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國際.經濟 關係

[통곡의 땅 필리핀 타클로반, 이기문 기자 르포 1 ~ 3信]/ 조선일보

鶴山 徐 仁 2013. 11. 15. 10:35

 

입력 : 2013.11.15 03:27 | 수정 : 2013.11.15 09:38

[통곡의 땅 필리핀 타클로반, 이기문 기자 르포 3信]

재앙 7일째인데… 식량·식수 못받은 마을이 절반
구호품 받으려 줄선 사람도 상당수가 빈손으로 돌아가
아이들, 한국 구호대원 보자 한국말로 "사랑해, 사랑해"


	이기문 기자 사진
이기문 기자

절망의 땅에 태양은 또 떴다. 태풍 '하이옌'이 유린한 필리핀 레이테섬 타클로반에 14일 드디어 식량 배급과 방역이 시작됐다. 국제 구호단체 '기아대책' 선발대와 서울에서부터 동행해 타클로반에 도착한 지 사흘 만이다.

김화영 대원 등 방역팀 3명은 마닐라로부터 버스와 배를 갈아타고 36시간 만에 왔고, 이진호 대원 등 구호팀과 식량·생수·고열량비스킷을 실은 차량은 전날 세부를 출발해 배편으로 도착했다. 이 대원은 "인근 세부섬에서도 사재기가 극심해 구호품을 충분히 확보하진 못했다"고 말했다.

한국인 구호팀은 타클로반에서도 가장 큰 피해를 입은 남부 해안가 인근 빈민촌으로 직행했다. 고교 건물에 만든 이재민 수용소엔 바닷가에 만든 수상 가옥을 잃은 500여가구 600여명이 모여 있다. 바랑가 촌장 로나 알 파니스(여·55)씨는 구호팀을 향해 두손 모아 수십 번을 인사했다.

배급은 비밀 작전이다. 폭력 사태를 우려해 주민이 모인 고교 체육관으로 한정해 구호품을 나눠줬다고 한두리 기아대책 간사는 설명했다.

배급이 시작되자 갑작스러운 소나기가 뚫린 천장으로 후드득 들어왔다. 마을 사람들은 비 따위엔 눈길도 주지 않았다.

허기와 갈증에 다급할 법한 그들이 연장자 순으로 질서정연하게 구호품을 받기 시작했다. 구호 봉지에는 쌀·라면·비스킷·설탕·물이 담겨 있다. 주민들은 “One family, one bag(한 가정에 한 봉지씩)!”을 외치며 스스로 질서를 잡았다.


	식량 받으려… 끝이 안보이는 행렬… 끝을 도무지 짐작할 수 없는 긴 행렬이 피해 주민들의 고달픈 일상과 간절한 심경을 그대로 보여준다. 초강력 태풍 ‘하이옌(Haiyan)’의 최대 피해지인 필리핀 타클로반에서 14일 주민들이 식량과 생수를 받기 위해 줄을 서고 있다
식량 받으려… 끝이 안보이는 행렬… 끝을 도무지 짐작할 수 없는 긴 행렬이 피해 주민들의 고달픈 일상과 간절한 심경을 그대로 보여준다. 초강력 태풍 ‘하이옌(Haiyan)’의 최대 피해지인 필리핀 타클로반에서 14일 주민들이 식량과 생수를 받기 위해 줄을 서고 있다. /로이터 뉴시스
브증 헤리다(64)씨는 손자(11)의 손을 잡고 구호품을 탔다. 이 가족 12명은 학교 담벼락에 간이 천막을 쳐놓고 살고 있다. 길이 10m, 폭 2m 공간에서 다른 가족까지 합쳐 50여명이 산다. 학교 주변에 있는 이런 천막들에 수십 가구가 더불어 산다. 주민들은 구호팀과 기자에게 “고맙다”면서 그늘 아래 의자를 비워줬고, 아이들은 어디서 배웠는지 한국말로 “사랑해, 사랑해”를 외쳤다.

구호품이 떨어져 몇십 가구는 받지 못했지만 원망하는 이들은 없었다. 이들은 “내일 꼭 주겠다”며 그 징표로 구호대가 찢어 건넨 명함을 받고 선선히 돌아섰다.

방역 작업은 현지 경찰의 차량 협조로 두 시간 동안 이어졌다. 차량이 못 가는 곳을 방역팀이 일일이 돌며 수작업을 했다. 하천 위로 시신들이 떠 있는 모습이 보였다. 시신들 일부는 이날 타클로반 근교 공동묘지에 집단 매장됐다. 명복을 비는 기도도, 망자(亡者)의 인권도 거기엔 없었다.

타클로반은 조금씩 활기를 찾고 있다. 주민 메이탈 리(여·27)씨는 “피해가 적은 인근 사마르섬으로부터 석유도 조금씩 들어온다”고 말했다. 거리에는 통행 차량이 늘었다. 하지만 거리에 늘어선 부패해 가는 시신과 쓰레기를 수습할 장비가 전혀 없다.

14일 저녁 경기도 성남시 서울공항 활주로에서 공군 요원들이 필리핀 태풍 피해지역으로 보낼 구호품을 수송기에 싣고 있다. 정부는 식량과 식수, 의료 물품 등 500만달러 규모의 물자와 현금을 지원하고, 해외 긴급 구호대를 보낼 계획이라고 밝혔다. 의료진 20명과 119구조단 14명 등 40명 규모로 편성된 1차 긴급 구호대는 15일 오전 4시 필리핀으로 출발해 현지에서 구조활동을 벌인다. /성형주 기자

이날 시청 구호 상황판에는 138개 마을 중 64개 마을만이 필수적인 식량과 식수를 배급받았다고 적혀 있었다. 오늘부터 하루 두 차례 비상식량·식수가 공급된다. 더 많은 이들이 한국말로 “사랑해”를 말할 수 있을 것 같다.

타클로반 시청 이재민 수용소에는 부녀자들이 대부분이다. 적잖은 성인 남성이 태풍이 오기에 앞서 가족을 대피시키고 집을 약탈자로부터 지키려다 실종됐다고 한다.
타클로반을 떠나기 위해 이날 오후 공항에 왔다가 전날 기자에게 한국인 남편을 찾지 못해 남편 이름이 적힌 종이를 걱정스레 건넸던 제이 크루즈(여·35)씨를 만났다. 그녀 곁에는 남편 한명학(67)씨와 딸 예진(6)양이 있었다. 세 가족의 얼굴에 행복한 웃음이 번졌다. 당국은 시신 2357구를 확인했다고 밝혔지만 사망자 수는 그보다 훨씬 늘 전망이다. 태풍의 직·간접 피해자는 115만명이고(유엔 추정), 이재민 67만명 중 대부분은 집을 잃은 상태다.

 

 

입력 : 2013.11.14 02:57 | 수정 : 2013.11.14 10:35

[통곡의 땅 필리핀 타클로반 - 이기문 기자 르포 2信]

전기 끊긴 암흑도시… 물 구하려 송수관까지 파내

"3~4일내 식량 공급 못하면 큰 소요 사태 일어날 수도"
정부 비축미 창고 털려… 탈옥 죄수·정부군 총격전도


	이기문 기자
이기문 기자
초강력 태풍 하이옌(Haiyan·바다제비)이 남기고 간 고통은 이제 살아남은 자의 몫이다. 최대 피해지인 필리핀 레이테섬의 타클로반은 해가 떨어지자 암흑천지로 변했다. 자체 발전기를 돌릴 수 있는 군부대와 경찰서 등 공공기관을 빼고는 전기 공급이 모두 끊겼다. 밤거리는 고요했다. 폭력 사태를 우려한 군경이 야간 통행금지를 실시하고 있기 때문이다.

태풍이 지나간 지 닷새째인 13일. 날이 밝자 거리는 행방불명된 가족을 찾아 헤매는 사람들과 먹을 것을 찾아나선 사람들로 가득 찼다. 타클로반은 여전히 시신이 여기저기 흩어져 있고 모든 게 무너져버린 폐허였다. 어린이들은 길에서 구걸을 했다. 일부 주민은 식수를 구해 보려고 땅속에 묻혀 있는 송수관까지 파내고 있다.

시청에는 인터넷을 이용하거나 전자기기를 충전하기 위해 몰려든 사람들이 수십m씩 줄을 섰다. 친구들과 한 시간을 걸어왔다는 제릭 엘 세브라뇨(10)군은 "휴대폰을 충전하기 위해 5시간째 기다리고 있다"고 말했다. 한 사람에게 허용된 충전 시간은 10분뿐이다.

한 여성이 기자에게 휴대전화 번호가 적힌 종이를 내밀었다. 제럴린 제이 크루즈(35)씨는 한국인 남편을 찾고 있었다. 기자가 한국 사람인 것을 알아보고 "남편 찾는 것을 도와달라"고 했다. 남편이 이날 새벽 "돈과 필요한 물건을 챙겨오겠다"며 걸어서 30분 거리인 자신의 사무실로 갔는데 반나절이 지나도 연락이 없다는 것이다.

마음이 급하기는 현지에 파견된 구호 요원도 마찬가지다. 국제사회가 지원에 나섰지만 아직 이곳까지 도움의 손길이 충분히 닿지 않고 있다. 상당수 구호물품은 마닐라나 세부에 발이 묶여 있다.

구호물품이 타클로반 공항에 반입됐더라도 도로와 운송체계가 파괴돼 피해 지역에 제대로 전달되지 못하고 있다.

국제구호단체 '기아대책'의 서상록 단원은 이날 새벽 일찍 짐을 꾸려 떠났다. 타클로반에서 차로 왕복 4시간 거리인 오르목에서 식량과 물을 구해오기 위해서였다. 오르목도 태풍 피해를 봤지만 타클로반보다는 상황이 좋다. 기아대책은 이재민 1000여명이 모여 있는 대피소에 구호품을 전달할 계획이었다.

모닥불에 의지하여… - 초대형 태풍‘하이옌’으로 피해를 입은 필리핀 중부 타클로반의 임시 대피소에서 13일 밤 촛불을 든 이재민들이 모닥불을 피워 음식을 만들고 있다. 타클로반은 전기와 수도가 끊긴 상황이다. 주요 도로·다리 등도 파괴돼 국제사회가 지원한 구호품 배급에 차질을 빚고 있다. /AP 뉴시스
하지만 서씨는 이날 오후 빈손으로 돌아왔다. 물품을 싣고 올 차량을 구하지 못한 것이다. 또 이날 저녁 배편으로 구호물품을 싣고 오기로 했던 선교사 2명도 태풍 피해로 현지 은행 업무가 마비돼 필요한 물품을 사지 못했다고 했다. 현지 구호활동을 총괄하는 유엔인도주의업무조정국(UNOCHA)은 이날 오전 10여개 구호 기관과 가진 회의에서 "3~4일 내로 식량이 공급되지 못한다면 타클로반 일대에서 소요 사태가 일어날 수 있다"고 밝혔다.

이날 타클로반과 인근 사마르 지역을 잇는 검문소 앞에서는 취재진이 있는 가운데 정부군과 탈옥 죄수 간에 총격전이 벌어졌다. 전날에는 굶주린 이재민 수천명이 타클로반의 정부 식량 창고를 습격해 비축미를 약탈했다. 당시 창고 주변에는 군과 경찰이 배치돼 있었으나 갑자기 벌어진 상황에 속수무책이었다고 현지 목격자들이 전했다.

김용상 119국제구조대원은 "도로에 동물과 사람 시체가 뒤엉킨 채 방치돼 있어 전염병이 돌 수 있다"며 "방역 활동이 시급하다"고 말했다.

한편 베니그노 아키노 필리핀 대통령은 12일 미국 CNN방송 인터뷰에서 "중앙정부 집계로는 사망자가 2000~2500명 정도"라고 말했다. 현지에 도착한 유엔 관계자와 지방관리들이 사망·실종자를 1만2000여명으로 추산한 것과는 큰 차이다. 하지만 도로와 통신 상태가 두절된 점을 감안하면 정부가 집계하는 사망자 수는 계속 늘어날 것이라고 구호단체 관계자들은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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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 2013.11.13 03:02 | 수정 : 2013.11.13 10:21

[本紙 이기문 기자, 괴물 태풍이 휩쓴 필리핀 타클로반 르포]

시내 곳곳 시신 방치… 악취 진동
생존자들 잔해 뒤지며 가족 찾아 "아이티 대지진 이후 가장 끔찍"

물·식량 찾아 떠도는 난민… 천막병원엔 藥거의 떨어져
길 끊겨 생필품 전달 힘들어 나흘째 구호작업 제대로 안돼
식수 얻으려 1시간 넘게 걷고 빈민들은 쓰레기 더미 뒤져
기자를 태워준 트럭 운전사 "해 떨어지면 밖에 나오지 말라"


	이기문 기자
이기문 기자

20만명이 살았다던 도시는 재앙 속으로 사라졌다. 필리핀 중부 레이테섬의 최대 도시 타클로반. 초강력 태풍 '하이옌(Haiyan·바다제비)'이 휩쓸고 간 자리에는 죽음의 흔적만 남아 있었다. 산산조각 난 건물 잔해 밑에 깔린 시신의 손은 퉁퉁 부어 있었다. 나뭇가지 두 개를 엮어 만든 십자가가 시신 앞에 세워져 있었다. 흙이 묻은 시신을 핥고 있는 개들도 보였다. 어디가 도로였고 어디가 집이 있던 자리였을까? 500t급 화물선이 해안선에서 30m 떨어진 뭍으로 밀려올라 와 폐허 속에 서 있었다.

타클로반은 이번 태풍으로 가장 큰 피해를 입은 지역이다. 이 도시에서만 1만명 이상이 숨진 것으로 추정됐다. 12일(현지 시각) 특별 항공기 편으로 세부공항을 떠나 정오쯤 국제 구호 단체인 기아대책 선발대 4명과 함께 타클로반공항에 도착했다. 부슬비가 내렸다. 공항 건물은 태풍이 불어닥쳤을 때 천장이 날아간 상태였다. 타클로반을 탈출하려는 사람들이 활주로 옆에서 무장 군인의 통제 아래 줄을 서 대기하고 있었다.

시내로 진입하자 역한 냄새가 코를 찔렀다. 섭씨 30도가 넘는 기온과 높은 습도 때문에 시신이 빠르게 썩는다. 시체를 수습하던 한 구조 요원은 "형체를 알아볼 수 없어 신원을 확인하기 힘든 시신이 대부분"이라며 "신원 확인은커녕 죽은 사람이 몇 명인지도 정확히 알 수가 없다"고 했다.


	살아남은 이들을 암흑 같은 기다림이 또 짓누른다. 그 운명을 알아챈 듯 아빠 목말을 탄 꼬마 숙녀는 보채질 않는다. 태풍 ‘하이옌(Haiyan)’의 최대 피해지 필리핀 레이테섬 타클로반을 벗어나려는 주민들이 12일 타클로반공항에서 군의 특별 수송기를 기다리고 있다. 이날 ‘폐허 도시’를 탈출하려 공항에 몰려든 수천명 중 수백명만이 비행기에 올라탔다. /AP 뉴시스
살아남은 이들을 암흑 같은 기다림이 또 짓누른다. 그 운명을 알아챈 듯 아빠 목말을 탄 꼬마 숙녀는 보채질 않는다. 태풍 ‘하이옌(Haiyan)’의 최대 피해지 필리핀 레이테섬 타클로반을 벗어나려는 주민들이 12일 타클로반공항에서 군의 특별 수송기를 기다리고 있다. 이날 ‘폐허 도시’를 탈출하려 공항에 몰려든 수천명 중 수백명만이 비행기에 올라탔다. /AP 뉴시스

피해 규모를 따지는 것은 의미가 없을 듯했다. 태풍 관측 사상 바람 세기가 가장 강력했던 하이옌(순간 최대 풍속 시속 379㎞)의 위력 앞에 모든 게 무너졌기 때문이다. 간간이 보이는 건물도 폭격 맞은 듯 크게 부서져 금방이라도 쓰러질 것 같았다. 현장에 도착한 기아대책 주종범 팀장은 "사상자가 50만명에 달했던 2010년 1월 아이티 대지진 현장 이후 이런 모습은 처음 본다. 끔찍하다"고 말했다.

페르디난드 마르코스 전 대통령의 부인 이멜다의 고향인 이 도시는 삶과 죽음이 뒤엉킨 공간으로 변해 있었다. 생존자들은 가족과 친구의 시신을 찾기 위해 건물 잔해를 뒤지고 있었다. 마닐라 정부 기관에 근무하는 이멜다 말랏발랏(여·48)씨는 남편과 두 아이를 찾으러 이곳에 왔다.

그는 “태풍이 오기 전 나만 마닐라로 떠나고 가족은 여기 남아 있었는데 전화도 인터넷도 끊어져 연락이 안 된다”고 했다. 집이 가까워지자 그의 눈에 눈물이 고였다. 그는 “우리 집이 저기 있다”고 가리키며 차에서 내렸다. 하지만 기자의 눈에 보이는 건 건물 잔해뿐이었다.


	태풍 이동 경로 지도

당장 마실 물도, 먹을 것도 없는 사람들은 쓰레기 더미를 뒤지고 있었다. 태풍이 지나간 지 나흘이 됐지만 구호 작업은 제대로 이루어지지 않고 있다. 군용기와 헬리콥터 외에는 피해 지역에 접근하기 어려워 구호품도 턱없이 부족하다.

구조 본부인 시청은 사실상 유일한 식수 공급처다. 데이비드 비오빈센트 셀파(24)씨는 6명의 가족이 마실 물을 구하기 위해 1시간 넘게 걸어서 시청까지 왔다. 그는 “물이 빠지고 난 다음 집에서 찾은 통조림을 먹고 있다”며 “하루도 버티지 못할 것”이라고 말했다. 주민들은 물건을 담을 수 있는 것이라면 무엇이든 들고 다녔다. 로더릭 드 빌런(22)씨는 “바랑가이(최소 지방자치 단위)별로 먹을 것을 배급하는데 방금 찾아간 바랑가이에서 식량이 다 떨어졌다고 해 빨리 다른 곳으로 가야 한다”며 어디론가 뛰어갔다.

필리핀 정부가 급파한 의료 지원팀의 실리아 알 팽간(57) 팀장은 “타클로반에 있는 종합병원 3곳이 사실상 폐쇄된 상태”라며 “의사와 간호사 55명이 병원에 캠프를 차리고 환자를 돌보고 있지만 약품과 인력이 턱없이 부족하다”고 말했다.

시내까지 타고 간 트럭을 운전한 기사는 “가족이 죽고 먹을거리가 부족해 사람들이 극도로 예민하기 때문에 해가 떨어진 이후에는 길거리를 돌아다니지 말라”고 말했다.

일부 지역에선 사람들이 상점에 침입해 식량과 물 등 생필품을 가져가는 일도 있었다. 구호품을 실은 적십자사 소속 차량이 습격당하는 일도 벌어졌다. 당국은 피해 지역에 비상사태를 선포하고 군과 경찰을 증강 배치하는 등 치안 강화에 나서고 있다. 당국은 타클로반으로 향하는 구조팀을 약탈하려는 폭도가 있을 경우 발포하라고 지시했다고 현지 언론이 전했다. 한 주민은 이날 오전 남성 2명이 식품점을 약탈하다 경찰이 쏜 총에 맞아 숨졌다고 말했다.

초강력 태풍‘하이옌’의 최대 피해 지역인 필리핀 중부 타클로반에서 이재민들이 12일(현지 시각) 구호 식량을 받기 위해 줄을 서 있다. 세계 각지에서 구호단체들이 급파됐으나 타클로반으로 통하는 주요 도로가 대부분 파손된 상태여서 현장 접근에 어려움을 겪고 있다. 필리핀 정부는 태풍으로 인한 사망·실종자가 1만2500명을 넘는다고 밝혔다. /로이터 뉴시스

생존자들은 태풍이 몰아칠 당시 충격을 잊지 못했다. 해안가 마을에 살았던 알마가웃(여·36)씨는 남편을 포함해 가족 10여명을 잃었다. 그는 “바로 눈앞에서 가족이 갑자기 들이닥친 물에 휩쓸려 떠내려가는데 어떻게 할 수가 없었다”며 울먹였다. 타클로반의 해안에는 극빈층이 수상 가옥을 짓고 산다. 나무기둥 대여섯 개를 세워 대나무를 깔고, 그 위를 양철 지붕이나 풀을 엮어 얹는다. 강풍 앞에선 속수무책인 허약한 집이다. 그래서 해안가에 있는 빈민들의 피해가 컸다.

태풍 하이옌은 11일 밤 소멸했다. 하지만 또 다른 태풍 ‘소라이다’가 필리핀 중남부를 향하고 있다는 소식이 전해지면서 현지 주민은 불안에 떨고 있다.

4분기 연속 7%대 성장률을 유지했던 필리핀은 이번 태풍으로 큰 타격을 입었다. 하이옌에 따른 피해는 140억달러(약 15조원)로 추산된다. 필리핀 전체 인구의 10%에 육박하는 970만명이 태풍 피해를 입었다. 타클로반이 있는 레이테섬은 건물의 70~80%가 무너졌다. 필리핀은 지난달 15일 세부 인근에서 발생한 규모 7.2 강진으로 인한 상처를 채 씻기도 전에 이제껏 경험해보지 못했던 시련을 맞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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