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파원 칼럼] '인터넷 목도리'를 조심하라
입력 : 2012.02.08 23:31 | 수정 : 2012.02.08 23:51
- 여시동 상하이 특파원
중국에서 '웨이보(微博·마이크로 블로그)' 사용자가 서비스 시작 2년6개월 만에 3억명에 육박하고 있다. 올해 '춘제(春節·설)'인 지난 1월 23일에는 트위터를 제치고 트래픽 최고 기록(초당 메시지 3만2312건)을 세웠다. '중국판 트위터'로 불리는 웨이보는 2010년에 중국 50대 주요 사건 중 11건을 가장 먼저 알려 정치권을 긴장시켰다. 이젠 정치영역뿐 아니라 경제·사회 등 모든 분야의 종사자들이 주시하고 있다.
이달 초 한 여성 네티즌이 웨이보에 KFC 배달 종업원 관련 글을 띄웠다. 간추리면 "KFC에 음식 배달을 주문하면서 '눈 크고 속눈썹 길고 보조개 있는, 잘 생긴 배달원을 보내달라'고 했더니 진짜 그런 멋진 청년이 음식을 배달해주더라"는 것이다. 더구나 10분 뒤에 KFC 직원이 전화를 걸어와 "배달원의 용모가 마음에 들었느냐"고 확인까지 했다는 것이다. 이 글은 수만번 퍼날라졌고 댓글도 5000여건이나 달릴 정도로 네티즌 사이에 일약 화제가 됐다. KFC는 바짝 긴장했다. 음식뿐 아니라 '특별 서비스'까지 제공하는 저질 기업으로 비칠 수 있다고 판단한 것이다. 이에 이 회사의 책임자는 "우리의 형제자매인 배달원들은 매우 힘들게 근무합니다. 우리는 음식 배달하면서 다른 서비스는 제공하지 않습니다"라는 공식성명을 발표했다.
KFC는 기민하게 대응하는 바람에 큰 타격 없이 넘어갈 수 있었지만 독일 지멘스는 그렇지 못해서 심하게 당했다. 자사의 기업브랜드를 과신하면서 웨이보의 위력을 과소평가했다가 낭패를 본 것이다. 지난해 9월말 중국 파워 블로거인 뤄융하오(羅永浩)는 웨이보에 "지멘스 냉장고를 샀는데 문이 잘 안 닫힌다"는 글을 띄웠다. 이어 수백명의 네티즌이 비슷한 글을 띄웠으나 지멘스는 "품질 문제가 아니다" "생산은 중국 회사가 한다"는 식으로 책임을 모면하려 했다. 하지만 뤄융하오가 베이징의 지멘스 본사 앞에서 네티즌들이 보는 가운데 지멘스 냉장고를 해머로 내려치는 퍼포먼스를 벌이는 등 계속 물고 늘어지자 냉장고 판매량은 급감했다. 소비자들의 반감엔 "독일이나 미국 같은 선진국에서도 이렇게 하느냐. 중국이라고 무시하느냐"는 민족주의 감정까지 겹쳐져 지멘스는 속수무책이었다.
세계적인 중국 컴퓨터 업체 롄샹(聯想)도 웨이보에 혼이 났다. 롄샹으로부터 태블릿 PC 수백대를 구입하기 위해 돈을 지불했던 한 업체의 대표가 롄샹이 판매규정대로 정해진 증정품을 제공하지 않자 웨이보로 폭로한 것이다. 이 소식이 인터넷에 급속도로 퍼져나가자 롄샹은 2시간 만에 손을 들었지만 기업 이미지는 이미 상당한 타격을 입은 뒤였다.
일부 중국 전문가들은 중국공산당이 몰락한다면 그 원인은 웨이보 같은 SNS 때문일 것이라고 예측한다. 이는 기업들에도 똑같이 적용될 수 있다. 중국 땅에서 비즈니즈를 하는 기업은 웨이보의 동향에 둔감했다가 하루아침에 보따리를 싸야 하는 상황이 올 수 있다. 중국 젊은이들은 웨이보가 '목도리(圍 )'와 발음이 같다는데 착안해 "웨이보 하느냐"를 "목도리 짜느냐"는 말로 표현하기도 한다. 중국에 진출한 한국 기업들도 '인터넷 목도리'에 바짝 긴장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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