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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 신년특집] 6·25 정전 60년… 힘·안보 다진 한국, 다시 막아서는 파워 중국/ 조선일보

鶴山 徐 仁 2013. 1. 1. 18:02

[2013 신년특집] 6·25 정전 60년… 힘·안보 다진 한국, 다시 막아서는 파워 중국

  • 유용원 군사전문기자  

  • 입력 : 2013.01.01 03:00

    [6·25 정전 60년… 한·미 동맹 60년]
    ① 최빈국서 성장한 대한민국
    전차 한대 없었던 한국군, 지금은 전차·전투기·군함서 괄목할 성장
    한미동맹 바탕 停戰후 60년간 급속발전… 새해엔 4强 모두 리더십 재편
    중국 경계심 풀며 '통일 한국' 대비할 '모범적 한미동맹'으로 거듭나야

    60년 전인 1953년 7월 27일 밤 10시 유엔군과 공산군이 치열한 접전(接戰)을 벌였던 전 전선(戰線)에서 포성이 멈췄다. 2년여를 끌어온 휴전협상이 이날 오전 타결됐던 것이다. 2013년은 6·25 전쟁 정전(停戰) 60년이자, 한·미상호방위조약 체결(1953년 10월 1일)로 공식화된 한·미동맹이 60년 되는 해다.

    6·25 전쟁은 남북 합쳐 100만이 넘는 인명피해는 물론 우리의 공업시설 43%, 발전시설 41%, 철도 312㎞를 파괴했다. 나라 전체가 절멸의 위기를 맞았던 것이다. 정전 체제는 미국과 중국이라는 강대국의 이해가 우선된 것이었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정전 60년, 남북 군사력 변화

    6·25전쟁 발발 직후엔 한국군은 전차·항공기 등 재래식 군사력 면에서 북한군에 비해 비교가 되지 않을 정도로 열세였다. 6·25전쟁 발발 무렵 한국군엔 단 한 대의 전차도 없었지만 북한군 전차는 242대에 달했다. 북한군 전차는 더구나 세계 정상급이었던 T-34/85였다. 당시 주요 군사력은 한국군이 병력 10만5752명, 곡사포 91문, 경비함 28척, 연습/연락기 22대였던 반면 북한군은 병력 19만8380명, 곡사포 552문, 경비함 30척, 전투기·전폭기 등 211대였다.

    그러나 정전 60년은 남북한 간의 군사력 지형도 바꿔 놓았다. 한국군은 60년간 전차·전투기·전투함 등에 있어서 괄목할 만한 성장을 했다. 최근 북한 은하 3호 로켓 잔해 궤적을 추적하는 데 성공해 잔해 회수에 큰 공을 세운 이지스함(3척)을 비롯, 120여척의 전투함을 보유하고 있다. 북한군은 2000t 이상의 수상(水上) 전투함이 단 한 척도 없지만 우리 해군은 12척이나 보유하고 있다. 공군은 동북아 최강의 전투기로 평가받는 F-15K(60대)를 비롯, 460대의 전투기를 갖고 있다. 6·25전쟁 발발 때 단 한 대도 없었던 전차는 2400여대에 이른다. 북한군은 전차(4200여대), 전투기(820여대) 등에서 우리 군에 비해 수적으로는 2배 가까운 우위에 있지만 질적인 면에선 크게 뒤떨어지는 것으로 평가된다. 1973년 한국군 전력증강 사업이 본격화된 뒤 투입된 예산은 총 121조5191억원에 달한다.

    대한민국은 1953년 체결된 한·미 상호방위조약을 바탕으로 6·25전쟁 당시 폐허가 됐던 후진국(위 사진)에서 1년에 300만대 이상의 자동차를 수출하는 나라로 발전했다(아래 사진).
    한·미동맹 바탕, 글로벌 파워 발돋움

    정전 체제와 함께 탄생한 한·미동맹은 2차 대전 이후 미국이 맺은 '최고의 동맹'으로 평가받고 있다. 오바마 미 대통령은 지난달 19일 박근혜 대통령 당선인에게 보낸 축전에서 "한·미동맹은 아시아·태평양 지역 평화와 안정의 '린치핀(linchpin·핵심)' 역할을 해왔다"고 했다.

    한·미동맹은 지난 60년간 한국이 일궈낸 경제 성장과 번영의 기틀이 됐다. 한국은 2차대전 후 독립한 신생국 중 산업화와 민주화에 동시에 성공한 나라로 꼽힌다. 한·미동맹을 통해 북의 도발에 대한 안전판을 확보하지 못했다면 이 같은 '대한민국 성공 신화(神話)'도 불가능했을 것으로 평가된다. 이제 한국은 글로벌 파워로까지 발돋움한 상태다.

    또다시 등장한 중국 변수

    중국은 6·25전쟁의 발발부터 38선 돌파 북진 후 유엔군의 패퇴, 이후 2년여의 휴전 협상에 이르기까지 중요한 고비마다 등장했다. 전문가들은 "중국의 개입이 없었다면 지금처럼 분단체제가 60년 지속됐을지 의문"이라고 했다. 실제 중국은 2000년대 이후에도 북의 후견인 노릇을 하고 있다.

    최근 중국은 갈수록 한반도 문제에서 자신의 목소리를 키워가고 있다. 북이 핵·미사일 도발과 이에 따른 국제 제재에서도 체제를 연명할 수 있는 것은 중국의 지원 때문이라는 지적이다.

    중국은 2008년 이후 세계무대에서 미국과 어깨를 나란히 하는 주요 2개국(G2) 대접을 받고 있다. 중국은 오바마 미국 정부가 내건 아시아 중시 정책을 '대(對)중국 포위망' 구축으로 보고 경계하고 있으며, 한·미동맹에 대해서도 의구심을 떨치지 않고 있다.

    한국 외교가 직면한 가장 큰 과제는 '통일 시대'를 여는 것이다. 중국이 통일 시대를 여는 데 걸림돌이 되지 않으면서 북한 변수를 효율적으로 관리하는 데 있어서 한·미동맹은 여전히 가장 중요하고 효과적인 축이다. 전문가들은 한·미동맹이 이 같은 과제를 담당하려면 포괄적이고 복합적인 동맹으로 질적 전환을 이루면서, 주변에도 위협적이지 않은 모범적 동맹으로 바뀌어야 한다고 지적한다. 윤덕민 국립외교원 교수는 "우리 외교가 60년 된 정전 체제를 뛰어넘기 위해선 '중국 변수'를 어떻게 풀어내느냐가 관건"이라며 "한·미동맹도 중국과 한반도 통일이라는 상황에 적응할 수 있는 포괄적 동맹으로 발전해야 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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