鶴山의 草幕舍廊房

Faith - Hymn

[CTS 새벽종소리] 2012년5월4일 QT - 홀로 있음 (도서/사진/말씀)

鶴山 徐 仁 2012. 5. 4. 22:17



홀로 있음


공동체는 느슨하든 엄격하든, 우리의 감사하지 않는 태도, 용서하지 않는 속성, 남을 조종하려는 마음, 자신이 좋아하는 것을 남에게 강요하려는 성향을 끄집어내어 보여줄 잠재성이 있다. 마치 하나의 거울처럼, 공동체는 나 자신의 뜻과 단체의 뜻 사이의 불일치를 보여준다. 그래서 홀로 있음이 필요하다.
-난네마리 키더의 [홀로 있음] 중에서-

사람은 공동체 속에서 살아갈 때 성숙해 집니다. 공동체는 우리의 부족함이 들어나는 곳입니다. 그러나 그것이 비판거리가 않고 오히려 서로 중보 할 기도제목이 됩니다. 함께 있음을 위해 홀로 있음이 되어야 내 자신을 보고 나의 신앙 성숙을 이루어 갈 수 있습니다. 함께 공동체와 더불어 살아가는 밑거름은 홀로 있음을 통해 주님으로 먼저 채워질 때 가능합니다.




글쓴이 : 이재학 연세대학교 연합신학대학원을 졸업
웨스터민스터신학대학원대학교(선교학)박사학위(Ph.D) 수료
하늘땅교회 담임목사
죄 없다 아니하시리라 - 욥 9:27~35
27 가령 내가 말하기를 내 원통함을 잊고 얼굴 빛을 고쳐 즐거운 모양을 하자 할찌라도
28 오히려 내 모든 고통을 두려워하오니 주께서 나를 무죄히 여기지 않으실 줄을 아나이다
29 내가 정죄하심을 입을찐대 어찌 헛되이 수고하리이까
30 내가 눈 녹은 물로 몸을 씻고 잿물로 손을 깨끗이 할찌라도
31 주께서 나를 개천에 빠지게 하시리니 내 옷이라도 나를 싫어하리이다
32 하나님은 나처럼 사람이 아니신즉 내가 그에게 대답함도 불가하고 대질하여 재판할 수도 없고
33 양척 사이에 손을 얹을 판결자도 없구나
34 주께서 그 막대기를 내게서 떠나게 하시고 그 위엄으로 나를 두렵게 하지 아니하시기를 원하노라
35 그리하시면 내가 두려움 없이 말하리라 나는 본래 그런 자가 아니니라
세상에서 죄 없는 사람은 없습니다. 또한 우리는 자주 하나님도 법정에 세우고 그분을 향해 수없는 질문을 던지고 싶은 경우를 당하며 살기도 합니다. 도저히 이해할 수 없는 고난과 시련이 닥칠 때 우리는 누구나 욥처럼 하나님을 심문하고 싶은 유혹에 시달립니다. 그러나 그런 하나님에 대한 송사는 곧 자기 자신의 믿음에 대한 판결로 귀결되기 마련입니다. <내 모든=斫育�두려워=臼윱�주께서=じ�죄=愎鳴�여기지=各맒�줄을=틂だ甄�(28절).

얼굴 빛을 고칠지라도
<가령 내가=뽀歐綬�내=盧遲�잊고=茶�빛을=勺�즐거운=助瑛�하자=怒侈捉�(27절).
요즘 <쇼윈도우 부부>라는 말을 자주 듣습니다. 쇼윈도우는 남에게 보여주기 위해 상품을 진열하는 창을 말합니다. 그래서 마네킹도 실물처럼 화장도 하고 예쁜 옷을 입히고 모자도 씌웁니다. 그런데 요즘 부부들 가운데는 그런 커플들이 적지 않다는 것입니다. 남이 볼 때는 아무런 문제가 없는 행복한 부부 같지만 실제는 그렇지 않고 거의 남처럼 지낸다는 것입니다. 또한 요즘 젊은 남녀들은 모두가 연예인처럼 잘 생기고 예쁩니다. 화장술과 성형술 덕분입니다. 그러나 원판불변의 법칙이란 말이 있듯이 본 바탕 만큼은 어쩔 수 없으며 더구나 인간의 죄성은 아무리 표정을 바꾸고 성형을 하고 화장을 해도 결코 감추거나 없앨 수 없습니다.

눈 녹은 물로 씻을지라도
<내가 눈=裏�물로=痔�씻고=紫갬�손을=諧暉構� 할지라도>(30절).
한방에서는 눈 녹은 물을 <납설수>라 하여 약으로도 씁니다. 맛이 달고 독이 없어서 열병, 온역, 황달을 치료하는 데 쓰며 그 눈 녹은 물로 눈을 씻으면 열기로 인한 핏발을 쉽게 다스릴 수 있다고 합니다. 그러나 눈 녹은 물이 아무리 독을 풀어주고 열을 식혀 준다해도 우리의 죄를 씻어 줄 수는 없으며 볏짚이나 나무의 재를 우려낸 진한 알칼리성의 잿물이 아무리 빨래의 기름기와 때를 빼는 데 탁월하다해도 우리 영혼의 때까지 제거해 주지는 못합니다. 오직 주님의 보혈만이 우리의 허물과 죄를 없이 하실 수 있습니다. <그 아들=뭡痔�피가=痢��모든=介【�깨끗하게=絿� 것이요>(요일 1:7).

함께 재판을 받을지라도
<하나님은 나처럼=泳汰�아니신즉=뺐�그에게=遊鄂�수=坪만�함께=榕載�재판을=�수도=彭�(32절).
하나님이 우리와 함께 재판정에 선들 누가 감히 그분을 심판하고 판결할 수 있겠습니까? 몇년 전 미국 캘리포니아 오클랜드에서 한 여인이 하나님을 상대로 법원에 소송을 제기한 적이 있습니다. 벼락이 그녀의 집 네 채를 모두 불살랐다는 혐의였습니다. 그녀는 하나님에 대해 <부주의하고 태만한> 우주 운영으로 무고한 자신이 큰 손실을 봤다며 10만 달러의 손해배상을 청구했습니다. 물론 해프닝으로 끝났지만 욥도 지금 그와 같은 심정으로 하나님을 법정에 세우고 자신의 무죄와 하나님의 유죄를 입증하고 싶어했습니다. 1986년 노벨 평화상을 수상한 엘리 위젤의 작품 <하나님에 대한=��도 이해할 수 없는 고난과 위기에 직면한 인간에 대해 아무런 조치도 취하지 않은 듯한 하나님에 대해 심문하는 내용입니다. 그러나 정작 죄인은 바로 우리들임을 깊이 깨달아야 합니다. 세상 모두가 하나님의 유죄를 선언한다해도 나만큼은 추호의 의심도 없이 하나님의 무죄와 진실을 확신할 수 있어야 합니다. 그게 곧 우리의 믿음이며 하나님 사랑입니다. 때로 우리 인생에 불어오는 벅찬 시련의 바람에도 불구하고 진리와 정의, 양심을 저버리는 일이 없도록 늘 기도하십시오. 하나님은 진심으로 우리가 다 당신의 변호인이 되어 주기를 바라고 계십니다.
글쓴이 : 조성노 독일 본(Bonn) 대학교 신학부 졸업
뮌헨(Muenchen) 대학교 신학부 졸업
장로회신학대학교 조직신학 교수 역임
푸른교회(분당 소재) 담임목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