개 17세기부터 시작되었다고 본다. 활과 창으로 싸우던 중세기 시대의 무기체계, 전술, 그리고 군대의 편성이 사라지고, 소총과 대포가 등장하여 보병과 포병과 기병이 전장을 누비는 시대가 시작되었기 때문이다. 그는, 이 변화를 이끌어낸 주역 중에 Sweden 의 Gustavus Adolphus를 제일 먼저 꼽는다. 그가 참가한 30년 전쟁, the War of the Grand Alliance, 그리고 Dutch War를 통해서 이 거대한 변화가 진행되었기 때문이다.
Fletcher School 의 John Perry 교수는 러일전쟁(1904-1905)이 최초의 현대전이라고 주장한다. 그는 무기에 의해서 죽은 수가 기타 다른 이유로 인해 죽은 숫자보다 더 많은 전쟁을 현대전이라고 정의하고 있기 때문이다. 일반적으로, 화약이 전장에 도입된 이후 등장한 무기체계와 그와 관련된 교리, 전술, 편성을 집대성한 것은 1차대전이었다고 평가한다. 따라서 1차 대전이 최초의 현대전이라는 주장이 설득력이 있다. 하지만, 현대전의 뿌리를 이해하려면 Gustavus부터 시작하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생각한다.
2. 과학기술이 싸우는 방법을 바꾸어 놓았다고 말할 수 있다. 그러나 더 정확한 표현은 과학기술과 새로운 전술적 발상이 짝을 이루어 전장의 모습을 바꾸어 놓았다고 하는 것이 맞을 것이다. 어떤 경우에는 과학기술이 새로운 전술적 발상을 선도하기도 하고, 또 어떤 때는 새로운 전술적 발상이 과학기술의 발달을 요구하는 경우도 있었다. 전차, 비행기, 핵무기 등은 모두 전자의 범주에 속하는 것들이고, 고속기동장비, Stealth 기술, Sensor, 등은 후자에 속하는 것들이다.
우수한 전술적 발상이 있어도 과학 기술이 뒷받침해 주지 못하면 시현하기 어렵다. 1차 대전 때에 Schlieffen Plan 이 대표적인 예이다. 그것은 국경선에 배치된 대규모 불란서 군을 소규모 부대로 고착시켜둔 다음 주력을 북부 벨지움을 거처 우회시켜 불란서군의 후방을 공격하는 개념이었다. 그러나 그 당시에는 기동장비의 능력이 부족하여 주력을 신속하게 우회시키지 못했기 때문에 결국 실패한다.
반면에 우수한 장비를 만들어 주어도 전술적으로 새로운 개념을 개발하지 못하여 무용지물이 되는 수도 있다. 전차는 영국이 처음으로 제작하여 사용한다. 이 무기의 장점은 기관총과 대포를 싣고 장갑의 보호를 받으면서 적진 깊숙이 들어갈 수 있는 능력이 있다는 점이다. 이 강력한 공격무기를 영국과 불란서는 초기에 방어용으로 사용하였다. 따라서 별 효과를 얻지도 못했다.
독일은 나중에 전차를 제작하지만 이무기를 공격용으로 사용한다. 전차가 공격무기로 전장을 누비고 다니게 된 후부터 방어위주의 전장은 공격위주로 바뀌게 된다. 결국 전차라는 새로운 무기와 기동전술이라는 새로운 전술적 발상이 합하여 싸우는 형태를 바꾸어 놓았다고 설명할 수 있다.
3. 기술요소와 전술요소:
지금까지 전장의 모습을 바꾸어 놓은 기술 중에서 대표적인 것을 골라내면, 화약, 내연기관과 외연기관, 무선통신, 핵무기 기술 등을 들 수 있다. 이런 것들이 전술적인 요소인, 화력, 기동력, 그리고 편성과 조직의 개념을 발전시키는데 에 결정적인 여건을 제공하였다. 그 결과 새로운 전술적 발상이 태동할 수 있게 되었다.
21세에 들어오면서, 정보기술이 산업전반에 걸쳐 변화를 이끌어 왔다. 따라서 정보기술이 21세기 전장의 형태를 바꾸어 놓을 것이라는 것은 자명하다. 중요한 것은 정보화 시대의 전장이 어떤 형태로 변화할 것인가를 알아내는 것이다. 과거에 새로운 기술이 등장했을 때에 전술적 요소와 연계하여 전장의 형태를 바꾸어 놓았던 역사를 분석해 보면 미래의 변화를 진단할 수 있는 중요한 단서를 발견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
제2장, 과학기술의 발달과 전장의 변화
1. 화약과 전장의 변화.
전장의 형태를 근본적으로 바꾸어 놓은 것은 뭐니 뭐니 해도 화약이다. 화약은 12세기에 이미 중국인들이 사용했다고 한다. 그러나 그것은 파괴용 무기가 아니라 큰소리를 내어 상대방에게 Shock을 주는데 사용되었다.
이 화약이 서양에 전래된 이후 파괴용 무기로 사용되기 시작한 것은 1346년이었다고 기록되어있다. 주목할 것은 이 기술은 엄청난 잠재력에도 불구하고 각국이 받아들이는 속도는 매우 느렸다고 평가된다. 왜 그랬을까?
당시 영국인들은 좋은 활(Longbow)을 갖고 있었고, Swiss 인들에게는 효과적인 단창이 있었다. 아주 편리한 무기였다. 병사들은 새로운 무기를 받아들이기 보다는 손에 익은 무기를 사용하는 것을 더 편하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화약을 본격적으로 전장에 사용한 나라는 불란서였다. 먼저 대포를 발명하였고, 그 대포를 소형화하여 소총을 만든 것은 훨씬 후의 일이다. 그 뒤를 이어서 Spain이 비교적 빨리 대포와 소화기를 개발한다. 그리고 Spain의 시대가 열리게 된다.
가. 대포의 개발:
1500-1600년대에 들어서면서, 여러 나라들이 경쟁적으로 화약무기를 개발 하였다. 최초에는 하루 7발정도 발사 할 수 있었다. 당시 사거리는 1마일 정도였고 총구 장진 식이었다. 총미 장진 장치가 개발되었지만 인기가 없었다. 가스가 새어나와 위험했기 때문이다.
문제는 대포를 전장에 끌고가는 것이었다. 처음에는 나무 판자위에 설치해서 이동용으로 만들어 보려 했다. 그래도 효과적인 것은 말을 이용해서 끌고 가는 것이었다. 큰 것은 23마리의 말이 끌어서 움직일 수 있었다고 한다.
그러나 그렇게 육중한 무기였지만, 일단 대포가 전장에 등장하자, 전장의 모양이 달라지기 시작하였다. 성곽 안에서 문만 잠그고 있으면 일단 안전을 보장 받았던 시대가 지나가 버린 것이다. 이제 대포를 갖은자와 갖지 못한 자 간에는 Game 이 되지 않는다. 1440년대에는, 불란서가 최고의 대포를 생산하게 되고, 그 위력으로 100년 전쟁을 이기게 된다.
나. 소총의 개발:
최초의 소총은 작은 대포라고 불리는 것이 당연하다. 개인이 운반할 수 있고 혼자 사용할 수 있는 최초의 소총은 화승총(Arquebus) 이었다. 화승총에 격발장치를 붙인 것이 Musket 이다. 300 Yds 정도 날아간다. 불을 붙여서 점화하던 소총에, 기계식 격발장치 (Flint Lock)를 붙인 후부터, 조준이 훨씬 쉬워졌다.
그러나 총구로 화약과 탄환을 장진하는 시간이 너무 걸리고 탄도가 일정하지 않아 명중률은 낮을 수밖에 없었다. 그래서 미국의 Benjamin Franklin은 Musket 대신 영국의 Longbow를 표준 무기로 선택하자고 주장한 적이 있었다. 그 후 작은 Pistol이 제작되었다. 한발을 발사할 수 있는 권총이다. 기병들이 사용했는데 3자루씩 갖고 다녔다. 한번 쏘면 다시 장진할 때까지 사용할 수 없었기 때문이다.
다. 대포와 소총시대의 전술:
활과 창으로 싸우던 전장에 대포와 소총이 등장하였다. 화약이 폭발할 때에 내는 굉장한 소음, 포탄과 소총의 긴 사거리, 그리고, 강력한 파괴력이 중요한 변화의 요인이었다. Dupuy 가 Gustavus Adolphus (1611-1632)를 현대전의 아버지라고 평가했던 것은 그가 그때까지 등장한 화약 무기의 효과를 충분히 이용하여 싸우는 방법을 획기적으로 바꾸어 놓았기 때문이다.
그가 만든 전투대형의 기본단위는 Squadron(대대)였다. 한대대가 전투에 임하면, 중앙에는, 6X36명의 창을든 (Pikesmen) 병사들이 위치하고, 그 양측에 6X16 명의 소총병(Musketeers)이 배치된다. 6열 횡대로 전투대형을 유지하면서, 전열이 사격할 때에는 뒤에 있는 열의 병사들은 장진을 하게 된다. 한열에 배치된 32명의 사수들이 일제히 사격할 때의 위력은 대단했을 것이다. 그리고 그 다음 열이 사격한다. 따라서 한 Squadron 이 사격을 계속하게 되면32발씩 소총탄이 제파식으로 계속 날아가기 때문에 적(敵)은 고개를 들 수 없게 된다.
보병 Squadron 이 3-4개가 모이면 Brigade 가 된다. 보병이 배치된 후방에는 포병이 위치하여 먼 거리의 표적에 포탄을 발사한다. 보병의 병사들은 모여서 대형을 갖추어야 조직적인 전투를 할 수 있는데, 그렇다고 보병이 모이면 포병의 표적이 된다. 이 Dilemma를 해결하는 것이 중요한 과제로 등장 하였고, 지금까지도 남아있는 숙제라고 할 수 있다. Gustavus 의 전술이 Linear Tactics 의 시초이다.
2. 화약 무기기술의 발달과 전술의 발달:
18세기와 19세기는 화약 무기가 발달했던 시대로 평가할 수 있다. 이 시대의 특징은 무기가 발달하면, 전술이 따라서 발달하고, 때로는 전술적 요구에 따라 무기가 발달했던 시대였다.
가. 기술의 발달
* 1784년 Henry Shrapnel 이 폭파하는 포탄을 개발하였다. 통속에 화약 과 파편을 넣어 목표지역에서 폭발하게 한것이다.
* 대포의 무게를 줄이고 기동이 용이하게 바퀴를 이용하였다.
* 장진하기 쉬운 포탄을 개발하여 발사속도를 높인다.
* 포신과 포판 사이에 Screw를 부착하여 고저의 조절이 용이하게 만든다.
* 고각 사격이 가능한 Howitzer를 개발하여 간접사격이 가능하게 한다.
* 풍선을 이용하여 관측 임무를 수행한다.
나. 전술의 발달
* 포병의 기동성이 증가하자, 전술적 기동이 전장을 지배한다.
* 기병과 포병이 Team을 이룬 전투가 시작된다.
* 전략적 기동으로 유리한 여건을 조성한 후 전투를 시작하는 방법이다.
* 대량 집중 포격 전술이 발달하게 된다.
* 정면 돌파와 측방공격전술이 발달한다.
* 분산과 집중의 중요성이 대두하게 되었다: 분산해 있다가, 결정적인 시간과 장소에 집중하는 전술이다.
다. 정교한 화약 무기가 발달한다.
* 소총 탄약이 발달한다. (Minie Ball/ Conical Ball 개발)
* 후미 장진식 소총이 등장한다.
* Rifle Gun이 등장하면서 명중률이 증가한다.
* Magazine 소총이 개발되었다.
* 기관총이 개발된다.
* 포병의 주퇴장치가 발달한다. (spring, hydropneumatic 장치)
* 휴즈 개발과 포병탄약의 발달로 치사율이 증가한다.
* Trench Motar를 발명한다.
라. 정교한 화약 무기가 등장하자 새로운 전술이 발달한다.
* 보병, 기병의 정면공격이 곤란해진다.
* 야전 축성의 중요성이 증가한다. (Lee 장군과 야전 축성은 획기적)
* 기관총 앞에 기병의 효과는 감소하기 시작한다.
제3장: 1차 세계 대전과 전술의 발달
화약 무기가 발달하지 않았던 시대에는 빠른 기동력이 전장을 지배하였다. 1300 년대에 Genghiskhan 의 기동전술은 대표적인 예가된다. 그 당시 방어전술의 핵심은 견고한 성곽이었다. 만리장성이 좋은 예가 된다.
화약무기가 발달하면서 이 개념은 바뀌게 된다. 기동보다 화력의 중요성이 증가하게 되고, 성곽의 효과는 감소하기 시작하였다. 특히 기관총과 포병화력이 발달함에 따라 전장의 꽃이었던 기병의 모습은 점차 자취를 감추게 된다.
이런 상황에서 기동의 효과를 다시 찾아낸 전략가가 있었다. 독일의 Schlieffen 장군이다. 그는 신속한 기동이 전장의 주도권을 장악하는 근본적인 수단이 된다고 믿었다. 유명한 Schlieffen Plan 이 그 예이다. 그러나 그의 계획은 막상 전장에서 효과를 발휘하지 못한다(제1차대전). 독일 군이 최초에는 성공적으로 진격하지만, 얼마못가서, 독일과 불란서 군은 진지전에 돌입하게 되고 전선은 교착상태에 빠지게 된다. 따라서 1차대전은 독일의 기동전으로 시작하지만, 지루하고 긴 진지전으로 끝을 맺게 된다. 기관총과 포병, 참호와 철조망, 그리고, 돌파와 역습이 반복되는 소모전이었다.
그러나 이 전장을 통해서 기동수단을 획기적으로 개선하는 기술적 발달이 이루어진다. 그 하나는 Tank의 발명이고, 다른 하나는 비행기를 전장에 이용한 것이다. 그러나 이러한 기술적 발전이 당장 전술적 발전으로 이어지지 않았다는 점을 주목할 필요가 있다. 전투가 치열했던 1916년, Somme 전투에서 최초로 전차(Tank)가 전장에 등장하지만, 이 새로운 무기도 전장의 개념을 바꾸지는 못하였고, 1차 대전은 결국 화력이 지배하는 전장으로 막을 내리게 된다.
1. 새로운 무기체계와 낡은 전술개념
1차대전이 진행되고 있는 동안, 전술적으로 새로운 착상이 과학자들의 도움을 받아 다양한 무기를 제작하여 전선에 공급하게 된다.
가. 그 대표적인 작품이 전차(Tank) 였다. 전차는 최초에 영국의 공병중령 Swinton 의 제의로 개발이 시작된다. 참호 선을 여러 개 만들어 놓으면 아무리 용감한 군대도 돌파하기 어렵다. 공격하는 부대가 처음 한두 개의 참호 선을 돌파한 다해도 종심 깊은 참호 선을 극복하지 못하고 돈좌하게 된다. 노출되어 공격하는 보병이 참호 안에 배치된 기관총을 이길 수 없을 뿐만 아니라, 적의 포병사격은 노출되어 기동하는 보병에게 엄청난 위협이 되기 때문이다.
Swinton 중령의 발상은 들판을 누비고 다니는 농업용 Tractor 에 Bunker를 탑제하여 “이동이 가능한 Bunker”를 만들면 적 참호 선을 돌파할 수 있다는 것이었다. 이 발상이 얼마나 기발한 것인가를 당시의 전략가들은 쉽게 이해하지 못하였다. 전장의 2대 핵심 요소인 화력과 기동을 합치고, 그리고 그것을 장갑으로 보호를 받도록 한다는 착상이었다. 더 주목할 사실은 이 무기의 제작에 대해 육군성이 반대 했지만 해군장관 Churchill 이 주장하여 해군 Project로 추진했다는 것이다. 그래서 그 이름이 지상함(地上艦=Tank), 즉 Tank가 되었다고 전해진다.
나. 항공기는 1차대전 이전에 실용화되기 시작했다. 1903년 라이트 형제가 발명한 이래 1909년에는 34분 만에 도바해엽을 횡단한다. 그러나 1차대전이 발발할 무렵, 전략가들이 항공기술에대한 관심은 매우 저조하였다. 불란서의 항공기술이 비교적 앞서있었지만 1912년에 총 항공기 댓수는 390대 정도였고 독일은 100대에 불과했다. 그러나 전쟁이 발발하자 항공기는 정찰용으로, 포병의 표적 탐지용으로 그리고 연락용으로 사용되었다. 1915년, 독일이 먼저 비행기에 기관총을 장착하여 적의 비행기를 공격하기 시작한다. 불란서가 이어서 기관총을 장착한 비행기를 개발한 후 공중전이 시작된다. 일반적으로 독일은 전투기 세력이 강했고, 불란서는 폭격기를 대량 보유하고 있었다.
지상에서 참호전이 교착상태에 이르자 비행기를 이용하여 지상군을 지원하는 개념이 싹트기 시작한다. 1917년 3월, 독일은 항공기를 지상 작전을 지원하는 수단으로 활용하는 방안을 구상하기 시작하면서 전격전 개념을 발전시킨다. 장거리 비행이 가능하게 되면서 전략적 폭격이 시작된다. 3차원의 전쟁이 시작된 것이다.
다. 전화( 1870년대 실험후 실용화), 무선전신(1895 시험, 1901 실용화) -- 무선통신 기술은 1차대전 이전에 이미 함정 간에 통신수단으로 사용되고 있었다.
2. 새로운 기술이 전장에 도입되는 과정은 일반적으로 순탄하지 않았다. 통상 병사들은 새로운 기술을 이용하여 새로운 방법을 개척하기보다는 손에 익은 장비를 사용하는 것을 선호했다. 더 중요한 것은 새로운 기술을 전술적으로 사용하기위한 새로운 발상이 부족했다는 점을 지적할 수 있다. 새로운 기술이 처음 전장에 도입될 때에는 통상 기술적으로 완전한 상태가 아닌 경우가 많이 있다. 중요한 것은 새로운 분야가 문을 열었다는 것인데, 그 중요성을 전략가들이 간과해왔다는 것이다.
대포적인 예가 기관총이다. 기관총은 연발로 탄환을 전방에 쏟아 부어서 노출된 병사에게는 치명적인 무기이다. 그러나 초기의 기관총은 무게가 무거웠고, 탄약 소모량이 과다해서 운반이 힘들었고, Jamming 등 잦은 고장으로 병사들이 기피하는 무기가 되었다. 그러나 기관총 한 정이 제압할 수 있는 범위가 엄청나기 때문에 장차 전장을 지배하게 된다는 가능성을 간과하고 다만 당장의 불편한 점 때문에 이 무기의 체택을 반대 했다는 것은 참으로 어리적은 결정이 었다. 사실, 어떤 경우에는, 새로운 전술적 발상을 창조해 내기 보다는 그 새로운 기술이 기존의 방법에 도전하는데 대한 부정적인 견해가 앞서게 된다. 따라서 1차대전을 통해서 수많은 신 기술이 소개되었지만, 전술적 개념의 차원에서 보면 별 진전을 이루지 못했다고 평가할수 있다.
3. 전쟁에서 얻은 교훈과 새로운 전술개념
산업화가 진행되고있는 가운데 진행된 1차 대전은 전장에 다양한 기술과 장비를 공급하였다. 전략환경이 급격히 변하고 있었다. 불란서는 자신들이 승자라고 생각하였고, 승리의 전략적 이유는 방어였다고 생각하였다. 반면에 독일은 패자라고 생각하면서 그 원인을 기동력과 기동전술이 부족했기 때문이었다고 평가한다. 따라서 불란서는 새로운 기술의 이기를 방어능력 보강에 투입하려했고, 독일은 같은 기술을 이용하여 공격적 기동작전에 초점을 맞추게 된다.
가. 불란서는 방어위주의 전쟁을 준비하게된다. 1929년부터 시작한 Maginot 선을 구축하기 시작하여 독일과의 국경에 거대한 전술적 벽을 쌓게 된다. 전술은 화력위주로 발전한다. 강력한 포병이 보병의 방어를 지원한다. 기동과 공격전술은 활력의 지원을 받는 범위 내에서 이루어진다. 강력한 포병사격에 뒤이어 보병이 제파식으로 공격한다. 통상 Phase Line을 설정하고 통제된 가운데 Step by Step 으로 전진하게 된다. 보병이 1-2Km 전진하면 포병의 지원사격이 조정되고 다시 보병이 1-2Km 전진하게 된다. 그렇게 4-5Km 보병이 전진하면, 포병진지를 이동해야 하기 때문에 보병은 참호를 파고 방어태세에 들어간다.
전차는 보병 속에서 전투를 하게 된다. 보병과 함께 전투하기 위해 느린 전차를 주문하였다. 1Km 내에 50대 이상의 전차가 집중하는 것은 불리하다고 보았다. 불란서에서도 기계화된 기동부대를 창설하지만, 기동위주로 운용하기위한 것이 아니었고, 더 효과적인 사격을 위해 운용되었다.
이들에게 기동이란 사격을 위한 이동이었고, 방어는 고정된 위치에서 사격하는 것이라는 차이가 있을 뿐이었다. 조우전을 되도록 회피한다는 원칙이었다. 일단 계획되지 않는 조우전이 발생하면, 곧 방어를 한다고 생각했다. 불란서군은 1차대전과 같은 전투가 벌어진다고 판단하고 전쟁을 준비하였고, 결과적으로 새로운 무기로 낡은 전투개념에 따라 전쟁을 하게 된다.
나. 독일은 공격형 군대를 만들었다. 단위부대장은 임무를 부여받게 되고 임무위주의 전술을 수행하도록 훈련된다. 군의 편제를 기동위주로 바꾸고 자주포병과 기계화 보병이 항공기의 지원을 받으면서 신속하게 적진을 돌파하고 후방 깊숙이 진출하는 전법을 시험한다. 최초 48시간 내에 700Km를 전진하지만, 나중에는 48시간 내에 1,000Km를 전진하는 SS 부대를 창설한다.
2차대전이 일어나던 때에 불란서는 독일에 비해 더 많은 항공기를 보유하고 있었다. 그러나 작전 가능한 항공기는 독일이 더 많았다. 그 결과로 제공권은 독일이 장악하게 된다. 불란서의 육군은 항공기를 지상군의 보조무기로 생각하였다. 따라서 독립 공군의 창설을 반대하고 육군의 일부가 되게 한다. 그런 것들이 모두 많은 항공기를 보유하고 있었으면서도 제공권을 상실한 이유가 된다. (불란서 3289대보유 1240대만 가동하였고, Fighter 는 790대가 가동상태를 유지한 반면, 독일은 vs. 1600대의 Fighter 보유하고 있었다.)
다. 2차 대전은 공중에서 급강하 폭격기가 방어진지를 유린하는 가운데에 기계화 보병과 전차와 자주 포병이 지상을 질주하는 발달된 입체작전이었다. 화력위주의 전장으로부터 기동과 화력이 상호작용으로 승수효과를 만들어내는 새로운 형태의 전장이 된 것이다. 이런 환경에서 대 우회 기동을 특징으로 하는 Schlieffen 계획이 진가가 나타난 것이다. 화력위주 방어준비를 해두었던 불란서와 대 규모 기계화 기동전을 준비한 독일의 대결은 3개월을 넘지 못했다. 과학 기술의 차이 때문이 아니었다. 미래 전을 전망하는 전략가들이 전진 방향을 바로잡지 못한 실수였다.
제4장: 양차 대전을 통해서 얻은 RMA의 교훈:
변화의 시대에 군사력을 성공적으로 개혁한 군대와 실패한 군대의 경험을 정리해 보면 유익한 교훈을 찾아낼 수 있다.
1. RMA 는 Dominant Player 가 주도하는 경우가 드물다.
2. RMA 는 어떤 Idea를 처음 발상하여 전장에 내놓은 나라보다, 그것을 보고 배워서 필요한 부분을 개선하여 운용한 나라가 통상 더 결정적인 효과를 얻는다.
3. RMA 는 새로운 기술을 발명한 나라보다, 다른 나라에서, 그 기술을 이용하여 성공한 사례가 더 많다.
4. RMA 는 반드시 기술이 선도하는 것은 아니다.
5. RMA 는 어떤 새로운 기술을 바탕으로 이루어지기보다, 기존의 기술 몇 개를 연결하여 이룩한 것이 더 많다.
6. 기술을 기초로 한 RMA 가 모두 무기의 형태로 나타나는 것은 아니다.
7. 기술에 기초를 둔 RMA도 결국, 교리, 편제의 개선으로 나타난다.
8. 성공한 RMA보다 실패한 RMA가 더 많다.
9. RMA가 성공하기 위해서는 긴 시간이 소요된다.
10. RMA의 효과는 전장에서 극명하게 나타날 때까지 논란의 대상이 된다.
다음은 성공한 RMA의 특징을 열거한 것이다.
1. 새로운 기술이 중요한 역할을 한다.
2. 새로운 장비가 만들어진다.
3. 새로운 체계가 전투기능을 획기적으로 개혁한다.
4. 새로운 전술/ 전략 개념이 변화를 주도한다.
5. 새로운 교리와 편제가 만들어진다.
이런 것들이 합하여 군사작전방법상에 Paradigm 이 바꾸게 된다.
가장 중요한 것은 전략/ 전술적 방향설정이다. 변화하고 있는 기술 환경과 전략 환경을 기초로 미래전장에 대한 정확한 Vision을 그려내어야 한다. 이런 의미에서 각 군이 작성한 Vision XX는 다음 세대의 운명을 좌우하는 중요한 문서라고 말할 수 있다.
제 5장: 정보화시대의 군사작전:
1. 정보화시대의 기술적 특징:
가. 정보기술:
대량의 Data 처리가 가능하다. Data 분류와 보관, Data 전송, Data 융합이 가능해 지면서 공간의 구분 없이 여럿이서 같은 임무를 동시에 수행할 수 있는 환경이 되었다.
나. Sensor 기술이 발달하면서 오관의 한계를 넘어 상황을 파악할 수 있는 능력을 얻었다.
다. PGM 기술: 장거리 목표를 정확하게 타격할 수 있는 능력이 발달하여 어떤 목표이건 보는 것은 모두 명중할 수 있는 능력을 갖게 되었다.
다. Robert 기술, 무인 비행체 기술, Nano 기술의 발달은 다양한 전투 수단을 제공하고 있다.
마. Stealth 기술의 발달로 정보전의 새로운 장을 열어주었다.
** 정보화 기술이 사회전반에 걸쳐 대 변화를 이끌어 가고 있다. 기업경영면에서는 종래의 경영방법에 정보기술만 가미하더라도 획기적인 변화가 일어난다. 그러나 군사적 관점에서 정보화 기술이라 함은 통상 정보기술과 더불어 승수효과를 만들어낼 수 있는 여타분야의 기술, 즉 Sensor 기술 과 PGM 기술을 통틀어 광의의 정보기술이라고 표현하는 것이 특징이다.
2. 정보화시대의 군사작전:
이러한 기술 환경의 변화를 전술차원에서 수용하기 위한 새로운 Idea 가 여분 야에서 발달하고 있다.
가. Platform 위주로부터 Network 중심의 전술로 진화해야 한다. (NCW)
나. 장거리 정밀무기 위주의 전력을 구축해야한다.
다. Robert 전, 우주 전을 준비해야한다. 등이다.
그러나 이런 이론들만으로 미래 전장의 모습이 구체적으로 떠오르는 것은 아니다. 그것은 마치 1차대전 중에 도입된 다양한 무기와 과학기술을 손에 쥐고서, 2차대전을 준비했던 세대가 고민했던 문제와 같다고 말할 수. 이 문제를 풀어나갈 지혜가 필요하다.
적어도 몇 가지 명확한 방향을 찾아낼 수 있다. 이것이 Vision 이 된다.
첫째, 1차대전과 2차 대전의 모양이 근본적으로 달랐던 것처럼, 정보화 이전의 전장과 정보화 이후의 전장의 모습이 근본적으로 달라진다는 점이다. 따라서 되도록 기존의 관행을 떨쳐 버려야 새로운 전장의 모습을 구상할 수 있다고 판단된다.
둘째, 고도로 발달된 정보능력을 양성해야한다.
셋째, 기술이 발달할수록, 방어형의 군사력에는 한계가 있다는 점이다. 공격무기는 점점 더 치명적으로 발달하는데, 완벽한 방어수단을 보유하는 것은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공격형 군사력과 유연한 외교력이 연계될 때에 안전이 보장된다는 것이다.
넷째, 적의 핵심표적(Center of Gravity: COG)을 파괴할 수 있는 수단을 확보하고, 아군의 핵심 전력은 보호할 수 있는 수단을 보유해야 한다. 육해공군의 전투수단은 통합작전이 가능하도록 편성되고 훈련되어야 필요할 때에 하나의 목표에 집중이 가능하게 된다.
다섯째, 빠른 Tempo 로 종심 깊은 기동을 할 수 있는 지상군을 보유해야 한다. Panzer 사단이 48시간 내에 1,000Km를 기동할 수 있었던 것과 Iraq 전에서 미군부대가 기동했던 예는 좋은 참고가 된다.
여섯째, 심리적 마비수단과 물리적 파괴수단을 동시에 보유하고 혼합하여 사용할 수 있어야한다. Shock and Awe를 참고할 필요가 있다.
일곱째, High Low Mix를 적용해야한다. Asymmetric Warfare 와도 연관된 개념이다.
3. 정보화 시대의 군사력 양성:
Vision을 찾아내는 것 다음에는 Vision을 구현하는 것이 중요하다.
가. Model 연구:
Vision을 구현하는 길은 새로운 경험이 된다. 새로운 길을 개척하려면 수많은 시행착오를 각오해야한다. 물론 한번에 달성할 수 있다면 그것이 최선이지만, 그런 경우는 극히 드물다. 그렇기 때문에 망설이는 시간이 길어지고 그러는 동안에 기회를 상실한 경우가 허다하다. 따라서 Vision을 시행하기위한 첩경은 Model을 만들어 시험해 보는 길이다. 그렇게 하려면 이일을 수행할 기구가 만들어 져야한다. 여러 나라들이 벌써부터 이런 작업을 시작하여 수없이 많은 시험을 하고 있는 것을 우리는 보고 있다. 서둘러 우리도 이 일을 시작해야한다. 처음에는 Simulation 이 유리하다. 상당한 수준에 이르면 Field Test를 할 수 있게 된다. 누군가 이일을 해주면 배우면 된다는 생각은 참으로 위험하다. 기회가 지나가 버리면 정보화 시대의 낙오자로 전락하게 되기 때문이다.
나. 변화의 수용:
군은 전통적으로 전통을 소중하게 생각한다. 그래서 새로운 것을 받아들이는 것이 어렵다. 과거의 경험에 비추어 보면, 새로운 발상은 전혀 없던 것에서 출발한 것 보다 과거의 수단을 몇 개씩 합치거나 새로운 기술을 응용하여 새것을 만든 예가 더 많았다. 세계 도처에 분쟁이 끊이지 않는다. 이 분쟁이 모두 학습장이다. 더 빨리 보고 더 빨리 변화를 수용하는 것이 유리하다.
다. UJ-Brigade (여단) 을 제안한다.
UJ 는 Ubiquitous 환경을 갖춘 Joint Brigade 라는 뜻이다.
첫째, 이 여단이 갖추어야할 능력을 전술전문가들이 구상하게 한다. 발상이 쉽게 이루어 지도록 하기위해 현재 사용하고 있는 전장 7대기능별로 갖추어야 할 능력에 대해 주문을 받는다. 물론 합동작전 차원의 문제로 다루어야한다.
둘째, 전술 지휘관들이 모여서 그 능력을 종합적으로 검토한다. 시행 가능성 문제는 아직 염려할 단계가 아니다. 필요한 만큼 주문하도록 하면 된다.
셋째, 과학자와 기술자 들이 모여서 이 내용을 종합 검토한다. 기존 무기체계가 있는 것은 구입하면 된다. 없는 것은 새로 제작하여야 한다. 대략적인 예산을 판단하게 한다.
넷째, 전술전문가들과 과학자들과 경제전문가들이 같이 모여서 시행방안을 검토한다. 불가능한 부분에 대해서는 정밀한 검토가 이루어 져야한다. 이런 과정을 적어도 몇 차례 반복한 후 UJ 여단의 모습을 완성한다.
다섯째, Simulation을 한다. 그것은 가상적과의 전쟁이 된다. 이 Pattern이 승리했던 나라들의 행태였다.
결론:
한번의 큰 전쟁이 지나가면 Holsti 교수의 말처럼 다음 전쟁이 다가오게 마련이다. 정보화 시대에 군사작전이 새로운 모습으로 전개될 것이 분명하다. 그 일부가 이미 세상에 공개되어있다. 그러나 그 진면목이 나타난 것은 아니다. 다만 시작일 뿐이다. 이 격변의 세기에 누구든 머물러 있는 자는 낙오한다. 그래서 서둘러 달려가야 한다. 중요한 것은 어떤 방향으로 달려가야 하는가 하는 것이다. 우리가 그 답을 찾아 내어야한다.
그 답은 전술 전문가와 과학자가 합작해서 Condominium을 만들면 되는 것이다. 아직 늦지 않았다. 그러나 지금 시작해야한다. 이것이 무정부 상태의 국제관계하에서 정보화시대를 살아갈 수 있는 길이기 때문이다.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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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보화시대의 군사작전
(예) 육군대장 김재창
서론:
British Columbia 대학의 정치학교수인 Kalevi Holsti 교수가 “전쟁과 평화의 Cycle” 에 대한 논문을 쓴 것이 있다. Kalevi J. Holsti, Peace and War: Armed Conflicts and international Order 1648-1989 (Cambridge: Cambridge University Press, 1991) 나라와 나라 간에 분쟁이 격화되면 전쟁이 일어난다. 전쟁의 결과는 평화조약이라는 형태로 나타난다. 그러나 그 평화조약이란 것은 승자가 패자에게 자기의 의지를 억지로 받아들이게 하는 문서일 뿐이다. 따라서 평화조약 속에는 늘 패자의 불만과 원한의 싹이 심어져 있게 마련이다. 그 씨(Seed)가 자라면 다시 분쟁이 격화되고 그것이 다음전쟁으로 이어지고 또 다른 평화조약이 체결되는 Cycle을 반복한다는 것이다.
전쟁에 대비하는 사람들의 입장에서 보면 Holsti 교수의 “전쟁과 평화의 Cycle"은 특별한 의미를 지니고 있다. 전쟁이 일어나면, 적대관계 쌍방의 군대가 싸우게 된다. 통상 승자와 패자가 전쟁을 통해서 결정된다. 승자와 패자를 가릴 것 없이 모두 싸웠던 내용을 분석하여 교훈을 찾아낸다. 그 교훈이 씨(Seed)가 되어 마치 나무가 자라나듯 다음 전쟁에 대한 준비를 하게 된다. 그 준비의 결과를 평시에는 평가하기 어렵다. 그것은 오직 다음번 전장에서 승패로 나타날 뿐이다.
독일과 불란서는 1차대전에서 쌍방의 국력이 다 할 때까지 싸웠다. 미국이 불란서 쪽에 가담했을 때에 독일은 더 이상 버틸 힘이 없어서 패자가 되었고 불란서는 승자가 된다. 그러나 불란서가 군사적으로 전장에서 독일을 이긴 것은 아니었다.
전쟁이 끝난 다음, 불란서는 어떻게 이겼는가를 분석하여 교훈을 도출하였고, 독일은 왜 졌는가를 분석하여 교훈을 배우려 했다. 통상, 패자가 승자보다 더 정확한 교훈을 배운다. 불란서와 독일도 예외가 아니었다. 불란서는 튼튼한 진지가 독일군의 공격을 격퇴했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독일은 변화에 초점을 맞추었다. 전장에 등장했던 새로운 과학기술이 미래의 전장을 어떻게 바꾸어 놓을 것인가를 상상한 것이다. 그리고 새로운 Drama의 Scenario를 작성하였다. 불란서가 준비한 것은 마지노선이었고, 독일이 준비한 것은 Panzer 사단과 Blitz Krieg 였다. 2차 대전이 일어났을 때에, Maginot 선과 Panzer 사단의 대결은 싱겁게 끝나 버렸다. 하나는 1세대의 것이었고, 다른 하나는 2세대의 것이었기 때문이다.
1차대전이 끝나고 2차 대전이 일어나기까지 약 20년이라는 시간이 있었다. 불란서와 독일이 나름대로 많은 예산과 인력을 투입하여 다음전쟁을 준비한 기간이었다. 야구선수들도 긴 겨울을 나면서 다음 game을 준비한다. 지난해의 교훈을 기초로 하고, 다음해에 전개될 Game 의 Scenario를 상상하면서 체력을 단련하고 기술을 개발한다. 그것은 마치 군대가 전쟁을 준비하는 Cycle 과 흡사하다. 그러나 근본적으로 다른 것이 하나 있다. 전자는 상금이 걸린 Game 이고, 후자는 국가의 운명이 걸린 결전이다. 그것은 손자가 말해주는 “死生之地, 存亡之道” 이기 때문이다.
우리는 지난전쟁에서 무엇을 배웠는가? 우리는 다음번 전쟁이 어떻게 전개되리라고 생각하고 있는가? 우리는 지금 무엇을 준비하고 있는가? 이런 생각을 할 때면, 독일과 불란서가 생각난다. 1870년 보불전쟁, 1914년 1차대전, 1940년 2차대전. . . , 매번 독일은 새로운 Drama를 연출했다. 그러나 불란서는 지난 예기를 반복하여 준비하는 수준을 넘지 못했다. 군사적 관점에서 본다면, 한쪽은 항상 패배하였고, 한쪽은 항상 승리하였다. 왜 그렇게 되었는가?
어떤 때는 과학기술이 모자랐다. 또 어떤 때는 전술적 사고력이 경직되어 미래를 내다보지 못했다. 그러나 결정적인 것은 과학기술과 전술적 발상을 연결하지 못해 새로운 Drama를 구상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이 교훈은 지금도 우리 눈앞에 전시되어 있다. 보라. 미국이 Gulf 전에서 새로운 Drama를 연출할 때에 Hussein 은 대항할 엄두를 내지 못했다. 한 Game 이 끝난 것이다. 2003년 다른 Game이 시작되었다. 미국이 Iraq 전에 사용한 Scenario 는 또 새로운 것이었다. Shock and Awe 가 그런 것이다. 승자가 되려면 새로운 Drama를 연출해야 한다는 것을 미국은 잘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이것이 승자의 행동 Pattern이다.
본론:
제1장. 과학기술과 전술
1. 현대전은 언제부터 시작 되었는가?
Dupuy 는 현대전이 대개 17세기부터 시작되었다고 본다. 활과 창으로 싸우던 중세기 시대의 무기체계, 전술, 그리고 군대의 편성이 사라지고, 소총과 대포가 등장하여 보병과 포병과 기병이 전장을 누비는 시대가 시작되었기 때문이다. 그는, 이 변화를 이끌어낸 주역 중에 Sweden 의 Gustavus Adolphus를 제일 먼저 꼽는다. 그가 참가한 30년 전쟁, the War of the Grand Alliance, 그리고 Dutch War를 통해서 이 거대한 변화가 진행되었기 때문이다.
Fletcher School 의 John Perry 교수는 러일전쟁(1904-1905)이 최초의 현대전이라고 주장한다. 그는 무기에 의해서 죽은 수가 기타 다른 이유로 인해 죽은 숫자보다 더 많은 전쟁을 현대전이라고 정의하고 있기 때문이다. 일반적으로, 화약이 전장에 도입된 이후 등장한 무기체계와 그와 관련된 교리, 전술, 편성을 집대성한 것은 1차대전이었다고 평가한다. 따라서 1차 대전이 최초의 현대전이라는 주장이 설득력이 있다. 하지만, 현대전의 뿌리를 이해하려면 Gustavus부터 시작하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생각한다.
2. 과학기술이 싸우는 방법을 바꾸어 놓았다고 말할 수 있다. 그러나 더 정확한 표현은 과학기술과 새로운 전술적 발상이 짝을 이루어 전장의 모습을 바꾸어 놓았다고 하는 것이 맞을 것이다. 어떤 경우에는 과학기술이 새로운 전술적 발상을 선도하기도 하고, 또 어떤 때는 새로운 전술적 발상이 과학기술의 발달을 요구하는 경우도 있었다. 전차, 비행기, 핵무기 등은 모두 전자의 범주에 속하는 것들이고, 고속기동장비, Stealth 기술, Sensor, 등은 후자에 속하는 것들이다.
우수한 전술적 발상이 있어도 과학 기술이 뒷받침해 주지 못하면 시현하기 어렵다. 1차 대전 때에 Schlieffen Plan 이 대표적인 예이다. 그것은 국경선에 배치된 대규모 불란서 군을 소규모 부대로 고착시켜둔 다음 주력을 북부 벨지움을 거처 우회시켜 불란서군의 후방을 공격하는 개념이었다. 그러나 그 당시에는 기동장비의 능력이 부족하여 주력을 신속하게 우회시키지 못했기 때문에 결국 실패한다.
반면에 우수한 장비를 만들어 주어도 전술적으로 새로운 개념을 개발하지 못하여 무용지물이 되는 수도 있다. 전차는 영국이 처음으로 제작하여 사용한다. 이 무기의 장점은 기관총과 대포를 싣고 장갑의 보호를 받으면서 적진 깊숙이 들어갈 수 있는 능력이 있다는 점이다. 이 강력한 공격무기를 영국과 불란서는 초기에 방어용으로 사용하였다. 따라서 별 효과를 얻지도 못했다.
독일은 나중에 전차를 제작하지만 이무기를 공격용으로 사용한다. 전차가 공격무기로 전장을 누비고 다니게 된 후부터 방어위주의 전장은 공격위주로 바뀌게 된다. 결국 전차라는 새로운 무기와 기동전술이라는 새로운 전술적 발상이 합하여 싸우는 형태를 바꾸어 놓았다고 설명할 수 있다.
3. 기술요소와 전술요소:
지금까지 전장의 모습을 바꾸어 놓은 기술 중에서 대표적인 것을 골라내면, 화약, 내연기관과 외연기관, 무선통신, 핵무기 기술 등을 들 수 있다. 이런 것들이 전술적인 요소인, 화력, 기동력, 그리고 편성과 조직의 개념을 발전시키는데 에 결정적인 여건을 제공하였다. 그 결과 새로운 전술적 발상이 태동할 수 있게 되었다.
21세에 들어오면서, 정보기술이 산업전반에 걸쳐 변화를 이끌어 왔다. 따라서 정보기술이 21세기 전장의 형태를 바꾸어 놓을 것이라는 것은 자명하다. 중요한 것은 정보화 시대의 전장이 어떤 형태로 변화할 것인가를 알아내는 것이다. 과거에 새로운 기술이 등장했을 때에 전술적 요소와 연계하여 전장의 형태를 바꾸어 놓았던 역사를 분석해 보면 미래의 변화를 진단할 수 있는 중요한 단서를 발견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
제2장, 과학기술의 발달과 전장의 변화
1. 화약과 전장의 변화.
전장의 형태를 근본적으로 바꾸어 놓은 것은 뭐니 뭐니 해도 화약이다. 화약은 12세기에 이미 중국인들이 사용했다고 한다. 그러나 그것은 파괴용 무기가 아니라 큰소리를 내어 상대방에게 Shock을 주는데 사용되었다.
이 화약이 서양에 전래된 이후 파괴용 무기로 사용되기 시작한 것은 1346년이었다고 기록되어있다. 주목할 것은 이 기술은 엄청난 잠재력에도 불구하고 각국이 받아들이는 속도는 매우 느렸다고 평가된다. 왜 그랬을까?
당시 영국인들은 좋은 활(Longbow)을 갖고 있었고, Swiss 인들에게는 효과적인 단창이 있었다. 아주 편리한 무기였다. 병사들은 새로운 무기를 받아들이기 보다는 손에 익은 무기를 사용하는 것을 더 편하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화약을 본격적으로 전장에 사용한 나라는 불란서였다. 먼저 대포를 발명하였고, 그 대포를 소형화하여 소총을 만든 것은 훨씬 후의 일이다. 그 뒤를 이어서 Spain이 비교적 빨리 대포와 소화기를 개발한다. 그리고 Spain의 시대가 열리게 된다.
가. 대포의 개발:
1500-1600년대에 들어서면서, 여러 나라들이 경쟁적으로 화약무기를 개발 하였다. 최초에는 하루 7발정도 발사 할 수 있었다. 당시 사거리는 1마일 정도였고 총구 장진 식이었다. 총미 장진 장치가 개발되었지만 인기가 없었다. 가스가 새어나와 위험했기 때문이다.
문제는 대포를 전장에 끌고가는 것이었다. 처음에는 나무 판자위에 설치해서 이동용으로 만들어 보려 했다. 그래도 효과적인 것은 말을 이용해서 끌고 가는 것이었다. 큰 것은 23마리의 말이 끌어서 움직일 수 있었다고 한다.
그러나 그렇게 육중한 무기였지만, 일단 대포가 전장에 등장하자, 전장의 모양이 달라지기 시작하였다. 성곽 안에서 문만 잠그고 있으면 일단 안전을 보장 받았던 시대가 지나가 버린 것이다. 이제 대포를 갖은자와 갖지 못한 자 간에는 Game 이 되지 않는다. 1440년대에는, 불란서가 최고의 대포를 생산하게 되고, 그 위력으로 100년 전쟁을 이기게 된다.
나. 소총의 개발:
최초의 소총은 작은 대포라고 불리는 것이 당연하다. 개인이 운반할 수 있고 혼자 사용할 수 있는 최초의 소총은 화승총(Arquebus) 이었다. 화승총에 격발장치를 붙인 것이 Musket 이다. 300 Yds 정도 날아간다. 불을 붙여서 점화하던 소총에, 기계식 격발장치 (Flint Lock)를 붙인 후부터, 조준이 훨씬 쉬워졌다.
그러나 총구로 화약과 탄환을 장진하는 시간이 너무 걸리고 탄도가 일정하지 않아 명중률은 낮을 수밖에 없었다. 그래서 미국의 Benjamin Franklin은 Musket 대신 영국의 Longbow를 표준 무기로 선택하자고 주장한 적이 있었다. 그 후 작은 Pistol이 제작되었다. 한발을 발사할 수 있는 권총이다. 기병들이 사용했는데 3자루씩 갖고 다녔다. 한번 쏘면 다시 장진할 때까지 사용할 수 없었기 때문이다.
다. 대포와 소총시대의 전술:
활과 창으로 싸우던 전장에 대포와 소총이 등장하였다. 화약이 폭발할 때에 내는 굉장한 소음, 포탄과 소총의 긴 사거리, 그리고, 강력한 파괴력이 중요한 변화의 요인이었다. Dupuy 가 Gustavus Adolphus (1611-1632)를 현대전의 아버지라고 평가했던 것은 그가 그때까지 등장한 화약 무기의 효과를 충분히 이용하여 싸우는 방법을 획기적으로 바꾸어 놓았기 때문이다.
그가 만든 전투대형의 기본단위는 Squadron(대대)였다. 한대대가 전투에 임하면, 중앙에는, 6X36명의 창을든 (Pikesmen) 병사들이 위치하고, 그 양측에 6X16 명의 소총병(Musketeers)이 배치된다. 6열 횡대로 전투대형을 유지하면서, 전열이 사격할 때에는 뒤에 있는 열의 병사들은 장진을 하게 된다. 한열에 배치된 32명의 사수들이 일제히 사격할 때의 위력은 대단했을 것이다. 그리고 그 다음 열이 사격한다. 따라서 한 Squadron 이 사격을 계속하게 되면32발씩 소총탄이 제파식으로 계속 날아가기 때문에 적(敵)은 고개를 들 수 없게 된다.
보병 Squadron 이 3-4개가 모이면 Brigade 가 된다. 보병이 배치된 후방에는 포병이 위치하여 먼 거리의 표적에 포탄을 발사한다. 보병의 병사들은 모여서 대형을 갖추어야 조직적인 전투를 할 수 있는데, 그렇다고 보병이 모이면 포병의 표적이 된다. 이 Dilemma를 해결하는 것이 중요한 과제로 등장 하였고, 지금까지도 남아있는 숙제라고 할 수 있다. Gustavus 의 전술이 Linear Tactics 의 시초이다.
2. 화약 무기기술의 발달과 전술의 발달:
18세기와 19세기는 화약 무기가 발달했던 시대로 평가할 수 있다. 이 시대의 특징은 무기가 발달하면, 전술이 따라서 발달하고, 때로는 전술적 요구에 따라 무기가 발달했던 시대였다.
가. 기술의 발달
* 1784년 Henry Shrapnel 이 폭파하는 포탄을 개발하였다. 통속에 화약 과 파편을 넣어 목표지역에서 폭발하게 한것이다.
* 대포의 무게를 줄이고 기동이 용이하게 바퀴를 이용하였다.
* 장진하기 쉬운 포탄을 개발하여 발사속도를 높인다.
* 포신과 포판 사이에 Screw를 부착하여 고저의 조절이 용이하게 만든다.
* 고각 사격이 가능한 Howitzer를 개발하여 간접사격이 가능하게 한다.
* 풍선을 이용하여 관측 임무를 수행한다.
나. 전술의 발달
* 포병의 기동성이 증가하자, 전술적 기동이 전장을 지배한다.
* 기병과 포병이 Team을 이룬 전투가 시작된다.
* 전략적 기동으로 유리한 여건을 조성한 후 전투를 시작하는 방법이다.
* 대량 집중 포격 전술이 발달하게 된다.
* 정면 돌파와 측방공격전술이 발달한다.
* 분산과 집중의 중요성이 대두하게 되었다: 분산해 있다가, 결정적인 시간과 장소에 집중하는 전술이다.
다. 정교한 화약 무기가 발달한다.
* 소총 탄약이 발달한다. (Minie Ball/ Conical Ball 개발)
* 후미 장진식 소총이 등장한다.
* Rifle Gun이 등장하면서 명중률이 증가한다.
* Magazine 소총이 개발되었다.
* 기관총이 개발된다.
* 포병의 주퇴장치가 발달한다. (spring, hydropneumatic 장치)
* 휴즈 개발과 포병탄약의 발달로 치사율이 증가한다.
* Trench Motar를 발명한다.
라. 정교한 화약 무기가 등장하자 새로운 전술이 발달한다.
* 보병, 기병의 정면공격이 곤란해진다.
* 야전 축성의 중요성이 증가한다. (Lee 장군과 야전 축성은 획기적)
* 기관총 앞에 기병의 효과는 감소하기 시작한다.
제3장: 1차 세계 대전과 전술의 발달
화약 무기가 발달하지 않았던 시대에는 빠른 기동력이 전장을 지배하였다. 1300 년대에 Genghiskhan 의 기동전술은 대표적인 예가된다. 그 당시 방어전술의 핵심은 견고한 성곽이었다. 만리장성이 좋은 예가 된다.
화약무기가 발달하면서 이 개념은 바뀌게 된다. 기동보다 화력의 중요성이 증가하게 되고, 성곽의 효과는 감소하기 시작하였다. 특히 기관총과 포병화력이 발달함에 따라 전장의 꽃이었던 기병의 모습은 점차 자취를 감추게 된다.
이런 상황에서 기동의 효과를 다시 찾아낸 전략가가 있었다. 독일의 Schlieffen 장군이다. 그는 신속한 기동이 전장의 주도권을 장악하는 근본적인 수단이 된다고 믿었다. 유명한 Schlieffen Plan 이 그 예이다. 그러나 그의 계획은 막상 전장에서 효과를 발휘하지 못한다(제1차대전). 독일 군이 최초에는 성공적으로 진격하지만, 얼마못가서, 독일과 불란서 군은 진지전에 돌입하게 되고 전선은 교착상태에 빠지게 된다. 따라서 1차대전은 독일의 기동전으로 시작하지만, 지루하고 긴 진지전으로 끝을 맺게 된다. 기관총과 포병, 참호와 철조망, 그리고, 돌파와 역습이 반복되는 소모전이었다.
그러나 이 전장을 통해서 기동수단을 획기적으로 개선하는 기술적 발달이 이루어진다. 그 하나는 Tank의 발명이고, 다른 하나는 비행기를 전장에 이용한 것이다. 그러나 이러한 기술적 발전이 당장 전술적 발전으로 이어지지 않았다는 점을 주목할 필요가 있다. 전투가 치열했던 1916년, Somme 전투에서 최초로 전차(Tank)가 전장에 등장하지만, 이 새로운 무기도 전장의 개념을 바꾸지는 못하였고, 1차 대전은 결국 화력이 지배하는 전장으로 막을 내리게 된다.
1. 새로운 무기체계와 낡은 전술개념
1차대전이 진행되고 있는 동안, 전술적으로 새로운 착상이 과학자들의 도움을 받아 다양한 무기를 제작하여 전선에 공급하게 된다.
가. 그 대표적인 작품이 전차(Tank) 였다. 전차는 최초에 영국의 공병중령 Swinton 의 제의로 개발이 시작된다. 참호 선을 여러 개 만들어 놓으면 아무리 용감한 군대도 돌파하기 어렵다. 공격하는 부대가 처음 한두 개의 참호 선을 돌파한 다해도 종심 깊은 참호 선을 극복하지 못하고 돈좌하게 된다. 노출되어 공격하는 보병이 참호 안에 배치된 기관총을 이길 수 없을 뿐만 아니라, 적의 포병사격은 노출되어 기동하는 보병에게 엄청난 위협이 되기 때문이다.
Swinton 중령의 발상은 들판을 누비고 다니는 농업용 Tractor 에 Bunker를 탑제하여 “이동이 가능한 Bunker”를 만들면 적 참호 선을 돌파할 수 있다는 것이었다. 이 발상이 얼마나 기발한 것인가를 당시의 전략가들은 쉽게 이해하지 못하였다. 전장의 2대 핵심 요소인 화력과 기동을 합치고, 그리고 그것을 장갑으로 보호를 받도록 한다는 착상이었다. 더 주목할 사실은 이 무기의 제작에 대해 육군성이 반대 했지만 해군장관 Churchill 이 주장하여 해군 Project로 추진했다는 것이다. 그래서 그 이름이 지상함(地上艦=Tank), 즉 Tank가 되었다고 전해진다.
나. 항공기는 1차대전 이전에 실용화되기 시작했다. 1903년 라이트 형제가 발명한 이래 1909년에는 34분 만에 도바해엽을 횡단한다. 그러나 1차대전이 발발할 무렵, 전략가들이 항공기술에대한 관심은 매우 저조하였다. 불란서의 항공기술이 비교적 앞서있었지만 1912년에 총 항공기 댓수는 390대 정도였고 독일은 100대에 불과했다. 그러나 전쟁이 발발하자 항공기는 정찰용으로, 포병의 표적 탐지용으로 그리고 연락용으로 사용되었다. 1915년, 독일이 먼저 비행기에 기관총을 장착하여 적의 비행기를 공격하기 시작한다. 불란서가 이어서 기관총을 장착한 비행기를 개발한 후 공중전이 시작된다. 일반적으로 독일은 전투기 세력이 강했고, 불란서는 폭격기를 대량 보유하고 있었다.
지상에서 참호전이 교착상태에 이르자 비행기를 이용하여 지상군을 지원하는 개념이 싹트기 시작한다. 1917년 3월, 독일은 항공기를 지상 작전을 지원하는 수단으로 활용하는 방안을 구상하기 시작하면서 전격전 개념을 발전시킨다. 장거리 비행이 가능하게 되면서 전략적 폭격이 시작된다. 3차원의 전쟁이 시작된 것이다.
다. 전화( 1870년대 실험후 실용화), 무선전신(1895 시험, 1901 실용화) -- 무선통신 기술은 1차대전 이전에 이미 함정 간에 통신수단으로 사용되고 있었다.
2. 새로운 기술이 전장에 도입되는 과정은 일반적으로 순탄하지 않았다. 통상 병사들은 새로운 기술을 이용하여 새로운 방법을 개척하기보다는 손에 익은 장비를 사용하는 것을 선호했다. 더 중요한 것은 새로운 기술을 전술적으로 사용하기위한 새로운 발상이 부족했다는 점을 지적할 수 있다. 새로운 기술이 처음 전장에 도입될 때에는 통상 기술적으로 완전한 상태가 아닌 경우가 많이 있다. 중요한 것은 새로운 분야가 문을 열었다는 것인데, 그 중요성을 전략가들이 간과해왔다는 것이다.
대포적인 예가 기관총이다. 기관총은 연발로 탄환을 전방에 쏟아 부어서 노출된 병사에게는 치명적인 무기이다. 그러나 초기의 기관총은 무게가 무거웠고, 탄약 소모량이 과다해서 운반이 힘들었고, Jamming 등 잦은 고장으로 병사들이 기피하는 무기가 되었다. 그러나 기관총 한 정이 제압할 수 있는 범위가 엄청나기 때문에 장차 전장을 지배하게 된다는 가능성을 간과하고 다만 당장의 불편한 점 때문에 이 무기의 체택을 반대 했다는 것은 참으로 어리적은 결정이 었다. 사실, 어떤 경우에는, 새로운 전술적 발상을 창조해 내기 보다는 그 새로운 기술이 기존의 방법에 도전하는데 대한 부정적인 견해가 앞서게 된다. 따라서 1차대전을 통해서 수많은 신 기술이 소개되었지만, 전술적 개념의 차원에서 보면 별 진전을 이루지 못했다고 평가할수 있다.
3. 전쟁에서 얻은 교훈과 새로운 전술개념
산업화가 진행되고있는 가운데 진행된 1차 대전은 전장에 다양한 기술과 장비를 공급하였다. 전략환경이 급격히 변하고 있었다. 불란서는 자신들이 승자라고 생각하였고, 승리의 전략적 이유는 방어였다고 생각하였다. 반면에 독일은 패자라고 생각하면서 그 원인을 기동력과 기동전술이 부족했기 때문이었다고 평가한다. 따라서 불란서는 새로운 기술의 이기를 방어능력 보강에 투입하려했고, 독일은 같은 기술을 이용하여 공격적 기동작전에 초점을 맞추게 된다.
가. 불란서는 방어위주의 전쟁을 준비하게된다. 1929년부터 시작한 Maginot 선을 구축하기 시작하여 독일과의 국경에 거대한 전술적 벽을 쌓게 된다. 전술은 화력위주로 발전한다. 강력한 포병이 보병의 방어를 지원한다. 기동과 공격전술은 활력의 지원을 받는 범위 내에서 이루어진다. 강력한 포병사격에 뒤이어 보병이 제파식으로 공격한다. 통상 Phase Line을 설정하고 통제된 가운데 Step by Step 으로 전진하게 된다. 보병이 1-2Km 전진하면 포병의 지원사격이 조정되고 다시 보병이 1-2Km 전진하게 된다. 그렇게 4-5Km 보병이 전진하면, 포병진지를 이동해야 하기 때문에 보병은 참호를 파고 방어태세에 들어간다.
전차는 보병 속에서 전투를 하게 된다. 보병과 함께 전투하기 위해 느린 전차를 주문하였다. 1Km 내에 50대 이상의 전차가 집중하는 것은 불리하다고 보았다. 불란서에서도 기계화된 기동부대를 창설하지만, 기동위주로 운용하기위한 것이 아니었고, 더 효과적인 사격을 위해 운용되었다.
이들에게 기동이란 사격을 위한 이동이었고, 방어는 고정된 위치에서 사격하는 것이라는 차이가 있을 뿐이었다. 조우전을 되도록 회피한다는 원칙이었다. 일단 계획되지 않는 조우전이 발생하면, 곧 방어를 한다고 생각했다. 불란서군은 1차대전과 같은 전투가 벌어진다고 판단하고 전쟁을 준비하였고, 결과적으로 새로운 무기로 낡은 전투개념에 따라 전쟁을 하게 된다.
나. 독일은 공격형 군대를 만들었다. 단위부대장은 임무를 부여받게 되고 임무위주의 전술을 수행하도록 훈련된다. 군의 편제를 기동위주로 바꾸고 자주포병과 기계화 보병이 항공기의 지원을 받으면서 신속하게 적진을 돌파하고 후방 깊숙이 진출하는 전법을 시험한다. 최초 48시간 내에 700Km를 전진하지만, 나중에는 48시간 내에 1,000Km를 전진하는 SS 부대를 창설한다.
2차대전이 일어나던 때에 불란서는 독일에 비해 더 많은 항공기를 보유하고 있었다. 그러나 작전 가능한 항공기는 독일이 더 많았다. 그 결과로 제공권은 독일이 장악하게 된다. 불란서의 육군은 항공기를 지상군의 보조무기로 생각하였다. 따라서 독립 공군의 창설을 반대하고 육군의 일부가 되게 한다. 그런 것들이 모두 많은 항공기를 보유하고 있었으면서도 제공권을 상실한 이유가 된다. (불란서 3289대보유 1240대만 가동하였고, Fighter 는 790대가 가동상태를 유지한 반면, 독일은 vs. 1600대의 Fighter 보유하고 있었다.)
다. 2차 대전은 공중에서 급강하 폭격기가 방어진지를 유린하는 가운데에 기계화 보병과 전차와 자주 포병이 지상을 질주하는 발달된 입체작전이었다. 화력위주의 전장으로부터 기동과 화력이 상호작용으로 승수효과를 만들어내는 새로운 형태의 전장이 된 것이다. 이런 환경에서 대 우회 기동을 특징으로 하는 Schlieffen 계획이 진가가 나타난 것이다. 화력위주 방어준비를 해두었던 불란서와 대 규모 기계화 기동전을 준비한 독일의 대결은 3개월을 넘지 못했다. 과학 기술의 차이 때문이 아니었다. 미래 전을 전망하는 전략가들이 전진 방향을 바로잡지 못한 실수였다.
제4장: 양차 대전을 통해서 얻은 RMA의 교훈:
변화의 시대에 군사력을 성공적으로 개혁한 군대와 실패한 군대의 경험을 정리해 보면 유익한 교훈을 찾아낼 수 있다.
1. RMA 는 Dominant Player 가 주도하는 경우가 드물다.
2. RMA 는 어떤 Idea를 처음 발상하여 전장에 내놓은 나라보다, 그것을 보고 배워서 필요한 부분을 개선하여 운용한 나라가 통상 더 결정적인 효과를 얻는다.
3. RMA 는 새로운 기술을 발명한 나라보다, 다른 나라에서, 그 기술을 이용하여 성공한 사례가 더 많다.
4. RMA 는 반드시 기술이 선도하는 것은 아니다.
5. RMA 는 어떤 새로운 기술을 바탕으로 이루어지기보다, 기존의 기술 몇 개를 연결하여 이룩한 것이 더 많다.
6. 기술을 기초로 한 RMA 가 모두 무기의 형태로 나타나는 것은 아니다.
7. 기술에 기초를 둔 RMA도 결국, 교리, 편제의 개선으로 나타난다.
8. 성공한 RMA보다 실패한 RMA가 더 많다.
9. RMA가 성공하기 위해서는 긴 시간이 소요된다.
10. RMA의 효과는 전장에서 극명하게 나타날 때까지 논란의 대상이 된다.
다음은 성공한 RMA의 특징을 열거한 것이다.
1. 새로운 기술이 중요한 역할을 한다.
2. 새로운 장비가 만들어진다.
3. 새로운 체계가 전투기능을 획기적으로 개혁한다.
4. 새로운 전술/ 전략 개념이 변화를 주도한다.
5. 새로운 교리와 편제가 만들어진다.
이런 것들이 합하여 군사작전방법상에 Paradigm 이 바꾸게 된다.
가장 중요한 것은 전략/ 전술적 방향설정이다. 변화하고 있는 기술 환경과 전략 환경을 기초로 미래전장에 대한 정확한 Vision을 그려내어야 한다. 이런 의미에서 각 군이 작성한 Vision XX는 다음 세대의 운명을 좌우하는 중요한 문서라고 말할 수 있다.
제 5장: 정보화시대의 군사작전:
1. 정보화시대의 기술적 특징:
가. 정보기술:
대량의 Data 처리가 가능하다. Data 분류와 보관, Data 전송, Data 융합이 가능해 지면서 공간의 구분 없이 여럿이서 같은 임무를 동시에 수행할 수 있는 환경이 되었다.
나. Sensor 기술이 발달하면서 오관의 한계를 넘어 상황을 파악할 수 있는 능력을 얻었다.
다. PGM 기술: 장거리 목표를 정확하게 타격할 수 있는 능력이 발달하여 어떤 목표이건 보는 것은 모두 명중할 수 있는 능력을 갖게 되었다.
다. Robert 기술, 무인 비행체 기술, Nano 기술의 발달은 다양한 전투 수단을 제공하고 있다.
마. Stealth 기술의 발달로 정보전의 새로운 장을 열어주었다.
** 정보화 기술이 사회전반에 걸쳐 대 변화를 이끌어 가고 있다. 기업경영면에서는 종래의 경영방법에 정보기술만 가미하더라도 획기적인 변화가 일어난다. 그러나 군사적 관점에서 정보화 기술이라 함은 통상 정보기술과 더불어 승수효과를 만들어낼 수 있는 여타분야의 기술, 즉 Sensor 기술 과 PGM 기술을 통틀어 광의의 정보기술이라고 표현하는 것이 특징이다.
2. 정보화시대의 군사작전:
이러한 기술 환경의 변화를 전술차원에서 수용하기 위한 새로운 Idea 가 여분 야에서 발달하고 있다.
가. Platform 위주로부터 Network 중심의 전술로 진화해야 한다. (NCW)
나. 장거리 정밀무기 위주의 전력을 구축해야한다.
다. Robert 전, 우주 전을 준비해야한다. 등이다.
그러나 이런 이론들만으로 미래 전장의 모습이 구체적으로 떠오르는 것은 아니다. 그것은 마치 1차대전 중에 도입된 다양한 무기와 과학기술을 손에 쥐고서, 2차대전을 준비했던 세대가 고민했던 문제와 같다고 말할 수. 이 문제를 풀어나갈 지혜가 필요하다.
적어도 몇 가지 명확한 방향을 찾아낼 수 있다. 이것이 Vision 이 된다.
첫째, 1차대전과 2차 대전의 모양이 근본적으로 달랐던 것처럼, 정보화 이전의 전장과 정보화 이후의 전장의 모습이 근본적으로 달라진다는 점이다. 따라서 되도록 기존의 관행을 떨쳐 버려야 새로운 전장의 모습을 구상할 수 있다고 판단된다.
둘째, 고도로 발달된 정보능력을 양성해야한다.
셋째, 기술이 발달할수록, 방어형의 군사력에는 한계가 있다는 점이다. 공격무기는 점점 더 치명적으로 발달하는데, 완벽한 방어수단을 보유하는 것은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공격형 군사력과 유연한 외교력이 연계될 때에 안전이 보장된다는 것이다.
넷째, 적의 핵심표적(Center of Gravity: COG)을 파괴할 수 있는 수단을 확보하고, 아군의 핵심 전력은 보호할 수 있는 수단을 보유해야 한다. 육해공군의 전투수단은 통합작전이 가능하도록 편성되고 훈련되어야 필요할 때에 하나의 목표에 집중이 가능하게 된다.
다섯째, 빠른 Tempo 로 종심 깊은 기동을 할 수 있는 지상군을 보유해야 한다. Panzer 사단이 48시간 내에 1,000Km를 기동할 수 있었던 것과 Iraq 전에서 미군부대가 기동했던 예는 좋은 참고가 된다.
여섯째, 심리적 마비수단과 물리적 파괴수단을 동시에 보유하고 혼합하여 사용할 수 있어야한다. Shock and Awe를 참고할 필요가 있다.
일곱째, High Low Mix를 적용해야한다. Asymmetric Warfare 와도 연관된 개념이다.
3. 정보화 시대의 군사력 양성:
Vision을 찾아내는 것 다음에는 Vision을 구현하는 것이 중요하다.
가. Model 연구:
Vision을 구현하는 길은 새로운 경험이 된다. 새로운 길을 개척하려면 수많은 시행착오를 각오해야한다. 물론 한번에 달성할 수 있다면 그것이 최선이지만, 그런 경우는 극히 드물다. 그렇기 때문에 망설이는 시간이 길어지고 그러는 동안에 기회를 상실한 경우가 허다하다. 따라서 Vision을 시행하기위한 첩경은 Model을 만들어 시험해 보는 길이다. 그렇게 하려면 이일을 수행할 기구가 만들어 져야한다. 여러 나라들이 벌써부터 이런 작업을 시작하여 수없이 많은 시험을 하고 있는 것을 우리는 보고 있다. 서둘러 우리도 이 일을 시작해야한다. 처음에는 Simulation 이 유리하다. 상당한 수준에 이르면 Field Test를 할 수 있게 된다. 누군가 이일을 해주면 배우면 된다는 생각은 참으로 위험하다. 기회가 지나가 버리면 정보화 시대의 낙오자로 전락하게 되기 때문이다.
나. 변화의 수용:
군은 전통적으로 전통을 소중하게 생각한다. 그래서 새로운 것을 받아들이는 것이 어렵다. 과거의 경험에 비추어 보면, 새로운 발상은 전혀 없던 것에서 출발한 것 보다 과거의 수단을 몇 개씩 합치거나 새로운 기술을 응용하여 새것을 만든 예가 더 많았다. 세계 도처에 분쟁이 끊이지 않는다. 이 분쟁이 모두 학습장이다. 더 빨리 보고 더 빨리 변화를 수용하는 것이 유리하다.
다. UJ-Brigade (여단) 을 제안한다.
UJ 는 Ubiquitous 환경을 갖춘 Joint Brigade 라는 뜻이다.
첫째, 이 여단이 갖추어야할 능력을 전술전문가들이 구상하게 한다. 발상이 쉽게 이루어 지도록 하기위해 현재 사용하고 있는 전장 7대기능별로 갖추어야 할 능력에 대해 주문을 받는다. 물론 합동작전 차원의 문제로 다루어야한다.
둘째, 전술 지휘관들이 모여서 그 능력을 종합적으로 검토한다. 시행 가능성 문제는 아직 염려할 단계가 아니다. 필요한 만큼 주문하도록 하면 된다.
셋째, 과학자와 기술자 들이 모여서 이 내용을 종합 검토한다. 기존 무기체계가 있는 것은 구입하면 된다. 없는 것은 새로 제작하여야 한다. 대략적인 예산을 판단하게 한다.
넷째, 전술전문가들과 과학자들과 경제전문가들이 같이 모여서 시행방안을 검토한다. 불가능한 부분에 대해서는 정밀한 검토가 이루어 져야한다. 이런 과정을 적어도 몇 차례 반복한 후 UJ 여단의 모습을 완성한다.
다섯째, Simulation을 한다. 그것은 가상적과의 전쟁이 된다. 이 Pattern이 승리했던 나라들의 행태였다.
결론:
한번의 큰 전쟁이 지나가면 Holsti 교수의 말처럼 다음 전쟁이 다가오게 마련이다. 정보화 시대에 군사작전이 새로운 모습으로 전개될 것이 분명하다. 그 일부가 이미 세상에 공개되어있다. 그러나 그 진면목이 나타난 것은 아니다. 다만 시작일 뿐이다. 이 격변의 세기에 누구든 머물러 있는 자는 낙오한다. 그래서 서둘러 달려가야 한다. 중요한 것은 어떤 방향으로 달려가야 하는가 하는 것이다. 우리가 그 답을 찾아 내어야한다.
그 답은 전술 전문가와 과학자가 합작해서 Condominium을 만들면 되는 것이다. 아직 늦지 않았다. 그러나 지금 시작해야한다. 이것이 무정부 상태의 국제관계하에서 정보화시대를 살아갈 수 있는 길이기 때문이다.
끝
2006-04-01 16:50: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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