鶴山의 草幕舍廊房

Faith - Hymn

[CTS 새벽종소리] 2012년7월20일 QT - 한 몸 (도서/사진/말씀)

鶴山 徐 仁 2012. 7. 20. 15:57



한 몸


한 몸의 지체로서 당신 삶은 매우 중요하다. 하나님이 오늘 당신 삶을 위한 영원한 뜻을 행하길 원하신다면 말이다. 눈은 귀가 듣는 것을 도울 것이고 손은 감각을 도울 것이며 발은 발걸음을 내딛을 수 있도록 도울 것이다. 한 몸 된 교회는 사랑으로 이어져 있는 각 지체들에 의해 영향을 받는다.
-헨리 블랙커버의 [소명] 중에서-

내 삶이 공동체 안에서 한 몸을 이루는 것은 성숙한 것입니다. 하나님은 서로의 부족함을 만들어 놓으셨습니다. 그 부족함은 한 몸을 이룰 때 온전하게 회복됩니다. 내가 속해 있는 곳에서 한 몸을 이루기 위해 지체로 살아가는 것은 하나님 나라를 이루는 것입니다.




글쓴이 : 이재학 연세대학교 연합신학대학원을 졸업
웨스터민스터신학대학원대학교(선교학)박사학위(Ph.D) 수료
하늘땅교회 담임목사
목적지를 잊지 말자.
나는 길 위에 있다. 분주히 오가는 길.
이 길은 나의 목적지가 아니다. 내 인생의 길도 목적지는 아니다. 목적지를 잊지 말자.

글쓴이 : 김민수 현)백석대학원 미술학과 박사과정
현)기독교 대안학교 그레이스 아카데미 자문위원/미술강사
현)스타선교회 홍보사역
현)크로스인 대표/디자이너
초조한 마음 - 욥 20:1-11
1. 나아마 사람 소발이 대답하여 이르되

2. 그러므로 내 초조한 마음이 나로 하여금 대답하게 하나니 이는 내 중심이 조급함이니라

3. 내가 나를 부끄럽게 하는 책망을 들었으므로 나의 슬기로운 마음이 나로 하여금 대답하게 하는구나

4. 네가 알지 못하는냐 예로부터 사람이 이 세상에 생긴 때로부터

5. 악인이 이긴다는 자랑도 잠시요 경건하지 못한 자의 즐거움도 잠깐이니라

6. 그 존귀함이 하늘에 닿고 그 머리가 구름에 미칠지라도

7. 자기의 똥처럼 영원히 망할 것이라 그를 본 자가 이르기를 그가 어디 있느냐 하리라

8. 그는 꿈 같이 지나가니 다시 찾을 수 없을 것이요 밤에 보이는 환상처럼 사라지리라

9. 그를 본 눈이 다시 그를 보지 못할 것이요 그의 처소도 다시 그를 보지 못할 것이며

10. 그의 아들들은 가난한 자에게 은혜를 구하겠고 그도 얻은 재물을 자기 손으로 도로 줄 것이며

11. 그의 기골이 청년 같이 강장하나 그 기세가 그와 함께 흙에 누우리라
빌닷에게서 다시 나아마 사람 소발에게로 바톤이 넘어갔습니다. 소발은 <내 마음이 초조하고 내 중심이 조급>(2절)하다는 말로 욥에 대한 자신의 감정이 몹시 격해 있음을 감추지 않았습니다. 욥의 자기 변호가 그에게도 몹시 불쾌했고, 화가 치밀어 오르게 했다는 것입니다. <내가 나를 부끄럽게 하는 책망을 들었으므로 나의 슬기로운 마음이 나로 하여금 대답하게 하는구나>(3절).

경건치 못한 자의 즐거움은 잠깐
<악인이 이긴다는 자랑도 잠시요 경건하지 못한 자의 즐거움도 잠깐이니라>(5절).
소발은 악인들은 필연적으로 멸망할 수 밖에 없는데 욥이 패가망신한 것을 보면 그가 곧 악인이고 위선자라는 사실을 부정할 수 없다는 점을 강조합니다. 맞습니다. 악인이라고 반드시 패배하는 것은 아니고 경건치 못하다고 언제나 낙이 없는 것은 아닙니다. 현실로 말하면 오히려 그런 사람들이 더 잘 되고 더 잘 살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그들이 누리는 즐거움과 자랑은 실로 잠깐이라는 것입니다. 그래서 모세는 <하나님의 백성과 함께 고난 받기를 잠시 죄악의 낙을 누리는 것보다 더 좋아했다>(히 11:25)고 합니다. 분명 죄악의 삶에도 낙이 있습니다. 그러나 그것은 <잠시>라는 것입니다. 소발은 이 사실을 너무나도 원색적으로 표현합니다. 경건치 못한 자는 <그 존귀함이 비록 하늘에 가 닿을 지라도 자기 똥처럼 망할 것이라>(6-7절)고 합니다. 최악의 수치스런 멸망이 될 것이라는 뜻입니다. 이것은 욥의 과거의 존귀와 현재의 시련을 염두에 둔 발언으로 그의 가슴을 더욱 아프게 했을 것입니다.

얻은 재물을 도로 자기 손으로
<그의 아들들은 가난한 자에게 은혜를 구하겠고 그도 얻은 재물을 자기 손으로 도로 줄 것이며>(10절).
오죽 힘들고 어려우면 굶주린 자식들이 가난한 자들에게 다 적선을 구하겠습니까? 경건치 못한 자의 재물이란 그런 겁니다. 처음에는 그의 수중으로 잘 들어오고 또 많이 쌓이는 듯합니다. 그러나 결국은 다 사라져서 빈털털이가 된다는 것입니다. 그것도 남에게 빼앗겨서라기 보다는 제 손으로 다 흩습니다. 제 잘못으로 가진 재산을 다 날립니다. 그게 도박이든 투기든 허랑방탕이든 제 탓으로 다 잃어버립니다. 부정한 방법으로 일확천금한 사람들이 또 그렇게 하루 아침에 패가망신한 예는 우리 주변에도 얼마든지 있습니다. 비록 덜 가지더라도 경건을 잃지 않아야 하고 또 정당하게 벌어야 합니다. 철저한 청지기 의식으로 내 소유에 대해 주님의 주권을 인정해야 합니다.

기골이 장대하나 흙에 누우리
<그의 기골이 청년 같이 강장하나 그 기세가 그와 함께 흙에 누우리라>(11절).
멸망 앞에서는 기골의 장대함도 아무런 소용이 없습니다. 골리앗과 다윗의 한 판을 생각해 보십시오. 한 쪽은 거인에 전쟁의 달인이며 완전 군장을 갖췄습니다. 그러나 다른 한 쪽은 미소년에 몸에 맞는 갑옷이 없어 양치기 목동의 행색 그대로입니다. 더구나 창도 칼도 방패도 없고 달랑 물매돌 다섯 개만 가졌습니다. 그러나 다윗을 통한 하나님의 응징은 가차 없었습니다. 그야말로 <그 기세가 그와 함께 흙에 눕는> 통쾌한 반전이 일어난 것입니다. 적이 강하고 장대하다 하여 겁먹지 마십시오. 다윗처럼 담대하시고 용기충천하십시오. 그리고 믿음의 물매돌을 날리십시오. 거기에 승리가 있습니다.
글쓴이 : 조성노 독일 본(Bonn) 대학교 신학부 졸업
뮌헨(Muenchen) 대학교 신학부 졸업
장로회신학대학교 조직신학 교수 역임
푸른교회(분당 소재) 담임목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