鶴山의 草幕舍廊房

Faith - Hymn

[CTS 새벽종소리] 2012년9월212 QT - 아픔도 사명으로 (도서/사진/말씀)

鶴山 徐 仁 2012. 9. 26. 16:06



아픔도 사명으로


아픔을 경험한 사람이 비슷한 아픔을 경험한 다른 지체를 위로하고 도울 수 있다. 알코올중독에서 벗어난 사람이 알코올중독자를 향한 안타까운 마음을 안고 그들을 섬길 수 있는 것과 마찬가지이다. 그 사람의 고통스러웠던 경험이 다른 사람의 아픔을 이해하도록 할 뿐만 아니라 고통을 이겨내는 좋은 모본이 될 수 있기 때문이다.
-이용규의 [더 내려놓음] 중에서-

베드로는 고기잡이의 실패를 통해 오히려 주님을 만나게 되었습니다. 그의 아픔은 오히려 사람 낚는 어부의 삶으로 바뀌게 되었습니다. 밤새 고기를 잡았지만 빈 그물이었습니다. 그러나 그때 주님을 만나 은혜로 회복되었습니다. 하나님은 우리의 아픔을 사명으로 바꾸셔서 세상 가운데 진정한 위로 자가 되게 하십니다.




글쓴이 : 이재학 연세대학교 연합신학대학원을 졸업
웨스터민스터신학대학원대학교(선교학)박사학위(Ph.D) 수료
하늘땅교회 담임목사
겸손
하늘을 담고, 들의 바람을 담아
겸손하게 고개 숙이고 산들산들 노래하는 들꽃을 봅니다.
글쓴이 : 왕충은 경북대 국어국문학과 및 동대학원 수료
2002년 ~ 2010년 몽골국제대학교 교양학부 조교수
2004년 이후 우우링슈드르쵸글랑(새벽이슬교회) 개척
여인에게 - 욥 31:9-15
9 만일 내 마음이 여인에게 유혹되어 이웃의 문을 엿보아 문에서 숨어 기다렸다면
10 내 아내가 타인의 맷돌을 돌리며 타인과 더불어 동침하기를 바라노라
11 그것은 참으로 음란한 일이니 재판에 회부할 죄악이요
12 멸망하도록 사르는 불이니 나의 모든 소출을 뿌리째 뽑기를 바라노라
13 만일 남종이나 여종이 나와 더불어 쟁론할 때에 내가 그의 권리를 저버렸다면
14 하나님이 일어나실 때에 내가 어떻게 하겠느냐 하나님이 심판하실 때에 내가 무엇이라 대답하겠느냐
15 나를 태 속에 만드신 이가 그도 만들지 아니하셨느냐 우리를 뱃속에 지으신 이가 한 분이 아니시냐
욥은 여기서 다시 한 번 자신의 성적 정절을 확인합니다. 그는 젊고 예쁜 <처녀에게 음험한 눈길을 주지 않았을 뿐 아니라> 이웃의 아내도 탐한 적이 없다고 합니다. <내 마음이 여인에게 유혹되어 이웃의 문을 엿보아 문에서 숨어 기다리지>(9절) 않았다는 것입니다. 일부다처가 관행이던 시대, 최고의 부와 명예와 권세를 가진 족장이라면 여러 첩을 거느리는 일쯤은 예사였을 관습에도 불구하고 욥이 이처럼 조강지처 외에는 누구에게도 마음을 빼앗기지 않았노라고 고백하고 있습니다.

재판에 회부할 죄악
<그것은 참으로 음란한 일이니 재판에 회부할 죄악이요>(11절).
욥은 만약 자기가 간음죄를 범했다면 자기의 아내가 남의 노예나 창기가 되어도 좋다고까지 합니다. <내 아내가 타인의 맷돌을 돌리며 타인과 더불어 동침하기를 바라노라>(10절). 이렇듯 그는 자신의 성적 결백을 주장하며 간음이야 말로 재판받아 마땅한 중한 범죄라고 합니다. 모세의 율법시대보다도 더 이른 족장시대에 이미 이토록 철저한 도덕성으로 무장했다는 것은 그의 의인됨의 면모를 다시 한 번 깊이 각인시키는 대목이 아닐 수 없습니다. 과연 욥은 하나님이 자랑하시며 내세우실만한 인물이었습니다. 그는 자신 뿐 아니라 자녀들의 경건생활도 책임적으로 관리하며 잔치가 끝날 때마다 자녀의 명수대로 번제를 드렸다고 했는데 <이는 욥이 말하기를 혹시 내 아들들이 죄를 범하여 마음으로 하나님을 욕되게 하였을까 함이라 욥의 행위가 항상 이러하였더라>(1:5)고 했습니다.

멸망하도록 사르는 불
<멸망하도록 사르는 불이니 나의 모든 소출을 뿌리째 뽑기를 바라노라>(12절).
정욕은 태우는 불입니다. 성경은 정욕이 거기에 빠진 자를 불사른다고 합니다. 삶을 불태우고 양심을 초토화하는 죄라는 것입니다. 또한 정욕은 하나님의 진노의 불을 점화시키는데 그것은 그야말로 그의 <모든 소출을 뿌리째 뽑아> 버립니다. 하여간 성적 범죄는 모든 것을 사르는 하나님의 엄중한 심판을 불러온다고 하는데, 욥은 아마도 이 대목에서 소돔과 고모라를 심판하신 하나님의 불을 염두에 둔 듯합니다. 소돔에 대한 하나님의 진노는 후세에 그들과 같은 방식으로 살아가는 자들에 대한 준엄한 본보기가 아닐 수 없습니다. 특히 성적 무질서가 막장에 이른 이 시대 모든 이들에 대한 하나님의 경고의 메시지로 받아드려 옳을 것입니다.

하나님이 심판하실 때
<하나님이 일어나실 때에 내가 어떻게 하겠느냐 하나님이 심판하실 때에 내가 무엇이라 대답하겠느냐>(14절).
그렇습니다. 하나님은 재판장이시고 우리는 언젠가 반드시 하나님의 그 최후 재판정에 서야 합니다. 우리는 늘 하나님이 벌하시는 날 내가 어떻게 할 것인가를 생각하며 살아야 합니다. <벌하시는 날과 멀리서 오는 환난 때에 너희가 어떻게 하려느냐 누구에게 도망하여 도움을 구하겠으며 너희의 영화를 어느 곳에 두려느냐>(사 10:3). 욥은 성적 범죄와 더불어 특히 인권유린을 고발합니다. 우리가 형제나 이웃에 대해 잔인하고 무자비하게 굴면 하나님이 결코 우리에게 긍휼을 베풀지 않으시고 반드시 그 죄를 혹독하게 심판하실 것이라고 합니다. 따라서 우리는 <나를 태 속에 만드신 이가 그도 만드셨다>(15절)는 사실을 잊지 않아야 한다고 강조합니다. 매사에 관대하십시오. 남을 용서하십시오. 기회가 주어질 때마다 긍휼을 베푸십시오. 그래야 하나님이 심판하실 때 내게도 관대하십니다.
글쓴이 : 조성노 독일 본(Bonn) 대학교 신학부 졸업
뮌헨(Muenchen) 대학교 신학부 졸업
장로회신학대학교 조직신학 교수 역임
푸른교회(분당 소재) 담임목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