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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어머니(5) 김진홍 목사의 아침편지

鶴山 徐 仁 2012. 3. 29. 18: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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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어머니(5)

2012-3-26

내가 목사가 되기 위하여 신학교에 입학하게 되었을 때에 어머니께서 가장 기뻐하셨다. 그냥 기뻐하신 정도가 아니라 일어서서 춤을 추실 만큼 기뻐하셨다. 그런데 문제는 내가 어머니를 모시고 있었는데 신학교로 가게 되면 어머니 생활비를 어떻게 하느냐가 문제였다. 그래서 내가 어머님께 묻기를 "어머니 신학교 가는 것을 일년쯤 미루고 어머니 생활대책을 세워두고 신학교로 갈까요? 하고 물었다.

내 말에 어머니는 펄쩍 뛸 듯이 반대하시며 이르시기를 "야가 무슨 소릴 하냐! 하나님의 일꾼 되려고 어렵사리 신학교를 가는데 이 어미 때문에 지장이 있어서 되겠느냐? 아무 염려하지 말고 가거라. 내가 진작에 대책을 세워 두었다"

이에 나는 어머니의 말만 믿고 그냥 신학교로 진학하였다. 그런데 한 학기 마치고 방학이 되어 대구 집으로 내려갔더니 어머니가 계시지 않았다. 이웃 집에 물었더니 "글쎄 영주 어디에 계신다던데. 나에게 연락할 수 있는 전화번호가 있으니 그리 연락을 해보시게"하였다. 이에 그 번호로 전화를 드렸더니, 영주 어느 집에 계신다기에 왠 일인가 하여 영주로 찾아갔다.

그랬더니 영주 어느 집에서 가정부로 계시는 것이었다. 그 시절에 하던 말로는 식모살이였다. 놀란 나는 어머니께 항의하면서 말했다.

"아니 어머니께서 무슨 대책이 있으시다 하여 그 말만 믿고 신학교로 갔었는데 그 대책이란 것이 식모살이였습니까? 당장 신학교 휴학하고 학교 교사 직을 하더라도 어머니를 모시겠습니다. 어머니 오늘 당장 그만 두시고 대구로 가십시다" 내 말에 어머니께서 조용한 음성으로 말하셨다.

"왜 그러느냐? 식모살이가 어때서 그러느냐? 일하니 건강해서 좋고, 기도생활하기 좋고, 난 행복하게 지나고 있다. 비록 식모살이일지라도 나는 프라이드가 있다. 이 집 주인집에 아들이 셋이나 있지만 내가 볼 때는 셋을 다 합쳐도 너 반도 안되겠더라, 나는 장차 한국교회 최고 목사를 길러낸 어머니가 될 거란 꿈을 가지고 살아가기에 날마다 즐겁게 지내고 있다. 그렇게 좁은 소견으로 생각지 말아라"

그 날 나는 어머니께 설득 당하여 그 집을 나오며 다짐하기를 "그래 어머니 말씀처럼 한국교회 최고의 목사가 되자. 그것이 어머니께 효도하는 길이다"고 다짐하며 나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