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995년 북한이 어렵다며 북경 조선족사회에서 모금운동이 벌어진 적이 있다. 그때 모금을 반대한 사람들이 많았다. 북한은 좀 더 어려워져 최악의 궁지에 빠져야만 경제개혁을 할 것이며 그래야 북한이 잘 살 수 있다는 이유였다. 과거를 돌아볼 때 이 말은 정확히 맞는 말이다.
6·25전쟁이 끝난 후 북한은 주로 구걸을 해서 살아왔다. 대부분 소련과 중국에게 구걸한것이다. 동서방 대립의 최전선에 있으면서 전쟁까지 치른 북한에 대해 사회주의 국가들은 많은 도움을 주었다. 여기다 1960년대에 소련과 중국 간에 사회주의 진영의 종주국이 되기 위한 경쟁이 벌어지면서 양국은 앞다투어 북한에 돈을 퍼주었다.
1950~1970년대에 사회주의 국가가 북한에 지원한 금액은 20억 4300만 달러였는데 거의 다 무상 원조였다. 그밖의 지원도 많았다. 이를테면 북한의 전쟁고아 2만 2735명과 기타 난민 7185명을 중국이 받아들여 먹여주고 공부시켰다. 북한의 복구건설에 중국군은 무상으로 43만 작업일을 투입해 많은 도로와 교량, 공장, 광산, 주택 등을 건설해 주었다.
하지만 1980년대에 사회주의 진영이 무너지면서 북한에 대한 지원도 줄어들었다. 이어 동구경제공동체가 없어져 북한경제는 극심한 곤경에 빠졌다. 경제개혁을 하지 않으면 도저히 지탱할 수 없는 위기일발의 상황이었다. 그런데 난데없이 세계 각국의 많은 동포들이 앞다투어 쌀과 우유, 기름 및 돈을 북한에 지원했다. 그 중에는 한국 기업인도 있었다. 동족애나 자선이라는 미명을 내걸었지만 북한과 인연 맺어 큰돈을 벌어보겠다는 헛된 꿈을 꾼 사람도 적지 않았다. 만약 그들의 도움이 없었다면 북한이 경제개혁을 했을지 모른다.
그당시 지원에 나섰던 동포들이 실망하여 물러설 무렵인 1998~2008년, 한국의 김대중·노무현 정부가 북한에 일방적으로 대단히 큰돈을 지원했다. 이에 북한은 경제개혁을 하지 않고도 위기를 넘길 수 있었으며, 심지어 그 여력으로 미사일과 핵 개발까지 하였다.
이렇게 반세기를 살아온 북한은 이제 점점 더 경제체제 개혁에 신경을 쓰지 않고 쉽게 돈을 쥘 궁리만 하는 나쁜 습관이 굳어져 버렸다. 한다는 일이 고작해야 허황된 화폐 개혁과 무기 매매, 외화 위조, 마약 매매, 속죄양 처형 등이다.
북한의 화폐 개혁은 화폐 수탈이었다. 1991년 7월의 화폐 개혁을 필자는 평양에 있으면서 직접 경험했다. 은행에 저금하지 않은 돈이면 1인당 400원 이상 바꾸어주지 않았다. 당시 북한 주민들은 은행에 한번 저금하면 그 돈을 찾을 수 없었기 때문에 집에 돈을 두었다. 이 때문에 집안에 있던 거액의 돈이 하루아침에 폐지로 변해버렸다. 당시 평양시의 은행 앞에다 돈 자루를 태워버린 사건이 비일비재했다.
몇 해 전에 있은 화폐 개혁은 화폐 인플레이션까지 겹쳐 더욱 큰 혼란을 야기했다. 그 난국을 수습한 방법 또한 가관이다. 화폐 개혁을 주관한 고위층 관료를 처형하는 것으로 끝내버린 것이다. 이번에 장성택을 처형할 때도 북한 경제의 모든 문제점을 그에게 뒤집어 씌우지 않았는가.
최근 몇 년은 위협공갈이다. 이명박·박근혜 정부가 북한에 퍼주지 않으니 온갖 위협공갈과 전쟁도발의 망언도 서슴지 않는다. 걸핏하면 한국을 불바다로 만들겠다고 호통을 친다.
필자는 2010~2012년 한국의 농촌마을에서 ‘북한에 쌀을 지원하자’라는 플래카드를 많이 보았다. 나라에서 쌀을 사서 북한을 지원하면 나도 돈 벌고 북한 주민도 먹여 살리니 일거양득이라고 생각했을 것이다. 그러나 북한을 지원하면 북한의 체제개혁을 지연시키고, 이에 따라 남북 통일은 더 어려워진다는 생각은 안해 보았는가? 몇 천명을 구하려다가 몇 백만명을 굶어죽일 수 있다는 생각은 왜 안해 보는가?
중국이 30년간 사회주의를 하며 뼈저리게 터득한 교훈이 ‘경제는 경제의 방법으로 다스려야지 정치로 대체할 수 없다’는 것이다. 경제의 방법은 생산력과 생산관계의 모순을 해결하는 것이고 생산력은 생산도구와 생산자로 구성된다. 경제발전을 위해서는 생산자의 노동의욕(돈을 벌 욕망에서 기인)을 유발하는 생산관계를 조성하는 것, 즉 자본주의 시장경제를 따르는 수밖에 없다.
또 한 가지 교훈은 개혁은 극악의 상황에 처해야 이루어진다는 것이다. 중국도 10년이라는 문화혁명의 악과(惡果)로 빚어진 망국의 경지에 다다라서야 ‘개혁이 아니면 도저히 안된다’는 인식이 생겨났고, 이것이 개혁개방으로 이어진 것이다. 북한은 남북한 군사대치 때문에 1978년의 중국보다 환경이 더 열악해져야 개혁을 할 수 있을 것이다.
북한은 돕지 않는 것이 돕는 것이다. 극악의 상황에 처해야 위정자가 진정한 개혁을 할 생각을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