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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대중 칼럼] '닭그네'와 '고노무'/ 조선일보

鶴山 徐 仁 2013. 10. 1. 23:20

[김대중 칼럼] '닭그네'와 '고노무'

  • 김대중 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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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입력 : 2013.10.01 03:01

    前·現 대통령 증오·조롱하며 사사건건 국론분열하는 한국… 동의나 반대 아닌 서로 '싫다'
    박 대통령의 복지정책 후퇴案… 적대적 양극화 치유를 위한 양보와 타협의 리더십이기를

    
	김대중 고문
    김대중 고문
    지금 대한민국은 하나가 아니다. 둘이고 셋도 된다. 대한민국 국민도 하나가 아니다. 둘로, 셋으로 갈려 서로가 이를 악물고 서로를 증오하고 있다. 그러니 이 나라 정치권이 사사건건 대립하며 원수처럼 으르렁대고 서로 잡아먹을 듯이 기승을 부리고 있는 것은 당연하다. 이쯤 되면 대한민국 국민은 같은 하늘 아래 산다고 말하기도 부끄럽다.

    우리는 지금 어느 한 쟁점에서도 국론을 제대로 모아본 기억이 없다. (어쩌면 전두환 전 대통령의 재산을 환수하는 것에 온 나라가 손뼉 친 것이 유일한 예외일 것이다.) 천안함 폭침 사건부터 그랬다. 서해 북방한계선(NLL) 문제도 날카롭게 대립했다. 국정원의 대선 개입 의혹에서도 견해는 완연히 찬반으로 갈렸다. 고교 한국사 교과서 채택에서 대한민국의 정통성, 정당성 문제에 좌파가 악을 쓰고 나섰다. 채동욱 혼외 아들 문제에서는 사실 여부는 제쳐두고 정치적 음모설까지 등장하며 견해가 대립했다. 마침내 박근혜 정부의 기초노령연금 문제에 이르러서는 국론 분열이 최고조에 달한 느낌이다.

    더 거슬러 올라가서는 제주 해군기지 건설을 둘러싼 좌우 대립이 있었고 한·미 FTA 문제도 극심한 국론 분열의 현장이었다. 밀양 송전탑 문제도 쉽게 사회적 합의를 이끌어낼 수 없었던 대립의 전형적 양상을 보여줬다. 그 밖에도 골목 상권 등 지금 우리는 우리 주변의 먹고사는 문제에서도 끝없이 부딪치며 아파하고 있다.

    우리나라가 전체주의 국가가 아닌 이상, 정치·사회·문화적 이슈에 대해 반대 의견이 있을 수 있고 또 있는 것이 당연하다. 한 사회가 발전하려면 이런 반대와 재론과 협상을 통해 상대방을 이해하고 긍정하는 정반합(正反合) 과정이 필수적이다. 그것이 대칭적 구도 아래서도 권력이 정당화될 수 있는 근거다. 그래서 야당이 있고 반대 세력이 있는 것이다.

    그런데 지금 우리 사회에서 벌어지고 있는 '사사건건 대립과 증오' 현상은 단순한 견해 차이나 의견 대립에서 오는 것이라고 하기에는 그 정도가 너무 심각하다. 그 본질 면에서 어떤 트라우마 같은 것이라고 말할 수밖에 없을 정도다. 거기에는 타협이나 양보의 여지가 전혀 없다. 찬성과 반대의 본질은 '동의한다, 안 한다'에 있는 것이 아니다. '좋다, 나쁘다'도 아니다. 우리의 대립은 한마디로 서로가 '싫다'에서 비롯한 것이다. 엊그제 인터넷에 보도된, 박근혜를 조롱하는 '닭그네'라는 이름의 식당과 노무현을 비하하는 '고노무'라는 이름의 호두과자 이야기는 단순한 패러디 수준을 넘어 서로에 대한 증오의 냄새가 배어 있음을 느끼게 했다.

    어느 학자(신평 경북대 교수)는 그 원인을 역사에서 찾으려고 했다. 식민지 시대의 친일 문제, 해방 후 좌우 대립, 6·25전쟁, 권위주의 시절의 민주화 탄압 등은 그 과정에서 많은 희생자를 냈고 "그것이 양쪽의 대칭 권력화를 만들어 한쪽이 다른 쪽을 증오하게 됐다"고 진단했다. 우리는 광복 이후 오늘에 이르기까지 많은 갈등의 산(山)을 넘어왔다. 그러나 종교적 갈등에 매여 있는 중동을 제외하고는 세계 여러 나라가 지난 반세기 동안 적어도 국내적 차원에서는 갈등 구조를 최소화하며 경제적 생존에 치중하고 있다. 중국이 좋은 예이고 오늘의 일본도 그렇다. 그런 상황에 비해 우리는 경제적 여건이 다소 호전되었음에도 죽고 살기 식(式) 첨예한 대결 구도를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이것은 우리의 분단 구조 때문이다. 우리의 갈등과 증오는 이념의 터 위에서 더욱 잘 자라고 있다.

    이 땅의 지도자라면 이 집단 트라우마를 치유하고 적대적(敵對的) 증오를 삭이는 일을 천착해야 한다. 복지 정책도 좋고 경제 살리기도 좋고 '3만달러'도 좋다. 그보다는 사사건건 대립에 얽매여 있는 우리 국민을 치유하는 일이 무엇보다 시급하고 위중한 시대적 과업이다. 반대자를 만나고 반대 견해를 귀담아듣고 공존을 위해 양보하고 타협하는 리더십 없이는 국민 증오병, 적대적 양극화를 치유할 수 없다.

    원래 권력자에게는 가진 것을 내놓으면 양보가 되지만, 반대자 입장에서는 패배가 되는 법이다. 박근혜 대통령은 지난주 자신이 대선 때 내건 복지 정책에서 일보 후퇴해 기초노령연금에 대한 조정안을 내놓았다. 이것마저 지금으로서는 야당과 반대 세력에 좋은 '먹잇감'을 제공한 셈이 됐지만 길게 봐서 그가 원칙주의자 또는 불통 대통령 이미지에서 탈피할 수 있는 첫 단추를 낀 것으로 치부하고 싶다. 그것이 '박근혜식(式) 융통성'인지는 속단할 수 없지만 우리는 거기서 반대 의견을 듣고 그에 따라 사리를 분간하고 필요하다면 양보하고 타협하는 시대적 요청의 절박함을 읽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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