鶴山의 草幕舍廊房

Faith - Hymn

우리를 친구로 기뻐하시는 주님

鶴山 徐 仁 2013. 9. 27. 15:22


우리를 친구로 기뻐하시는 주님


그리스도께서 십자가에서 우리를 위해 쟁취하신 자유는,
잃어버린 영혼들에게, 또 믿는 자들에게 기쁨의 소식이다
그러나 많은 성도는 그들이 하나님의 자녀로
자질이 못 된다고 생각하고
주님이 의무적으로 자기들을 사랑한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주님은 죄를 짓고, 흠 있는, 불완전한 열두 제자 모두를
부르셨는데 그 이유는 그들과의 친교를 원하셨기 때문이다.
(요15:15)"이제부터는 너희를 종이라 하지 아니하리니, 종은
주인의 하는 것을 알지 못함이라. 너희를 친구라 하였노니,
내가 내 아버지께 들은 것을 다 너희에게 알게 하였음이니라."
-그레이 윌커선의 ‘그분의 은혜로 말미암은 능력’에서-

예수님께서는 아버지 심장 속에 있는 간절한 소망을
그 친구들과 함께 나누기를 원하셨습니다.
그리고 당신이 그분을 따르기로 결정했을 때,
당신께도 이미 그렇게 해 놓으셨습니다.
그러므로 기도로 그분께 나아갈 때나 교회로 걸어 들어갈 때,
"또 너로구나"라는 덤덤한 태도가 아니라 정반대입니다!
그분은 당신과 함께 있기를 원하고,
당신의 친구가 되기를 원하십니다.
왜냐하면, 그분은 당신을 정말로 기뻐하시기 때문입니다.





글쓴이 : 김옥엽 국제펜클럽 회원 순수문학인협회 상임 이사
크리스챤문학상 수상
대한예수교장로회 숭인교회 유병수 담임목사 사모
너희는 세상의 빛이라
산 위의 동네가 숨겨지지 못할 것이요
글쓴이 : 김수영
프랑스 파리와 서울에서 활동하는 프리랜서
내가 이제 일어나리라 - 이사야 33장 7~12절
7 보라 그들의 용사가 밖에서 부르짖으며 평화의 사신들이 슬피 곡하며
8 대로가 황폐하여 행인이 끊어지며 대적이 조약을 파하고 성읍들을 멸시하며 사람을 생각하지 아니하며
9 땅이 슬퍼하고 쇠잔하며 레바논은 부끄러워하고 마르며 사론은 사막과 같고 바산과 갈멜은 나뭇잎을 떨어뜨리는도다
10 여호와께서 이르시되 내가 이제 일어나며 내가 이제 나를 높이며 내가 이제 지극히 높아지리니
11너희가 겨를 잉태하고 짚을 해산할 것이며 너희의 호흡은 불이 되어 너희를 삼킬 것이며
12 민족들은 불에 굽는 횟돌 같겠고 잘라서 불에 사르는 가시나무 같으리로다
<여호와께서 이르시되 내가 이제 일어나며 내가 이제 나를 높이며 내가 이제 지극히 높아지리니>(10절).
이제 하나님이 일어나셔서 자신을 지극히 높이시겠다고 하십니다. 배 고물에서 주무시던 주님이 <선생님이여 우리가 죽게 된 것을 돌보지 아니하시나이까?> 하며 부르짖는 제자들의 호소에 즉각 일어나 바다와 바람을 꾸짖으시며 풍랑을 평정하셨습니다. 그때 제자들이 심히 두려워 하며 <서로 말하되 그가 누구이기에 바람과 바다도 순종하는가 하였더라>(마 4:41)고 했습니다. 하나님은 어느 때고 일어나시면 즉각 상황을 종료하십니다. 권능을 행하시므로 자신의 존재감을 드러내시고 또 영광을 높이십니다.

땅이 슬퍼하고 쇠잔하리라
<땅이 슬퍼하고 쇠잔하며 레바논은 부끄러워하고 마르며 사론은 사막과 같고 바산과 갈멜은 나뭇잎을 떨어뜨리는도다>(9절).
지금까지는 땅이 그 소산으로 인해 기뻐하며 보람을 느꼈지만 이제는 하나님 백성의 원수들인 앗수르가 모든 소산을 다 먹어치우거나 짓밟아 버리므로 슬퍼하고 쇠잔하여 시름시름 앓고 있다고 합니다. 이렇듯 땅은 항상 인간의 운명과 그 괘를 같이 합니다. <피조물이 다 이제까지 함께 탄식하며 함께 고통을 겪고 있는 것을 우리가 아느니라>(롬 8:22). 인간이 범죄하면 땅도 함께 타락하고 인간이 회복되면 땅도 다시 회복됩니다. 그래서 피조물의 바라는 바는 <썩어짐의 종노릇하는 데서 해방되어 하나님의 자녀들이 영광에 이르는 것>(롬 8:21)이라고 합니다. 지금 유다의 땅들도 그렇게 침략자들과 약탈자들의 손아귀에서 해방되어 자유하기를 바라고 있다는 것입니다. 오죽하면 백향목으로 유명한 레바논, 장미로 유명한 사론, 가축으로 유명한 바산 마저 다 부끄러워하고 낙심천만하여 나뭇잎만 떨어뜨린다고 했겠습니까?

민족들이 불에 타는 가시나무 같으리라
<민족들이 불에 굽는 횟돌 같겠고 잘라서 불에 사르는 가시나무 같으리로다>(12절).
실제 앗수르 군대는 그렇게 멸망했습니다. 그것은 잘 말려 둔 가시나무가 타는 것과도 같았고 큰 공사에 쓰기 위해 횟돌을 굽는 것과도 같았습니다. 그리고 앗수르 군대를 태우고 횟돌처럼 구운 그 불은 다시 세상에 하나님의 능력을 과시하며 그의 이름을 빛나게 했습니다. 온 세상이 앗수르 군대의 멸망을 보고 대경실색 했고 유다 백성 또한 그랬습니다. 자신들이 은밀하게 섬겨온 우상이 결국은 하나님을 진노케 했다는 사실을 잘 알고 있었기에 더욱 두려워한 것입니다. 하나님은 삼키는 불, 소멸하시는 불(히 12:29)이십니다. 그래서 다윗조차도 하나님의 심판 앞에서 두려워 떨었습니다(시 119:120). 누가 감히 하나님 앞에 설 수 있겠습니까?(삼상 6:20) 하나님의 진노는 스스로 그 불의 땔감을 자초한 자들을 영원히 태워버리실 것입니다. 그 불은 결코 끌 수 없는 불, 저절로 꺼지는 법이 없는 심판의 불입니다. 영원하신 하나님의 진노이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이 사실을 깊이 깨닫고 다가올 진노에 대비해 그리스도께로 피해야 겠습니다. <그가 너를 그의 깃으로 덮으시리니 네가 그의 날개 아래에 피하리이다>(시 91:4).
글쓴이 : 조성노 독일 본(Bonn) 대학교 신학부 졸업
뮌헨(Muenchen) 대학교 신학부 졸업
장로회신학대학교 조직신학 교수 역임
푸른교회(분당 소재) 담임목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