鶴山의 草幕舍廊房

Faith - Hymn

[CTS 새벽종소리] 2012년5월17일 QT - 사명과 은혜 (도서/사진/말씀)

鶴山 徐 仁 2012. 5. 17. 22:32



사명과 은혜


사랑하는 성도여러분!
우리에게 왜 은혜가 임하지 않습니까?
바로 사명이 없기 때문입니다.
우리에게 져야할 십자가가 있다면
무한한 은혜가 임하게 될 줄 믿습니다.
그 은혜가 자신을 위한 것이 아니라 하나님을 위한 것이어서
해야 할 사명이 있는 사람은
절대로 타락하거나 세상에 빠지지 않습니다.
항상 하나님의 은혜가 공급되는 것입니다.
-이 바울 목사의 ‘시몬의 십자가’에서-

하나님의 은혜는 반드시 사명을 동반합니다.
사명을 동반하지 않는 은혜는 은혜라고 말할 수조차 없습니다.
하나님이 은혜를 주시는 목적은
사명을 감당하라고 주시는 것입니다.
사명이 크면 클수록 은혜도 크게 임한다는 사실을 상기하십시오.
하나님을 위한 분명한 소명의식이 있는 만큼
그 분의 은혜를 덧입게 될 것입니다




글쓴이 : 김옥엽 국제펜클럽 회원 순수문학인협회 상임 이사
크리스챤문학상 수상
대한예수교장로회 숭인교회 유병수 담임목사 사모
비판하기는 쉽다 - 욥 11:1-6
1.그때 나아마 사람 소발이 이렇게 말하였다.

2. `이런 말을 듣고도 대답하지 않을 사람이 있겠느냐? 그와 같이 말이 많다고 해서 옳다는 인정을 받겠느냐?

3. 네가 자랑할 때 나는 잠자코 있어야만 하겠느냐? 네가 비웃으면 너를 부끄럽게 할 자가 없겠느냐?

4. 너는 네가 믿고 생각하는 것이 옳다고 여기며 하나님 앞에서도 네가 순결하다고 주장하는구나!

5. 하나님이 입을 열어 너에게 대답하시며

6. 지혜의 비밀을 너에게 알려 주시기 원한다 지혜에는 인간이 이해하기에 너무 심오한 면이 있기 때문이다 너는 하나님이 너에게 주신 별이 네가 마땅히 받아야 할 것에 비해서 오히려 가벼운 것임을 알아야 한다
나아마 사람 소발이 등장했습니다. 아마도 그는 욥의 세 친구 가운데 가장 연소했던 것 같습니다. 그러나 막상 입을 열자 그의 어조는 대단히 강경하고 냉담했으며 또 신랄했습니다. 무례하기도 했고 독단적이며 다혈질이기도 했습니다. 가엾은 욥의 상처에서는 여전히 피가 흐르고, 그의 온 몸에 난 종기에서는 쉴 새 없이 고름이 흘러나오는데 그의 친구들은 기름이나 향유는 붓지 않고 마지막 주자인 소발마저도 소금을 뿌리며 초를 치고 있습니다.

말이 많다
<말이 많으니 어찌 대답이 없으랴 말이 많은 사람이 어찌 의롭다 함을 얻겠느냐>(2절).
열띤 논쟁에 빠지다 보면 때로 이성적인 사람들조차도 지나칠 만큼 흥분하는 모습을 보게 되는데 여기 소발이 지금 그렇습니다. 엘리바스의 서두는 아주 점잖았고(4:2), 빌닷은 다소 거친 말로 변론을 시작했지만(8:2), 소발은 처음부터 원색적인 언어들을 쏟아내며 욥을 공박합니다. <말 많은 사람이 어찌 의롭다함을 얻겠느냐>며 욥을 떠버리쯤으로 치부합니다. 욥이 지금 자기가 무슨 말을 하고 있는지도 모른 채 생각나는 대로 함부로 지껄이며 변명과 억지 주장을 늘어놓고 있다는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우리는 믿음으로 의롭다 하심을 얻지 누구도 많은 말로써 의롭다 하심을 얻을 수는 없습니다. 그러나 욥은 진실을 호소했을 뿐 말만을 늘어놓은 것은 아닙니다. 소발이 욥을 제압하기 위해 처음부터 이렇게 공세로 나온 것입니다.

자랑이 많다
<네 자랑하는 말이 어떻게 사람으로 잠잠하게 하겠으며 네가 비웃으면 어찌 너를 부끄럽게 할 사람이 없겠느냐>(3절).
소발의 욥에 대한 과장된 언어들이 거침없습니다. 욥이 자신을 자랑하며 그의 친구들을 잠잠케 하려 했다는 것입니다. 심지어는 욥이 <내 도는 정결하고 나는 주께서 보시기에 깨끗하다>(4절)했다며 비난합니다. 사실 욥이 그렇게 말한 적은 없습니다. 오히려 7:20에서는 <내가 범죄하였나이다>하며 사죄를 빌기도 했습니다. 그럼에도 욥이 설령 그런 말을 했다할지라도 그것이 그리 큰 자랑 같아 보이지는 않습니다. 실제 욥은 경건했고, 의인의 길을 걸었으며 누구보다도 정직해서 하나님마저도 그 점을 인정해 주셨기 때문입니다. <여호와께서 사탄에게 이르시되 네가 내 종 욥을 주의하여 보았느냐 그와 같이 온전하고 정직하여 하나님을 경외하며 악에서 떠난 자는 세상에 없느니라>(1:8). 따라서 소발의 이런 공격 역시 도 지극히 인간적인 혈기에 불과할 뿐이었습니다.

죄가 많다
<… 하나님께서 너로 하여금 너의 죄를 잊게 하여 주셨음을 알라>(6절).
이것은 소발이 욥에게 <네가 아무리 극심한 징계 아래 있다 해도 하나님께서는 지금 네 죄악보다 훨씬 적게 거두고 계시다는 사실을 알라> 혹은 <하나님이 네 많은 죄악을 일부 면제하사 너의 지은 죄를 따라 갚지 않고 계심을 알라>는 뜻입니다. 하나님이 무한하신 은혜를 베푸사 너의 그 큰 죄악보다 적은 징벌을 당케하셨으므로 네게 닥친 환난에 대해 불평하지 말고 지옥에 가 있지 않은 사실을 감사하라는 것입니다. 다른 이라면 몰라도, 또 아무리 소발의 이런 발언이 그럴 듯하다 해도 욥의 경우에는 맞지 않는 말이며 번지 수가 틀렸습니다. 분명 욥의 고난과 환난은 죄악 때문이 아니었습니다. 오히려 그의 의로움 때문에 사탄이 하나님께 욥의 시험을 청구한 것입니다. 소발의 참소야말로 실로 사탄의 그것을 빼닮았습니다. 소발의 욥에 대한 정죄야말로 무고한 자에 대한 사탄의 단죄와 조금도 다를 바 없어 보입니다.
글쓴이 : 조성노 독일 본(Bonn) 대학교 신학부 졸업
뮌헨(Muenchen) 대학교 신학부 졸업
장로회신학대학교 조직신학 교수 역임
푸른교회(분당 소재) 담임목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