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에서는 범죄자들도 질서를 잘 지키고 예의바르다”(Even Japanese criminals are orderly and well-behaved)《The Economist 2013년 2월23일字》〉
영국의 교도소는 종종 더럽고 시끄럽고 폭력이 난무하기도 하나 일본교도소의 복도나 감방은 汚點(오점) 하나 없이 깨끗하다. 일본의 죄수들은 식사시간 외에는 대화가 금지되어 있지만 죄수들은 이런 규칙에 순종적이다. 2차 大戰이후로 교도소 폭동이나 亂動이 일어난 적이 없다. 탈옥도 거의 없다. 마약도 물자 밀반입도 없다. 일본의 인구대비 교도소 수감인구는 대부분의 선진국 보다 낮다: 인구 10만 명 당 수감자 수는 일본이 55명인 데 반해 영국은 149명이고 미국은 무려 716명이다. 재범율도 대단히 낮다. 죄수 對比(대비) 교도관의 수는 영국의 절반에 불과하고 죄수들의 직원에 대한 폭력적 공격도 거의 없다.
범법자에 대한 엄격한 법적용과 가혹할 만큼 고된 受刑(수형) 생활이 이러한 결과를 가져오는 데 一助(일조) 했을 것이다. 일본 교도소에서는 죄수들의 독방감금이 보편화되어 있고 무임금 勞役(노역)은 선택이 아니고 필수이며 집단 이동시에는 발소리도 내지 않고 걸어야 한다. 일본에서는 아직도 死刑(사형)이 집행되고 있으며 지난 2월에도 살인범 3명이 처형되었다. 保釋(보석)도 거의 없고 終身囚(종신수)는 중간사면이 없어서 문자 그대로 종신수이다.
일본은 교도소는 물론이고 거리에든 산이든 강이든 바다이든 버려진 쓰레기를 거의 볼 수 없다. 일본은 강이든 산이든 바다이든 티 하나 없이 깨끗하다. 필자는 일본에 갈 때 마다 관심을 가지고 살펴보았지만 삿포로(札幌)든 東京이든 후쿠오카(福岡)이든 거리에서 휴지조각 하나 본적이 없다. 不法 주차한 것도 본적이 없다. 자동차 경적을 들은 적이 없다. 불법추월도 없다. 식당에서 큰 소리로 떠드는 사람도 본 적이 없다. 일본 국민은 “남에게 폐를 끼치지 말자”라는 말을 날 때부터 죽을 때 까지 귀가 따갑도록 듣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아마도 이런 투철한 公民精神(공민정신, civil spirit) 교육이 “범죄자도 질서를 잘 지키고 예의 바른” 국민을 양성하고 있는 것 같다.
일본인들의 이러한 놀라운 질서의식이 全세계를 놀라게 할 만큼 드러난 것은 2011년 후쿠시마(福島) 원전 폭발사고 때이다. 원전사고와 쓰나미로 인해 생필품이 떨어진 주민들이 줄을 서서 질서정연하게 주인 없는 가게에 들어가서 필요한 만큼만 물건을 들고 나왔다는 것이다. 약탈에도 질서를 유지했다는 것이다. 세계 최고의 시민정신을 자랑하는 영국인들도 놀라서 일본 사람들을 호모 사피엔스에서 新人類(신인류)로 진화한 인간일지도 모른다고 평했다. 일본인 자신들도 “도의적 인간”을 지향한다고 말한다. 그래서인지 일본인은 중국과 한국을 제외하고서는 세계 어느 나라에서도 호감도가 가장 높다. ‘공중도덕심이 뛰어나고 친절한 일본인’, 이것이 세계인들 눈에 비친 일본인의 이미지이다.
한국은 지난 반세기동안 이룩한 눈부신 경제발전으로 全세계에서 칭찬을 받고 있다. <이코노미스트>나 <타임>誌같은 세계 유수의 신문은 물론 세계적인 경제학자나 정치지도자들이 한국의 경제발전에 찬사를 아끼지 않는다
〈구매력평가(PPP) 기준 국민소득은 3만 1800달러로 유럽의 선진국 이탈리아(3만 200달러)보다 많고 3먼 4400달러인 일본에 근접해 간다. 경제뿐 아니라 한국 민주화는 세계적인 모범사례이다.《The Economist 2012년 2월18일字》〉
그러나 삶의 질(quality of life)을 결정하는 중요한 요소 중의 하나인 市民정신을 기준으로 한국을 칭찬한 예는 본적도 없고 들은 적도 없다.
서울, 부산, 광주, 제주 등 한국 도시의 거리는 불결하기 짝이 없고 한국인의 발길이 닿는 곳은 거의 예외 없이 쓰레기로 덮인다(아침 청소前의 해운대 해수욕장은 쓰레기 투기장을 방불케 한다). 사람의 왕래가 많은 人道(인도)는 씹어서 버린 껌이 다닥다닥 붙어 있는 데다 오토바이가 인도에서 수시로 질주하며 행인을 위협한다. 불법주차나 신호위반이나 불법추월도 다반사이다. 이것은 아직 성숙에 이르지 못한 한국인의 시민정신 때문일 것이다. 그래서인지 한국인에 대한 세계인의 호감도는 중간 이하에 머물고 있다.
인간事에서 强者(강자)는 弱者(약자)에 대해 우월감을 가지게 되고 이것은 오만으로 발전하기 쉽다. 그래서 강자는 대부분 약자를 깔보게 된다. 심지어 강자는 약자의 아픈 곳을 찌르기도 하며 약자의 고통을 즐기기도 한다. 文明국가의 바탕을 이루는 市民정신의 성취도에서 한국인보다 상대적으로 우월한 지위에 있는 일본인들이 한국인을 오만한 시각으로 바라보게 되는 것 같다. 한국인을 깔보며 한국인의 약점과 분노를 즐기는 것 같다. 적어도 마음속으로는 그럴 것이다.
일본의 어느 장관이 公席(공석)에서 “한국인은 民度(민도)가 낮다”는 妄言(망언)을 터뜨린 것도 한국인을 깔보는 일본인들의 속내를 불시에 드러낸 것일 것이다. 한국인의 ‘영혼의 상처’에 틈만 나면 소금을 뿌리며 한국인들의 분노를 자아내는 일본인들.
한국의 거리나 山河(산하)가 일본보다 더 깨끗하거나 적어도 일본만큼 깨끗해지지 않는다면, 한국사회의 부패지수가 일본만큼 낮거나 일본보다 더 낮아지지 않는 한, 한국을 향한 일본인들의 오만은 사라지지 않을 것이다. 오만에 基因(기인)하는 망언도 사라지지 않을 것이다. 한국의 대학 진학율이 100%가 되어도 사라지지 않을 것이다. 일본은, 영국이나 독일 같은 강대국은 물론 스위스나 덴마크 같은 小國에 대해서도 민도가 낮다는 말을 하지 않는다. 할 수가 없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