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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라, 우리가 서로 변론하자 - 사 1:18-23 |
18 여호와께서 말씀하시되 오라 우리가 서로 변론하자 너희의 죄가 주홍 같을지라도 눈과 같이 희어질 것이요 진홍 같이 붉을지라도 양털 같이 희게 되리라 19 너희가 즐겨 순종하면 땅의 아름다운 소산을 먹을 것이요 20 너희가 거절하여 배반하면 칼에 삼켜지리라 여호와의 입의 말씀이니라 21 신실하던 성읍이 어찌하여 창기가 되었는고 정의가 거기 충만하였고 공의가 그 가운데 거하였더니 이제는 살인자들뿐이로다 22 네 은은 찌꺼기가 되었고 네 포도주에는 물이 섞였도다 23 네 고관들은 패역하여 도둑과 짝하며 다 뇌물을 사랑하며 예물을 구하며 고아를 위하여 신원하지 아니하며 과부의 송사를 수리하지 아니하는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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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든 증거는 명백했습니다. 두 말 할 것도 없이 그들은 유죄였습니다. 그럼에도 재판관이신 하나님이 최후 판결을 내리시기 전에 피고에게 한 번 더 기회를 주신 겁니다. <오라, 우리가 서로 변론하자>고 하신 것은 하나님의 무한하신 자비의 음성이요 새 출발할 수 있는 자리로 부르신 은혜의 초대입니다. <주홍>이란 히브리말 <솨리>로 <두 번 물들인 것>이란 뜻이며 잘 지워지지 않는 짙은 붉은색 물감을 가리킵니다. 또 <진홍>은 히브리말 <톨라>로 지중해 해안의 조개에서 채취한 검붉은 염료를 말합니다. 그런데 이 두 가지 붉은색 물감이 <눈>과 <양털>에 대비되고 있습니다. 흰 눈에 덮인 순백의 세상과 하얀 뭉개 구름 같은 양털을 한 번 상상해 보십시오. 그리고 이 놀라운 하나님의 약속과 부름에 기꺼이 응답하십시오.
아름다운 땅의 소산 <너희가 즐겨 순종하면 땅의 아름다운 소산을 먹을 것이요 너희가 거절하여 배반하면 칼에 삼켜지리라 여호와의 입의 말씀이니라>(19-20절). 어느 쪽을 택하시겠습니까? 순종하면 땅의 아름다운 소산이고 거절하면 칼의 무서운 보복입니다. <보라 내가 오늘 생명과 복과 사망과 화를 네 앞에 두었나니>(신 30:15). <즐겨 순종>하면 땅의 아름다운 소산을 먹으며 행복하게 살고, <거절하고 배반>하면 칼에 화를 면치 못한다고 합니다. 그렇다면 무엇에 대한 순종일까요? 죄를 위한 하나님과의 변론, 즉 회개를 촉구하시는 하나님의 음성에 응답하라는 것입니다. 제발 <오라>고 하시는 하나님의 음성을 거절하지 마십시오. 아무리 붉은 죄도 양털처럼 희게 하시겠다는 하나님의 약속을 전적으로 신뢰하십시오. 그리고 모든 허물을 진술하시며 하나님과 변론하십시오. 그것만이 우리가 살 길이며 새 출발할 수 있는 유일한 길임을 의심하지 마십시오. <여호와의 손이 짧아 구원하지 못하심도 아니요 귀가 둔하여 듣지 못하심도 아니라 오직 너희 죄악이 너희와 너희 하나님 사이를 갈라 놓았고 너희 죄가 그의 얼굴을 가리어서 너희에게서 듣지 않으시게 함이니라>(59:1-2).
창기가 된 성읍 <신실하던 성읍이 어찌하여 창기가 되었는고 정의가 거기에 충만하였고 공의가 그 가운데에 거하였더니 이제는 살인자들뿐이로다>(21절). 전에는 더 없이 정숙한 아내 같았던 유다였건만 이제는 추한 창녀의 모습으로 변해 버렸고, 포악하고도 무서운 살인자로 전락하고 말았다는 것입니다. <은은 찌꺼기가 되었고, 포도주에는 물이 섞였다>(22절)는 것은 본래의 모습과 처음의 순수함을 다 상실했다는 뜻입니다. 이렇게 최악 모습과 최악의 상태로 타락한 유다에 대해 어찌 하나님이 그냥 지나치실 수가 있었겠습니까? 이는 또한 오늘 우리들의 모습이기도 합니다. 한국 교회는 지난 날의 신실함과 순수함을 많이 잃어버렸습니다. 하나님이 유다를 향해 현숙한 아내 같던 성읍이 창녀처럼 타락했다고 하신 것은 그들이 자신의 영혼을 우상과 세상에 팔아버렸다는 뜻입니다. 그래서 은이 찌꺼기가 되고 포도주가 저질이 되었다는 것입니다. 신앙의 정절을 지키십시오. 우상이나 세속문화에 함부로 몸을 내 주지 마십시오. 이 시대 성도들은 과거 이사야 시대 유다 백성 못지 않게 온갖 우상과 악마적인 세속문화에 무방비로 노출되어 있습니다. 그러나 절대 자신의 영혼을 팔아서는 안 됩니다.
뇌물을 사랑하는 고관 <네 고관들은 패역하여 도둑과 짝하며 다 뇌물을 사랑하며 예물을 구하며 고아를 위하여 신원하지 아니하며 과부의 송사를 수리하지 아니하는도다>(21절). 당시 유다 성읍 안에는 순전한 것이라고는 아무것도 없었습니다. 은과 포도주까지 불순물을 섞어 만든 가짜가 판을 쳤으니 짐작이 가고도 남습니다. 지도자들인 고관들의 행태를 보십시오. 다 훔치고 빼앗고 강도들과 한 패가 되어 온갖 노략질을 다 자행했습니다. 과부와 고아들의 송사는 뒷전이고 오로지 뇌물을 즐기며 불법으로 치부하는 일에만 혈안이었습니다. 율법이 가장 먼저 돌보고 지키라고 명한(신 16:11,14,26:12-13, 욥 24:9, 렘 5:28, 겔 22:7, 슥 7:10) 사회적 약자들, 곧 고아와 과부들의 호소나 억울함은 전혀 수리되지 않았습니다. 따라서 당시 유다는 종교지도자들 뿐 아니라 관원들, 고관들까지도 철저하게 타락한 총체적인 부패와 민족적 위기에 직면했던 것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이 <오라>고 하셨고 <우리가 서로 변론하자>며 그들의 회개와 새 출발을 주문하셨던 겁니다. 부디 우리가 서로 변론하자고 호소하시는 하나님의 음성에 진지하게, 성실하게 응답하시는 성도가 되시길 빕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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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쓴이 : 조성노 독일 본(Bonn) 대학교 신학부 졸업 뮌헨(Muenchen) 대학교 신학부 졸업 장로회신학대학교 조직신학 교수 역임 푸른교회(분당 소재) 담임목사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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