鶴山의 草幕舍廊房

Free Opinion

[넷향기] 박영택 교수의 "여주경작가의 무제

鶴山 徐 仁 2013. 7. 2. 11:22
눈물과 감동의 서비스 -다카시마야 백화점
홍하상

안녕하세요. 홍하상입니다.
다카지마야(高島屋)백화점은 1831년에 창업, 2010년 8천777억엔의 매출에 9천300명의 종업원을 가진 일본 최고의 백화점이다.
< 물건이 좋고 나쁜지를 미리 고객에게 알리고 판매하라>
< 손님을 빈부귀천에 따라 차별하지 마라>
다카지마야 백화점 창업주였던 이다신치(飮田新七)가 후손들에게 당부한 말이다.
흠이 있는 물건을 임시방편으로 속여서 팔지 말고 정직하게 물건을 팔라는 것과 옷 입은 행색에 의해 손님을 차별하지 말라는 뜻이다. 오늘날 다카지마야 백화점 경영의 시금석처럼 되어 있는 이 말은 다카지마야의 판매원뿐만 아니라 일본의 모든 상인에게 금과옥조처럼 새겨진 말이다. 다카지마야는 본래 미곡상으로 1831년 10월1일 교토에서 창업했다. 다카지마야가 출발에서부터 170년, 백화점으로 약 80년간 일본 최고 백화점으로서 성공을 거둔 비결은 무엇일까.
그것은 단 두 가지의 원칙 <정직하게 물건을 판다>, <신분에 따라 고객을 차별하지 않는다>는 것이었다.
그런 신뢰 덕분에 오늘날 일본인들은 다카지마야에서 산 물건이라면 일단 믿는다. 바로 그 신뢰를 쌓는데 170년이 걸렸고, 신뢰 지속을 위해 지금도 노력하고 있다.

포도 한 송이 사건
다카지마야 백화점에 이런 일이 있었다.
86년 3월 초순의 어느 날, 남루한 복장의 40대 초반의 여인이 다카지마야 지하식품부에 들어왔다.
그녀는 포도 두 송이가 놓인 식품코너 앞에 서더니 한없이 울기 시작했다.
지하 식품 부 여직원은 포도 앞에 울고 있는 아주머니가 이상해서 다가갔다.
그리고는 왜 우시냐고 물었다.
여인이 말하기를 저 포도를 사고 싶은데 돈이 2천엔 밖에 없어서 살수가 없어서 운다는 것이다.
그 포도 두 송이의 값은 무려 2만엔이었던 것이다.
여직원은 잠시 고민했다.
포도 한송이의 가격은 1만엔이다.그런데 고객은 2천엔밖에 없다.
고객은 뭔가 사연이 있는 것 같은데 차마 물어볼 수는 없었다.
잠시 후 그는 가위를 가져와 2천엔 어치를 잘라서 포장지에 곱게 싸서 여인에게 팔았다.
그 여인은 포도송이 2천엔 어치를 사서는 나는 듯이 사라졌다.
그리고 그 두달 후 5월14일자 일본의 마이니치 신문에는 이러한 독자투고기사가 실렸다.
< 우리에게 신만큼 이나 큰 용기를 준 다카시마야 식품부 여직원에게 정말 감사드린다. 내가 치료하던 11세의 여자아이는 비록 죽었으나 마지막 소원인 포도를 먹었다.
그 여자아이는 백혈병 환자로서 더 이상 치료해봤자 회생의 여지는 없었다. 그러나 마지막으로 포도를 먹고 싶다는 아이의 소원을 어머니는 너무 가난해서 들어줄 수 없었다.
그런데 그 소원을 다카시마야 여직원이 들어준 것이다.>
기사의 내용은 도쿄의 변두리 단칸방에 살던 두 모녀가 있었는데 11세된 딸이 백혈병으로 죽어가고 있었고, 마지막 소원이 포도가 먹고 싶다는 것이었다.
어머니는 포도를 사기 위해 백방으로 뛰었다.
그러나 때는 3월, 아직 냉장기술이 발달하지 않았던 때로 어디에도 포도는 없었다.
어머니가 마지막에 포도를 발견한 곳은 일본 최고의 백화점인 다카지마야 백화점 식품부였다.
그러나 어머니의 전 재산은 2천엔. 포도는 두 송이에 2만엔이었던 것이다.
어머니는 딸의 마지막 소원을 들어주고 싶었으나 가진 돈이 없어 하염없이 울고 서 있었던 것이다.
그런데 백화점 식품부 여직원이 그 모습을 보고 가위를 가져와 과감하게 포도를 잘라 판 것이다.
포도송이는 2천엔 어치를 잘라내면 상품으로서의 가치가 사라진다.
그런데도 그 여직원은 손님을 차별하지 않는다.
고객의 요구는 최대한 들어주라는 백화점의 방침에 따라 과감하게 잘라서 판 것이다.
이 사건은 자칫하면 그냥 묻혀버릴 수 있었으나 어린아이의 백혈병 치료를 담당하던 의사가 그 사연을 신문의 독자란에 투고 하므로서 세상에 알려지게 되었다.
그 기사를 읽은 1천만명의 도쿄 시민들은 펑펑 울었다고 한다.
이 일로 인해 다카지마야 백화점의 명성은 하루 아침에 일본 최고의 백화점임이 다시 한번 입증되었다.
백화점 측이 손해를 감수하면서까지 진정으로 고객을 위한다는 것이 확인되었기 때문이다.

오늘날 다카시마야는 그 포도 한 송이의 서비스 정신을 판매 매뉴얼에 넣고 사원교육을 실시하고 있다.
바로 그러한 정신을 잊지 않기 위해서이다.
그리고 그 일 있고난 후 <로즈클럽>이라는 것을 만들었다.
다카지마야 백화점의 상징은 로즈, 즉 장미인데 그 때의 그 서비스의 감동을 체계적으로 만들 필요가 있다고 판단했기 때문이다. 오늘날 <로즈클럽>에서는 고객이 어떠한 문의를 해와도 거기에 맞는 서비스를 제공해준다.
다카지마야의 해결사 팀인 것이다.
다카지마야의 사훈은 <우리의 목표는 친절>이다.
그 말이 결코 구호가 아니라는 것을 그들은 보여준다.
< 손님을 빈부에 따라 차별하지 마라>
초대 창업주인 이다신치의 유언처럼 다카지마야는 손님 한 사람 한 사람을 소중히 여기는 상징적인 일화로 백화점은 여전히 일본최고의 백화점으로 인정받고 있다.

 

 

활 만드는 사람(矢人)과 방패 만드는 사람(函人)
박재희

안녕하십니까?   박재희입니다.
사람은 생긴 대로 노는 것이 아니라 노는 대로 생긴다고 한다.
어디서 누구와 무엇을 하며 사느냐에 따라 사람의 얼굴 모습이 바뀐다는 뜻이다.
예수를 닮은 어린아이가 나이가 들어 악마를 닮은 모습으로 변했다면 그의 삶이 그의 얼굴을 그렇게 만든 것이다.
내가 살아가는 하루하루 일상과 내가 생각하는 순간순간 마음이 결국 지금의 나의 얼굴을 만들어낸다고 하는 것은 너무나 당연한 일이다.
그래서 이왕이면 좋은 사람을 만나야 하고, 좋은 일을 하며 좋은 마음을 먹고 살아야 한다.

특히 사업가는 세상에 이로운 결과를 가져오는 물건을 만들고 팔아야 한다.
고객을 위한다는 마음으로 정성을 다하여 물건을 만들고 팔면 그의 얼굴은 더욱 빛이 나고 그의 회사는 날로 명성이 높아질 수밖에 없다.
반면 오로지 이익을 취하기 위하여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는다고 생각하면 얼굴은 어느덧 장사치의 모습으로 변하여 아무리 좋은 옷을 걸치고 치장을 해도 빛이 바랠 수밖에 없다.
칼을 만들며 상대방을 어떻게 하면 잘 찌를까를 고민하는 사람보다는 방패를 만들며 어떻게 하면 이 방패를 든 사람을 잘 보호할까를 고민하는 사람이 되어야 한다.
맹자(孟子)는 이런 업(業)의 선택이야말로 인간이 신중히 결정해야 할 일이라고 강조하고 있다.
‘활(矢)을 만드는 사람이 방패(函)를 만드는 사람보다 착하지 못한 것은 아니다(矢人豈不仁於函人哉).
그러나 화살을 만드는 사람은 어떻게 하면 그가 만든 화살이 사람을 상처 나게 할 수 있을까를 고민한다(矢人惟恐不傷人).
반면 방패를 만드는 사람은 어떻게 하면 사람을 잘 보호할 수 있을까를 고민한다(函人惟恐傷人).’
극단적인 비교이기는 하지만 직업선택에 대한 맹자의 생각을 정확히 읽을 수 있는 구절이다
화살을 만드는 장인과 방패를 만드는 장인의 인간성은 태어날 때 똑같이 하늘에게 착한 본성을 받았는데 평소에 하는 일이 그들의 생각과 마음을 바꿀 수 있다는 것이다. 맹자의 성선설을 설명하는 중요한 단서다.
‘인간은 태어날 때부터 인의예지(仁義禮智)의 착한 본성을 가지고 태어났다. 남의 불행을 차마 두고 보지 못하는 측은지심(惻隱之心)은 인간에게 인(仁)이 있다는 증거다.
옳지 못한 것을 부끄러워 할 줄 아는 수오지심(羞惡之心)은 인간에게 의(義)가 있다는 증거다.
좋은 것을 남에게 먼저 사양할 줄 아는 사양지심(辭讓之心)은 인간에게 예(禮)가 있다는 증거다.
옳고 그른 것을 정확히 가릴 줄 아는 시비지심(是非之心)은 인간에게 지(智)가 있다는 증거다.

그런데 이런 착한 성품을 가지고 태어난 인간이 악한 마음과 얼굴을 갖게 되는 것은 무슨 이유인가?
그가 평소에 생각하고 마음 쓰는 것이 그의 얼굴을 악하게 만들고 그의 마음을 상처 나게 한 것이다.’  
업(業)은 사람의 인생을 결정짓는 중요한 요소다. 그래서 악업(惡業)보다는 선업(善業)을 쌓아야 한다.
활 만드는 사람보다 방패 만드는 사람이 되라고 강조하는 맹자는 이렇게 결론을 내린다.
‘술불가불신야(術不可不愼也)라! 직업術)을 선택할 때는 삼가지 않을 수 없는 것이다.’
현대사회에서 직업은 수 만 가지라고 한다. 직업마다 있어야할 이유가 있기에 그토록 많은 직업이 생겼을 것이다.
그러나 직업을 선택할 때 신중하지 않을 수 없는 것은 그 직업이 자신의 본성과 성격을 바꾸게 하는 것은 물론 사회에 영향을 줄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오로지 돈과 자리에 기준하여 직업을 선택해서도 안 된다.
이익과 성과에만 집착하여 사업을 해서도 안 된다.
지금은 당장 이익과 성과가 있겠지만 그 이익은 영원할 수 없다.
기본으로 돌아가 과연 내가 하고 있는 일이 얼마나 세상을 이롭게 할 수 있는 일인가(弘益人間)를 고민해야 한다.
잠깐 있다가 살아지려면 막 살아도 괜찮다.
그러나 오래가려면 생각해 보아야 할 문제가 너무나 많다.
진리의 심연(深淵)에서 나와 내가 하는 일을 냉철하게 돌아보아야 한다.
감사합니다. 박재희 였습니다.

 

 

리더가 중요하다.
표영호

어딜가나 리더가 꼭 있습니다.
리더는 크고 작고의 관계없이 정말 중요합니다.
저는 MBC 무한도전이라는 프로그램을 끝으로 예능 프로그램을 그만하게 되었습니다. 왜냐하면 무한도전이 몸으로 때우는 예능이다 보니까 제가 몸으로 때우는 것을 너무 못하는 거예요. 그래서 무한도전을 그만두고 '또 다른 새로운 인생에 도전해 보자'라고 해서 장사를 시작했습니다. 홍대에 북카페도 차렸었고 강남에 고기집도 크게 차렸었고 매운 닭발을 파는 소주집도 차렸었습니다.
그런데 이 세개가 다 망했습니다.
왜 망했을까를 고민해보니까 여러가지의 이유가 있겠지만 리더십부재가 아니었나하는 생각이 듭니다.
제가 장사를 하면서 혼자서 도맡아할수 없으니까 변방에서 하고 싶은 방송, 잘할수 있는 토킹방송들을 꾸준히 몇개를 하고 있었습니다. 그러다 보니까 가계에 매진할수 있는 좋은 후배를 사장으로 앉히고 그 후배와 계속 커뮤니케이션을 하면서 끌고 나가려고 했는데 어느 날 보니까 이 친구가 PC방에서 소통하고 있는 거예요. 그 사실을 제가 나중에야 알았습니다.

제가 그 친구를 많이 원망했고 가계가 기울어져 가는데도 이 친구는 계속 PC방에만 매달려 있어서 정말 화가 나서 때려주고 싶었었어요. 그런데 그렇게 얄밉다고 생각된 그 친구가 어느 날 제가 이런 생각이 들었습니다.
'내가 저 후배 하나를 리드하지 못하면서 내가 과연 무엇을 할수 있을까?'라는 반성을 하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어느 날 그 친구를 보는데 미웠던 얼굴이 밉게 안보이는 거예요.
내 잘못이라는 생각이 드니까 오히려 그 친구가 저한테 희생당했다는 느낌이 들고 반대로 이 친구가 오죽하면 PC방에 가서 놀구 있을까? 이건 내 잘못이다라는 생각이 들면서 스스로 반성을 하기 시작했어요.
그래서 한때는 장사가 망했을때 그 친구를 원망했지만 지금은 전혀 원망하지 않고 내가 문제였다고 생각합니다.
내가 잘 리더십을 발휘했다면 그 친구는 PC방에 빠지지도 않았을 거고 가계에 찾아오는 손님들이 꼬리에 꼬리를 물고 늘어져서 피드라드처럼 손님이 손님을 끌고 오는 것처럼 이렇게 더 성장하는 가계가 되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이 듭니다.
돼지는 아무리 깨끗한 곳이라도 금방 우리를 더럽힌다는 말이 있습니다.
그리고 연꽃은 아무리 더러운 물이라도 반드시 그곳에서 아름다운 꽃을 피웁니다.
그래서 내가 지금 하고 있는 일, 직장에 대해서 불평, 불만을 갖기 보다는 뭔가 내가 더 할수 있는 어떤게 있을까를 찾아가는 것이 리더십이고 리더가 해야 될 덕목이라고 생각합니다.
내가 같이 일하는 사람때문에 이게 안되고 있어 하는 불만보다는 이 사람이 그 일을 잘 할수 있도록 운전을 하는 것이 리더가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인생은 왜 이렇게 꼭 실패를 통해서 배우는 걸까요?
여러분은 실패하지 않는 인생이 되시길 바랍니다.

 

 

 

사회공헌을 습관화하자
이영권

우리가 보기에는 부자들이 많은 일을 해야 할것 같은데 수십년동안 떡볶이나 김밥을 파신 분들이나 열심히 청소를 해서 모은 돈을 가지고 조용히 남을 위해서 두고 가시는 분들을 보면 사실 저 같은 사람도 많이 부끄럽습니다.
제가 늘 제자들한테 얘기하는 데 저는 참 다행스러운 것이 제가 32년쯤 미국에서 처음 공부하면서 미국사회를 알때 우연치 않게 TV에서 월드비전이라는 사회공헌하는 기업의 PR을 보게 되었습니다. 아프리카에 있는 어린아이들을 도와주는 곳인데 그 당시에 1달라, 2달라만 내더라도 아이들에게 상당히 많은 것들이 보태져서 지구에 조금이라도 도움을 줄수 있다는 것을 우리나라에서는 거의 생각하지 못할때 30년전에 미국이라는 사회가 주변에 보면 거의 다 조그만 돈이라도 후원하는 것을 보면서 '굉장히 좋은 것이구나. 나도 해봐야겠다'라고 생각해서 그 당시에 많은 돈은 아니지만 10여달라씩 매달 시작을 해봤습니다.
참 보람있었던 것이 아프리카에서 제 돈을 받은 친구들이 편지를 쓴 것을 모아서 그 기구에서 후원자들에게 1년에 한번씩 사진도 보내주고 손때묻은 편지같은 것이 올때 몹시 기분이 좋았습니다. 제가 그때부터 지금까지 30여년동안 한번도 빠짐없이 제가 버는 돈의 일정부분에 대한 것을 사회에 환원하려고 직간접적으로 해왔다고 자부합니다.
다만 중요한 것은 예수그리스도나 이런 분들이 말씀하신 것처럼 왼손이 한 일을 오른손이 모르게 할정도로 소중하게 해야 하기때문에 나름대로 사람들에게 발표는 안하지만 그래도 저들보다 훨씬 어려운 상황속에서 사회공헌하시는 분들을 보면 너무 감사하게 생각합니다.

오늘 제가 여러분들께 제안하고자 하는 것은 이런 것입니다.
나중에 돈을 벌고 큰 것을 얻은 다음에 남에게 나눠주자는 생각 이전에 작은 것이라도 오늘 당장 실천해주십사하고 제안드립니다. 재능을 기부하거나 재물을 기부하거나 사회공헌하는 일은 대단히 소중한 일입니다.
재능기부를 하시는 분들을 봐도 가슴이 뭉클한 분들이 많습니다.
고아원이나 양로원을 다니시면서 미용사나 이용사분들이 이발을 해주시거나 목욕을 시켜드린다거나 하는 재능 또는 육체적인 사회공헌 그리고 이제 돈을 버시는 분들은 일정부분에 대한 것을 어려운 사람들을 위해서 써주십사하고 부탁드리려고 합니다. 재능기부, 육체적기부, 물질적 기부는 습관적으로 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대부분 내가 더 많은 것을 가진 다음에 해야지 한다면 한번도 해보지 못하고 우리가 일생을 마감할 가능성이 아주 높습니다. 요즘에 우리나라에서도 이런 시설들이 잘되어 있어서 한달에 1만원씩 보내도 될수 있는 곳이 아주 많습니다.
중요한 것은 우리 스스로가 이런 곳에 대해서 관심을 얼마나 가지고 있느냐, 이런 곳에 대해서 조금이라도 실천하겠다는 의지가 있느냐 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당장 인터넷에 접속하시거나 114에 물어보시면 한달에 5천원이나 만원을 보내도 박수치면서 받아주는 장소가 참 많습니다. 그리고 만약에 재난이나 이런일이 일어나서 TV에 문자보내는 것이 있다면 보는 순간 한번씩이라도 눌러주는 노력을 우리 다같이 하시기를 바라겠습니다. 이렇게 사회공헌에 대한 것들이 습관화될때 그 사회는 보다 선진국이 되고 아름다운 사회가 되면서 그게 바로 우리 아이들과 자손들에게 사회적인 큰 혜택이 되어서 돌아갈 가능성을 인지하시길 바라겠습니다.

 
우리나라의 글로벌정신의 인물 ②
이현정

백제의 근간을 형성시킨 고대백제의 근초고왕이 있다.
그는 백마강 유역을 외국과의 해상무역의 출발점으로 만들어 활발한 대외활동을 시작하였다.  시기는 어찌 보면 혜초스님보다, 장보고보다도 더 빠른 4세기~6세기에 이미 해외무역항로의 터전을 만든 왕이다.  백제의 전성기를 이룬 것은 물론이고, 백제라는 국가체제를 갖춘 시기이다.
당시 말로는 백마강을 구드래항이라고 했는데, 이 구드래항에서 일본으로 중국으로 해외무역을 했을 뿐만 아니라 백제는 인도까지도 진출했던 해양강국이라는 것은 실로 놀라운 세계인적 사고방식이다.
이로 인해 일본의 문화를 만든 계기가 되고 문화의 전파구실을 해왔다는 증거다.
우리역사의 대륙성과 해양성을 여실히 보여주는 것이며 이로써 우리역사의 본모습은 위로는 광활한 대륙성과 아래로는 해양성이라는 것이다. 결코 갇혀있는 반도국이 아니다. 우리역사의 무대가 넓은 대륙이었다. 해양성이라면 우리선조가 넓은 해양을 개척해가면서 우리의 광역으로 만들었다. 우리의 세계화 정신이 워낙 깃들어 있었다는 것에 듣기만 해도 자부심이 생기고 놀랍다.

그리고 가장 많이 알려진 인물. 고려 왕건이 있다.
코리아 라고 부르는 이름이 고려 때부터 비롯되었듯이 대외적으로 상당히 개방적이고 진취적인 나라였다. 해상왕국답게 막강한 해상세력을 상징하는 군함도 80명이 승선할 수 있는 것이었으며 속도 4.5미터의 위용을 자랑했다. 국제무역항 벽란도는 수도 개경에서 30여 미터 떨어진 곳에 있어 주변국가. 동남아시아. 중앙아시아를 넘나드는 동양의 용광로 역할을 했다. 역동적이고 활기찬 시대였다.
특히 왕건시대의 개성은 국제무역도시로 너무나 유명해졌는데, 이때 이주민인구비율이 전체인구의 11%였다.
지금 2013년 현재 이주민인구비율이 전 국민의 2.6% 남짓 되고 있는데 지금 다문화라고 난리이지 않는가.
11%라는 비율의 감도가 어느 정도냐면, 지금 전 국민의 딱 11%가 해외이민으로 나간 우리의 동포숫자이다.
5000만 인구 중에 800만이 해외이민으로 나간 숫자이다. 어마어마한 비율이다.

또한 고려시대 최고의 협상전문가 서희를 소개하고 싶다.
80만 대군을 이끌고 쳐들어오겠다는 거란의 위협에 대해 당당히 적장, 거란 쪽으로 들어가 협상을 하고 전쟁을 막았을 뿐만 아니라 압록강 쪽의 강동 6주를 쌓아 요새를 만들어 강력 대비까지 하였다. 그는 협상의 전문가뿐만 아니라 국가적 비전과 사회적 합의 등이 있었고 당시의 글로벌인식, 세계정세 등에 폭과 시야가 넓지 않으면 이루어낼 수 없는 일이다.
나를 위해. 사회를 위해, 국가를 위해 편협하지 않는 균형 감각이 필요한 것이다. 지금 바로 이러한 자세가 중요하다.

그리고 세종대왕이다. 당시 황제의 나라 형님의 나라 명나라의 모든 것에 빌붙어 살아야 할 때에 독자적으로 우리문화의 모든 것을 챙기신 분이다.  각 분야에서 문화르네상스. 문화대혁명을 일으킨 분이 세종대왕이다. 조선을 업그레이드시킨 분이다.  신분제도가 막강했던 시대에 인재를 발탁하는 데에 있어서는 노비출신도 마다하지 않았다.   농업. 과학. 기술. 문자. 학문. 음악. 등 이 모든 것들을 자기의 업적을 위해서가 아니라 사리사욕을 위해서도 아니라 백성의 삶을 진작시키기 위한 따뜻한 마음이었다.
감사합니다.

 

 

변종이 됩시다.
최윤규

어느 날 하느님께서 노아에게 이렇게 말씀했습니다.
"이제 홍수가 날 거니까 너는 방주를 만들어라" 그 얘기를 듣고 노아가 방수를 만듭니다.  그런데 사람들은 아무도 믿지 않았습니다. 노아가 방주를 만든다는 얘기를 듣고 제가 정말 홍수가 나겠다는 생각을 하고 제 아내의 손을 잡고 뛰어갑니다. 산 넘고 물 건너서 노아가 방주를 만들고 있는 그곳에 막 뛰어갑니다.
몇 달이 걸려서 뛰어갑니다. 왜냐하면 그 방주에 타야지만 산다고 저는 생각하기 때문에.
아무도 그렇게 생각하지 않더라도 저는 그렇게 생각하기 때문에 뛰어갑니다.
세 달, 네 달이 걸려서 노아의 방주에 도착합니다.
노아의 방주는 다 만들어져 모든 사람들이 다 타고 문이 굳게 닫혀있습니다.
제가 밖에서 문을 두드립니다.
"네 달 동안 산 넘고 물 건너서 왔습니다. 노아여 저를 제발 태워주세요."
그때 노아가 안에서 얘기합니다.
"하느님께서 이 세상에 존재하는 모든 종류의 한 쌍씩만 태우라고 했다. 너와 같은 종은 타고 있기 때문에 너는 태울 수가 없다."라고 얘기합니다.
저는 아내의 손을 잡고 살기위해서 왔는데 노아는 문을 열어주지 않습니다.
이제 어떻게 해야 노아의 방주에 탈수 있을까요?
정답은 하나밖에 없습니다. 내가 다른 종이 되면 됩니다.

다른 종이 된다는 것은 무엇일까요?
어느 날 제가 벤처기업을 하다 망해서 회사 기업체 CEO의 차라도 몰아볼까 해서 모 건설회사에 이력서를 냈습니다. 먹고 살기 위해서 CEO의 운전기사를 해보겠다는 생각이었습니다. 그런데 참 이상하게도 대부분 비서진에서 다 걸러지는데 제 이력이 이상했던 모양이에요. 그 건설회사 사장님께서 저에게 직접 전화가 왔습니다.
"최윤규씨 당신 이력서를 보니까 좀 특이한테 내가 하나 물어보겠습니다.
당신은 운전기사의 정체성에 대해서 무엇이라고 생각하십니까?"
그 얘기를 듣고 제가 얘기했습니다.
"운전기사의 정체성은 운전을 잘하는 것이지요."
그랬더니 그분이 전화기에 대고 이렇게 말했습니다.
"기업체 오너의 차를 모는 운전기사의 정체성은 운전이 아닙니다.
진정한 운전기사의 정체성은 눈감고 입 닫고 귀 막고 오로지 평생 동안 내차를 몰아줄 사람이 필요한 것입니다. 그런데 내가 당신 이력을 보니까 당신은 벤처기업을 했었고 앞으로 기회가 되면 또 사장이 되겠다고 나갈 텐데 당신의 정체성은 운전기사가 아닙니다." 라고 말하고 전화를 끊는 겁니다.
그분이 전화를 주셨던 이유는 자기처럼 어렸을 때 아주 작은 단계에서 실패와 성공을 거듭하는 제 모습을 보고 너무 불쌍해서 분명한 정체성을 알려주기 위해서 당신이 어떤 종인지 가르쳐 주기 위해서 일부러 전화를 주셨던 것입니다. 그 얘기를 듣고 많이 깨달았습니다. '나는 운전할 수 있는 종이 아니구나.' 라고 깨달았습니다.
그러다 어느 날 인디밴드 장기하씨가 이렇게 말하는 것을 들었습니다.
'흰 조약돌 밭에 흰 조약돌 하나를 툭 던지면 아무 의미가 없다. 그런데 검은 조약돌 하나를 던지면 그림 전체가 완전히 바뀐다. 나는 검은 조약돌이 되고 싶었다.' 가수 장기하가 이렇게 말했습니다. 바로 이와 같이 흰 조약돌 밭에서 검은 조약돌이 되겠다고 마음먹는 것 그게 바로 변종이 되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다른 종이 되려면 어떻게 할까요?
여러분들 엑스맨이라는 영화 보셨죠.
그 영화 속에 있는 수많은 엑스맨들은 변종이 아니라 돌연변이입니다.
돌연변이는 자기의 의지와 상관없이 종이 바뀐 겁니다.
그러나 변종은 내 스스로, 내 힘으로, 내 의지로 다른 종이 되겠다고 선택하는 사람입니다.
좀 더 쉽게 설명하겠습니다.
어느 날 아기칫솔이 엄마에게 물었습니다.
"엄마 나 칫솔 맞아?"
"그래 너 칫솔 맞아"
"엄마, 그런데 칫솔은 무슨 일 하는 거야?"
"사람들의 이를 닦아주는 거지"
"그런데 엄마는 왜 맨날 운동화만 닦아?"
우스운 이야기지만 이 얘기를 듣고 저는 깨달았습니다.
운동화 닦으러 가는 엄마야 말로 진정한 변종이구나.
남들은 운동화 닦는 일은 하찮은 일이야. 우리는 이를 닦아야 해. 라고만 생각하고 있을 때 운동화를 닦으러 가는 것 그러나 여기에서 더 나아가서 헌 칫솔이 될 때까지 기다리는 것이 아니라 새 칫솔인 그 상태 그대로 바로 운동화 닦으러 갈수 있는 사람 그게 이 시대가 원하는 진정한 변종입니다. 이렇게 할 때 우리는 수많은 흰 조약돌이 있는 상황에서 유일하게 나만이 검은 조약돌이 되는 존재가 될 수 있습니다.

대망이라는 소설에서 도쿠가와 이에야스는 자기의 손자에게 이렇게 얘기했습니다.
'너는 자라서 약수 같은 사람이 되어라. 험한 산골에 약수가 있는데 그 약수가 모든 병을 낫게 하는 만병통치약 같은 효능을 가지고 있다면 아무리 먼 곳이나 험한 곳에 있더라도 사람들은 그 약수를 찾으러 올 것이다. 너 스스로 너의 장점을 부각해서 잘난척하지 말고 내가 약수 같은 인물이 되면 이 세상은 너를 꼭 필요로 할 것이다.
너 스스로 효험이 있고 필요한 인물이 되는 그런 약수 같은 사람이 되어라'라고 얘기했습니다.
도쿠가와 이에야스가 손자에게 했던 이 이야기는 바로 엄마 같은 칫솔이 되는 것과 같은 종입니다.

여러분은 어떻습니까?
수많은 흰 조약돌 속에 내가 흰 조약돌로 있을 때 마음은 편할 수 있지만 세상을 바꾸고 싶고 자기의 상상과 생각을 표현하고 싶으면 변종이 되십시오. 이 시대는 더 많은 검은 조약돌을 필요로 하기 때문입니다.
감사합니다.

여주경작가의 무제
박영택

운동장은 의도적으로 만들어진 빈곳입니다. 부재하는 공간입니다.
그러나 그 공간은 불가피하게 필요하기때문에 텅빈 공간에 만들었겠죠.
여러분 어린 시절에 초등학교, 중, 고등학교 때 운동장에서 보냈던 시간들을 기억하실 겁니다. 물론 대학교에도 운동장은 있지만 대학교에서 운동장은 이전하고는 다르게 다가오는 것 같습니다. 초등학교나 중, 고등학교 때 운동장은 넓고 빈 여백 같은 곳이었습니다.
그곳에서 다소 지루한 조회가 있거나 또는 하기 싫은 체육을 하는 곳이기도 하고 또는 처벌이 이루어지기도 하고 아이들과 노는 공간이기도 하고 여러 가지 복잡한 느낌을 주는 곳이 학교의 운동장입니다.

이 작품은 한지에 채색화 물감으로 수없이 색깔을 칠해서 두툼하고 깊이있게 곰삭듯이 퍼진 색채의 맛으로 이루어진 그림입니다.
여주경이라는 작가의 그림으로 제목은 무제입니다.
그러나 이 작품은 아마 구령대나 옥상 같은 곳에 앉아서 운동장을 내려다보고 있는 교복 입은 두 남학생의 뒷모습을 보여주고 있는 것 같습니다. 저녁이고 그림자가 있고 운동장은 텅 비어 있고 어디선가 들어오는 조명에 의해서 부분적으로 빛나고 있습니다. 뒤편으로 건물들이 보이고 검은 구멍 같은 창들이 있고 하늘은 엷은 핑크빛으로 물들었는데 아마 아늑한 밤 같은 느낌을 자아내고 있습니다. 운동장의 한쪽 측면에는 축구 골대가 놓여 있고 축구 골대는 어디선가 들어온 빛에 의해서 반짝이고 있는 것 같습니다.
학교가 끝나고 아이들은 학교를 채 빠져나가지 못한 상태에서 텅 빈 운동장을 응시하고 있는 것 같습니다.
우리는 이 그림을 보는 순간 자신도 모르게 저기에 앉아있는 학생들이 되어서 텅 빈 운동장을 내다보고 있다고 하는 느낌을 부여 받습니다. 운동장은 어떻게 보면 자유롭고 놀이가 가능한 곳이기도 하고 학교에서 운동장은 한편으로 학생들에게 규율, 감시, 처벌이 이루어지는 곳이기도 합니다.
운동장은 아이들을 부릅니다.
학교는 일정한 툴속에서 학생들에게 훈육을 시키는 다소 강제적인 공간입니다.
학교를 통해서 아이들은 한 사회가 요구하는 인간형으로 길러져서 사회로 나가게 됩니다.
아이들은 학교를 빨리 나가고 싶고 더 큰 사회로 나가고 싶지만 사실 사회는 더 큰 운동장으로 기다리고 있을 수 있습니다.

나는 내 스스로 내가 되는 것이 아니라 누군가에 의해서 내가 됩니다.
나를 주체하는 음성을 흔히 이데올로기라고 말합니다.
학생을 학생이라 부르는 음성의 근원지는 학교고 운동장입니다.
나를 어느 조직의 구성원으로써 한 사회의 누구누구로써 신분으로써 요구하는 곳은 사회입니다. 사회는 거대한 이대올로기라고 말해볼 수 있습니다.
아이들은 교복을 입고 학교에서 요구하는 틀 속에서 일정하게 길러집니다.
그래서 학교라고 하는 곳은 운동장이라고 하는 곳은 학생을 학생답게 만드는 훈육기관이라도 말해볼 수 있고 거대한 이데올로기라고 말해볼 수 있습니다.
아이들은 그 속에서 나름대로 원하는 삶을 살기 위해서 공부도 할 것이고 또는 그 제도에 반발하기도 하고 튕겨져 나가기도 할 것입니다. 이 두 아이들은 학교의 텅 빈 운동장을 내다보면서 많은 얘기를 주고받는 것 같습니다. 이 학교를 떠나서 더 넓게 펼쳐져있는 사회를 요구하기도 하고 한편으로는 대학진학이라던가 여러 가지 생각으로 상당히 머리가 복잡해지는 순간이기도 할 것입니다.
아마 여주경은 우연히 운동장에서 두 학생의 뒷모습을 바라보고 나서 그것을 가슴에 담고 그렸던 것 같습니다.
오늘날 이 아이들에게 학교는 어떤 곳일까? 텅 빈 운동장은 무엇일까?
오늘날 우리 사회에서 이루어지는 학교교육은 무엇일까?
이런 굉장히 많은 질문들이 고구마 줄기처럼 엮겨져 나오는 그림이라고 말해볼수 있습니다.
아이들은 늦은 시간까지 진행된 학교 수업, 그것의 연장인 학원, 그리고 치열한 입시경쟁, 학교를 진학하고 나서도 끝없이 이루어지는 경쟁구도 속에서 늘 피곤하고 지칠 것입니다.
잠시 한가한 시간을 만들고 운동장을 내다보면서 이야기를 주고받는 두 학생의 뒷모습에서 새삼 한국에서의 교육 또는 청소년들의 현실이 어떤 것인가 하는 것들을 생각해보게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