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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성 훈련
영성 훈련의 기초는 말씀 묵상에 있다. 말씀 안에 거하는 것이 말씀 묵상이다. 말씀 묵상이 가장 중요한 영성 훈련이 되는 이유는 하나님의 사람은 최우선 순위를 말씀에 두기 때문이다. 훈련은 긴급한 것이 아니라 중요한 일을 먼저 하는 것이다. -강준민의 [묵상과 영적성숙] 중에서-
주님의 말씀 앞에 홀로 엎드려 그 음성을 듣고 살아가는 것은 중요한 일입니다. 우리 삶의 우선이 하나님의 친밀한 교제가 되기 위해서 말씀을 묵상하는 결단이 필요합니다. 날마다 우리의 보이지 않는 세밀한 부분까지 만져주시는 말씀의 능력을 경험하면 행복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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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쓴이 : 이재학 연세대학교 연합신학대학원을 졸업 웨스터민스터신학대학원대학교(선교학)박사학위(Ph.D) 수료 하늘땅교회 담임목사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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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님의 기쁨 되기 원합니다 |
네가 밟는 땅 주님 다스리리.. 너는 주의 길 예비케 되리. 오 하나님. 저의 한발 한발 디디는 걸음이 주님께 걱정꺼리가 아니라 주님의 기쁨 되기 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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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쓴이 : 김민수 현)백석대학원 미술학과 박사과정 현)기독교 대안학교 그레이스 아카데미 자문위원/미술강사 현)스타선교회 홍보사역 현)크로스인 대표/디자이너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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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친구야 - 욥 19:20-29 |
20. 내 피부와 살이 뼈에 붙었고 남은 것은 겨우 잇몸 뿐이로구나
21. 나의 친구야 너희는 나를 불쌍히 여겨다오 나를 불쌍히 여겨다오 하나님의 손이 나를 치셨구나
22. 너희가 어찌하여 하나님처럼 나를 박해하느냐 내 살로도 부족하냐
23. 나의 말이 곧 기록되었으면, 책에 씌어졌으면,
24. 철필과 납으로 영원히 돌에 새겨졌으면 좋겠노라
25. 내가 알기에는 나의 대속자가 살아 계시니 마침내 그가 땅 위에 서실 것이라
26. 내 가죽이 벗김을 당한 뒤에도 내가 육체 밖에서 하나님을 보리라
27. 내가 그를 보리니 내 눈으로 그를 보기를 낯선 사람처럼 하지 않을 것이라 내 1) 마음이 초조하구나
28. 너희가 만일 이르기를 우리가 그를 어떻게 칠까 하며 또 이르기를 일의 뿌리가 그에게 있다 할진대
29. 너희는 칼을 두려워 할지니라 분노는 칼의 형벌을 부르나니 너희가 심판장이 있는 줄을 알게 되리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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욥은 지금 가죽과 뼈만 남아 거의 해골과 같은 몰골을 하고 있습니다. 피부 조차도 다 갈라지고 벗겨져 겨우 잇몸만 남았다고 합니다. 그의 온 몸을 뒤덮은 종기와 악성 부스럼이 피부와 외모까지도 완전히 망가뜨린 것입니다. 욥이 애간장을 녹이는 듯한 언어로 그의 친구들을 부르고 있습니다.
나를 불쌍히 여기라 <나의 친구야 너희는 나를 불쌍히 여겨다오 나를 불쌍히 여겨다오 하나님의 손이 나를 치셨구나>(21절). 사람에게 버림을 받고 친구에게, 가족들에게 버림을 받은 자라면 그래도 아직은 희망이 있습니다. 경우에 따라서 힘들 수는 있겠지만 수습이 완전히 불가능하지는 않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손이 치셨다면 얘기가 달라집니다. 하나님이 치신 아픔이나 상처는 하나님 개입없이는 결코 회복되지 않기 때문입니다. 욥은 그의 친구들의 정죄는 극구 부정했지만 지금 자기가 겪고 있는 고난의 출처가 하나님이라는 사실 만큼은 깊이 인정했습니다. 그 사연은 알 수 없지만, 하나님의 의도는 헤아릴 수 없지만 그럼에도 분명한 것은 하나님이 지금 자기를 치고 계시다는 것입니다. 실은 그래서 더 서럽고, 더 외롭고, 더 절망적인 감정에 빠져있다는 것입니다. 왜, 무엇 때문에 나를 이토록 아프고 고독하게 하느냐는 것입니다.
대속자가 살아 있다 <내가 알기에는 나의 대속자가 살아 계시니 마침내 그가 땅 위에 서실 것이라>(25절). 이것은 욥의 위대한 신앙고백입니다. 심지어 그는 이 진술을 <철필과 납으로 영원히 돌에 새겼으면 좋겠다>(23-24절)고까지 합니다. 이것은 욥의 신앙 속에 자리한 대속자에 대한 깊은 신념입니다. 따라서 그는 때로 심하게 흔들릴 수는 있어도 완전히 절망할 수는 없다고 합니다. 심지어는 <내 가죽이 벗김을 당해도 내가 육체 밖에서 하나님을 보리라>(26절)고 합니다. 대속자가 계시므로 내게도 그런 소망이 있다는 뜻입니다. 아닌 게 아니라 욥이 확신하고 고백한 대속자는 그가 예언한 그대로 이 땅에 친히 오셨습니다. 그리고 우리로 하여금 대속의 은총을 누리게 하셔서 믿음으로 의인들이 되게 하셨습니다. 부디 그 최악의 고난 중에도 책에 기록하기를 바란다며 예언한 욥의 대속자의 은총이 오늘 당신에게도 넘치시길 진심으로 기원합니다.
심판장이 있는 줄 알라 <너희는 칼을 두려워 할지니라 분노는 칼의 형벌을 부르나니 너희가 심판장이 있는 줄을 알게 되리라>(27절). 욥이 친구들에게 또 한 번의 결정적인 일갈을 날립니다. 직역하면 이렇습니다. <너희는 칼, 즉 사방으로 돌아다니는 하나님의 공의의 칼을 두려워하라.> 왜냐하면 하나님은 심판장이시기 때문이라고 합니다. 하나님이 창조자요 심판자시라는 주장은 신구약 성경의 일관된 가르침입니다. <하나님은 모든 행위와 모든 은밀한 일을 선악 간에 심판하시리라>(전 12:14). <하나님이 이 모든 일로 말미암아 너를 심판하실 줄 알라>(전 11:9). <나는 알파와 오메가라>(계 1:8). <나는 처음이요 마지막이니>(계 1:17). 기억하십시오. 종말이란 단순한 역사의 종지부가 아닙니다. 그간의 삶의 과정과 내용을 결산하는 철저한 심판입니다. 그래서 두려운 것이고 준비하고 근신하므로 맞아야 할 최후입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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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쓴이 : 조성노 독일 본(Bonn) 대학교 신학부 졸업 뮌헨(Muenchen) 대학교 신학부 졸업 장로회신학대학교 조직신학 교수 역임 푸른교회(분당 소재) 담임목사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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