鶴山의 草幕舍廊房

Free Opinion

김진홍의 아침묵상

鶴山 徐 仁 2013. 8. 21. 08: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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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 살아야 하는가?(1)

2013-8-19

여러 해 전 일본의 명문 사학인 게이오대학(慶應義塾大学)총장이 한국에 와서 남산 기슭에 있는 하이야트호텔에서 특강을 한 적이 있다. 특강 주제가 ‘선진산업국가에서의 고등교육’이란 제목이었다. 그 선진산업국가들 중에는 한국 역시 포함된 터였다. 강의 서두에서 강사는 선진산업국가들이 고등교육에 실패하고 있는 이유를 세 가지로 들었다.

첫째는 젊은이들에게 삶의 의미를 가르치지 못한 이유이다.

둘째는 젊은이들에게 국가건설(Nation Building)에 대한 사명감(Mission Mind)을 심어주지 못한 이유이다.

셋째는 젊은이들에게 조상 때에 겪은 고난을 몸으로 익히게 하지 못한 이유이다.

세 항목 모두가 깊이 공감이 가는 내용이었다. 첫 번째 항목인 교육이 삶의 의미를 가르치지 못한 점에 대하여 생각해 보자. 인간은 본질적으로 의미를 추구하는 존재이다. 그러기에 최고의 지식과 기술을 가르쳤어도 삶의 의미를 가르치지 못한다면 그 지식과 기술이 자신을 행복하게 하지 못한다. 반면에 아무리 고통스럽고 힘든 나날을 살았어도 삶의 의미를 깨닫게 한다면 그 교육은 그것만으로도 이미 성공한 교육이 된다. 심리학자였던 빅터 프랭클 박사는 유대인으로 히틀러의 나치수용소를 경험한 분이었다.

그가 나치수용소에서의 생활을 생생하게 쓴 수기인 <죽음의 수용소에서>란 책은 이미 고전에 해당하는 명저이다. 그 중에서 프랭클 박사는 쓰고 있다. 수용소에 들어온 재소자들 중에 체력이 뛰어나고, 재능이 탁월하며, 수완이 민첩한 사람들을 보며 ‘다른 사람들은 다 죽어나가도 저 사람들은 마지막까지 살아남겠구나’하고 생각하였다.

그러나 그런 사람들은 쉽사리 허물어지게 되고 마지막 까지 살아남은 사람들은 다른 부류의 사람이었다. 비록 연약하여 보여도 삶의 의미를 깨달아 산 사람들이 살아남았고, 자신들이 당하는 고난에 깃들인 의미를 깨달아 사는 사람들이 끝까지 견디어 내었다고 하였다.

왜 살아야 하는 지, 왜 고난을 견디어야 하는지, 왜 땀 흘려 수고를 하여야 하는지 그 이유를 바로 가르치고 바로 배우는 것이 참된 교육의 첫 번째가 되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