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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만의 新竹 空軍(공군)기지 방문記

鶴山 徐 仁 2012. 6. 5. 01:26

대만의 新竹 空軍(공군)기지 방문記
과거 '시모노세키(下關) 조약'을 통해 지나간 역사를 들춰보다
고성혁   
 
지난 주말 대만의 신주(新竹, HSINCHU)공군기지 개방행사에 취재 차 다녀왔다. 타이페이에서 약 90km 떨어진 도시다. 대만의 수도 타이페이(臺北)를 방어하는 가장 중요한 공군기지다. 또한 新竹市는 대만의 ‘실리콘밸리’라 불리는 반도체 공업의 중심도시이기도 하다. 한국으로 말하면 수원에 해당된다. 수원에 삼성전자 반도체 공장과 수원 공군기지가 있는 것처럼 新竹市도 그렇다.

타이페이 松山(송산)공항에 내려 택시를 잡아 탔다. 택시기사는 직접 짐을 트렁크에 실어주는 등 친절을 베풀었다. 다만 언어소통은 문제가 있었다. 버스 터미널에 가자고 하니 못 알아 들었다. 몇 번 말했더니 그제서야 알아 들었다. 택시기사가 내 말을 알아 듣고 하는 말이 “하이웨이 패스 빠스(BUS) 店(점) 오케이, 오케이”라고 했다. 옛날 우리가 ‘뻐스-’라고 한 것처럼 된소리로 ‘빠스’라고 하는 것을 알았다.


한자로 筆談(필담) 성공

타이페이 버스터미널에서 新竹市로 가는 표를 구매했다. 대만은 중국 본토처럼 簡字體(간자체)가 아니라 글을 쉽게 알아볼 수 있다. 버스에 올라 출발을 하는데 문득 대만을 여행한 사람이 자신의 블로그에서 버스를 잘못 타 고생했다는 글이 떠 올랐다. 옆사람에게 물어보기가 쉽지 않았다. 이 버스가 新竹市까지 직행으로 가는 것이냐는 것을 묻고 싶었다. 궁하면 통한다고 그때 아이디어가 하나 떠올랐다. 바로 필담(筆談)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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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모장을 꺼내서 “新竹(신죽) 直行(직행) 버스?”라고 쓰고 옆사람에게 보여 주었더니 맞다고 고개를 끄덕였다. 漢字로의 필담 중 첫 성공 케이스 같다. 결국 무사히 목적지에 도착할 수 있었다.


'시모노세키 조약', 그리고 朝鮮과 대만

朝鮮(조선)과 대만은 19세기 末 같은 역사를 걸었다. 바로 일본의 식민지가 된 것. 淸日(청일)전쟁을 승리한 전리품으로 일본은 대만을 청나라로부터 넘겨 받았다. 시모노세키 조약(下關條約)이 조선과 대만의 운명을 결정지었다. 일반적으로 조선이 일본의 식민지가 된 시점을 1910년으로 알고 있지만 사실상 청일전쟁 後부터 조선은 대만과 함께 일본의 식민지로 전락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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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만의 공군기지와 新竹 공군기지 위치



시모노세키 조약은 4개항으로 구성돼 있다. 조약의 1항은 ‘청국은 조선이 완전한 자주독립국임을 인정한다’라고 시작한다. 그 당시 일본은 조선을 독립국이 아닌 청의 속국으로 보고 있었다는 반증이기도 하다. 조약의 2항은 청국은 遼東半島(요동반도)와 臺灣(대만) 및 펑후섬[澎湖島(팽호도)] 등을 일본에 할양한다고 명시했다. 그렇게해서 조선과 대만은 일본의 식민지로 전락했다.

그외에 3항과 4항은 ③ 청국은 일본에 배상금 2억 냥을 지불한다, ④ 청국의 沙市(사시)·重慶(중경)·蘇州(소주)·杭州(항주)의 개항과 일본 선박의 揚子江(양자강) 및 그 부속 하천의 자유통항 용인, 그리고 일본인의 거주·영업 ·무역의 자유를 승인할 것 등이다.

淸日전쟁으로 조선과 대만이 일본의 손에 넘어간 것처럼 해방도 비슷했다. 태평양 전쟁에서 일본이 패망하자 조선과 대만은 독립했다. 대만에서 國父(국부)로 추앙받는 장개석 총통은 조선의 독립에도 핵심적 역할을 했다. 전승국의 일원으로 <카이로 선언>에서 朝鮮과 대만의 독립을 약속받을 수 있는 문구를 넣었다.

<카이로 선언>에 따르면, ① 3국은 ‘일본에 대한 장래의 군사행동을 협정하였다’. ② 3국은 ‘야만적인 적국에는 가차 없는 압력을 가할 결의를 포명하였다’. ③ ‘일본의 침략을 저지, 응징하나 3국 모두 영토확장의 의도는 없다’. ④ ‘제1차 세계대전 후 일본이 탈취한 태평양 제도(諸島)를 박탈하고, 또한 만주 ·타이완[臺灣] ·펑후제도[澎湖諸島] 등을 중국에 반환하고 일본이 약취한 모든 지역에서 일본세력을 驅逐(구축)한다’고 되어있다.

원래는 4개항이 이것이 <카이로 선언>이었으나 막판에 특별조항으로 ‘현재 한국민이 노예상태 아래 놓여 있음을 유의하여 앞으로 한국을 자유 독립국가로 할 결의를 가진다’라고 明示(명시)하여 처음으로 한국의 독립이 국제적으로 보장받았다.

일본이 미국에 제시한 무조건 항복은 태평양 전쟁 직후, 일본이 획득한 영토를 반납한다는 조건이었다. 만약 그렇게 됐다면 한국은 독립할 수 없었을 것이다. 그러나 장개석은 일본의 침략전쟁의 기점을 태평양 전쟁이 아닌 淸日전쟁으로 봐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 결과 한국과 대만은 일본 식민지에서 벗어날 수 있는 외교적 기틀을 마련할 수 있었다.


대만의 공군기지

아시아의 상당수 공군기지는 일제 강점기 때 일본 해군이 건설한 것이 많다. 대만의 공군기지는 특히 일제시대 때 일본 해군항공대의 주요 發進(발진)기지였다. 특히 대만의 新竹 공군기지는 프랑스에서 만든 ‘미라지 2000-5’가 배치된 가장 중요한 공군기지다.

대만 공군은 중국의 압력으로 미국으로부터 최신예 機體(기체)를 도입하지 못하고 있다. 그러나 최근 중국의 팽창을 우려한 미국이 정책을 바꿨다. 대만에 F-16최신형 모델을 수출하겠다고 발표했다. 대만에 비하면, 한국은 韓美동맹이라는 울타리 속에서 중국의 압력을 그나마 막을 수 있다. 앞으로 韓美연합사 체제가 해체된다면 과연 중국의 압력을 한국이 어떻게 막을 것인지 걱정이 앞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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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만공군의 주력 요격기 미라지200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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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만 新竹 공군기지 본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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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만 新竹 공군기지 내에 있는 장개석 총통 동상



[ 2012-06-04, 19:41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