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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hy] 아프리카 온 인도인 이민자 2세, 글로벌기업 일으켜 기부천사로 '케냐의 빌 게이츠'/ 조선일보

鶴山 徐 仁 2013. 11. 17. 10:52

[Why] 아프리카 온 인도인 이민자 2세, 글로벌기업 일으켜 기부천사로 '케냐의 빌 게이츠'

  • 아부자(나이지리아)=엄보운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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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입력 : 2013.11.16 03:03

    [마누 찬다리아 회장 인터뷰]

    빈곤의 대륙서 富 쌓은 비결
    1960년대 국가들 잇단 독립, 외국 자본 빠지며 기회 잡아
    세금 다 내는 등 '정직 경영' 정권 흥망과 상관없이 성장

    아프리카 전역에 자선기부
    돈·식량 대신 병원·학교 "해외 원조라는 수면제에
    아프리카 몇십년간 잠들어… 교육만이 깨울 수 있다"

    '새마을운동' 벤치마킹 나서
    "케냐에서 차관 빌릴 정도로 50년前 한국은 못살았는데…
    '해내야 한다'가 번영 이끌어 아프리카, 이를 배워야 산다"

    
	마누 찬다리아 회장 인터뷰
    7일 첫 인사 때 남루한 행색이었던 마누 회장은 이틀 뒤 GPF 행사장에선 말끔한 나이지리아 전통 의상 차림으로 나타났다. 그는“이날은 사진촬영 등 공식행사가 있어 특별히 옷을 갖춰 입었다”고 했다. 그런 이벤트가 없는 평소엔 몇년이나 됐는지 가늠할 수 없는 철지난 양복과 낡은 구두가 그의 패션이다. / 뉴시스
    마누 찬다리아(84)를 처음 만난 7일 오후. 그때 그는 한국이라면 '새내기 노숙자'로 오해받기 좋은 차림이었다. 색바랜 구두, 철 지난 양복, 명함을 꺼내 보이는 지갑은 금방이라도 찢어질 것처럼 해져 있었다. "13년 전에 산 건데 새거 같죠? 하하." 도저히 자산 수십조원대 글로벌 그룹의 총수라고 믿기 어려운 모습으로 첫인사를 했다.

    그를 만난 건 영국 BBC가 '아프리카의 빌 게이츠'라고 부르는 기업가이기 때문이다. 그는 '아프리카 원조(援助)는 빌 게이츠 같은 선진국 대부호가 아니면 하기 어렵다'는 상식을 깨뜨린 사람이다. 공식 직함은 '콤크라프트 그룹 회장'. 케냐 나이로비에 본사를 두고 전 세계 45개국에서 250개 계열사를 거느린 글로벌 철강·알루미늄·전자제품 제조기업이다. 한 해 매출 4조5000억원. 케냐 국민소득의 8분의 1에 해당하는 금액이다. 마누 회장은 그 부를 바탕으로 아프리카 곳곳에 병원과 학교를 짓고 있다.

    해외 원조의 블랙홀, 빈곤의 대륙이라는 그곳에서 그는 어떻게 거대한 부를 일궜을까. 그렇게 번 돈을 왜 자선사업에 쏟아붓는 것일까. 그와의 인터뷰는 이틀이 지난 9일 오후 나이지리아의 수도 아부자의 한 호텔에서 이뤄졌다. 이곳에서 열린 GPF(Global Peace Foundation·의장 문현진) 행사를 위해 아부자를 찾았다는 그는 한국의 새마을운동을 열성적으로 배우는 것으로도 알려져 있다.

    ◇성공의 열쇠, 가족

    일거리를 찾아 인도에서 케냐로 건너온 찬다리아의 아버지는 철도 건설 노동자였다. 그 돈을 모아 나이로비에 식료품점을 열었고, 없는 살림에도 아들 교육을 위해서 과감히 투자했다. 찬다리아는 "가족 전체를 위한 투자였다"고 말했다. 문맹(文盲) 아버지는 아들을 미국에 유학 보내면서 이렇게 말했다. "'내'가 아니고 '우리'며, '내 것'이 아니고 '우리 것'이다. 모든 건 가족의 것이다." 미국에서 공부하고 돌아와 집안을 일으키라는 주문이었다. 이 말은 이후 찬다리아가(家)의 가훈이자 기업 경영의 원칙이 됐다.

    일가친척을 통틀어 처음으로 대학을 나온 찬다리아는 가족과 똘똘 뭉쳐 사업을 일으켰다. 소규모 알루미늄 제조회사였던 콤크라프트는 영국과 인도에 수출길이 열리며 급성장했다. "원료가 있는 곳에 공장을 세운 콤크라프트는 원료를 수입해 가서 알루미늄을 만드는 경쟁기업보다 우위에 섰습니다. 자국 기업을 우대하는 나이지리아 정책 덕도 봤죠."

    아프리카, 특히 케냐에서는 기업이 성공하면 회사를 잘게 쪼개 가족들이 나눠갖는 것이 일반적이었지만, 찬다리아가는 그 반대로 행동했다. "재산을 나눠주다 보면 결국 가족의 부가 해체됩니다. 잘게 쪼개진 재산으론 할 수 있는 게 없어요." 찬다리아가는 지금까지 단 한 차례 기업 분할도 없이 기업을 일궈왔다.

    ◇"정직이 성공을 이끈다"

    
	케냐의 콤크라프트 그룹
    정직한 경영도 사업을 성공으로 이끈 '열쇠'였다. 금욕과 성실함이 교리인 자이나교(Jainism) 신자인 찬다리아는 철저하게 '합법의 테두리'에서 기업 활동을 했다. 특히 세금 문제에는 철두철미했다. 케냐의 법인세율은 30%로 세계 평균보다 10% 이상 높다. "세금을 다 내면 기업은 남는 게 없다"는 말이 관용구처럼 쓰이는 이곳에서 찬다리아 회장은 적자를 보더라도 모든 세금을 다 냈다. 경쟁 기업이 권력자들로부터 면세 특혜를 받는 동안 묵묵히 법을 지켜나갔다. 찬다리아는 "쉽게 성장할 기회를 잡지 못한다며 '바보' 소리도 들었어요. 하지만 정직한 경영은 권력이 급변하는 상황에서 빛을 발했습니다"라고 말했다. 경쟁 기업들은 권력의 흥망에 따라 하나둘 허망한 최후를 맞았지만, 찬다리아의 콤크라프트는 그와 무관히 차근차근 성장했다. 콤크라프트가 상장된 영국 주식시장에서 "콤크라프트는 정권과 상관없이 성장한다"는 평가를 받았다. 결정적 기회는 1960년대 찾아왔다. 탄자니아 등 아프리카 국가들의 연이은 독립선언이 잇따르자 외국 자본이 썰물 빠지듯 아프리카에서 빠져나갔다. 자본 공백 상태였다. "아프리카 토종 기업에 기회가 열린 거였죠. 놓치지 않고 과감하게 투자했어요. 그때 지금 모습을 거의 다 갖췄습니다."

    ◇무작정 퍼주는 도움은 오히려 독(毒)

    그는 평생에 걸쳐 규모를 알 수 없는 막대한 재산을 기부했다. 1952년부터 '찬다리아 재단'을 설립해 케냐를 중심으로 아프리카 전역에 자선을 베푼 공로로 2006년 영국의 엘리자베스 2세 여왕으로부터 기사 작위를 받기도 했지만, 전체 규모는 한 번도 밝혀진 바 없다. 케냐의 신문 '이스트 아프리카'는 "막대한 액수를 자선 활동에 쓴 것으로 알려졌으나, 얼마를 냈는지는 밝히지 않아 구호단체들조차 알 수 없을 정도"라고 전했다.

    그는 직접 돈이나 식량을 주는 대신 교육에 힘을 쏟는다. "빈부 격차를 줄이는 일에 직접 관여해선 성과를 낼 수 없어요. 사람들이 스스로 일어설 수 있도록 교육의 기회를 주는 정도가 내가 할 수 있는 최선입니다."

    그는 "아프리카란 거대한 거인이 맹목적 원조라는 수면제에 잠들어 있다"고 말했다. "아프리카는 잠들어 있는 거인이라고들 하죠. 그 거인은 몇십년 동안 잠만 자고 있었어요. 곧 깨어난다 깨어난다… 그게 벌써 몇십년이죠. 도움받는 데 익숙해지다 보니까 일어나는 법을 까먹었어요. 가만히 있는데도 헬기가 나타나 음식을 쏟아내고 사라지는 데 익숙해진 결과입니다. 대가로 사진 한 장만 같이 찍으면 끝이거든요. 열심히 일할 필요가 있나요?"

    ◇아프리카에 울리는 '잘살아보세'

    맹목적 원조 대신에 그가 선택한 길은 '교육'이다. 아프리카 곳곳에 학교를 짓고 재능 있는 아이들을 발굴해 장학금도 주고 있다. 하지만 그것만으론 부족하다고 했다. "지금 케냐는 학교뿐 아니라 공동체에서 사회를 변화시킬 수 있는 운동이 필요합니다. 무엇을 해도 그때뿐이라 오래가지 못하고 금세 과거의 일상으로 되돌아갑니다."

    그래서 찾은 게 새마을운동이다. 케냐처럼 식민지배를 받았던 한국이 선진국으로 성장할 수 있었던 이유를 찬다리아는 새마을운동에서 찾았다. "50년 전 케냐는 한국에 차관을 빌려줄 정도로 잘살았지만, 지금은 크게 역전됐습니다. 한국 정부는 사람들에게 '내가 해내야 한다'는 생각을 갖게 만드는 데 성공했어요. 정부가 주도하지만 결국은 사람들이 스스로 깨닫고 일어나게 하는 것. 이 부분이 케냐에서 제일 애먹는 부분입니다." 그는 지난 2010년 10월엔 한국을 찾아 경기도 성남에 있는 새마을운동 중앙연수원에서 단기연수를 받기도 했다. "주민 스스로 변화의 주체가 돼 지속적으로 운동을 추진했던 경험을 분석하고 있어요. 지금은 새마을운동이 했던 마을별 경쟁 프로그램을 케냐 실정에 맞게 바꿔보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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