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데스크] 1등은 영원하지 않다
입력 : 2012.01.25 23:30 | 수정 : 2012.01.26 03:32
- 김희섭 산업부 차장
지금까지 휴대전화 업계에서 가장 성공한 제품으로 꼽히는 것은 모토로라의 레이저(RAZR)이다. 2004년 처음 출시된 레이저 휴대폰은 4년간 롱런하며 전 세계에서 1억3000만대가 팔렸다. 면도날을 연상시킬 정도로 날씬한 외관에 세련된 금속성 숫자 버튼을 장착해 폭발적 인기를 끌었다.
레이저는 모토로라에 엄청난 이득을 안겨줬지만 역설적으로 회사 몰락의 단초가 됐다. 모토로라 경영진이 레이저의 성공에 도취해 새로운 제품을 개발하는 데 소홀했기 때문이다. 모토로라는 기존 제품의 모양과 이름만 살짝 바꿔 '크레이저(KRZR)' '라이저(RIZR)' 같은 후속작을 내놓았으나 소비자의 관심을 끄는 데 실패했다. 히트 영화의 속편(續篇)은 전편(前篇)보다 재미없다는 속설을 잘 입증하는 사례다. 대규모 적자에 시달리던 모토로라는 결국 작년 구글에 인수됐다.
혁신(革新)은 낡은 것을 버리고 새로운 것을 적극적으로 받아들일 때 일어난다. 예를 들어 삼성전자의 스마트폰 갤럭시 시리즈는 이런 '창조적 파괴' 과정을 겪었다. 현재 국내에서 가장 잘 팔리는 스마트폰은 갤럭시S2다. 출시 9개월 만에 누적판매 500만대가 넘었다. 이 제품은 베스트셀러인 갤럭시S와 겉모습은 흡사하지만 속은 완전히 딴판이다. 개발팀은 두께 1㎜를 줄이기 위해 화면표시 장치와 내부 부품 설계를 A부터 Z까지 다 뜯어고쳤다. 출시(出市) 일정이 임박하자 회사에 야전침대를 갖다놓고 밤을 새운 적도 많다. 이런 식으로 삼성전자는 작년 한 해 디자인이 다른 휴대폰 550종을 내놓았다. 시장에서 빛을 못 보고 사라진 제품도 부지기수다.
이는 어떻게 보면 비효율적일 수도 있다. 애플은 아이폰 신모델을 1년에 한 가지만 내놓으면서도 막대한 수익을 거둬들인다. 애플 창업자 스티브 잡스는 편집광(偏執狂)이란 말을 들을 정도로 끊임없이 혁신을 추구했다. 그 덕분에 애플은 작년에 사상 최대 실적을 올렸다. 하지만 잡스가 세상을 떠난 이후 애플의 창조와 혁신 에너지는 많이 약화된 모습이다. 작년 하반기에 출시된 신형 스마트폰 아이폰4S는 이전 제품과 별다른 차이가 없다는 비판을 받기도 했다.
그 사이 삼성이 무섭게 치고 올라와 애플과 삼성은 스마트폰 판매 1위 자리를 놓고 엎치락뒤치락 경쟁을 벌이고 있다. 최지성 삼성전자 부회장은 지난 2007년 초 휴대폰 총괄사장을 맡으면서 "당(唐) 태종 때의 명재상 위징(魏徵)은 '세상을 바꾸는 데 1년이면 족하고 3년이면 늦다'고 했다"고 말했다. 당초 목표보다 조금 늦긴 했어도 삼성은 초스피드 개발과 다양한 신모델로 휴대폰 시장 판도를 뒤집는 데 성공했다.
하지만 삼성전자는 아직 모토로라나 애플처럼 새로운 산업을 창출하고 이끌어가는 역량을 보여주지는 못하고 있다. 모토로라는 1973년 세계 최초로 휴대폰을 개발하고 관련 산업을 리드해왔다. 애플은 휴대폰이 통화할 때만 쓰는 것이 아니라는 것을 아이폰으로 보여줬다. 그런 회사들도 잠시만 방심하면 위기가 닥친다는 것이 산업계의 철칙(鐵則)이다. 1등은 영원한 것이 아니다. 혁신을 주저하고 현실에 안주하면 달콤한 성공의 열매는 언제든지 쓰디쓴 독약으로 변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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